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의 왕
김영석은 쿠알라룸푸르가 마음에 들었는지 쿠알라룸푸르에 투자를 제의했다. 들어보니, 나처럼 자금 세탁을 위해서든, 아니면 안전하게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든 이런 저런 이유로 아시아의 부자들의 자금이 말레이시아로 모여드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일종의 검은돈 내지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 모여드는 돈들이었는데, 어쨌든, 자본주의라는 것이 돈이 모여들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가치가 성장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서울의 강남도 생각해보면 돈의 힘으로 발전한 도시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중국인들이 특히 많이 오고 있는 것 같더군요.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부자들도 많이 생겼지만, 역설적으로 돈을 번 중국인들은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경향이 강하니까요.”
“정치적인 문제로 말인가요?”
“그렇죠? 중국에서는 유명한 기업가들이 하루아침에 실종되거나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요.”
“완벽한 자본주의 국가는 아니군요. 자본주의 사회라면 돈을 가진 사람이 절대적인 갑인데 말입니다. 돈을 많이 가진 부자들도 안전하지 못한 나라라면 자본주의 국가라고는 할 수 없겠죠.”
“하하, 중국이야, 원래 공산주의 국가 아닙니까? 최근에 경제가 급성장을 하고는 있지만, 그런 문제들 때문에 제동이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하얀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없었다. 그쪽 일이야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일 테고, 나는 야마시타 골드를 처분한 돈으로 이제 뭘 할 지가 고민이었다.
통장에 아니, 계좌에 3조 3천억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달러로는 30억 달러, 환율이 요동을 치고 있어서 한국 돈의 가치는 변동이 있지만, 아무튼, 3조 원 이상의 어마무시한 돈이 나의 계좌에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진짜 재벌이 된 것이다. 재산이 3조 정도면 진짜 재벌 아닌가? 물론, 아직 재벌가의 회장님들처럼 기업을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보통은 작은 사업부터 시작해서 중견기업, 대기업 이런 식으로 성장을 하는 것이 재벌기업 창업자들의 일반적인 성공 스토리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결이 달랐다.
기업을 통해서 수익을 얻는 과정이 필요 없는 것이다. 대신 야마시타 골드로 자본 그 자체를 땅속에 바로 캐내는 것이다.
중국의 자본주의도 변칙적인 자본주의지만, 이렇게 황금을 발굴해 돈을 버는 나도 자본주의 시대의 별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3조가 넘는 돈도 생기고 나자, 뭔가 사업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간단하게 생각해 본 것이 호텔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쿠알라룸푸르에 호텔을 하나 사서 운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호텔 인수를 제안하자, 김영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죠. 저는 기본적으로 쿠알라룸푸르의 부동산은 앞으로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거든요.”
그리고 옛말에 땅에 투자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고도 하고 말이다. 땅에서 캔 야마시타 골드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도 뭔가 앞 뒤가 맞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도 언제나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던 기억도 있고 말이다. 흠, 그건, 이런 뜻이 아닌가?
아무튼, 호텔을 인수해서 호텔 사장이 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그동안 빌딩을 강남에 두 개 사고, 여의도에도 하나, 그 외에 아파트도 사고, 제주도에 꽤 호화로운 바다가 보이는 멋진 별장도 구매했지만, 기본적으로 건물주가 되어서 임대 사업을 한 정도였다.
진정한 비즈니스라고 하기는 애매한 일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요새 대세라는 전기차 회사를 차릴 수도 없는 일이고, 일단 건물주에서 유사한 호텔 경영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부동산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라, 여차하면 호텔을 매각해도 될 것 같고 말이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라면 완전 생소한 도시라는 것이 문제였다.
김영석은 부동산에 투자를 권유하면서 부동산 회사를 한 곳 소개시켜 주기는 했지만 그다지 신뢰가 가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행운과자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언제나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행운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김영석의 아파트를 나와 호텔 방안에서 행운의 과자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과자를 꺼내 씹기 시작했다.
