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필리핀 무이무이섬
드디어 무이무이섬의 리조트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지하에 이 창고와 금고는 뭔가요?”
리조트 공사를 맡아서 진행한 김민성 사장은 내 명령으로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지하 창고와 금고의 용도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별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면서 지내다 보니까, 귀중품 같은 걸 보관하려는 거죠. 아무튼, 리조트가 마음에 드네요. 금고도 훌륭하고요.”
무이무이섬의 리조트는 전에 태풍으로 무너진 건물을 철거하고 완전히 신축한 건물이었다. 리조트라고는 하지만 사실상의 나의 개인 별장 같은 곳이었다. 당분간은 여기서 리조트 영업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혼자 생활할 수는 없는 일이라, 필리핀 현지 인력을 고용하기로 했다. 요리사와 청소를 할 가정부들 말이다. 그 외에도 섬을 관리할 인력들이 제법 필요했다. 나의 베네티 요트의 선장과 승무원들도 필요하고 말이다.
요트는 원래는 부산과 제주도를 오고 갈 용도로 구입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져서 필리핀의 무이무이섬에 요트를 정박시키고 주변의 섬들을 탐사해야 했기 때문에 필리핀의 현지 선장과 승무원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히, 킹스 리조트의 김민성 사장이 이런 잡다한 일들을 다 깔끔하게 처리해 주고 있었다.
“요리사와 가정부는 필리핀인들이면 되겠죠?”
“예, 저도 필리핀식 영어는 가능하니까요.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면 됩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호신용 총도 구해주실 수 있나요?”
“총요?”
아무래도 무인도이기도 하고 필리핀이라는 곳이 치안이 불안한 나라다 보니, 나를 스스로 지킬 무기들은 필수적으로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야마시타 골드를 찾아서 그것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도 알 수 없고 말이다. 다행히, 수완이 좋은 사업가인 김민성은 권총과 소총, 그리고 탄약까지 충분히 구해다 주었다. 물론, 내가 충분한 돈을 지급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필리핀에서 돈이면 구하지 못하는 것은 없는 모양이었다.
“필요하신 게 더 있나요?”
“당나귀도 구할 수 있을까요?”
“당나귀요?”
***
당나귀의 이름은 스바딜파리라고 지었다.
“스바딜파리...스바딜파리...야, 스바, 빨리 따라와..”
무이무이섬에서는 요리사와 청소부 등, 필리핀 현지 인력을 고용해서 사용하고 있었지만, 모두 산 페르난도에서 데려온 임시직들이었다. 필요할 때만 며칠씩 고용해서 쓰는 인력이라, 필요한 일들을 다 하고 나서는 다시 산 페르난도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리조트 건설에 관한 일을 설명하러 왔던 김민성도 킹스 리조트로 돌아가고 나자, 무이무이섬에는 나와 김민성이 구해온 수컷 당나귀 스바딜파리뿐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수동식 도르래와 기타 장비들을 스바딜파리의 등에 싣고 동굴로 향했다.
전과 달리 섬에 다른 사람들도 전혀 없고 시간도 넉넉했다. 그리고 이미 한 번 팠던 곳이라 다시 파는 것도 어렵지 않고 말이다. 땅을 파고 나서 철제 문을 당기자, 동굴 속의 공기가 코끝에 닿는 느낌이었다. 뭔가 황금의 향기가 나는 느낌적인 느낌,
이번에는 이곳의 금과와 금화들, 그리고 보석까지 모두 산 아래의 무이무이 리조트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해야 했다. 동굴 아래 지하에서 금괴를 들어 올리는 것도 일이라, 수동식 도르래를 설치해서 준비한 상자에 담은 금들을 지하 토굴에서 위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역시, 도르래가 위로 무거운 상자를 끌어 올리는 작업에는 효과는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수동식 도르래로 금괴 상자들을 위로 올리고 나자, 그다음은 스바딜파리 차례였다.
일부러 일을 잘하라고, 아스가르드의 장벽을 만들었다는 전설의 명마? 아무튼, 스바딜파리라고 이름도 지은 것이었다.
“야, 스바, 이쪽으로 오라고, 이게 네가 할 일이야, 이걸 저 아래로 나르는 거야? 알겠지?”
잘 훈련된 당나귀라는데, 무거운 금괴 상자를 등에 억지로 올리자, 몸을 비틀며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스바, 너 자꾸 이러기야?
하지만 결국, 스바딜파리가 등에 싣기 좋을 정도로 상자의 무게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바딜파리는 등에 금괴 상자를 싣고 나와 함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스바딜파리의 작업량은 상당했다. 내가 그걸 등에 짊어지고 옮겼다고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악몽이 되었을 텐데, 스바딜파리는 중간에 몇 번 도망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작업을 잘 해낸 것이다.
