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물섬 (46/200)

보물섬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에 스티븐슨의 보물섬도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이 진짜로 나에게 일어날 거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지만 말이다. 나는 플린트 선장의 아니, 야마시타의 보물을 찾은 것이다.

철로 된 묵직한 손잡이를 당긴 후에 나른 기다린 것은 살을 찢는 날카로운 부비트랩이 아니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황홀한 보물산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금괴와 금화들 금괴들에는 SUMATRA 라는 영문이 새겨져 있었고 금화들에는 한자로 福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수마트라라면 인도네시아에서 온 금괴라는 건가?

어릴적 상상했던 플린트 선장의 보물보다 더 엄청난 양의 황금이었다. 금괴와 금화들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알뜨르의 금괴들과 비교해보면 최소로 잡아도 1조 원은 넘을 것 같은 양이었다.

대충 1조로 잡고, 알뜨르 황금백합 문서의 암호문에 나오는 좌표가 32개니까, 아직 31개가 더 있는 셈이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하면 한 군데의 좌표마다 최소 1조 정도가 있다면 32조라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32조라? 10억 정도 생기는 로또 1등이 대체 몇 번 당첨되어야 하는 행운인 거야? 서민들의 꿈이라는 로또 1등으로는 서울에 강남에 대형 아파트도 살 수 없는 돈이지만, 32조라면 말 그 대로 재벌이 되는 수준의 돈이었다.

32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기 동굴 지하에 있는 이 금괴만 해도 1조는 넘을 것 같은 양의 금괴와 금화들이었다.

하지만 기쁨과 환희도 잠시, 대체 필리핀의 이 무인도에서 이 엄청난 황금을 어떻게 한국으로 가져가지?

그것도 무게도 엄청난 이 어마무시한 황금들을 어떤 조력자의 도움도 없이 한국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문제에는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금괴와 금화들을 옮길 방법부터 찾기로 했다. 그때까지 이 동굴 속의 창고는 다시 원래대로 흙으로 묻어두기로 했다.

다시 계단을 올라가 올라왔던 것의 반대 순서로 철문을 닫고 그 위로 다시 파냈던 흙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다시 나왔을 때는 온몸은 땀과 흙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휴우, 힘든 하루였어. 하지만 고생한 대가는 1조 원 이상의 야마시타 골드였다. 1조짜리 알바라고 생각하니 팔과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일단은 산을 다시 내려가 바다로 먼저 뛰어들었다. 땀과 흙으로 지저분해진 몸부터 깨끗하게 씻어야 했다.

그렇게 얕은 에메럴드빛 바다에 몸을 담그자 땅을 파며 쌓인 피로도 기분좋게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굴속에서 발견한 야마시타 골드도 꿈처럼 느껴지고 말이다. 수영을 잘 못하는 편이지만 배형으로 몸을 뜨게 하는 건 능숙한 편이었다.

예전에 수영강사에게 잠시 배웠던 대로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누이자 몸은 자연스럽게 수평이 되며 물위에 둥둥 뜨게 되었다. 하늘 위로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구름이 그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한동안 유유자적 수영을 즐기고 있는데 누가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장님, 뭐 하세요?”

“어, 산에 올라갔다 왔더니 땀도 나고 더워서 바닷물 속에서 식히는 중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뭐해요?”

“영민 씨랑 윙크윙크는 섬을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기 바쁘고 김민성 사장님은 아까부터 그늘에서 자고 있어요.”

“희진 씨는요?”

“뭐, 전 그냥 수영하다가, 돌아다니다가, 조개도 줍다가 그러는 중이에요. 원래 이런데 오면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거 아닌가요?”

