소설리스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37/20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광진구 동현빌딩 베네티 코리아 본사

건대 근처의 베네티 코리아 본사의 사무실은 생각보다 수수한 모습이었다. 뭔가 최고급 요트를 파는 회사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하, 뭐, 저희 요트가 고급스러운 거지 저희 회사가 고급스러울 필요는 없죠. 그리고...”

“그리고요?”

“아직은 사업 초기라 그다지 매출이 많지는 않습니다.”

이성호라는 남자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깔끔한 인상의 남자였다. 짧게 자른 머리에 안경이 잘 어울리는 느낌, 하지만 운동을 좋아하는지 수트를 입었어도 꽤 근육이 있어 보이는 체형이었다.

“그러시군요.”

이성호는 요트를 사고 싶다는 말에, 반색을 하며 진수에게 자신의 회사를 방문해 달라고 했지만 사무실로 들어오는 진수의 모습을 보고는 약간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진수는 평소와 다름없이 청바지에 체크셔츠를 입고 백팩을 메고 있었다.

누가 봐도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고급 요트를 사러 올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하긴, 이러고 왔으니 내가 요트를 살 돈이 있다는 생각은 하기는 어렵겠지? 일단은 내가 요트를 살 수 있는 고객이라는 걸 좀 억지로라도 보여줘야겠는데...

“저기, 빌딩 앞에 차를 주차했는데 괜찮겠죠?”

“차요?”

“예, 저기 보이시나요? 노란색 람보르기니 말입니다. 얼마 전에 산 건데, 이름이 뭐라더라?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J 로드스터죠. 그냥 평범한 람보르기니처럼 보이지만, 세계에 800대뿐인 한정판이라네요. 그래서 가격도 9억이 넘더라고요. 뭐, 저에게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오, 저 아벤타도르가? 저기, 최 사장님이라고 하셨나요?”

“최진수입니다. 뭐, 사장은 아니지만, 사장이라고 부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하,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아닌데, 여기저기서 사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주로 건물 임차인들이 그렇게 부르죠. 제 건물이 두 개 정도 있는데, 신사동에 7층짜리 작은 빌딩도 하나 있고, 얼마 전에 산 신사역 근처에 15층짜리 빌딩도 하나 있고요.”

“강남에 빌딩을 두 개씩이나요?”

이성수는 안경을 들어 올리며 건물 앞에 주차된 람보르기니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언뜻 나의 내추럴한 모습과 최신형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의 럭셔리한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번의 시선이 오고 가며 두 가지의 이질적인 이미지가 하나로 초점이 맞추어졌는지, 이성수 사장은 어딘지 유들유들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날카롭던 눈에서는 긴장이 풀리고 대신 자신의 몸가짐에는 힘이 들어가며 나를 대하는 태도가 한결 깍듯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사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약간 실망한듯한 표정과 나의 질문에 건성건성 귀찮은 듯 마지못해 대답하는 느낌이었는데,

나의 람보르기나와 빌딩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완전히 태도가 돌변한 것이었다. 나이는 이성수 사장이 훨씬 위였지만, 한순간에 내가 더 높은 지위가 된 것 같았다.

가끔, TV에서 연예인들이 농담 삼아 하는 잘나가면 선배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과거 농경시대에는 노인이 공경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이제는 돈이 있어야 공경을 받는 자본주의 시대인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이다. 이제는 부자들을 위한 나라만이 존재한다.

“예, 뭐, 새로 산 건 신사역 근처에 있는 오피스 빌딩인데, 720억에 샀으니까, 싸게 잘 산 거죠.”

“와우, 실례지만 나이가?”

“대학교 2학년입니다. 전역하고 복학을 했죠. 육군 병장으로 만기...아무튼, 나이가 중요한가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말입니다.”

“하하, 뭐, 그런 건 아니죠. 동안으로 보이셔서 혹시 유명 재벌가의 자제분이 아니신가? 그런 생각도 해보았거든요,”

“아버지가 뭐 하시는 분인지 궁금하시다 이거군요? 저희 아버님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드러나는 걸 좋아하는 분은 아니시죠. 뭐랄까? 하지만 묵묵하게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그런 분이라고나 할까요.”

거짓말은 아니잖아? 시골에서 미래의 먹거리인 농작물을 키우시고 계시니까 말이다.

“미래의 먹거리? 그렇다면 생명공학이나 그런 신기술 쪽으로 투자를 하시는 분인가요?”

