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사장 (60/200)

어쩌다 사장

“그런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는 이유가 뭔가요?”

윤아영은 나를 보면서 어딘지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차피 김준수 사장은 떠날 사람이고, 만약에 최 사장님이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신다면 저로서도 좋은 일이죠. 어차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들인 이상 다른 직업을 찾기도 어렵고요.”

“윤아영 씨는 회사에 남을 생각이군요?”

“예, 기회를 주신다면요.”

***

가로수길, 드림 엔터테인먼트 본사.

“건물이 멋진데요.”

“예, 임대료가 비싸기는 하지만 좋은 위치죠.”

드림 엔터터인먼트 본사는 가로수길 안쪽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강남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인 가로수길이지만, 대로와 접한 곳과 안쪽으로 들어간 지역의 건물 시세나 임대료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드림 엔터테인먼트는 그럭저럭 임대료를 지불하며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머, 진수 오빠가 여긴 웬일이세요?”

사장실로 가기 위해 복도를 지나는데, 귀여운 소녀들이 인사를 해왔다.

“아, 이게 누구야? 윙크윙크죠?”

지난번에 필리핀의 무이무이섬에 같이 갔었던 신인 걸그룹 윙크윙크였다.

“예, 필리핀에서는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하하, 신세는 뭐, 데뷔 앨범은 나온 건가요?”

“예, 앨범은 아니고, 디지털 싱글만 발매를 했는데, 진수 오빠도 못 들어보셨죠?”

그리 잘 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그래도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에 있으면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한국 음악도 많이 들었었는데, 윙크윙크의 신곡은 말 그대로 금시초문이었다.

“아, 내가 외국에 있다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돼서,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는 잘 몰라요. 아무튼, 나중에 또 봐요. 난, 김준수 사장님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예, 나중에 다시 봬요. 오빠..”

김준수 사장은 나와 윙크윙크를 번갈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윙크윙크와는 이미 구면이시죠?”

“예, 전에 제 요트에서 화보 촬영을 했었죠. 데뷔 싱글이 그렇게 성공하지는 못한 모양이네요?”

“그래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들 귀엽고 발랄한 친구들입니다. 잠재력이 있다는 거죠.”

뭐야? 아직 성공한 것도 아니고 데뷔 싱글 하나 내준 모양이던데, 그렇게 잠재력이 있으면 투자를 해서 스타를 만들어 주던가 말이야.

“자, 이쪽으로 오시죠. 여기가 사장실입니다.”

건물 자체가 그다지 큰 건물은 아니어서 그런지, 사장실도 내가 쓰는 아이케이 빌딩의 15층 사무실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곳이었다.

뭔가? 연예 기획사치고는 좀 규모가 작아서 아쉬운 느낌이었지만, 대충 인수해서 내가 투자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어차피, 가진 자산은 충분해서 뭐라도 해볼 생각이었고, 연예 기획사 사장이 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소희에게 들었는데, 엄청난 재력가라고 하시더군요. 전에 대성그룹 장태식 회장님과 친분이 있는 것도 제 눈으로 보기도 했고요. 정확하게 뭐 하시는 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하하, 신비주의는 아니지만, 제가 하는 사업에 대해서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는 취미는 없습니다. 뭐, 그저 해외에서 고수익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해두죠.”

“음, 역시 해외 쪽에서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이었군요.”

그래, 필리핀에서 노가다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노가다 재벌이라고 할 수 있지.

“어쩐지, 저도 최진수 사장님이 엄청난 재력가라는 말에 주변 지인들에게도 알아보고 여러 경로로 뭐 하시는 분인지 조사를 좀 했었는데 별로 정보가 없더군요.”

뭐야? 내 뒷조사를? 하긴, 편의점 알바를 한 정도니까, 나에 대해서 정보랄 건 없겠지.

“뭐, 그런 이야기가 있죠. 작은 부자는 재산을 자랑하지만, 큰 부자는 재산을 감춘다고 말입니다.”

“하하, 그렇죠. 세금 문제도 있고, 제 주위에도 강남에서 상당한 재력가들도 있는데 대부분 돈 자랑 같은 건 하지 않으니까요. 너무 부자인 티를 내면 사기꾼들도 몰려들고, 이래저래 피곤한 문제도 생기고요.”