이희진의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한가롭게 쉬기는커녕 중노동을 하고 왔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직 청춘이라 그런지 땅을 파면서 흘린 땀과 피로는 바닷물 속에서 다시 회복된 느낌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수조 원대의 황금을 찾은 쾌감이랄까? 아드레날린인지? 도파민인지? 아무튼 온 몸에 호르몬이 짜릿하게 흘러넘치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배형을 하며 옆을 슬쩍 바라보니 핑크색의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 서 있는 희진 씨의 섹시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군대 시절 소대장님은 쓸데없이 말이 많으신 분이라 소대원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나를 비롯해서 다들 말이 많은 소대장님을 피해다니기 바빴으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가끔 잡히면 길고 지루한 소대장님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했는데,

개중에 가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모험 소설에 등장하는 동굴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래 보물이나 용 같은 것들은 모두 동굴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소대장 말로는 그게 심리학적으로 여성을 상징한다는데 원래 구석기 시대에는 수렵 채집을 하던 인류에게는, 특히 남자에게는 사냥꾼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보물을 찾고 용을 사냥하는 것은 남성의 본능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사냥꾼의 본능은 오래 세월을 거쳐,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로 이어지고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는 자본주의 투자자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남성의 사냥꾼 본능의 궁극의 원천은 동굴로 상징되는 여성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이 소대장님의 해석적인 해석이었다.

어쨌든 보물을 찾아 떠나는 남자들의 모험의 끝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미녀들이 기다리고 있는 법인 모양이었다.

“희진 씨는 이 섬이 마음에 들어요?”

“그럼요? 정말 환상적이에요. 정말 돈이 많아서 이런 섬 하나 가지고 있으면 좋겠어요. 가끔 놀러 오게요.”

“그래요? 그럼, 이 섬을 사죠. 뭐.”

“예? 설마, 농담이시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섬을 매입해서 천천히 야마시타 골드를 옮기는 방법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섬을 소유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리조트를 수리해서 지하에 창고와 금고 같은 것을 만들어서 산속 동굴에 있는 황금을 조금씩 옮겨 놓고 나중에 한번에 한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

“섬을 사시겠다고요?”

내가 산에 올라갔다 오는 동안 야자수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김민성 사장은 약간 멍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무이무이섬을 구매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점점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예, 마음에 드는 섬이네요. 가격만 맞으면 내가 사서 리조트도 수리하고 해서 개인 별장으로 쓰고 싶은데 말이죠.”

“오, 리조트 사업이 아니라 개인별장으로 말인가요?”

물론, 야마시타의 황금만 다 옮기고 나면 다시 리조트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는 나만의 공간으로 쓰겠지만 말이다.

“예,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가능하면 빨리 진행하고 싶은데요. 지금 필리핀에 온 김에 빨리 계약하고 싶네요.”

“하하, 젊으신 분이 굉장히 화끈하시네요. 남자는 그렇게 화끈한 것도 좋죠. 마침, 준호 형님도 이 섬을 팔고 싶어하시니까, 제가 당장 전화를 걸어보겠습니다.”

김민성 사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서준호라는 남자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최진수 사장님, 서준호 형님과 연락이 됐는데 통화를 해보시겠습니까?”

김민우 사장의 소개로 서준호라는 한국인 사업가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대충 간단한 인사치례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무이무이섬의 거래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김민성 사장의 말대로 서준호라는 남자는 사업 자금이 부족해서 어떻게든 이 섬을 팔고 싶어했다.

아무튼, 서준호가 제시한 섬과 사실상 쓸모는 없는 섬의 리조트 관련 시설들의 인수 가격은 40억이었다. 어지간한 강남 아파트 가격이었다.

사실, 무이무이 섬 자체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이 섬을 사게 되면 최소 1조 이상의 황금을 얻게 되는 셈이니까, 40억이라는 액수도 큰 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 가격으로 인수하기로 하죠. 대신 계약은 빨리 진행하고 싶은데요.”

“그러면 제가 내일 킹스 리조트로 가겠습니다. 거기서 만나기로 하죠.”

서준호가 제시한 가격을 내가 그대로 받아들이자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윙크윙크와 사진을 찍고 있던 민영민도 내가 섬을 구매한다는 이야기에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최진수 선배님, 정말 이 섬을 플렉스하시는 겁니까?”

“어때. 괜찮지? 직접 와보니까. 생각보다 필리핀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이 섬도 여기저기 수리해 놓으면 개인별장으로 괜찮을 것 같더라고.”

“와, 진수 오빠, 굉장해요. 40억을 주고 이 섬을 사신 거라는 거죠?”