“생명공학이라? 뭐, 생명공학 계열의 그런 미래 사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농업도 생명공학 계열이기는 하다.

“오, 그러면 바이오 관련 그런 쪽의 기업 오너쯤 되신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전, 이거 저것 따지고 캐묻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제 집안 자랑을 할 생각도 없고 그저 요트가 필요해서 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요트는 안 보이네요. 따로 요트가 있을 것 같은 곳도 아니고.”

“아, 물론, 요트를 전시하기에는 좀 사무실도 좁고 그렇죠. 아직 사업 초기라 대규모 전시실까지는 갖추고 있지는 못합니다.”

뭐야? 이태리 고급 요트 어쩌고 해서, 큰 회사일 줄 알았는데, 사무실도 건대 근처의 평범한 빌딩이고 회사 사무실 정도만 있지 요트들도 없고 좀 기대했던 그런 곳은 아니었다.

“그래요? 창업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신 모양이죠?”

“예, 그런 것도 있고 아직 우리나라가 그다지 요트 문화가 활성화되지는 않았거든요. 일단 요트를 탈 곳도 그다지 마땅하지 않죠.”

하긴, 서울에서 요트 탈 만한 곳이라면 한강 정도인데, 한강에서 요트를 타는 사람을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성수는 원래 고급 슈퍼카를 직수입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회사 사장의 권유로 요트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했다.

“사실, 자금을 대주시는 회장님이 따로 있습니다. 저는 일종의 바지사장이죠.”

“영업 담당 사장님이시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요트는 그다지 많이 팔리지는 않죠? 더구나 고급 요트라면 말입니다.”

“예, 맞습니다. 요트 문화가 발달한 유럽이나 미국하고는 비교가 안 되죠. 최근에는 중국도 요트가 많이 판매되는 곳이고요. 일단, 저도 베네티 본사의 초대로 유럽 쪽의 모나코나 마르세유 같은 곳을 가봤는데, 일단 유럽은 바캉스 문화가 발달한 곳이라 여름에는 너나 할 거 없이 다 도심을 떠나서 지중해 쪽으로 휴양을 가죠.”

어딘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tv에서 가끔 보는 여행 프로그램을 봐도 유럽연합은 거의 국경 개념도 없고 추운 북쪽 사람들이 이탈리아나 스페인 그리스 같은 지중해 지역으로 많이 휴가를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온화한 지중해의 바닷가에서 요트를 즐기는 문화도 발달한 것 같고 말이다.

“그리고 지중해는 요트를 즐기기에 정말 좋아요. 항구도시들마다 마리나도 잘 갖추어져 있고. 또 지중해에는 작은 섬들도 많아서 요트에 지인들을 태우고 요트 여행을 즐기기도 정말 좋은 곳이니까요.”

“듣고 보니, 저도 한 번 지중해에서 요트 여행을 즐겨보고 싶네요.”

“하하, 기회가 되시면 정말 멋진 경험이 될 겁니다. 아무튼, 일단 실물은 아니지만 베네티의 요트들을 보여드릴까요? 소형 요트부터 중형급 이상의 슈터 요트까지 멋지고 고급스러운 요트들이 많이 있죠.”

이성수 사장 말로는 베네티는 이탈리아에서도 알아주는 명품 요트 회사라고 한다.

“요트계의 페라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페라리도 요트를 생산하기는 하지만, 베네티의 명성은 따라올 수 없죠.”

“오, 그 정도인가요?”

“베네티의 요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럭셔리 슈터 요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그런 인식이 별로 없지만 이탈리아는 선박 기술의 선진국이죠. 로마시대부터 말입니다.”

“로마시대요?”

“예, 지중해는 로마의 바다였고, 지중해를 지배하던 로마인들은 뛰어난 선박건조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로마 제국 이후에도 베네치아가 해상왕국을 형성하면서 지중해의 무역을 장악하게 되죠. 역사적으로 보면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하던 베네치아 왕국이 지중해의 강자가 된 것도 뛰어난 선박건조 기술 때문이고요.”

“다, 옛날 일 아닙니까?”

“하하, 그렇기는 합니다. 아무튼, 베네티 제품은 아니지만, 소형 요트들도 취급을 하기는 하는데 한 번 보여드릴까요?”

“아뇨, 자잘한 것들은 필요 없고, 좀 대형 요트라고 할까요? 공간도 넓고 침실도 있고 그런 큰 요트 있잖습니까? 침실에 금고 같은 것도 넣을 수 있는 그런 요트요. 좀 큰 금고 말이죠.”

