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언덕
킹스 리조트
럭키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아마존 문서를 해독해 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본어 공부를 계속하는 건데라는 후회가 밀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행운의 과자로 이 문서를 해독해줄 사람을 찾아보자, 행운의 과자병에서 과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입안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오늘따라 행운의 과자에서는 뭔가 향긋한 느낌이 나고 있었다. 뭐지? 이 신선한 느낌은..아무튼, 과자를 천천히 씹고 있자, 입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입안에서 나온 것은 작은 종이쪽지,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확대를 해보자, 나온 것은 역시나 전화번호였다.
휴대폰 번호잖아? 누구지? 일단 전화를 걸어보자.
행운의 쪽지에 나온 번호를 눌러보았다.
“여보세요.”
“아, 예, 실례지만, 누구시죠?”
“황금연구소, 김덕수 소장입니다. 그쪽은 누구신가요?”
“예? 아니, 그러면 예전에 황금출판사를 하시던 김덕수 사장님이신가요? 저 최진수입니다.”
“어, 최진수 씨였군.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말이야. 지금 어디에 있어요?”
“전 필리핀입니다.”
“역시, 야마시타 골드를 찾고 있는 건가?”
김덕수 사장이라면 그동안 알뜨르 문서 해독의 사례비라는 명목으로 수백억을 송금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김덕수 사장의 딸의 계좌로 돈을 보내고 있을 뿐이어서 김덕수 사장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예, 덕분에 황금을 잘 찾고 있습니다.”
“하하, 왠지 부러운데. 나도 조금만 젊었으면 필리핀으로 가서 자네를 돕고 싶은데 말이야. 하지만 이제 나는 나이도 너무 많고, 이제는 무엇보다 시간이 없어.”
“시간요?”
“그래, 야마시타 골드에 미쳐서 가족들에게 소홀히 했거든.”
“그거야, 야마시타 골드는 진짜로 존재하는 거 아닙니까?”
“야마시타 골드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야, 젊은 날을 그렇게 허송세월하고 난 후에 깨달은 건, 가족보다 더 귀한 보물은 없다는 거였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황금이니 보물이니 하는 것도, 결국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그러면 김덕수 사장님은 병원에서는 퇴원한 겁니까?”
“그래, 그리고 이제는 김덕수 소장이라고 불러주게.”
“김덕수 소장님요?”
“전에는 야마시타 골드를 찾을 돈을 벌기 위해서 책을 팔 목적으로 황금출판사를 운영했었지. 책을 만들겠다는 것보다는 자금이 필요해서 말이야.”
“돈 문제는, 제가 따님을 통해서 사례비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만, 알고 계시죠?”
“물론이지. 혜진이 계좌로 엄청난 돈을 보내고 있더군, 그 돈은 다 나에게로 들어오고 있어.”
“그랬군요.”
“그래, 덕분에 그 돈으로 좋은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황금연구소도 설립했지.”
황금연구소? 이건 또 뭐지?
“김덕수 사장..아니 소장님, 그 황금연구소는 뭘 하는 곳입니까?”
“별 건 아니고, 취미 삼아 야마시타 골드나 아니면 전세계의 보물에 관련된 정보들을 취합해서 연구를 하는 곳이야, 내가 평생동안 하던 일의 연장이지. 차이라면 예전에는 진짜 보물들을 찾기 위해서 연구를 했다면 이제는 순수하게 학문적인 연구라고나 할까?”
“저기, 소장님 제가 한 번 만나서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나에게 말인가?”
“예, 마침 필리핀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인데, 한 번 뵙기로 하죠.”
***
한남동, 프레스티지 힐.
김덕수 소장의 초대를 받고 간 곳은 한남동의 최고급 빌라였다. 아파트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인 고층의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낮은 높이의 빌라들에 가까운 아파트들이 있는 곳이었다. 뉴스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기도 했는데, 여기에 뜻밖에도 정신병원을 퇴원한 김덕수 소장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 자네 덕분이지. 혜진이 계좌로 돈을 보내줬잖아? 그렇게 많은 돈으로 내가 뭘 하겠어? 그냥 남들처럼 서울에 고급 아파트에 살고 싶어지더라고.”
“그래서 75억짜리 이 아파트를 사신 거군요?”
“뭐, 투자 가치도 있다고 하더라고, 가격이 너무 비싼 것 같기도 했지만. 살아 보니까, 장점이 많아.”
