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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출판사 (40/200)

황금 출판사

역시 나 혼자 일본어 공부를 해서 뭔가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과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황금백합 문서를 해독해줄 사람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뭔가 엄청난 정보가 있다면 그 정보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한데...

역시, 혼자서는 해결이 안 되고 행운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 행운과자의 행운에 한번 운명을 걸어보자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과자병을 꺼내 보았다. 지금까지 꽤 많은 과자를 먹은 것 같은데, 작은 과자병의 과자는 여전히 가득차 있는 상태였다.

역시, 화수분 기능이 있다더니, 과자는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의 행운도 영원히 계속된다는 의미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입안에 넣고 천천히 과자를 음미하듯 씹기 시작했다.

단순히 행운의 쪽지를 찾기 위해서 과자를 먹는 것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부터 과자의 고소한 맛이 정말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작은 과자라 그 맛을 정확하게 음미할 여유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먹어본 과자 중에 이렇게 맛있고 고소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아무튼, 과자의 고소한 향과 동시에 입안에서는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쪽지 하나가 나오고, 거기에 적힌 것은 이런 숫자였다.

0233672587

역시 전화번호인가? 이게 대체 어디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황금 출판사라는 이름의 출판사였다. 위치는 영등포구의 양평동쯤이고 말이다.

황금 출판사라 뭐 하는 곳이지? 일단 전화를 해볼까?

02-3367-2587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신호는 가지만 전화는 아무도 받지 않고 있었다.

뭐지? 전화를 걸어서 안 받는 경우는 없었는데..

다시 기다렸다가 전화를 몇 번 걸어봐도 마찬가지, 할 수 없이 직접 출판사 건물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업무상 가는 길이라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포르쉐 파나메라를 타고 영등포를 향해서 출발했다.

***

영등포구 양평동

대충 이쯤인 것 같은데, 황금 출판사? 아, 저기군. 출판사가 있는 빌딩을 겨우 찾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황금 출판사가 있는 곳으로 지도에 나오는 빌딩은 번화가 쪽이기는 했지만 골목 안쪽의 꽤 낡은 빌딩이었다. 그나마도 관리가 잘 안 됐는지 외관부터 상당히 지저분해 보였다.

그리고 황금 출판사는 그 빌딩의 3층이라는데, 3층으로 올라가 봤지만 문은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누굴 찾으세요?”

“아, 여기 황금 출판사에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요. 사장님은 안 계신가요?”

“어, 그 양반..김덕수 사장 말인가? 그분은 왜요?”

50대 중반 정도의 배가 불룩한 아저씨는 위층의 당구장 주인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여쭤볼 것도 있고 해서요. 어디 외출하신 건가요? 휴대폰 번호는 제가 몰라서..”

“휴대폰? 그거 휴대폰으로도 연락이 안 될 텐데.”

“예? 왜요?”

“그 양반 지금 병원에 있어.”

“병원요?”

뭐지? 어디 병이라도 있으신 건가?

“어디 아프신 건가요?”

당구장 주인은 나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요기가 좀 아프신 분이지.”

“요기요?”

당구장 주인은 손가락으로 머리 쪽을 가리키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머리, 그러니까, 요 머리가 좀 돌았다 이거지, 뭔 말인지 알겠죠?”

“머리가 돌았다면?”

“미친 거지, 그래서 지금 정신병원에 잡혀갔어요.”

“정신병원요? 아니 왜요? 그렇게 문제가 있는 분이었나요?”

“뭐, 그것까지는 모르고, 원래 전부터 약간 헛소리를 잘하기는 했는데, 가족들이 아예 병원에 잡아 넣어버린 모양이더라고. 쉽게는 못 나올 거라고 하던데.”

“그분이 정말 정신에 문제가 있는 분이었나요?”

“그냥 봐서는 멀쩡한 것 같기도 한데, 그놈의 야마시타 황금인지 뭔지, 그것만 평생 찾겠다고 재산 다 탕진하고 그랬으니, 가족들 입장에서는 미쳤다면 미친 거지.”

“야마시타 황금요?”

야마시타라면? 일본 사람 이름인 것 같은데, 어디서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었나?