“그러면 베네티의 슈퍼 요트들을 보여드리죠.”

이성수 사장은 사무실 벽면의 대형 화면으로 베네티의 요트 모델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기 시작했다. 베네티라는 요트 회사는 같은 이탈리아 회사인 페라리와 비교되며 요트계의 페라리라고 불리는 럭셔리 요트 브랜드라고 한다.

베네티가 요트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게 1873년부터라고 하는데. 흥선 대원군이 쇄국 정책이니 뭐니 그런 일들을 하고 있을 때,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고급 요트 회사의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기는 했다.

“멋진데요.”

화면으로 비치는 흰색의 아름다운 요트들, 아마도 지중해 어디쯤일 것 같은 바다를 배경으로 푸른바다와 요트의 럭셔리한 흰색은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모델이기는 하겠지만, 늘씬한 비키니를 입은 모델들도 등장해 뭔가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사진들이었다.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도 최진수 사장님 정도의 능력만 된다면 정말 갖고 싶은 게 이런 슈퍼 요트들입니다.”

“페라리 같은 차들을 슈퍼카라고 하는데 고급 요트들은 슈퍼 요트라고 하나 보죠?”

“예, 보통 배의 길이를 기준으로 40미터 내외의 요트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보다 더 큰 100미터 이상의 메가 요트들도 있지만, 그건 또 다른 클라스의 배들이고요. 하하...”

배의 크기는 40미터 짜리면 충분해 보이기는 했다. 사진으로 보는 거라 그리 정확한 건 아니지만, 저 정도 배의 크기라면 금괴를 실어나르기에는 충분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기, 그런데 이런 배들은 아직 수입이 되지는 않은 건가요? 실물을 보고 싶은데.”

“실물요? 뭐, 그것도 가능합니다. 여러 모델들이 있지만, 지금 해운대 마리나에 베네티 클래식 수프림 132 모델은 한 척 들어와 있거든요.”

이성수 사장은 베네티 클래식 수프림 132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고급 요트의 경우 배를 주문하게 되면 이태리에서 생산을 해서 들여오는 방식으로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인데, 다행히 수프림 132는 지금 홍보용으로 해운대 마리나에 한 대가 들어와 있다고 했다.

“꽤 큰데요? 어느 정도 크기인가요?”

“길이가 40.2미터죠. 폭은 8.2미터, 15노트까지 달릴 수 있고, 최대항속 거리는 4000km까지 가능합니다. 내부의 살롱과 서비스룸, 베드룸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요. 배 선미에 자쿠지도 있습니다. 여기 보이시죠? 그리고 인테리어도 이태리의 디자이너들의 작품이라 아주 화려하죠. VIP룸 하나에 일반룸 2개니까, 승객 8명에 승무원 7명을 태우고 필리핀 정도는 항해할 수 있는 배입니다.”

필리핀이라 그러면 제주도도 문제없기는 하겠군. 하지만 이런 배는 가격이 대체 얼마나 하는 거야?

“배는 맘에 드네요. 그러면 이 배의 가격은 어느 정도나 하는 겁니까?”

“하하, 가격요? 요트라는 것이 일반적인 공산품은 아니라, 그리고 대금 지불 방식도 유로화를 기준으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얼마입니까?”

“현재 베네티 본사에서 책정한 가격은 2천만 유로, 그러니까, 260억 정도입니다.”

이..이백 육십억?

배 한 척이 그렇게 비싸? 난, 한 20억이나 30억이면 살 줄 알았는데, 뭔가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었다.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가 40억에서 50억 정도쯤 되는 걸로 아는데, 강남 아파트를 다섯 채는 살 돈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한 번쯤 저런 배를 가져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제주도의 금괴 가격만 1400억 이상이고, 금값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 돈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열심히 해독을 위해서 공부 중인 황금백합 문서를 잘 이용하면 추가로 금괴를 더 찾아낼 가능성도 많고 말이다. 거기에 성원 소프트에 투자한 자금도 지금은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 약간 미친 짓 같지만, 다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저런 배도 파는 거 아니겠어?

“흠, 조금 비싸기는 하죠? 뭐, 그래서 베네티 코리아 런칭 스페셜 기념 이벤트로 이 베네티 클래식 수프림 132 모델은 한화 220억에 특별 할인해서 구매 가능하십니다. 제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최진수 사장님은 정말 운이 좋으신 겁니다.”

“그래요? 하하, 할인까지? 좋습니다. 그럼 일단 배를 한 번 보고 계약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