호텔 창밖으로는 화려한 쿠알라룸푸르의 야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국적인 풍광의 쿠알라룸푸르, 아직 서울에 비하면 약간 낙후된 느낌도 있었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 도시인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이런 쿠알라품푸르에 호텔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아직까지는 본격적인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어서 직원들이라고 해봐야, 서울에 아이케이 빌딩에 있는 이희진 정도가 전부였는데, 호텔을 운영하게 되면 진짜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린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상상이 되었다.
호텔 로비로 내가 들어서면, 일렬로 늘어선 호텔 직원들이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음, 청소 상태가 아주 깔끔해, 마음에 들어...”
마치, 중대의 청소 상태를 둘러보는 중대장처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 먼지가 없는지 확인도 해보고 말이다. 그 이상은 호텔 경영에 아는 것이 없는 관계로 뭔가 더 점검을 하지는 못하고 그렇게 직원들을 한 번 쭉 둘러보고 사장실로 올라가는 것이다.
호텔이라?
씹고 있는 과자는 어딘지 자본주의의 달콤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그게 아니어도 돈으로 교환이 가능한 황금을 가진 자는 어디서나 환영받고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남국의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도 말이다.
과자의 달콤함 속에서 이물감이 느껴지고 거기에는 숫자가 적힌 종이쪽지가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해서 확대해 보니, 전화번호로 보이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일단,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KL 코리아 부동산입니다.”
“아, 부동산 회사였군요.”
“예, 그렇습니다. 부동산 상담을 원하시나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것은 어딘지 스위트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쿠알라룸푸르의 있는 한인이 운영하는 부동산 회사인 것 같았다.
“혹시, 대형 부동산 거래도 취급하는 곳인가요?”
“대형 부동산이라면? 어떤 걸 찾으시는 건가요?”
“호텔을 인수하고 싶어서 알아보고 싶은데요.”
“호텔 말씀이신가요? 음, 잠시만요.”
왠지 좋은 매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이제까지 행운의 과자가 나를 실망시킨 적은 없으니까 말이다.
“고객님, 마침, 센트럴 마켓에 퍼시픽 익스프레스 호텔이 매물로 나왔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센트럴 마켓요?”
***
쿠알라룸푸르 센트럴 마켓
“와, 분위기가 이국적인데요.”
제니퍼 리는 쿠알라룸푸르에서 부동산 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더운 날씨 때문인지 민소매에 베이지 컬러의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다.
쿠알라룸푸르의 센트럴 마켓은 입구에 1888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오래된 시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내부는 꽤 정비가 잘 되어서 깔끔한 편이었지만, 먹거리부터 전통 공예품들까지 이국적인 말레이시아의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관광객들에게는 인기가 좋은 곳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젊으신 분이네요.”
“하하, 그런 말을 많이 듣죠. 하지만 호텔에 투자할 정도의 돈은 가지고 있습니다.”
제니퍼 리의 고객들은 주로 한인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인들도 쿠알라룸푸르의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원래는 이소연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요새는 외국인 고객들도 많아져서 그냥 제니퍼 리라는 이름을 써요.”
“소연 씨였군요? 아무튼, 제니퍼 리, 도 잘 어울리네요.”
이소연, 제니퍼 리는 한국 출신이기는 하지만,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와서 부동산 회사에 취업해서 다시 말레이시아로 진출한 케이스였다.
“와, 한국, 캐나다, 한국, 말레이시아. 꽤나 복잡하네요.”
“그런 말들을 많이 듣는데, 실제로는 캐나다 대학에 입학해서 한국 회사에 취업한 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다지 복잡한 건 아니죠.”
한국인이지만, 외국 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어딘지 교포 느낌도 있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느낌의 여자였다.
그렇게 관광 가이드처럼 센트럴 마켓을 한 번 안내해 준 제니퍼 리가 나를 데려간 곳은 센트럴 마켓 인근의 호텔 건물이었다.
“여기가 퍼시픽 익스프레스 호텔이군요.”
4성 급의 호텔로, 9층 건물의 호텔에 207개의 객실이 있는 중형급 호텔이었다. 완전 화려한 럭셔리 호텔은 아니지만, 로비로 들어서니 꽤 고급스러운 로비가 펼쳐지고 있었다.
