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여인
부산, 해운대
“선아 씨는 고향이 부산이라고 했죠?”
“예, 어릴 적에 잠시 살았어요.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서울로 이사를 갔지만 부산 사람인 거죠.”
“해운대는 자주 와봤겠네요?”
“부산 살 때는 아니고, 서울로 이사한 후에 친구들하고는 와봤어요.”
베네티 코리아의 이성수 사장은 베네티 수프림 클래식 132를 보여주겠다면서 부산으로 나를 초대했다.
마침 계절은 뜨거운 태양의 계절, 여름, 문제의 베테니 수프림 클래식 132가 정박되어 있다는 부산 해운대 마리나를 향하는 길이었다.
부산까지 어떻게 갈까? 하다가 포르쉐 파나메라를 타고 가기로 한 것이었다. 혼자 간다면 람보르기니를 타고 갈 생각도 해볼 수 있었지만, 마침, 윤선아 씨가 휴가라고 해서 지난번에 요트를 태워주겠다는 약속도 지킬 겸, 겸사겸사 그녀와 같이 해운대로 가기로 한 것이다.
슈퍼카 동호회 쪽에 알아본 결과, 차체가 낮은 람보르기니를 타고 장거리 운행은 좀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파나메라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운전하는 은색의 파나메라가 해운대 해변 앞을 지나가자 몇몇 사람들이 힐끔거리기는 했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를 타고 왔다면 좀 더 반응이 좋았을 텐데, 라는 약간 아쉽다는 느낌적인 느낌도 들고 말이다.
하지만 조수석의 윤선아는 기분이 좋은 듯,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어릴 적 부산에 살았다던 윤선아에게 부산은 익숙한 도시라고 했다. 거기에 오랜만에 휴가, 그리고 옆자리의 나 때문인지? 그녀는 기분이 좋은 듯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날씨가 약간 덥기는 했지만, 피서객들이 넘치는 해운대 일대의 분위기는 여름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져서 뭔가 사람을 들뜨게 하는 것이 있었다.
여기저기, 과감한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의 모습들도 보이고 말이다.
“와, 여자들 비키니들이 화려하네요. 우리나라도 이제 많이 과감해진 것 같아요. 남들 시선 잘 신경 쓰지 않고 말이에요.”
“어머, 최 사장님은 비키니 입은 여자들만 보고 있었군요? 변태 같아요.”
“하하, 인간의 본성 아닌가요? ”
“하긴, 남자들이 다 그렇죠. 그런데 저 정도 비키니야 요즘엔 다 입는 거 아닌가요? 내가 가져온 것도 저 정도는 되거든요.”
내가 지나가는 비키니를 입은 두 명의 늘씬한 여자들 바라보자, 윤선아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피식 웃음을 보였다.
뭐야? 비키니도 준비해 온 건가? 하긴, 해운대에 같이 가자고 했으니까, 당연히 수영복도 준비를 했겠지? 그나저나, 난 수영복 안 가져 왔는데...
***
해운대 엘케이 시티, 84층 슈퍼 펜트하우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해운대의 유명한 랜드마크 타워인 엘케이 시티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엘케이 시티 입구에서 만난 이성수 사장은 나와 윤선아를 깍듯하게 맞으며 84층의 펜트하우스로 안내했다.
“어머, 이게 뭐예요?”
펜트하우스 거실로 들어서자 윤선아가 통유리로 너머로 보이는 거실 밖 풍경에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84층의 초고층 펜트하우스의 거실에서 눈앞으로 보이는 것은 탁 트인 해운대 앞바다의 전경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고, 햇살이 따사롭게 들어오는 엘케이 시티 펜트하우스에서 내려다보는 오션뷰는 서울 아파트의 한강뷰나 시티뷰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저도 부산에 살았지만, 이렇게 멋진 바다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마치 딴 세상에 온 느낌이에요.”
부산이 처음인 나도 좀 놀랐지만 부산 출신이라는 윤선아도 이런 고층에서 해운대 앞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하하, 엄청난 오션뷰죠. 여기 처음 오시는 분들은 다 그런 반응이시죠. 저도 가끔 여기 오는데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여기는 그 회장님의 소유라는 거죠?”
“예, 부산에서도 꽤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계시죠.”
이성호 사장은 전에 자기 입으로 말한 것처럼 일종의 바지사장이었다. 자금을 대는 회장님이라는 사업가가 따로 있는 것이다.
