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를 투자하는 법
“한은정이라, 적극성이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내가 기획사 사장이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 아무나 가수를 만들어 줄 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배님.”
“일단, 오디션 기회를 줄 테니까. 오디션부터 보기로 해요.”
“오디션요? 오디션은 언제 하는 건가요?”
음, 오디션을 언제 하냐고? 물론, 오디션 일정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한 것뿐이니까, 하지만 어차피 내가 사장인데, 내가 오디션을 하고 싶다고 하면 하는 거지 뭐.
“뭐, 일단 나중에 내가 연락하죠. 전화번호가?”
한은정의 번호를 저장하고 나중에 연락을 주기로 했다. 오디션 일정이 잡히면 말이다.
한은정이 돌아가고 나자,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오랜만에 수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가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어, 영민이구나.”
“선배님,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셨다면서요?”
벌써, 학교에 다 소문까지 내놓고, 새삼스럽게.
“내가 이야기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어?”
“소희가 그러던데요. 이번에 사장님이 바뀌었다고 말이에요.”
“그렇게 됐어. 뭐, 요새 한류가 유행이라니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더라고.”
“와, 역시 선배님은 대단하시네요. 연예기획사 하나쯤 인수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이죠?”
“연예기획사라고 별것도 없던데, 그냥 사무실도 작고 규모도 작아 보이고.”
“드림 엔터테인먼트가 그리 큰 곳은 아니죠. 그래서 소희도 기획사를 옮길까 그런 생각도 했거든요.”
뭐야? 드림 엔터테인먼트서 가장 유명한 게 민소희인데 기획사를 옮긴다고? 그건 안 되는데..
“소희가? 정말 기획사를 옮기려고 해?”
“당장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요. 전에는 아무래도 회사가 작으니까, 솔로 앨범 제작하는 것도 진척이 없고, 거기다 김준수 사장이 이미 사업에 흥미가 떨어진 걸 소희도 아니까, 약간 실망한 것도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선배님이 회사를 인수했으니까, 본격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질 거 아닙니까?”
“흠, 뭐, 그건 그렇지.”
투자를 못 할 것도 없었다. 기왕 쇼비즈니스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화려하게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거기다, 지금은 한국 문화의 전성기가 아닌가? 사람들에 따라 생각은 다르겠지만, 한국 음악이 이렇게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적은 처음이니까 말이다.
과거에도 한류라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주로 중국이나 대만에서 인기를 얻은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남미까지 케이팝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나도 거기에 편승해서 케이팝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성공하면 더 좋고 말이다. 사실 돈보다는 방송국을 구경하고 연예계를 좀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TV로만 보던 그런 연예계를 내가 기획사 사장이 돼서 직접 경험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도 뭔가 연예계의 종사자가 된 건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기획사 사장이니까? 뭔가 자동차도 좀 더 기획사 사장 느낌의 고급차도 필요할 것 같고 말이다.
“소희 솔로 앨범은 이제 본격적으로 제작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줘.”
“정말요?”
“그럼, 내가 기획사를 괜히 인수했겠어? 이제 본격적으로 투자를 해서 우리나라 최대의 기획사로 만들어야지.”
뭐, 진지하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단 사업을 시작하는 나의 포부가 그렇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민영민은 뭔가 뇌 구조가 이상한 건지, 얼마 후 학교에는 내가 5조 이상을 투자해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만들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최진수 선배가 5조를 투자해?”
“그런다는 것 같아. 민영민이 그러던데.”
“5조를 투자해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만들어서 케이팝을 세계로 전파하겠다는 거지? 최진수 선배가 그런데 5조를 투자한다는 건 어떻게 나온 말이야? 진짜 최진수 선배가 그런 말을 한 거야?”
“민영민이 말하기로는 한국 최고 수준의 연예기획사의 시총 수준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는 거야, 그게 우리나라 최고라면 박용수 씨가 소유한 JYS 잖아? 거기가 요새 케이팝으로 대박이 나서 시총이 5조가 넘는다더라고.”
“오, 그래서 JYS 시총이 5조니까, 그 정도 수준으로 투자를 한다는 말이군. 그런데 아무리 최진수 선배가 재벌 3세라고 해도 5조라는 돈이 있을까?”
“있으니까, 투자를 한다는 거겠지. 최진수 선배에 관한 소문들이 처음 들으면 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중에 보면 다 사실인 경우가 많더라고.”
