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눈물
한남동, 프레스티지 힐, 김덕수 소장의 아파트.
“드라이브는 잘하고 왔나?”
“예, 덕분에, 김덕수 소장님도 부자가 되어서 행복하시나요?”
김덕수 소장은 나의 말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행복해지기는 했어, 하지만 돈 때문은 아니지, 그보다는 돈 때문에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모여 살게 되고 서로를 증오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음, 결국 행복은 가족에서 나온다?”
“다른 게 뭐가 있겠어? 하지만 적어도 돈이 행복은 몰라도 불행을 막아주는 건 분명해, 야마시타 골드에 미쳐있기는 했지만, 내가 돈이 많이 재벌이었다면 어땠을까? 야마시타 골드에 빠져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어도, 와이프나 혜진이가 나를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았을 거야. 내가 가족에게 준 고통의 대부분은 경제적인 것이었으니까. 주변에서도 내가 뭘 하더라도, 내가 돈이 많았다면 나를 외면할 일은 없었겠지.”
“결국, 다 돈 때문에 불행해진 것이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저걸 봐.”
김덕수 소장은 벽에 걸린 대형 가족사진을 가리켰다.
“행복해 보이지?”
“정말, 그런데요. 사모님과 따님 그리고 사장님까지, 활짝 웃고 있네요.”
“이, 프레스티지 힐로 이사 오고 며칠 후에 찍은 사진이야, 아까 빌려준 롤스로이스를 타고 사진관에 가서 찍은 사진이지. 행복해 보이는 사진이잖아? 다, 최진수 사장이 송금해준 돈 덕분이야. 돈만 있으면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가족의 행복도, 주변의 지인들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 주었네, 그게 무슨 말이겠어? 결국은 다 돈 때문에 나를 미워하고 떠났던 거라는 말이야.”
자본주의 시대, 돈은 행복하게 해주는 마법의 물약은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괴물에 가깝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돈의 속성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 돈이라는 괴물은 부재의 방식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괴물인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도처에 존재하며 인간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괴물이 활동하지 않는 곳은 돈이 있는 곳뿐이다. 돈이 있는 곳에는 돈의 부재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결국 돈을 가져야만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로 인해 돈이 행복을 준다는 망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다시 행복을 되찾으셔서 다행입니다. 행복의 파랑새는 역시, 집 안에 있었던 거군요.”
김덕수 소장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주 비싼 집에 있더군, 어쨌든 나는 내 집에서 파랑새를 찾았고 그걸로 만족이야. 어떤가? 최진수 사장은 아직도 파랑새를 찾고 있나? 아니면 벌써 찾은 건가?”
“파랑새는 아니지만, 뭔가를 찾기는 찾았습니다. 그게 바로 이겁니다.”
필리핀의 럭키 아일랜드에서 찾은 아마존 문서, 그것을 김덕수 소장의 거실 테이블에 꺼내 놓았다.
“음, 아마존이라?”
“뭔가 짐작이 가시는 것 없습니까?”
김덕수 소장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마존이라면, 브라질에 있는 거대한 열대 숲이잖아? 아마도 아마존이라면 브라질을 상징하는 거겠지.”
“그러면 브라질과 관련이 있는 내용인가요?”
“일단, 이 문서를 좀 읽어봐도 되겠나?”
“예, 그러시죠.”
김덕수 소장은 나의 허락을 구하고 천천히 아마존 문서들을 넘겨 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종이 위의 그림 같은 일본어들이지만, 김덕수 소장에게는 의미 있는 정보가 담긴 문자들이니까 말이다.
“오...이럴 수가..”
“뭔가 흥미로운 내용이있나요?”
“이건, 일종의..”
“일종의?”
“일본 제국판 오퍼레이션 피쉬군.”
“오퍼레이션 피쉬라면?”
전에 김민성 사장이 말했던, 대영제국의 황금을 피신시킨 그 작전이잖아?
“오퍼레이션 피쉬라면, 처칠이 나치를 피해 영국의 황금을 해외로 피신시킨 작전 아닌가요?”
“하하, 최진수 사장도 제법이군, 오퍼레이션 피쉬를 알고 있다니 말이야. 그럼, 이해하기 더 쉬울 거야.”
“그럼, 일본군도 필리핀의 황금을 다른 곳으로 또 옮기려고 했다는 건가요? 브라질로?”
“그래, 원래 황금백합작전은 말 그대로 전후를 대비해서 황금을 비축하자는 그런 작전이었지, 전쟁에서 질 수도 있으니까, 일본 제국을 부흥시키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그런 발상에서 말이야. 하지만 전쟁이 패망으로 치닫고 필리핀도 미국에 함락될 상황이 되자, 일본군들도 더 불안해진 거지.”
“왜요?”
“원래는 필리핀에 모은 동남아시아의 보물들은 일본으로 보내서 후일을 도모하려는 용도였는데, 미드웨이 해전 이후로 태평양의 제해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고, 황금을 일본으로 수송하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군부에서 비주류였던,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생각이 좀 달랐던 거지.”
“어떻게 말입니까?”