그렇게 무이무이섬의 산속 동굴에 묻혀 있던 야미시타 골드는 무이무이 리조트의 지하 금고로 옮겨졌다.
***
킹스 리조트
“어머, 최 사장님은 돈도 많으신 분이 뭘 하셨길래, 이렇게 어깨랑 허리가 뭉쳐있어요. 무슨 노가다를 한 것도 아닐 텐데.”
노가다를 한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노가다를 한 거라고...
물론, 1조짜리 노가다 작업이라고나 할까? 실제 금의 양은 얼마나 될지, 가늠이 안 되기는 하지만 무이무이 섬의 금고의 야마시타 골드와 보석이라면 최소 1조의 가치는 넘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스바딜파리와 그렇게 이틀 간의 힘겨운 작업을 마치고, 킹스 리조트의 객실에서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서 이른바 황제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황제 서비스는 마사지사 두 명이 동시에 서비스를 하는 것인데, 은영 씨라는 한국인 마사지사와 자스민이라는 필리핀 마사지사 두 명이 동시에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둘 다 마사지도 잘하고 상당히 미인들이라, 침대에 엎드려서 아래위로 등과 다리 마사지를 동시에 마사지를 받는 기분은 정말 황제라도 된 기분이었다.
삽질과 금괴 상자를 들어 올리느라 뭉쳐버린 등과 허리의 근육들이 어느새 살살 녹아내리고 있었다.
특히, 자스민은 스페인 혼혈이라는데, 언뜻 봐서는 스페인이나 남미 출신의 미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는 이국적인 외모였다.
무슨 미스 베네수엘라 같은 미인대회에 나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는데, 은영 씨도 상당한 글래머였지만, 자스민은 확실히 서구적인 체형이라, 진짜 쭉쭉 빵빵한 육감적이고 섹시한 라틴 스타일의 미녀였다.
그리고 여성적이고 관능적인 얼굴과 몸매와는 달리, 손의 압도 상당히 시원해서, 말 그대로 황제 부럽지 않은 서비스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최 사장님은 돈도 많으시다면서요? 대체 무이무이 섬에서는 뭘 하고 다니시는 거예요?”
“아..거기..거기가 아주 시원해요. 좀 더.. 좀..더..”
“요기요?”
은영 씨는 장딴지 근육을 꾹꾹 눌러주고 있었고, 위쪽에서는 자스민이 목과 등을 부드럽게 쓰어주고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천국과 지옥, 지옥과 천국이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무이무이섬을 시작으로 알뜨르 문서에서 찾은 다른 31개의 좌표들도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현지 선장과 베니티 요트를 타고 같이 섬들을 돌아다녔지만, 그것도 거추장스러워서 결국, 요트 조정 면허를 따서, 내가 직접 요트를 몰고 필리핀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다른 무인도들에서도 무이무이섬처럼 금괴가 보관된 동굴이나 토굴들이 발견되었다. 대부분은 섬에 있는 자연 동굴 밑을 파서 만든 지하 공간에 보관된 경우가 많았다. 일본 남방군이 황금을 단기간에 여러 곳에 분산해서 숨기기 위해 그런 방식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일단 자연 동굴을 찾아서 그 아래에 다시 인공적인 지하 공간을 만드는 방식 말이다. 어쨌든 무이무이섬의 첫 번째 경험이 그 후의 야마시타 골드의 황금을 찾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일단, 좌표상에 나오는 섬을 찾고, 그 후에는 섬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는 창고로 쓸 건물을 짓고 창고 안에 금고까지 설치한다. 그 후에는 지도를 제작한다, 지도 제작은 지도 제작 전문 업체에 의뢰해서 정밀한 섬의 지도를 만들어 놓고 그 지도의 각 지점에 번호를 매긴 후에 행운과자로 번호를 뽑아 황금 매장지를 특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특정한 곳을 삽과 그리고 소형 굴착기를 이용해서 파고, 그 후에는 도르래를 이용해 지하의 황금을 지상으로 끌어올리고, 그 후에는 당근을 주며 스바딜파리를 살살 꼬득여 금괴 상자를 옮기게 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육체적으로 고된 작업이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옥 같은 삽질 끝에 야마시타 골드를 발견하는 천국 같은 순간이 오는 것이다. 야마시타 골드는 여러 곳에 분산을 하려고 한 건지, 하나의 지점에서 발견되는 황금이나 보석의 양은 일정한 것 같았다.
대략 1조 2천억 정도로 추정되는 정도의 황금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황금 동굴을 발견하게 되면 일단 금괴를 섬의 창고로 옮기고 다시, 무이무이섬의 금고로 옮기는 지옥 같은 노동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천국 같은 휴식 시간이었다.