로비를 지나서 호텔 9층에 있는 사장실로 향했다.
“어서 오시죠. 한국에서 오신 최진수 사장님이시군요.”
언뜻 봐서는 흑인 느낌의 대머리의 중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이쪽은 압둘 무스타파 카림 회장님이십니다.”
본명은 압둘 무스타파 카림이지만, 보통은 압둘 카림 회장으로 불리는 카림 회장은 말레이시아와 동남아 여러 나라에 호텔과 리조트를 소유한 사업가였다.
하지만 최근에 동남아 쪽에서 벌인 사업에 문제가 생겨서 자금난을 겪고 있었고, 그런 문제로 센트럴 마켓의 퍼시픽 익스프레스를 매각하려고 하고 있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위치가 좋은 호텔입니다. 객실 수도 207개니까, 중형급은 되는 수준이고요. 인테리어도 보셨겠지만,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나쁘지 않은 곳이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죠. 직접 객실들도 한 번 둘러보시죠.”
압둘 카림 회장은 나와 제니퍼 리를 데리고 호텔 여기저기를 구경시켜주었다.
객실들도 몇 군데를 둘러보았는데, 고급 호텔까지는 아니어도,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이 정도면 그럭저럭 깔끔하다는 수준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카림 회장과 같이 호텔을 돌아디니자, 직원들이 다들 고개를 숙이고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압둘 카림 회장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카림 회장도 결국 이 호텔의 소유주이기 때문에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바꾸어 말하면 호텔의 주인이 바뀐다면 내가 그런 인사를 받게 될 거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호텔 사장이 되는 일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200개가 넘는 객실을 가진 호텔의 왕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적어도 이 퍼시픽 익스프레스라는 호텔 안에서는 내가 그런 절대적인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것이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업이든 부동산이든, 자본을 가진 자는 합법적인 영주가 되고 귀족이 되고, 왕이 되는 것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자금난이 있어서 그렇지 팔기에는 아까운 좋은 호텔입니다. 주변에 센트럴 마켓 같은 관광명소도 있어서 관광객들의 수요가 많은 곳이 거든요.”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그러면 가격은 어느 정도를 원하시는 겁니까?”
“원래는 1억 달러는 충분히 넘는 호텔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도 매각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1억 달러에 못 미치는 9천9백만 달러면 어떨까요?”
호텔 건물을 보러 오기 전에 KL 코리아 부동산에서 자체 분석한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센트럴 마켓 퍼시픽 익스프레스 호텔의 평가 가격은 1억 2천만 달러 수준이었다.
확실히 자금난 때문에 압둘 카림 회장이 급하게 매각을 원하고 있는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제니퍼 리도 호텔을 인수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하고 있었고 말이다.
9천 9백만 달러면? 대충 계산을 해보니, 한화로 1095억 정도의 금액이었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시내 중심가의 중형 호텔이고 수익성도 나쁘지 않은 곳, 아이케이 빌딩의 720억보다는 크고 여의도 동화 빌딩의 2천 2백억 보다는 적은 가격의 빌딩이었다.
하지만 서울의 아이케이 빌딩이나 동화 빌딩은 어디까지나 오피스 빌딩으로 건물주가 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건물을 포함해서 호텔을 인수한다는 것이 차이였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었다.
“가격은 적당해 보이는군요. 9천 9백만 달러라는 거죠. 호텔도 나름 훌륭하고요. 좋습니다. 계약하는 걸로 하죠.”
“하하, 저는 좀 아쉽지만 최진수 사장님은 운이 좋으신 겁니다. 이런 호텔을 그 가격에 인수하셨다면 말입니다.”
카림 회장은 웃고는 있었지만, 약간은 씁쓸한 표정이었다. 어쨌든, 행운의 과자의 행운의 힘 때문이었는지, 괜찮은 호텔을 좋은 가격에 인수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오늘의 이 거래의 승자는 나인 것은 분명해 보였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