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투어
어쨌든, 여의도의 동화 빌딩은 순조롭게 장태식 회장에게서 나에게로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언론에는 따로 이번 빌딩 인수를 알리거나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동화 빌딩을 본사 건물로 임대해서 쓰고 있는 한성금융 그룹의 마철우 회장은 진수를 본사로 초대를 했다.
한성금융 그룹이라?
뭐 하는 회사인지 검색을 해보니, 코스피에 상장이 된 회사였다. 어디 보자? 시가 총액이 1조 9천억, 음 그 정도인가? 코스피 기준으로는 시가 총액 130위 권의 회사였다. 대충 우리나라에서 100등 조금 밑으로 있는 회사쯤 되는 느낌이었다.
금융회사로 지방 은행 같은 곳이었고, 총자산 규모는 120조 이상, 그런 금융 자산을 바탕으로 캐피털이나 각종 사업에 투자를 하는 곳이었다.
자산이 120조가 넘는다고 하니, 뭔가 그럴 듯해보였다. 어쨌든 수백조의 자금을 투자하고 관리하는 금융회사니 말이다.
작은 회사는 아니었군. 그런 한성금융의 마철우 회장은 60대 초반으로 은행원으로 시작한 전문 금융인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대기업 총수의 개념과는 좀 다르지만, 아무튼 상당한 기업의 경영자였던 것이다. 그런 마철우 회장이 나를 본사로 초대한 것이다.
새로 동화 빌딩을 인수한 나와 상견례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도 아직 동화 빌딩은 사진으로만 본 정도여서 한 번 가서 빌딩의 실물을 보기는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내부까지 살펴보려면 이렇게 초대를 받아 가는 것이 모양세가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뭘 타고 가지? 동화 빌딩은 여의도에 있으니까, 지하철을 타고 가도 되기는 하겠지만 내가 인수한 빌딩에 임차인에게 초대를 받아 가는데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기는 좀 그렇고, 람보르기니나 포르쉐를 타고 가는 것도 약간, 비즈니스적인 문제로 가는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래, 지난번에 장태식 회장을 만나러 갔을 때도, 약간 람보르기니 말고 고급 세단을 타고 갔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괜찮은 고급 세단을 하나 사야겠어...
차라면?
지난번에 포르쉐와 람보르기니를 샀던, 제이에스 인터네셔널로 향했다.
***
제이에스 인터네셔널
최선화 대리는 진수가 오는 것을 보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은 고급 세단이 필요하시다는 거죠?”
“예, 저도 비즈니스를 시작하다 보니까, 업무용으로 그런 차가 필요하네요.”
“비즈니스요? 어떤 일을 하시는데요?”
“땅을 개발하는 그런 사업이죠.”
“건설이나 그런 쪽요?”
“하하, 뭐 비슷합니다. 해외에서 리조트도 만들고 있고.”
실제로는 삽 한 자루로 죽어라 땅을 파는 노가다에 가깝지만, 앞으로 돈을 벌면 건설사를 인수 할 수도 있겠지. 돈만 있으면 뭐든 못할 게 뭐겠어?
“와, 굉장하시네요. 그 나이에 벌써 굉장한 사업을 하고 계시고, 음 그렇다면 최진수 사장님처럼 품격있는 사업가에게 어울리는 고급 세단이 필요하기는 하겠네요.”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슈퍼카 외에도 제이에스 인터네셔널에는 럭셔리 브랜드의 고급 세단들도 많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그리고 럭셔리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프리미엄 브랜드인 벤츠 S클래스 정도의 차들이었다.
“대표적인 럭셔리 세단이라면 롤스로이스를 생각하실 있을 테고요. 벤틀리도 로맨틱하고 고급스러운 자동차 브랜드죠. 그리고 벤츠는 럭셔리 세단이라고 하기에는 한 등급이 떨어지는 프리미엄급으로 분류되지만 S클래스는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이 선호하는 좋은 차입니다. 마이바흐 같은 경우에는 롤스로이스와 비교해도 승차감이 떨어지지 않는 좋은 차고요.”
롤스로이스는 차는 멋지지만, 너무 육중하거나 클래식한 디자인이라, 뭔가 사업가보다는 연예인이 탈법한 차들 같았다. 벤틀리도 역시 여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로맨틱한 디자인, 비즈니스보다는 연애 비즈니스에 적합해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그해 비해서 벤츠의 마이바흐는 정갈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기업의 회장님들이 타고 다닐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차였다. 상대적으로 롤스로이스보다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마이바흐 S560 4MATIC의 가격은 2억 9천 수준이었다.