“뭐, 그게 언제야? 한 70년쯤 전인가? 옛날에 일제 시대 그럴 때 말이에요. 일본놈들하고 미국하고 전쟁하고 그랬잖아?”

“태평양 전쟁요?”

“맞아, 그럴 거야. 그때 일본군 장군인데 고놈이 아주 싱가폴, 동남아 이런 데를 다니면서 황금을 엄청나게 모았다는 거야.”

“모아서 어떻게 했는데요?”

“어디에 숨겨놨다는 거지, 그래서 김덕수 사장이 그걸 평생 찾으러 다닌 거야. 필리핀이나 그런 데를 돌아다니면서, 생각해봐. 그거 말이 돼? 70년도 전에 일본군이 숨겨 놓은 황금을 어떻게 찾겠어.”

김덕수 사장이라는 사람이 여기 황금 출판사의 사장인 모양이다. 그리고 현재는 가족에 의해서 정신병원에 감금, 아니 입원 중이라는 거지? 어쨌든 제대로 찾아온 것 같기는 했다. 위층의 당구장 주인도 야마시타의 황금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할 정도라면 말 그대로 일본군의 황금에 미친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정신병원에 갈 정도라면 정신상태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한평생 일본군의 황금을 찾아다니고 연구도 한 전문가라는 말인데... 그리고 정신병원에 있다면 황금백합 문서를 보여줘도 별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저기, 김덕수 사장님이 한자나 일본어도 잘 아시나요?”

“그럼, 약간 이상한데 빠져서 그렇지, 머리는 좋은 사람이야. 일본어도 잘하지, 일본어로 된 책도 보고 신문도 인터넷으로 보고 그러더라고 나름 일본통이야 그 사람..”

역시, 일본어 실력도 상당하다는 말인데..

“저기, 그러면 그분 혹시 어느 병원에 계신지 모르시나요?”

“그거까지야 나도 모르지, 한 2주 전인가? 부인이라는 사람하고 딸이 왔었거든, 그러더니, 갑자기 사설 구급차인가 뭔가가 와서 그냥 저기 안쪽 사무실에 있던 김덕수 사장을 잡아갔어. 덩치 큰 놈들 몇 놈이 달려들어서 잡아가는데, 난 뭔가 했다니까.”

“그렇게 막 백주대낮에 억지로 잡아가도 되는 겁니까?”

“법적으로는 되나 보더라고요, 가족들이 동의해서 그러는 걸 어쩌겠어. 정신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데, 내가 우리 가족도 아니고 제3자가 뭐랄 할 수도 없고.”

어쨌든, 황금 출판사라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던 자칭, 황금 사냥꾼 김덕수 사장은 2주 전에 어디론가 납치...아니, 후송을 당해서 입원하게 되었고. 지금은 황금 출판사는 문이 잠긴 채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당구장 아저씨가 건물주의 번호를 알려줘서 전화를 걸어봤지만, 이 빌딩 주인도 김덕수 사장의 행방은 모르고 있었다.

“정신이 좀 문제가 있어서 입원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그 와이프가 와서 남은 임대료는 지불했으니까, 나야 그 이상은 관심도 없고.”

그 이상은 더 정보가 될만한 것도 없어 보여서 그냥 황금 출판사가 있는 빌딩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혹시나 하고 대형 서점에 들러서, 황금 출판사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황금시간, 황금여우, 도서출판 황금알, 그리고 황금 출판사라는 곳이 두 군데 있네? 하나는 주소지가 경상도니까 아니고, 여기인가?

영등포구에 있는 황금 출판사 그리고 황금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도 검색을 해보았다.

‘야마시타 골드’ 저자 김덕수 , ‘황금백합작전의 비밀’ 저자 김덕수, ‘사라진 황금을 찾는 사람들’ 저자 김덕수 , ‘황금 사냥꾼’ 저자 김덕수.

황금 출판사에서 출판사 네 권의 책들이 검색이 되었다. 모두 김덕수가 저자로 되어 있었다.

최근에 출판된 것도 있고 10년 전에 출판된 책들도 있었다. 그리 잘 나가는 책은 아닌지, 책은 구석 서가에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책은 모두 4권, 책은 컬러 사진 한 장 없는 뭔가 조악한 느낌의 책들이었다. 표지도 대충 제목만 붙여넣는 느낌이고 종이도 뭔가 재생지를 사용한 건지, 보통 책들과는 달리 거칠고 투박했다.