“하긴, 그렇기는 하네, 나도 예전에 최진수 선배가 편의점 알바하는 걸 보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점점 그 재벌의 실체가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잖아. 그리고 아버지가 대재벌이라면 그 정도 재산이 있을 수도 있겠지.”
바보들 아니야? 우리 아버지가 대재벌이라고? 아니지, 아들인 내가 재산이 벌써 3조가 넘고 있는데, 아들이 재벌이면 아버지도 재벌 아닌가?
보통 한국에서 부라는 것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가부장적인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위라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것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군대에서 소대장님에게 들은 말 같다. 아무튼 소대장님 말로는 이렇게 부를 장자에게 물려주는 세습 문화는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북쪽에서 3대가 세습하는 집안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부와 권력을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도 세습하는 사회는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기도 하고 말이다.
나의 부와 권력은 나의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아버지의 권위와 재산을 물려받음으로써 부자가 되고 권위를 누리며 사회적인 지위와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회에는 합리성이나 정의라는 개념도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합리성보다는 권력을 가진 아버지 혹은 권력자와의 인맥이 더 중요하고 정의보다는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인맥과 현실 권력에 영합해서 부과 권력이 유지되는 사회니 말이다.
그에 비해서 나는 아버지와는 무관하게 나의 힘으로 땅을 파서 부를 이룬 이 시대의 이단아라고 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복종할 아버지가 없다. 물론,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버지에게서 재산과 권위를 물려받기 위해서 맹목적으로 아버지에게 복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완벽하게 자유인이었다.
***
강남 에스제이 인터네셔널
“최진수 사장님 더 멋져지신 것 같아요.”
“아, 양복, 아니 수트를 입었더니 어색하지 않나요?”
평소에는 공대생도 아닌데 청바지에 체크 남방을 즐겨 입고 다니는 나였지만, 이번에 연예기획사를 인수하기도 했고, 옷차림도 좀 변화를 주어 보았다.
예전에 마철우 회장의 초대를 받아서 한성금융그룹에 갔을 때, 정장을 입고 가니까, 아무래도 좀 그럴듯해 보이던 것도 있고 말이다.
몸에 딱 맞는 핏이 좋은 수트에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를 타고 내리면, 아직 20대의 대학생인, 나를 다들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봐주는 느낌적인 느낌도 들고 말이다.
하지만 마이바흐가 중후하고 좋은 차기는 해도 뭔가 내 나이에는 살짝 안 어울리는 느낌도 있었다. 람보르기니는 너무 튀고, 포르쉐도 있었지만 이제 질렸어...
“역시 남자는 수트를 입어야 해요. 옷이 날개라고 인상이 확 달라 보여요.”
전에는 내가 어떤 인상이었다는 거야?
“그런가요? 아무튼, 최선화 씨를 다시 만나서 반갑네요.”
“그런데 차를 또 사시려고요?”
자동차 매장에 차를 사러 온 거지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어? 물론, 섹시한 최선화의 타이트한 미니스커트를 입은 몸매가 멋지기는 하지만 뭐, 그 정도야 이제 나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다고..
“사장님, 제 허벅지에 뭐가 묻었나요?”
“예?”
“후후, 치마가 좀 짧기는 하죠?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각선미가 드러나려면 좀 치마가 짧아야 하는 거니까요.”
“아, 예...”
뭐지? 내가 너무 노골적이었나?
“후후, 그나저나 차가 벌써 3대 아니신가요?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주차 공간이 확보가 되셨나 궁금해서요. 사시는 곳이 어디세요? 아파트? 아니면 단독주택?”
“아파트죠. 성수동에 살아요. 트리피오라고 아시죠?”
“아, 거기요? 알죠. 요즘 핫한 곳이잖아요. 강남에서 거기로 많이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3대에서 한 대 더 차를 구입하시면 4대인데 주차가 가능한가요?”
“주차장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트리피오에는 한 대만 주차해 놓거든요.”
“그럼 나머지 차들은요?”
요새는 아이케이 빌딩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그쪽 지하 주차장이 넓으니까.
“강남에 빌딩 하나가 있거든요. 신사역 근처에 15층짜리 오피스 빌딩이죠. 지하에 주차장도 있고요. 지하 5층까지 있으니까요. 건물주 전용 주차 공간이 따로 있어서, 한 열 대 이상은 주차가 가능해요.”
“와, 정말요? 굉장하시다, 강남에 15층짜리 빌딩이라? 거기에 지하에 전용 주차 공간도 넓게 확보하고 계시고.”
