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여인
“카..캄 다운, 진정하시죠, 김 소장님.”
“하하, 내가 좀 흥분했었나? 그러고 보니 약 먹을 시간이군.”
“약요?”
아직도 완치된 건 아닌가? 하긴, 멀쩡해 보이다가도 황금 이야기기가 나오면 좀 예민해지는 것 같기는 했다.
“강박증이 좀 있다고 하더군, 뭐, 의사 말이 여자는 신경증이 있고, 남자는 강박증이 있는 게 당연한 거래.”
“남녀가 병이 좀 다른가요?”
“그렇다나 봐, 정신병원 의사 말로는 여자들은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항상 고민한다더군, 그게 신경증으로 이어지고 말이야. 타인의 시선의 병의 근원이라는 거야.”
“그럼 남자는요?”
“남자들은 항상 내가 살아있는지 의심한다고 하더라고? 나는 과연 살아있는가? 이런 의문이 남자들의 정신병의 근원이지.”
내가 살아있냐고? 철학적인 질문인가? 내가 당연히 살아있으니까? 내가 살아있는가? 라고 물어볼 수도 있는 거잖아?
나는 살아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아닌가?
“살아있지 않은 사람도 있나요? 죽은 사람 빼고 말입니다.”
“하하, 심리적인 측면을 말하는 거야? 남자들은 자신들이 인생이 진짜 의미가 있고, 자신이 의미 있는 사람인지? 자신이 살아있는지 항상 의심하니까 말이야. 의사 말이, 내가 야마시타 골드에 집착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라더군.”
“야마시타 골드에 집착하는 이유요?”
“그래, 남자로서의 성공을 꿈꾸고 자신의 권위를 찾기 위해서 야마시타 골드라는 판타지를 만들어냈다는 거야,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서 가상의 판타지의 세계를 만들어 낸 거라는 말이야.”
“하지만, 야마시타 골드는 실존하는 거잖아요?”
“누가 아니래. 나도 그걸 의사에게 설명했지만, 의사들은 원래 상상력도 부족하고 꽉 막힌 녀석들이라고, 도저히 말이 안 통해서 할 수 없이 내가 져주기로 했지.”
“그래서 약을 드시기로 한 건가요?”
“이 약을 먹으니까 생각보다 좋은 점도 있어, 일단 잠도 잘 오고, 뭐랄까? 마음이 너그러워진다고나 할까? 예전 같았으면 참지 못했을 일들도 참아 낼 수가 있으니까.”
“어떤 일요?”
“약을 먹지 않았다면, 야마시타 골드를 다른 사람이 찾도록 놔두지는 않았을 걸, 아마 어떻게 해서든, 내 손으로 직접 찾지 않았을까?”
상상이 되었다.
김덕수 소장이 칼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최진수 사장, 미안하지만 야마시타 골드는 나의 것이야. 내가 전문가라는 말이야. 찾아도 내가 찾는 게 맞다고. 안 그래?”
“진정하시죠. 소장님, 이제 행복의 파랑새도 찾으셨잖습니까?”
“파랑새? 흥, 누가 그런 거 찾고 싶데? 내가 찾고 싶은 것은 황금빛 보물들이야, 그 푸르딩딩한 파랑새 따위가 아니라고,”
“약은 제 시간에 빠지지 않고 드시는 거죠?”
“그럼, 약효가 48시간 정도인데 반감기가 있어서, 약효를 꾸준히 유지하려면 하루에 한 번은 먹어야 하거든, 매일 같이 먹고 있지.”
“다행이네요. 그럼 이 아마존 문서에도 야마시타 골드가 묻혀져 있는 매장지의 좌표가 있는 건가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 하지만 좀 있으면 아내가 올 시간이라서, 알지? 아내는 이런 고문서만 봐도 알러지 반응을 보이거든.”
“그럼?”
“내가 아내가 없을 때, 몰래 해독을 해보겠네. 나중에 해독을 다 하면, 내가 연락을 하지.”
뭐야? 아마존 문서를 맡기고 나중에 오라는 거잖아? 설마, 김덕수 소장이 문서를 가지고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약간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김덕수 소장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 것은 바로 행운의 과자였다. 행운의 과자가 아직까지는 나를 실망시킨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일단, 이번에도 행운의 과자의 신비로운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럼, 소장님의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며칠 걸릴지도 몰라. 좀 늦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예, 그럼 나중에 뵙죠.”
***
필리핀에서 오랜만에 돌아오니, 역시 서울이 좋은 것 같았다. 필리핀도 열대의 낙원 같은 곳이지만, 역시 화려한 대도시인 서울에 비하면 그다지 볼거리는 없었다.
“와, 필리핀의 산 페르난도의 허름한 거리만 보다가, 강남으로 오니까 빌딩들이 어마어마해 보이네.”
그 어마무시한 빌딩 숲에는 진수의 빌딩들도 있었다. 아이케이 빌딩의 15층으로 올라가자. 희진 씨가 진수를 맞아 주었다.