지난번 정신병원에서 만났던 김덕수 소장은 이제 한남동의 최고급 빌라형 아파트인 한남 프레스티지 힐에서 살고 있었다.
74평형의 아파트가 75억이면 평당 1억쯤 하는 것 같았다. 예전이라면 평당 1억이라며 놀랐을지도 모르겠지만, 계좌에 3조가 넘는 돈이 있고, 강남과 여의도에 수천억짜리 빌딩의 건물주가 된 지금은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김덕수 소장님은 내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고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렇게 좋으세요?”
“좋지, 최진수 사장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젊었을 때는 공무원으로 평판이 괜찮았다고, 그러다가 야마시타 골드에 미쳐서 재산을 탕진하고 나서는 지인들도 다 등을 돌렸고, 가족들도 나를 정신병원에 감금했잖아.”
“그거야..”
“그렇게 주변에서 냉대를 받을 때는 나도 화가 나고, 세상이 참 이렇게 차가운 곳인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지.”
“돈요?”
“그래. 모든 건 돈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고, 그래서 돈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고, 한 인간의 모든 인생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말이야.”
김덕수 소장들은 내가 송금해 준 돈으로 다시 예전의 행복을 되찾았다고 했다.
“나를 그렇게 따돌리던 녀석들이 요새는 나보고 동창회 회장을 맡아 달라고 하더라고.”
“하하, 그 정도인가요?”
“세상이 그래, 돈 없으면 찾는 사람도 없지만, 돈이 생기니까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더라고.”
한때, 안정적인 공무원이었다가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졌던, 김덕수 소장은 자본주의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맛보았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은 단맛이겠네요?”
“그래, 달콤하지. 최 사장이 보내준 돈으로 이렇게 좋은 아파트도 사고 말이야. 뭐, 여기는 진짜 한국에서도 재벌 일가나 연예인들이 모여 산다는 최고급 아파트야. 사실, 최 사장이 보내준 돈이 많기는 했지만 굳이 여기에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왜 프레스티지 힐의 빌라를 구입하신 거예요.”
“혜진이가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하잖아.”
“혜진 씨가요?”
김덕수 소장의 딸인 김혜진,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을 뿐이었고, 김덕수 소장의 부탁으로 야마시타 골드를 발굴한 수익금 일부를 그녀에게 송금해 주고 있었다.
김덕수 소장은 정신병원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내가 얼핏 들은 것은 주로 연극을 하면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단역을 하는 정도의 무명 배우였다.
“그래, 우리 딸이 그러더라고, 여기에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사는데, 자기도 평생 소원이 배우로 성공해서 이런 고급 아파트 단지에 들어오는 거라고 말이야.”
“하하, 따님의 소원을 이뤄주신 거군요?”
“그래,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우리 딸이 그렇게 철이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인간의 욕망이라는 건 그렇게 원초적이고 때로는 천박해 보이기까지 한 그런 것들이잖아?”
“그렇기는 하죠.”
인간의 욕망이란 고차원적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단순하고 원초적이고 때로는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말이다.
예전에 소대장님에게 듣기로, 인간의 욕망이란 적당히 가식으로 가려져야 하는 법인데, 그런 가식이 사라지고 욕망이 가감없이 드러나면 그것이 바로 외설이 된다는 것이었다.
외설적이라는 것은 보통은 노출이 심하거나 한 것을 말하지만, 꼭 인간의 육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욕망이 숨김없이 드러날 때, 그 모든 것은 외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이 보기에는 상당히 역겨운 것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이 한남동 프레스티지 힐에 아파트를 사고 이사를 오니까, 뭔가 나도 저 밑바닥에 살다가 갑자기 위로 솟아오른 기분이야.”
“귀족이나 특권층이 된 그런 느낌 말이죠?”
“그래, 최진수 사장도 그런 느낌은 잘 알겠지, 야마시타 골드로 어머어마한 부자가 되었잖아?”
“물론, 그 느낌이라면 잘 알죠. 저도 얼마 전까지 편의점 알바생이었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고된 육체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대신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었다. 한 시간의 노가다로 천억 원의 돈을 벌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최고급 아파트라는 이곳 프레스티지 힐의 고급 아파트가 75억이라지만, 나에게는 한 시간, 아니, 10분, 아니, 5분 정도의 노동의 가치에 불과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마무시하게 돈을 벌고 있잖아? 서민들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실제로 받게 되는 돈은 10억 정도인데 말이다.