이곳은 그 회장님의 소유로, 부산을 찾는 VIP 고객들을 접대하는 용도를 쓰인다고 했다.
“이런 아파트 하나 가지고 있으면 부산에 올 때마다 좋기는 하겠네요.”
내가 펜트하우스에 관심을 보이자 이성수는 슬슬 내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하하, 뭐, 최진수 사장님이 원하신다면, 구매하시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아파트를요?”
“어머, 그런데 이런 고급 아파트면 비싸지 않나요?”
윤선아는 갑자기 아파트 구매 이야기가 나오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와 이성수 사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 소유는 아니지만, 회장님이 매물로 내놓으신 가격이 75억입니다. 펜트하우스 공간이 74평이니까요. 평당 1억 정도죠. 물론 싼 가격은 아니지만, 위치나, 펜트하우스의 수준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 75억요? 그렇게 비싸요?”
윤선아는 75억이라는 가격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75억이면 백억에서 25억이 모자라는 그런 거액이다. 서민들의 유일한 꿈과 희망이라는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세금 떼고 뭐하면 한 10억 정도 들어오는데, 평생 한 번도 당첨이 힘들다는 로또에 7번 연속으로 당첨되어야 사 볼만한 그런 금액인 것이다.
“얼마 안 하는군요. 평당 1억 수준이면 서울에 고급 레지던스 그런 곳에 비하면, 역시 지방이라 저렴한 건가요? 하하하...”
나 스스로 생각해도 정신 나간 소리 같기는 하지만 어차피 재벌 3세 코스프레를 하는 김에 미친 척하고 연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행운과자의 행운으로 돈이라면 진짜 재벌 3세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가지고 있기도 했다. 제주도에도 1400억이 넘는 금괴가 있었고, 금이라는 것은 환금성도 좋으니까, 현금화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테고 말이다. 어차피, 내일은 이성수 사장과 220억짜리 요트를 계약할 생각이기도 했다. 요트만 마음에 들면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75억짜리 펜트하우스 정도야, 우습지 하는 마음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짧은 핫팬츠 차림으로 엘케이 시티 84층의 펜트하우스를 넋을 잃고 구경을 하고 있는 윤선아의 모습도 왠지 나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75억짜리 펜트하우스를 플랙스 해버리면 어떨까? 윤선아는 나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할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친놈이라도 돈 많은 재벌 3세라면 여자들은 좋아하겠지?
뭐, 그런 정신 나간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고 있었다.
“사실, 이 펜트하우스의 최고의 메리트라면 오픈 발코니가 있다는 겁니다.”
“오픈 발코니요?”
“예, 이쪽으로 오시죠.”
이성수는 혼자 망상에 빠져 있는 내가 가격 때문에 망설인다고 생각을 했는지, 펜트하우스의 오픈 발코니로 나와 윤선아를 안내했다.
오픈 발코니라는 게, 일반 고층 아파트와는 달리 외부의 발코니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물론 고층이고 바람이 강한 것을 고려해서 펜트하우스의 안쪽으로 ‘ㄷ’ 자 형태로 움푹 들어간 곳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84층이나 되는 곳에 야외 발코니가 있는 것이었다.
“와, 대박, 밖으로 나갈 수가 있구나?”
“굉장하죠.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여기서 저기 보이시죠? 저게 대마도입니다.”
“정말요? 진짜네, 정말 대마도가 보여요. 그리고 날씨 너무 좋다. 아래쪽에 해운대 해변도 한눈에 들어오고요.”
이성수의 말대로 경치가 정말 좋았다. 오늘은 바람도 적당히 선선하게 불어오고 오픈 발코니에서 저 멀리 대마도까지 탁 트인 오션뷰,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해운대의 뜨거운 해변의 인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이고 있었다.
“뭔가 신이 된 기분이네요. 자본주의의 신 말입니다.”
“하하, 신요?”
뭔가 등신 같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84층의 펜트하우스의 오픈 발코니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내려다보는 저 아래의 세계는 뭔가 나의 발밑의 존재들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스의 신들이 산다는 올림포스 산의 느낌도 이런 걸까? 거대한 초고층 빌딩은 신화 속의 거인이나 괴물 같은 느낌도 있고, 신들만이 살 수 있는 금지된 신성한 궁전 같기도 했다. 이곳에 들어오고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려면 현대 자본주의의 특권층, 신과 같은 특권층이 되어야 하는 그런 곳 말이다.