“사장님, 그동안 잘 지내신 거예요?”
“그럼, 잘 지냈지. 빌딩에 별일은 없죠?”
“예, 15층에 임대 문의가 오기는 했지만, 사장님이 바쁘신 것 같아서 따로 연락은 안 드렸어요.”
이희진 말로는 15층 공간이 비어있다는 말에 임대를 문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은 내 사무실로 쓰는 곳이라 다른 사람에게 임대해줄 생각은 없었다. 임대료를 받는다면 상당한 돈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지금 돈이 아쉬운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보다는 여길 사무실로 해서 사업을 키워 볼 생각이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번다기보다는 이미 벌어놓은 돈으로 사업을 하려는 것이었다.
뭔가 앞뒤가 바뀐 것 같기는 했지만, 야마시타 골드를 찾아서 이미 돈이라면 3조 이상을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십 조의 돈을 더 벌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김덕수 소장님에게 해석을 맡겨 놓은 아마존 문서에서 뭔가 추가적인 내용이 나온다면 그 이상의 보물들을 찾을 수도 있었다.
돈을 버는 방법으로 땅속의 묻혀진 황금을 찾는 것만한 고수익 사업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사업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계좌에 돈을 쌓아두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어차피 지금 가진 돈만 해도 나 혼자 평생 먹고 사는 걸로는 다 쓰지도 못할 정도였다.
뭐라도 하면서 돈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적인 상황인 것이다.
“희진 씨, 여기 사무실은 앞으로도 내가 쭉 쓸 생각이야.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도 해볼 생각이고.”
“사업요?”
“그래, 연예 기획사를 하나 인수해 볼 생각인데.”
“기획사를 하시게요?”
마침, 김준수 사장이 자기 회사를 팔고 싶어하기도 하고 좋은 기회라면 기회였다. 5백억이라는 가격이 적당한지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일단, 드림 엔터테인먼트에 대해서 조사를 좀 해볼까? 음, 사무실의 컴퓨터를 켜고, 드림 엔터테인먼트라고 쳐보았다.
민소희를 비롯해서 뭐가 좀 나오기는 하는데..이걸로는 잘 모르겠네. 상장한 회사도 아닌 것 같고.
젠장 뭐, 아는 게 있어야 투자를 하든지 말든지 하지. 아니지? 아는 게 없다면 운에 맞기면 될 일.
행운의 과자를 하나 먹어보기로 했다.
병에서 과자 하나를 꺼내 입어 넣어 보았다. 사무실 앞으로는 강남의 화려한 거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절로 가슴이 펴지고, 남자의 야망이 커지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도시의 빌딩 숲은 언제나 봐도 남자의 마음을 설레이게 아는 그 무엇이 있었다.
아까, 김덕수 소장에서 잠깐 들었던 것처럼, 여자가 타인의 사랑을 갈구한다면 남자의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 성공을 증명하려는 남자에게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는 빌딩처럼 멋진 증명서는 없는 것이다.
서울의 가장 부유한 강남에 자신의 빌딩을 소유하는 것만큼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입안에 넣은 행운의 과자가 더 달콤하고 고소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달콤함과 함께 입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역시 전화번호인가? 일단 번호를 눌러 보았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어딘지 세련된 느낌의 하지만 동시에 약간 섹시한 음색의 여자였다.
“저, 최진수라고 합니다.”
“최진수 사장님요? 어머, 김준수 사장님에게 전화를 하시려던 거 아닌가요?”
“김준수 사장요? 실례지만 지금 전화를 받는 분은 누구시죠?”
“드림 엔터테인먼트 윤아영 전무입니다.”
“드림 엔터테인먼트요?”
내가 제대로 전화를 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김준수 사장님을 만나시려고 전화를 하신 거 아닌가요?”
음,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직원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회사에 대한 정보를 좀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닙니다. 김준수 사장이 아니라 윤아영 전무님을 만나고 싶은데요. 비즈니스 관련해서 말이죠. 가능할까요?”
***
성수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마침, 점심시간도 돼서 성수동의 레스토랑에서 윤아영 전무를 만나기로 했다. 비즈니스 문제로 가는 거라, 차는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를 타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거기에 정장도 좀 차려입고 있어서, 주자장에 마이바흐를 세워놓고 내리는 모습은 흡사 젊은 재벌 3세 같은 느낌도 있었다.
레스토랑 안에는 윤아영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최진수라고 합니다.”
“드림 엔터테인먼트 윤아영 전무입니다.”
연예 기획사라 그런지, 전무라고 해도 30대 초반 정도의 세련되고 어딘지 화려한 느낌도 있는 여자였다.
“전무님이라고 해서 나이가 많은 줄 알았는데, 젊은 분이시네요.”
“그렇죠? 연예 기획사라 일반적인 회사들하고 많이 다르니까요. 그나저나 최진수 사장님도 굉장히 동안이신데요?”