섬을 사는데 40억, 그리고 리조트를 수리하는 비용까지 하면 정말 엄청난 돈이 들어가기는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 봐야 동굴 속의 야마시타 골드의 1%도 안 될 터였다. 한마디로 남는 장사, 그것도 어마무시하게 많이 남는 장사인 것이다.

그렇게 무이무이 섬에서의 꿈같은 하루가 지나고...

***

킹스 리조트

“최진수 사장님이시군요? 굉장히 젊은 분이네요.”

“예, 뭐, 아직은 대학생입니다. 복학생이죠.”

서준호는 처음에는 내가 너무 어려 보이는지 약간 못 미더워하는 것 같았지만, 김민성 사장에게 내가 수백억짜리 호화 요트를 소유한 한국의 재벌 3세라는 말에 태도가 돌변해서 바로 무이무이섬을 계약하기로 했다.

“그 섬을 사서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정말 개인별장으로 쓰실 건가요?”

서준호는 그동안 앓던 이 같았던 무이무이섬을 팔아서 약간은 후련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여러가지를 생각 중입니다. 아무튼 섬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당분간은 제가 개인적인 용도로 쓸 생각입니다.”

그렇게 며칠 더 킹스 리조트와 무이무이섬을 오가며 휴가 겸, 신인 그룹 윙크윙크의 홍보 영상 촬영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

한국, 문화대학교 교정.

“진짜야? 최진수 선배 말이야. 필리핀에 개인 섬도 가지고 있다더라고.”

“개인 섬?”

“그래, 왜 헐리우드 영화 같은데 보면 돈 많은 부자들은 무인도 같은 거 하나 사서 통째로 별장으로 사용하고 그러잖아.”

“설마?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도 그런 개인 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그거야, 대기업 회장님들이야 언론의 눈치도 보이고 그래서 그 정도까지는 못 하는 거겠지. 돈이 있어도 말이야.”

“그럼, 진수 오빠는 그런 눈치 볼 것도 없다는 거야?”

필리핀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예상대로 민영민이 필리핀에서 찍은 윙크윙크의 화보 사진들을 자랑삼아 학교 동기와 선후배들에게 다 보여준 후였다. 덕분에 내가 소유한 무이무이섬도 학교에서 유명해진 상태였다.

거기에, 사진상으로는 폐허같은 리조트나 방치된 방갈로 같은 것은 잘 드러나지 않았고, 멋진 무이무이섬의 해변과 야자수, 주위의 아름다운 에메럴드빛의 바다와 나의 베네티 요트 같은 것들만 그럴듯하게 포장되어서 찍혔기 때문에, 실제 무이무이섬을 가보지 않은 학교 후배들은 더더욱 무이무이섬에 대한 환상이 커져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무이무이섬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초대해 달라는 후배들도 많이 생겼다. 대부분은 얼굴만 아는 정도였던 여자 후배들도 무이무이섬과 나의 요트 이야기를 꺼내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말을 걸어오는 일도 많아졌고 말이다.

아무래도 재벌 3세라는 타이틀과, 수백억짜리 호화 요트와 필리핀의 섬까지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같은 남자들은 부러워하면서도 나에게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고 할까? 남자들은 내가 가진 막대한 재산과 성공을 부러워하기는 했지만, 그걸 가지고 있는 진수라는 인간 자체에 특별한 호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가진 부와 성공을 그들도 갖고 싶어하는 것 뿐이었다. 그에 비해서 여자들은 그런 성공과 부를 거머쥔 진수를 이성으로서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아무튼, 필리핀의 무이무이섬을 서준호에게서 사들이고 나서 일단 리조트를 재건하는 일부터 시작을 했다. 태풍으로 망가진 리조트를 수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짓는 대공사가 될 것 같았다.

다행히, 킹스 리조트의 김민성 사장이 필리핀 현지에서의 나의 사업을 도와주기로 해서 한국에서 필리핀까지 직접 가지 않고도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일단은 리조트 건물을 새로 짓고, 지하에 거대한 금고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 후에는 무이무이섬 산속의 동굴의 보물을 리조트 금고로 옮기고, 다시 한국으로 가져오든지 아니면 현지에서 금괴들을 처분하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필리핀에서의 야마시타 골드 탐사의 첫 단추는 끼운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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