김덕수 소장은 서류를 뒤적이며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야마시타는 전후에 일본이 다시 부흥하려면 일본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다 이런 주장을 한 거야.”
“예?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
“2차 세계대전은 원래 독립적인 두 개의 전쟁이 하나로 연결된 거야. 생각을 해보게, 처음부터 세계대전은 아니었다는 말이야. 히틀러의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해서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그리고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두 개의 전쟁이 동시에 일어난 거야. 그리고 일본이 싱가포르를 공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영국과의 전쟁도 벌어지고, 그런 식으로 세계대전화 한 거라는 말이야.”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처음부터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전쟁을 시작한 것은 분명히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적의 적은 동지라는 의미에서 서로 협력을 하게 된 그런 사이인 것이다. 아무튼, 공동의 적이 있는 두 나라는 동맹이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전후에 부흥하려면 독일과 역시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인가?
“그럼, 이미 전쟁은 패색이 짙고 그 후에 자신들의 세력을 다시 일으키려면, 전후에도 역시 나치와 협력을 하자 그런 말이겠죠?”
“맞아, 그리고 자네 브라질의 수도가 어디인지 아나?”
“리우데자네이루 아닙니까?”
“하하, 보통 그렇게 착각을 하지, 정답은 브자질리아네, 57년에 건설된 도시야, 기록으로는 3년 동안 초단기로 건설된 계획도시고 말이야. 당시 대통령이 주도해서 건설한 도시라네. 50년대라면 전세계가 전후 후유증으로 가난하고 힘들던 시기인데, 브라질은 50년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이루어지지”
“그래요? 리우데자네이루가 아니구나.”
“그리고 64년에는 군부 쿠데타로 독재 정권이 들어서고 하지만 경제는 계속 성장해서 60년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돼. 68년에는 프랑스에는 68혁명이 일어나고, 영국도 경제위기를 겪지만, 신기하게도 남미의 브라질은 최고의 경제성장을 이루거든, 그래서 68년에 정점에 다다른 브라질 경제를 가리켜 브라질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야.”
한강의 기적이나 라인강의 기적은 들어 봤지만 브라질의 기적은 처음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브라질 경제가 좋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것 같았다.
“음악을 좀 들려줄까?”
김덕수 소장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노래인가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원 노트 삼바라네.”
“삼바요? 브라질이라면 삼바기는 하죠.”
“하하, 이건 보사노바야 다른 노래도 들려주지. 이 노래는 좀 더 대중적이야.”
이번에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였다. 제목이 무슨 소녀인데..
“아,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그거죠?”
“맞아, 브라질 출신의 작곡가 조빔의 대표곡이고, 보사노바 열풍을 일으킨 곡이지, 이파네마는 리우데자네이루 근처의 해변의 이름이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조빔의 눈에 아주 매력적인 소녀가 지나가는 걸 보고 즉석에서 이 곡을 썼다고 하니까 말이야.”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거랑 야마시타 골드가 대체 무슨 상관인가요?”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가 발표된 게 64년이야, 보사노바는 60년대 브라질을 대표하는 세련된 음악이지, 들어보면 알겠지만 여유 있고 감미로운 음악이네, 삼바 같은 기존 브라질 음악과는 완전히 다르고. 60년대에 미국 뉴욕보다 더 부유한 도시였던 리우데자네이루의 도시적인 감성이 드러나는 음악이라는 거야.”
“한 마디로 60년대는 브라질 경제의 전성기였다는 거군요?”
김덕수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기하지? 경제학자들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야기지, 뭐 세계대전 이후에 전세계적인 식량 부족으로 농업 국가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60년대는 이미 전쟁이 끝난 후 수십 년이 지난 후야, 그런데 유럽에서는 68혁명이 일어날 정도로 경제가 안 좋았고, 알지? 68혁명은 당시 사회경제적 불만을 가진 대학생들이 주도한 거라네. 유럽에서 60대 후반이 되면서 제조업이 몰락을 하고 그로 인해 실업률 특히 여성 임금 저하가 나타나, 그게 이른바 신좌파의 탄생에 불을 붙인 거고, 이후 68혁명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거야.”
“유럽은 60년대에도 경제가 안 좋았는데, 남미의 브라질은 경제가 최전성기였고, 그 원인은 불분명하다는 거군요.”
“그래 맞아, 경제학자들은 설명하지 못 하는 현상이지, 하지만 여길 보게. 가난하던 내가 이렇게 부자가 된 거야, 브라질도 50년대와 60년대에 가난한 식민지 출신의 신생 독립국에서 갑자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룬 거지.”
김덕수 소장의 말에, 나는 김덕수 소장의 집을 둘러보았다. 75억에 구입했다는 집은 굉장히 럭셔리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정신병원에 감금될 정도로 가정이 파탄이 났던 김덕수 소장이 이렇게 좋은 집에 살게 된 것은 야마시타 골드에서 나온 돈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브라질이 50년대와 60년대에 경제적인 번영을 이룬 것도 외부에도 들어온 돈, 즉 야마시타 골드 때문이라는 말인가?