헌책은 아니지만, 어딘지 헌책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김덕수를 만나기 전에 사전 조사 겸, 4권의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책들은 다소 난잡하게 구성이 되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한 가지에 집중된 내용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것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야마시다 골드였다.

야마시타 골드, 야마시타의 황금, 대체 야마시타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의 황금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김덕수의 책을 정리해 보자면..

야마시타 도모유키,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 남방군 사령관이었다.

한국에서는 일본군 중에 가장 유명한 게 관동군이다. 드라마 같은 곳에도 소개된 적도 있고, 그들은 주로 만주를 거쳐 중국을 침략하던 부대로 한반도는 그 관동군의 침략 루트 내지는 보급 병참기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독립군과 싸우던 일본군도 바로 이 관동군,

그리고 다른 쪽에서 개전 초기에 승승장구하며,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뉴기니까지, 일본군이 동남아시아 일대를 점령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 남방군을 이끌던 사령관이 바로 야먀시타 도모유키라는 것이다.

이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여러모로 악명이 높았는데, 특히 자신이 점령한 동남아시아와 싱가포를 같은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 일대에서 막대한 민간인들의 재산을 강탈한 것으로 유명하다. 초반에 쉽게 이 지역을 장악해서 마음을 놓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원래 사무라이 출신으로 탐욕이 강했던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전후에 대부분의 일본군 장성이 사면을 받을 때도 미군으로부터 사면을 받지 못한 몇 안 되는 인물인데, 그 주요 이유가 전쟁 책임 문제가 아니라, 싱가포르 일대에서 영국인들의 재산을 빼앗고 그 과정에서 민간인을 살해한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일본 군부에서는 이른바 황도파로 주류였던 통제파의 도조 히테키 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 싱가포르를 점령하는 등 일본 입장에서는 큰 공을 세운 인물이지만 한동안 한직으로 쫗겨나 있기도 했었다.

군인이고 장군이었지만, 돈과 황금에 대한 탐욕이 대단해서 싱가포르를 점령했을 때 민간인들의 재산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전시에 복권 발행까지 해서 개인적인 재산을 축적했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특히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 민간인들을 학살했다는 혐의를 받아, 전후에 교수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전범국이기는 하지만, 사실, 도조 히테키 정도를 제외하고는 일본 군부에서 사형까지 받은 장성은 드물다. 더구나 필리핀에서 교수형으로 처형을 당했는데, 야마시타 본인은 군복을 입고 총살을 해달라고 했지만, 민간인 복장으로 교수형에 처해졌을 만큼 전범 이전에 개인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인물, 아무튼 일본군 입장에서도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고, 미국이나 필리핀 입장에서도 골칫덩어리였던 것 같은데,

그런 개인사와 함께 유명한 것이 바로 그가 개인적으로 모아서 어딘가에 감추어 두었을 거라는 야마시타 골드에 대한 풍문들이다.

야마시타 골드에 관한 소문은 그가 머물렀던 싱가포르와 필리핀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소문으로 실제로 이 두 나라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야마시타 골드를 찾기 위해서 황금 사냥꾼들이 여기저기를 채굴하는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일설에는 일왕의 황복 후에도 필리핀에서 저항하다가 미군에 사로잡힌 야마시타가 미군부에게 자신의 사면 조건으로 막대한 황금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미군 입장에서도 아무리 엄청난 금괴를 뇌물로 제공받는다고 해도, 이미 많은 민간인, 특히 싱가포르 등에서 영국이나 프랑스계 민간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야마시타를 용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필리핀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는 것으로 그의 운명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어딘가에 숨겨 놓았을 거라는 야마시타 골드의 소문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특히 많이 화자되는 곳이 바로 그가 마지막까지 미군에 저항을 하다 생포된 필리핀이었다.

필리핀에는 수많은 작은 섬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대부분이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들이고 말이다.

그 수많은 필리핀의 무인도 어딘가에 야마시타 골드라고 불리는 70년 전의 일본 남방군의 약탈 황금이 존재하고, 아직도 그것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김덕수 사장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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