“2억 9천이라? 차의 포스에 비해서는 가격이 저렴하네요.”
“어머, 저렴하다뇨? 그래도 3억에 가까운 가격인데요.”
내 입에서 저렴하다는 말이 나오자, 최선화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하긴, 편의점 알바하던 녀석이 돈 좀 벌었다고 3억짜리 차가 저렴하네 어쩌네 하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상황.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재벌 수준의 돈이 생기자 재벌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도 한 순간인 것 같았다.
2천억이 넘는 빌딩 거래를 하고 나니, 상대적으로 이제 3억 정도의 돈은 나에게 푼돈처럼 느껴지게 된 것이다.
어쨌든, 지금 내가 원하는 자동차는 너무 튀고 화려한 차보다는 중후한 느낌의 고급 세단이었다.
***
여의도 동화빌딩, 한성금융 그룹 본사
주차장으로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가 미끌어지듯 부드럽게 들어가고 있었다. 원래 이런 차는 소퍼 드리븐이라고 해서 뒷좌석에 타는 것이 제 맛이라고들 하지만 아직 나는 운전기사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너 드리븐용 차로도 손색이 없는 좋은 차이기도 했고 말이다.
주차장을 나와 로비로 들어가자 비서실 직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최진수 사장님이시죠? 듣던 대로 젊으신 분이네요.”
평소라면 청바지에 간단한 점퍼 정도를 입고 다니는 편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정장에 구두까지 신고 있었다. 뭔가 진짜 재벌 3세 출신의 사업가처럼 보이게 말이다. 평소에 안 입던 옷이라 약간 불편한 느낌도 있었지만,
몸에 딱 맞는 핏감이 좋은 수트는 남자를 더 멋지게 만들어 주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여비서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실로 향했다.
마철우 회장이 있는 사장실은 맨 꼭대기 층인 20층이었다. 신사역의 아이케이 빌딩도 15층 규모로 상당한 높이의 고층 빌딩이지만, 이곳은 5층이 더 높기도 하고 강남과는 다른 여의도 만의 느낌이 또 다른 곳이었다.
“최진수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철우입니다. 하하, 나이가 20대 초반이라던데 정말 젊으신 분이네요. 얼핏 보면 대학생 정도로 보이겠습니다.”
“실제로도 대학생입니다.”
“오, 그런가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나이에 이런 빌딩을 인수하게 되신 겁니까? 그것도 장태식 회장님의 빌딩을요?”
빌딩을 어떻게 인수하게 되었냐고? 그거야, 땅을 파서....
“일종의 해외 개발사업으로 돈을 좀 벌었습니다.”
“그럼, 혹시 아버님도 사업을 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아버지도 농사를 지으시니, 사업은 사업이지, 고추 사업, 쌀 사업, 비닐하우스 사업 등등...
“아버님이 어떤 사업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만나는 사람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이런 식인가? 하긴, 한국사회에서 부는 대물림 되는 것이고 젊은 부자들의 대부분, 아니 절대 다수가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재산을 불려받아서 부자가 된다.
나처럼 젊은 나이에 2천억 대의 빌딩을 인수하려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어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희 아버님도 땅과 관련된 개발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역시, 부동산 개발이나 그런 쪽인 모양이군요. 아파트나 호텔, 리조트 그런 거 말입니다.”
“최근에 새로 건물을 올리시기는 하셨죠. 주변 건물보다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 말입니다. 하하하...”
42평짜리 전원주택이면 우리 동네에서는 꽤 큰 집이기는 하니까, 없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음, 아버님도 신축으로 큰 빌딩을 지으셨고, 어쨌든 상당한 재력을 가진 집안인 것은 분명하겠군요.”
“예, 하지만 저의 집안 전통이랄까? 주변에 너무 알리고 그러는 건 꺼리는 편입니다. 입이 좀 무거운 편이죠. 하하..”
“사업가에게는 그런 조용한 일처리도 중요하죠. 장태식 회장님도 이번 빌딩 인수는 최대한 조용하게 다뤄달라고 하더군요.”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나 저나 저는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별 건 없습니다. 새로 건물주가 되셨으니 제가 응당 인사를 드려야하는데, 마침, 건물을 직접 둘러보신 적이 없다고 하셔서 구경도 시켜 드릴 겸 초대를 한 겁니다.”