“그럼, 김 소장님 생각에는 그게, 야마시타 골드 때문이라는 건가요? 야마시타가 필리핀의 황금을 브라질로 이동시켰고, 그것이 브라질 경제를 발전시켰다? 이런 시나리오 말입니다.”
“하하, 내 생각에 야마시타 골드라기보다는 늑대의 눈물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네.”
“늑대의 눈물요?”
늑대의 눈물?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점점 알쏭달쏭해지는 느낌이었다.
“늑대의 눈물은 나치의 황금을 말하는 거야. 북유럽 신화에서는 황금은 딸을 찾아 세상을 떠돌던 프레이야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있거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집에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이 있었거든요. 그 프레이야는 북유럽 신화의 미의 여신 아닙니까?”
“맞아,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도 비슷한 성격의 신이야, 그리고 전세계를 떠돌며 황금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 어쨌든, 아름다운 여인과 황금은 남자의 욕망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잖아.”
“그러니까, 늑대의 눈물은, 나치의 비밀 황금 같은 거고, 그 늑대의 눈물이 브라질로 흘러들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무슨 근거가 있는 겁니까?”
“스릴러 소설계의 거장인 아이라 레빈의 소설 중에,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라는 책이 있지. 아이라 레빈은 스텝 포드 와이프나, 슬리버, 죽음의 키스 같은 스릴러 소설을 쓴 유명한 작가야. 그중에서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은, 나치의 생체 실험을 했던 요제프 맹겔레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쓴 소설이야.”
“멩겔레요?”
“그래, 소설의 줄거리는 브라질을 배경으로, 나치 제국 부활을 위해 맹겔레라는 나치 출신의 의사가 히틀러의 유전자로 복제인간을 만든다는 이야기지, 재밌으니까 한번 읽어보라고.”
“전 책은 잘 안 읽는 편이라서요.”
“그래? 아무튼,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치들이 다 처벌을 받은 줄로 알지만, 대부분은 해외로 잘 빠져나갔지. 그리고 그런 나치 세력들이 많이 이주한 곳이 바로 브라질이야, 브라질은 전쟁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어서 그런지 전후에 나치들이나 일본인들에게도 관대해서 독일이나 일본인들의 이주가 많았거든. 책이 싫다면 히치콕의 오명, 이라는 영화도 있네, 전후에 나치 잔당을 처단하는 스파이물이지. 역시 배경은 브라질이고.”
히치콕이라? 그 사람 영화라면 맥거핀이라는 쓸데없는 내용만 잔뜩 있어서 별로던데.
“아무튼, 김덕수 소장님의 주장은 전후에 브라질로 나치의 잔당들이 많이 이주했고, 그와 동시에 늑대의 눈물이라는 나치의 약탈 황금도 브라질로 유입되었다, 그 결과 돈이 풍부해진 브라질은 50년 이후 60년대까지 경제발전을 이루며 번영한다, 그래서 그 결과 브루조아적인 감성의 보사노바라는 음악도 탄생하게 되었다. 이런 말씀이신 거죠?”
“내 주장이 아니라, 상당한 근거를 가진 역사적 사실이야. 반대로 나치에게 황금을 약탈당한 프랑스나 영국은 제국주의 시절에 모아놓은 황금을 다 빼앗겨서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지..반대로 나치와 일본의 약탈 황금의 일부를 장악한 미국은 엄청난 호황과 함께,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되고.”
“미..미국도요?”
“나치도 그렇고, 일본의 전범 재판도 쇼에 불과했어, 일왕이 무슨 처벌을 받았나? 전범 재판? 도조 히데키를 제외하면 다들 풀려나서 그 후에 일본 경제계와 정치계로 흘러 들어갔어. 미쓰비시 같은 전범 기업들도 잠깐 그룹 해체가 되었지만, 어떤가? 아직도 멀쩡하지.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일본과 국교가 수립된 후로는 한국에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서 한국의 재벌기업들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지.”
“그..그럼? 김 소장님 말씀은?”
“나치 전범들이 어떻게 브라질까지 그렇게 대규모로 도피가 가능했고, 일본은 전후에 전범 기업과 전범 정치인들이 다 살아남았을까? 전쟁 책임이 있는 왕실도 그대로 유지되고 말이야. 이유는 간단하네. 황금백합 작전이든, 늑대의 눈물이든, 나치와 일본 제국주의는 계획은 성공한 거야. 상당 부분 말이네. 그들은 미국 군대와 고위 관료, 아니 미국 정부 그 자체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어마어마한 양의 불법적인 황금을 미국에게 넘겨준 대가로 전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거야.”
“설마요? 그게 가능할까요?”
“하하...”
김덕수 소장은 예전에 정신병원에 잠시 보았던 그 광기 어린 눈빛이 되어 있었다.
“인간의 탐욕이라는 건 그 무엇보다 무서운 괴물이라네. 미군들이 나치와 일본군의 엄청난 황금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정의를 위해서 싸우던 군인들에서 탐욕에 사로잡힌 괴물들로 변해버린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