“하하, 그렇기는 하군요. 저도 나이는 좀 어린 편이죠. 실제로 대학생이기도 하고요.”
“어머, 그러세요? 그럼, 아버지님의 사업을 물려받으신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님이 하시던 일을 보면서 많이 배웠죠. 그래서 비슷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는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삽을 들고 땅을 파는 모습을 자주 봐왔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나도 아버지처럼 삽질로 돈을 벌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시구나, 역시 어딘지 럭셔리한 느낌이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보통 재벌가나 그런 쪽은 냄새가 다르거든요.”
“냄새요?”
뭐야? 샤워도 하고 잘 씻었는데 냄새가 나나? 향수라도 뿌려야 하는 거야?
“예, 전 후각이 좀 발달한 편이라 돈 냄새를 잘 맡거든요.”
윤아영은 자신의 코를 가리키며 귀엽게 말했다. 초면에 농담 따먹기라니? 하지만 붙임성이 좋은 여자인 것 같았다.
거기에 연예 기획사의 전무라는데, 얼굴이나 몸매는 연예인 뺨치는 미인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는 전무님이 아니라 소속 연예인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 그래요? 하긴 저도 왕년에는 연예인 지망생이었거든요.”
“그렇군요. 가수? 아니면 배우 쪽인가요?”
스타일이 뭐랄까? 얼굴도 미인이고, 동시에 화려하면서도 유쾌한 느낌이 있어서 아이돌 가수를 했어도 인기가 있었을 것 같고, 배우를 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리고 연예 기획사 전무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고 말이다.
“배우도 해보고, 아이돌 연습생도 했었는데, 연기 쪽은 연기가 잘 안 됐었고, 아이돌을 하기에는 춤과 노래가 부족했어요.”
“저런..아쉽네요. 외모는 연예인급이신데 말입니다.”
“후후, 그런 이야기는 자주 들어요. 그래도 어쨌든 연예계에 종사하는 직업을 갖게 되기는 했으니까요. 이 정도면 만족이죠.”
일단, 식사를 주문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저에 대해서 이미 알고 계신 거였나요? 최진수라고 하니까 바로 저인줄 아는 것 같던데.”
“김준수 사장님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회사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는데, 굉장한 재벌 3세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재벌 3세가 바로 나였군요?”
“그런 셈이죠. 최진수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지만, 저한테 전화를 걸었을 때, 딱 느낌이 오더라고요. 제가 감이 좋은 편이거든요.”
귀엽기도 하고 섹시하기도 하고, 또 뭔가 똑똑해 보이기도 하는 여자였다. 이런 직원을 밑에 두고 사장이 되면 일이 즐거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준수 사장이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매각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5백억이면 인수 가능하다고 하던데, 적당한 가격인가요?”
“5백억요?”
“예, 사실, 잘난 척 하려는 건 아니지만, 5백억은 저한테는 그렇게 큰 돈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물건이든 회사든, 비싸게 사는 건 제 취미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음, 그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냐고 물으신다면, 그 정도 가치는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그래요? 유명한 연예인들은 민소희 정도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지 않나요?”
“그렇기는 하지만 준비 중인 아이돌 연습생들도 꽤 있고. 배우들은 스타급은 아니어도 신인 연기자 유망주들이 꽤 있어요. 전속 계약을 한 작곡가들이 있어서 앞으로 음반 제작을 하기에도 괜찮은 상황이죠. 거기에 엔터테인먼트 회사지만 출판업과 인쇄업도 하고 있거든요.”
“출판업요?”
“예, 추리소설 전문 출판사도 가지고 있고 특수 용지사업이라고 해서, 복권 용지를 납품하는 인쇄 사업도 하고 있어요.”
“추리소설과 복권 용지까지?”
“원래는 출판 인쇄업에서 시작한 회사라서 그래요. 김준수 사장님 아버님이 출판 인쇄업을 하시다가, 그걸 김준수 사장이 물려받아서 연예 기획사 쪽의 사업을 키운 거죠.”
회사 사정을 잘 아는 윤아영 말로는 원래 출판 인쇄업을 하던 선대의 사업을 김준수 사장이 억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고 했다.
“회사를 경영하지 않으면 재산을 주지 않겠다고 해서 시작한 사업이라 그다지 애정은 없는 편이에요. 그러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이제 사업을 정리하고 호주로 떠나겠다는 것 같아요.”
“음, 그러면 5백억에 인수하면 괜찮은 가격인가요?”
“이건 비밀이지만, 김준수 사장은 4백억 정도라도 팔고 싶어하거든요.”
“4백억요?”
윤아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사업에는 미련이 없어서 빨리 정리하고 싶어하니까요. 4백억이 마지노선이라고 들었어요. 5백억을 받으면 좋겠지만, 4백억 정도라도 상관은 없다는 거죠.”
“그래요?”
“예, 김준수 사장은 이미 회사에 미련이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