하긴, 2천 2백억이나 주고 산 건물인데, 워낙 비밀스럽게 일이 진행되면서 실제 건물을 구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가 직접 안내를 해드리면 좋겠지만, 제가 움직이면 직원들이 신경을 쓸 테고, 대신 여기 최 비서와 윤 비서가 안내를 해드릴 겁니다.”
빌딩 투어, 말이 좀 이상하지만, 내 소유의 동화 빌딩의 안내를 맡은 사람은 한성금융 그룹 비서실 소속의 두 명의 여비서였다. 대기업의 비서들답게 외모도 수려하고 인상도 밝고 좋은 여자들이었다.
두 여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빌딩 여기저기 주요 시설들을 살펴보게 된 것이었다. 일단 20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여의도 일대의 풍경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저 아래로 방송국 건물도 보이고 국회 의사당도 보이고 뭔가 강남의 화려한 분위기와는 다르지만,
중후하고 한국의 정치 경제의 중심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 시티뷰였다.
“여기는 무슨 뷰라고 하나요?”
“여기는 여의도 한강뷰라고 할 수 있죠. 아무래도 한강과 국회 의사당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압권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겠네요. 국회 의사당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치적인 상징성이 있는 건물이니까요. 한국 정치와 서울의 한강이 한 눈에 보이는 여의도 한강뷰라? 멋진데요.”
전체적인 전망도 뭔가 간지가 나는 것 같았고, 그 외에 사무실들도 큼지막하기도 하고 뭔가 공부 잘하는 엘리트 같은 사람들이 다들 정장을 입고 분주하고 일을 하는 활기찬 느낌이었다. 어쨌든 코스피 기준으로도 한 130위 안에는 들어가는 큰 회사고, 자산이 150조나 되는 금융회사로 대학 복학생인 나의 눈에는 뭔가 어마어마한 회사라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어마무시한 금융기업의 본사 건물이 나의 소유라니? 정말 꿈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빌딩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있는데, 맞은편 복도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뭐하는 사람들이죠?”
“신입 사원들이에요. 회사 투어를 하는 거죠.”
“회사 투어요?”
“처음 들어와서 회사 건물 구조도 잘 모르고, 전체적으로 부서들을 돌면서 부서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설명도 해주는 거죠.”
신입 사원들은 안내를 맡은 선배 직원을 따라서 병아리들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흡사 어미닭을 따라다니는 병아리들 같은 느낌이 드는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슬쩍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일면식도 없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지만, 두 명의 여비서가 수행하는 모습이 뭔가 높은 사람처럼 보였던 모양이었다.
나이들은 나보다 위의 선배들일 것이다. 이제 막 입사해서 약간 어리바리대는 그런 분위기, 나름 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해서 고스펙을 가진 엘리트들일 텐데, 그렇게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서는 병아리 같은 신입 사원일 뿐이다.
한성금융 그룹의 가장 아랫계급에서 출발들을 하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이미 한성그룹 본사 건물을 소유한 나는 나이도 어리고 스펙도 없는 사람이지만, 벌써 한성그룹의 마철우 회장과 독대를 하기도 하고, 회장 비서실의 여비서 두 명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한성그룹 본사 건물을 느긋하게 둘러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라는 것은 능력과는 무관하게 가진 자본의 크기에 따라서 계급이 나누어지는 기분이었다.
출발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아무리 학창 시절에 열심히 공부해서 뛰어난 능력을 얻는다고 해도 저렇게 신입사원부터 출발해서 어느 세월에 자본주의 계급의 상층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해, 나처럼, 물론 나도 재벌 3세는 아니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막대한 자산에서 출발한 사람은 시작과 동시에 자본주의 시대의 귀족 계급이 되는데 말이다.
“동화 빌딩을 둘러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둘 다 마음에 드네요.”
“예? 둘 다요?”
사실, 둘 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흠, 그러니까, 건물과 회사 둘 다 마음에 든다는 그런 말입니다. 건물도 훌륭하고, 한성금융 그룹의 분위기도 마음에 드네요. 하하..하하하...”
어쨌든, 돈을 벌고 부자가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현대의 귀족이 되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에게 행운으로 번 큰 돈이 없었다면, 아까 본 병아리떼 같은 신입사원들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었다. 나는 진짜 대재벌이 되어서 자본주의 시대의 귀족으로 살게 될 운명이었다. 물론, 나의 허리가 버텨 준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