“김준수 사장님도 이 정도 사업을 하시면 강남의 금수저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제가요? 저는 보통 사람들 기준으로는 유복하게 자랐지만, 최진수 사장님 같은 진짜 금수저는 못 돼죠. 그저 평범한 강남 주민 정도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사업을 계속하실 생각이 없으신 건가요?”

“예, 제 취향에 맞지도 않고요. 그리고 저보다는 최 사장님처럼 재력이 있는 분이 좀 더 과감한 투자를 하는 쪽이 우리 회사 연예인들에게도 기회가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부탁인데,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맡아 주시죠.”

“뭐, 적당한 가격이라면 저도 흥미는 있습니다.”

김준수 사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인수가격은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민영민을 통해서 들었는데, 김준수 사장님이 원하시는 가격이 5백억 정도라고 하더군요.”

“예, 사실, 저희 드림 엔터테인먼트가 연예 기획만 하는 곳은 아닙니다. 원래는 추리소설을 출판하는 출판사와 복권용지를 공급하는 특수 인쇄 사업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쪽에서도 상당한 수익이 나오죠. 그래서 5백억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하하, 김준수 사장님도 제 뒷조사를 해보셨다고 하는데, 저도 드림 엔터테인먼트에 대해서 대충은 알아봤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출판사와 인쇄사업은 제법 수익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주력 사업인 연예 기획 쪽에서는 투자는 많이 하셨지만 아직 성과는 별로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 인수가격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윤아영 말로는 김준수가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4백억이라고 했다. 5백억은 협상용으로 제시한 가격이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4백억이든 5백억이든 나에게는 크게 상관은 없는 금액이기는 했다.

야마시타 골드를 매각해서, 돈세탁까지 마친, 3조 이상의 현금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돈이 남아돌아도 일부러 백억을 손해 볼 필요는 없었다.

“제가 계산해 본 결과로는 4백억 이상은 어렵습니다. 현재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자산이나 여러 가지 수익구조, 전속 계약 같은 걸 검토해 봤을 때 말이죠.”

“음, 4백억요? 너무 금액이 낮은데요.”

“제가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저도 나름 돈을 쓰는 철학이 있습니다. 제가 계산해서 나온 금액 이상은 지불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제가 꼭 이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할 이유도 없고요. 가격이 적당하면 사겠지만, 꼭 살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4백억이라? 며칠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그리고 이틀 후 김준수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국,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

문화 대학교 강의실

“최진수 선배 오랜만이네.”

“외국에 갔다 왔다는 것 같아.”

“외국이면 어디?”

“미국이나 그런 곳 아닐까? 사업 때문에 뉴욕에 갔다 왔다는 말도 있고.”

“뉴욕?”

“그래, 거기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잖아, 뭐, 투자를 하는 큰 손이라는 것 같던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사업차 월스트리트나 그런 곳에 다녀온 거 아닐까?”

“그래?”

“그리고 귀국해서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거라는 것 같아.”

“사업? 무슨 사업?”

“연예 기획사를 인수 할 거라던데.”

“연예 기획사?”

“그래, 요즘 잘 나가는 대형 기획사는 시총이 조 단위라는 거야.”

“하긴, 한류다 K팝이다. 한국 문화의 전성시대기는 하지.”

“정말? 진수 오빠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인수하는 거예요?”

강의실 뒤편에서 들려오던 두 녀석의 목소리에 상큼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어, 은정이구나. 그렇다나 봐.”

“그걸 오빠들이 어떻게 알아요?”

“민영민이라고 알지? 걔가 최진수 선배 직속 후배잖아.”

“직속 후배요? 무슨 고등학교 동문 그런 거요?”

“그렇다는 것 같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쭉 알던 사이라는 것 같기도 하던데. 아무튼, 민영민이 최진수 선배 신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거든, 민영민 말이 민소희가 있는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최진수 선배가 인수 했다는 거야.”

“정말요? 와, 그럼 이제 진수 선배에게 잘 보여야겠다.”

“은정이 네가 진수 선배에게 왜 잘 보여? 돈 많은 재벌 3세라서?”

“아뇨, 가수 하려고요. 제 꿈이 가수잖아요.”

뭐? 가수? 이것들이 강의실 뒤에서 다 들리게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그나저나 은정이라? 그런 여자 후배도 있었나? 목소리는 꽤 귀여운데,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한 번 보고 괜찮으면 내가 좀 키워줄까?