킹즈 리조트로 출장 마사지 서비스를 오던, 자스민과 은영 씨는 아예 나의 베네티 요트까지 와서 나의 마사지를 담당해 주고 있었다.
한 번씩 그런 야마시타 골드 운송 작업을 하고 나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마사지를 받아야 했다.
내가 직접 요트를 운전해서 5번째 무인도의 야마시타 골드를 무이무이섬의 지하 금고로 옮기고 나는 일까지 마치고 나서, 요트를 몰고 산 페르난도 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화로 은영 씨와 자스민을 불렀다.
“와, 요트 정말 멋지다. 근사해요.”
보통은 이렇게 요트까지 출장을 오지는 않지만, 출장비를 두둑하게 주는 조건으로 불러오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어차피, 마시지사의 일도 돈을 벌려고 하는 거니까, 원하는 가격만 지불하면 자본주의 시대에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
그렇게 나의 베네티 요트의 마스터룸에서 느긋하게 두 명의 미녀의 마사지를 받고 있으니, 땅을 파느라 쌓였던 피로도 풀리고 다시 지옥에서 천국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최 사장님은 도대체 어떤 분인지 종잡을 수가 없어요.”
“뭐가요?”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돈은 엄청 많은 것 같고, 매일 필리핀의 무인도들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만드는 일을 한다면서요?”
고급 요트를 몰고 다니고, 산 페르난도 주변의 무인도들을 벌써 12개가 구매한 나에 대해서 현지인들 특히, 한국인들은 많은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해요?”
“예, 엄청난 재벌 3세라고 하던데요? 정말이에요?”
“뭐, 비슷한 거죠. 돈은 많으니까.”
“정말요? 돈이 얼마나 많은데요?”
돈이 얼마나 되냐고? 일단, 지금 다섯 개의 무인도에서 찾은 야마시타 골드만 해도, 최소 5조에서 많게는 6조 정도의 가치는 되는 양이었다.
편차가 1조나 되는 이유는 아직 금을 처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워낙 많은 양의 금이고, 정상적인 거래가 가능하지 않다면 약간 싼 가격으로라도 처분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최소로 잡아도 5조의 재산은 되는 셈이었다.
“뭐, 이렇게 마사지 받고 놀러 다닐 정도는 있어요.”
“아버님이 정말 무슨 재벌이에요?”
“하하, 뭐, 한국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해두죠.”
아버지는 여전히 고추 사업을 비롯해 비닐하우스 사업 등에 종사하고 계셨다. 요새는 용돈을 2천만 원씩 드리고 있었다.
한 달에 1억을 드릴 수도 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박하신 시골 분들이라, 그렇게 돈이 많이 필요하시지는 않은 편이었다. 돈을 쓰는 것보다는 주변에 아들이 준 용돈이라고 자랑하는 게 더 즐거우신 분들이니까 말이다.
“역시 그러시구나, 좋겠어요. 나도 그렇게 돈 좀 많아 봤으면.”
은영 씨는 등에 향기로운 오일을 뿌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스웨디시 마사지를 해준다고 했다. 스웨디시 마사지는 건식보다는 압이 약하지만 몸을 이완시키는 데는 더 적합한 마사지였다. 등과 어깨에 미끌거리는 오일이 기분 좋게 닿고, 뒤이어 자스민과 은영 씨 두 사람이 동시에 위아래로 하는 환상적인 스웨디시 황제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
마사지가 끝나고 두 여자가 돌아가자, 다시 혼자 요트에 앉아 한가롭게 항구의 저녁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황금들은 다 어떻게 처리하지?
원래는 한국으로 옮길 생각이었는데, 양이 많다 보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에 가져가서도 5조에 6조 원에 달하는 금과 보석을 처분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야마시타 골드를 찾는 일은 힘은 들지만, 적당히 휴식과 마사지를 받으면서 그럭저럭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금을 처분하는 것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역시, 그렇다면, 행운의 과자로?
달리, 뾰족한 수도 떠오르지 않았고 이럴 때는 행운의 과자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선실 살롱에 있던 행운의 과자병을 꺼내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과자 하나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과자는 마치 천국처럼 달콤한 느낌이었다. 필리핀에서의 시간은 지옥 같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천국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천국에서 천국의 과자를 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달콤한 과자의 향취 속에 뭔가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쪽지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역시 전화번호인가? 그래 한 번 전화를 걸어보자...
“여보세요. 누구시죠?”
어딘지 낯익은 목소리였다.
“최진수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혹시 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요?”
“최진수 씨요? 혹시 신사동에 건물을 갖고 계시지 않나요? 7층짜리 건물요.”
“맞는데요. 누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