강남은 물론이고, 이렇게 한남동이나 성수동의 새로 생기는 고급 아파트들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로또 당첨으로 인생역전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아파트 하나도 못 사는 상황이 온 것이다. 로또 당첨으로 인생역전은 이제 불가능해진 시대..
하지만 역대급 행운의 사나이인 나 최진수에게는 행운의 과자가 있다. 그리고 행운과자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프레스티지 힐이든, 강남의 어떤 아파트든, 내가 한 시간 삽질해서 버는 돈으로 사지 못할 아파트나 빌라는 없는 것이다.
뭔가? 웃기는 상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부자라는 건 물려받은 자산으로 계속 돈을 불려가는 자본가 계급이다. 그들이 사는 곳이 바로 이 프레스티지 힐 같은 고급 빌라로 이곳은 자본주의 시대의 귀족들의 성 같은 곳이다.
노동으로 돈을 버는 천민들에게는 입장이 허락되지 않은 그들만의 성채 말이다. 70억이 넘는다는 이 아파트의 가격은 해마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노동자들의 노동임금으로는 절대 넘볼 수 없는 가격이라는 장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노동으로 돈을 버는 천민계급은 절대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그들만의 성채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본수익이 아닌,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의 별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육체를 움직여 삽으로 땅을 파고, 나의 조력자, 아니, 조력마인 스바딜파리와 함께 땀을 흘려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육체노동으로 내가 버는 돈은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천억 원에 달한다.
한 시간의 노동으로 이런 프레스티지 힐의 아파트 수십 채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혼자서 스스로 증식하는 자본수익을 노동수익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현대자본주의의 상식을 깨뜨리는 일종의 괴물 같은 현상이었다.
나는 자본주의의 이단아, 괴물 노동자인 것이다. 황금을 캐는 괴물 노동자 말이다.
아무튼, 김덕수 소장은 내가 보낸 준 돈으로 충분히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황금을 찾으려는 욕망보다는 이제 남은 여생을 가족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나도 야마시타 골드를 찾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 내가 평생 그렇게 미친 듯이 찾아다니던 것이고, 그리고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증명이 되었고, 나도 최진수 사장과 같이 필리핀에서 황금을 캐고 싶기도 해. 하지만, 이제 나이도 많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아서 그건 현명한 선택은 아니지.”
“대신, 제가 돈은 충분히 보내 드리고 있지 않나요?”
“맞아, 그 돈으로 재벌들이 산다는 한남동 프레스티지 힐의 입주민이 되었고, 차도 여러 대 샀다고.”
“차요?”
“보여줄까?”
김덕수 사장은 주차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진짜 고급차들이 많이 보였다.
차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딱 보기에도 뭔가 국산차들과는 디자인부터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외제차들이 많이 보였다.
“여기 주차장이 굉장하지? 아파트 수준은 주차장을 보면 안다고 하더라고. 아마, 우리나라에서 고급차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여기일걸.”
“그렇겠네요.”
한국 최고의 부촌이라는 한남동 프레스티지 힐, 한눈에 보기에도 멋진 고급차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었다.
“람보르기니도 있고, 페라리, 저건 포르쉐.. 이건 뭐지? 스포츠카 같은데.”
람보르기니를 사면서 슈퍼카에 대해서는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처음 보는 슈퍼카 스타일의 차도 많이 보였다. 거기에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같은 럭셔리카들도 많이 보이고 말이다.
“나도 롤스로이스를 하나 샀어. 내가 사고 싶어서 산 건 아니고, 알지? 혜진이가 롤스로이스 타고 다니는 여배우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딸아이를 위해서 산 거야, 어떤가? 나도 이만하면 좋은 아빠 아니야?”
“하하, 그렇죠. 어쨌든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멋진 차들이 정말 많은 곳이었다. 왠지, 프레스티지 힐의 고급차들이 즐비한 주차장을 둘러보고 있으니 떠오른 사람이 하나 있었다. 고급 자동차를 좋아하고 그걸 찍는 것을 즐기는 그 녀석 말이다.
하지만 이런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한남 프레스티지 힐 같은 곳에 그런 도산 파파라치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는 없겠지..
“최진수 선배님.”
어디선가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환청이 분명했다.
“선배님, 최진수 선배님이시죠?”
아..아니, 환청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