상상이 되었다.

연예 기획사 사장이 되어서, 여자 가수들과 아이돌 그룹들을 거느리고 마치, 하렘의 왕처럼...

음, 이건 아닌가? 하지만 많은 연예인들을 거느린 사장이 되는 것이다.

아직은 유명 연예인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자본주의 시대,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는 시대잖아?

지금 잘 나가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알고 보면 사업 초기에 페이팔을 만든 걸 제외하면 그저 투자금을 모아서 남의 회사와 기술을 사들인 것뿐이다.

물론, 투자가치를 알아보고, 사람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며 투자금을 모으는 능력은 알아줘야겠지만 말이다.

대다수의 미국의 성공한 IT 기업들도 대부분 초기에 성공 후에는 자신들이 뭔가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기보다는 남의 기술을 사들여서 그걸로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테슬라의 전기차도 기존의 전기차 기술을 사들이고, 공장이나 생산 설비까지 빌려서 초기 전기차를 생산했고 말이다. 그 후에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라는 명성으로 엄청난 투자자금을 모아서 지금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연예 엔터테인먼트에 돈을 투자해서 신인들을 스타들로 키워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최소 3조의 자금이 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필리핀에서 야마시타 골드를 추가로 발굴할 수도 있고, 아마존 문서의 비밀은 대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걸까?

오랜만에 출석한 강의실, 혼자 구석 자리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돌고 있었다.

예전에는 친한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강의실 구석에 앉아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진짜 부자가 되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재벌급의 자산가라는 오해 아닌 오해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타고난 금수저인 것을 숨기고 있던 재벌가의 후계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재벌 가문 출신은 아니지만, 나름 나도 명문가 출신이기는 하다.

우리 조상님들 중에는 임진왜란에서 왜구를 물리치신 유명한 의병장도 계시고, 독립운동을 하신 친구분들과 친하게 지내셨다는 우리 증조부도 계시고 말이다.

아버지에게 듣기로는, 증조부께서 독립운동가들에게 막걸리를 사 주시며, 열심히 해, 이런 말도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독립 국가가 된 데에는 그런 막걸리의 힘도 있었다는 것이 우리 집안 사람들의 생각적인 생각이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학교에 왔더니 좀 적응이 안 되기는 하네. 원래 이 시간이면, 필리핀에서 자스민에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꾸벅꾸벅 졸 시간인데 말이야.

시차 적응이 안 된 건지 솔솔 졸음도 쏟아지고 있었다. 책상에 엎드려서 한숨 자고 시작할까?

“저기, 최진수 선배님이시죠?”

“어? 맞는데 누구세요?”

“경영학과 20학번 한은정이라고 합니다.”

막 책상에 엎드리려는 찰나에 뒤에서 들렸던 상큼한 목소리가 내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아, 그래요?”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뭔가 상큼한 느낌의 여학생이었다. 목소리는 꽤 귀여운 것 같았는데, 달달한 목소리와는 달리 외모는 뭔가 지적이고 세련된 느낌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상큼한 복숭아?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등에는 기타 케이스를 메고 있었다.

“기타 잘 치나 봐요?”

“아, 이거요, 잘 치지는 못하고요. 연습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노래할 때, 반주 정도는 하려고요.”

“노래요?”

“예, 최진수 선배님, 아니, 최진수 사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가수 지망생 한은정입니다.”

그거라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가수 지망생이라?”

“예, 선배님이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인사드리고 부탁드리려고요. 저 정말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가수가 되고 싶다고? 스타가 되고 싶다는 말이야? 음, 어디 보자, 일단 외모는 합격인데, 개인적인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로는 얼굴을 걸그룹 뺨치는 상큼한 느낌이 아주 좋았다. 합격..

하지만 가수라면 노래를 잘해야지, 얼굴 보고 뽑는 건 아니잖아? 그나저나 당돌하네, 내가 연예 기획사를 인수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나를 찾아오다니? 하지만 연예인을 하려면 그 정도 열정은 있어야지. 그나저나 연예 기획사 사장도 은근 재밌잖아? 이런 귀여운 애들이 가수하고 싶어요? 사장님.. 이러면서 막 찾아오고 말이야. 4백억을 쓰기는 했지만 역시, 괜찮은 투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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