“저기 왼쪽으로 보이는 게 해운대 마리나입니다.”
“오.. 저기 그 베테니 요트가 있는 곳이군요?”
“어디 어디요? 정말 최 사장님 요트가 저기 있는 거예요?”
“아직, 계약한 건 아니에요. 일단 실물을 봐야 할 거 아닙니까? 사진 몇 장 보고 220억짜리 배를 살 수는 없으니까요.”
“어머, 220억요? 요트가 그렇게 비싸요?”
윤선아가 놀란 표정을 짓자, 이성수는 간단하게 베네티 요트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태리의 최고 명품 요트라는 말이죠. 하하, 최진수 사장님처럼 품격있는 분에 어울리는 최고급 슈퍼 요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윤선아 씨에게도 잘 어울리는 럭셔리하고 매혹적인 요트고요.”
“빨리 보고 싶다. 그 럭셔리한 요트, 요트는 언제 보는 거예요?”
“예, 일단, 오늘은 부산까지 오시느라 피곤하실 테니까, 좀 쉬시고 내일 오전에 요트를 한 번 보러 가시는 걸로 하죠. 그럼, 더 필요한 게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성수는 요트를 사러 온 나에게 이 펜트하우스를 며칠 빌려주기로 했다. 정확히는 그 회장님이라는 분의 제의로 며칠 묵으면서 마음에 들면 75억에서 구매도 가능하다면서 말이다.
펜트하우스는 74평이라는데, 방은 두 개뿐, 마스터룸이 꽤 크고, 거실과 오픈 발코니 같은 곳이 이 펜트하우스의 메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성수가 나가자, 윤선아는 본격적으로 펜트하우스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냉장고도 열어보고, 방들도 살펴보고, 화장실과 주방도 구석구석 살펴보는 게 집 계약하러 온 새색시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난 크게 집의 구조나 그런 건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이런 고급 아파트면 알아서 다 잘 만들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보다는 거실과 오픈 발코니에서 보이는 시원한 여름 바다의 풍경이 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황홀한 느낌이었다.
“최 사장님은 정말 이 아파트를 사실 생각이세요?”
“선아 씨 생각은 어때요?”
“어머, 그걸 왜 저한테 물으세요? 제가 돈 내는 것도 아닌데요?”
“그렇기는 하지만 뭐, 어차피 이런 펜트하우스는 가족과 사는 그런 곳은 아닌 것 같네요. 그보다는 애인하고 한 번씩 놀러 오는 그런 곳 같아요.”
“하긴, 그래요. 제가 좀 둘러보니까, 아파트라기보다는 호텔 느낌이 많이 나고, 뭔가 돈 많은 재벌 3세가 가끔 부산에 놀러와서 머무는 그런 곳 같아요.”
75억이라? 상상이 되었다. 여름이면 해운대에 한 번씩 찾아와서 이곳 펜트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주차장에 람보르기니도 한 대 사두고, 부산에 올 때마다 해운대 해변과 마리나를 람보르기니를 타고 드라이브도 하고 말이야, 내가 굉음을 내며 람보르기니를 몰고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겠지? 아마, 남자들이라면 욕을 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젊은 여자들이라면 저런 고급 슈퍼카에 누가 타고 있을까? 재벌 3세가 타고 있는 걸까? 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75억이라는 돈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의 떡이겠지만,
나에게 75억은 그리 큰 돈이 아니다. 그래도 일단, 내일 요트부터 살펴보고, 마음에 들어서 요트를 계약하게 된다면, 이 펜트하우스도 같이 구매해서 부산의 아지트로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슈퍼 요트와 해운대의 펜트하우스, 그걸로 일반 서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럭셔리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 사장님, 부산까지 운전하느라 피곤하시죠? 어머, 또 승모근 올라온 것 봐. 내가 마사지 좀 해드릴게요. 여기 누우세요.”
“모처럼의 휴가라면서요? 선아 씨도 쉬어야죠.”
“괜찮아요. 이건 일이 아니라, 그냥 서비스로 해드리는 거예요. 제가 좀 부드럽게 목과 어깨를 풀어드릴게요.”
어디선가 향긋한 향기가 코끝에 닿고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도 들어오는 것 같고 말이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서 눈을 감았다. 달콤한 여름 바람 같은 손길이 나의 어깨를 부드럽게 마사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