“하하, 전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안 돼서, 주차장이 좁으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널찍널찍하게 쓰고 있습니다.”
사실, 초보 운전이라 운전할 때마다 긴장이 되기는 한다. 가끔 브레이크랑 액셀도 헷갈리고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도로에서 약간 어리바리대도 뒤에서 빵빵거리는 녀석들은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도로를 초보 특유의 어리숙함으로 휘젓고 다녀도 다들 나를 슬슬 피해간다.
왜냐? 내가 운전도 못 하면서 타고 다니는 차들이 람보르기니, 포르쉐, 마이바흐 이런 고급 차들이기 때문이다.
차가 워낙 고급이라 자칫 접촉 사고를 내면 패가망신할 걸 알기에 다들 알아서 나를 피해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자본주의 시대의 도로의 초보 무법자인 것이다. 약간 민폐이기는 하지만 내가 만약에 경차를 끌고 그딴 식으로 운전을 했다면 여기저기서 엄청 욕 먹고 갈굼당하면서 기가 팍팍 죽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도로에서 초보 운전 티를 팍팍 내도 나에게 뭐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아마, 초보 운전자를 깔보는 것도 자신들과 급이 같거나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값비싼 고급차들을 타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찍소리 못 하는 게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민낯인 셈이다.
“운전은 잘 못 하세요?”
“예, 면허 딴지도 얼마 안 되고, 잘 못 해요. 저희 아버지도 운전은 좀 서투르시고.”
아버지도 예전에 사고를 몇 번 내신 적도 있으셨다. 운전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약간 유전이기도 한 것 같았다.
“하긴, 그렇겠네요. 원래 재벌 정도 되면, 운전기사가 다 있잖아요. 뭐든 그렇지만 운전도 자주 해봐야 느는 건데, 기사가 운전하는 차만 타시다가 직접 운전하시려면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시기는 하겠죠.”
“그렇죠, 그동안은 기사님들 덕을 봤었죠.”
주로 나는 버스 기사님들 덕을 많이 보기는 했다.
“하지만 최 사장님은 아직 젊으시니까, 직접 운전하시는 게 더 어울리실 것 같아요. 그리고 주차 공간은 충분하시다고 하니까, 제가 괜찮은 차 하나를 추천해드릴까요?”
“뭐, 좋은 물건이 있나요?”
예전에는 차는 한 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한 대도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돈 걱정은 없고, 거기에 대다수의 서민들과 달리, 아니 강남의 고급 아파트의 사는 사람들도 신경을 쓰는 주차 문제도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최선화에게 말한대로 아이케이 빌딩에 따로 전용 주차 공간을 만들어 놓았으니까 말이다. 원래는 15층 입주자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내가 15층을 통째로 쓰고 있으니 그게 그거였다.
아무튼, 차를 주차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돈도 있고, 초보라서 운전이 엉망이기는 하지만 고급차를 타고 다니면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요즘은 고급차 시장에서도 SUV가 대세인 건 아시죠?”
“그렇죠, 다들 SUV를 선호한다고 하더라고요.”
“예, 그래서 원래 럭셔리카 브랜드들은 세단 위주로 차를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SUV를 출시해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죠.”
“그래서 추천하는 차가?”
“벤틀리에서 만든 럭셔리 SUV의 끝판왕 벤테이가입니다.”
최선화는 매장 한쪽에 있는 흰색의 커다란 SUV를 가리켰다. 한눈에 보기에도 덩치도 엄청나고 그러면서도 정말 어딘지 럭셔리한 느낌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SUV였다.
“와, 크기도 크고 차고도 높은데 그러면서도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이네요.”
“예, 원래 벤틀리 모델들은 여자분이 선호하는 로맨틱한 감성의 차인데, 벤테이가는 럭셔리하고 로맨틱한 감성에 남자분들도 좋아하실 사이즈와 박력까지 추가된 정말 최고의 럭셔리 SUV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가격이?”
“이, 모델은 12기통 기본가격이, 3억 5천 정도지만, 지금 이 차량을 인수하신다면, 고급 옵션이 추가되어서, 4억 3천 정도에 인수 가능하십니다. 그리고 이 차량이라면, 1주일 이내에 출고 가능하시고요.”
“4억 3천요? 얼마 안 하는군요.”
“하긴, 최 사장님에는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시겠죠.”
“좋아요, 계약하기로 합시다.”
마음에 들었다. 하얀 허벅지, 아니 흰색의 벤테이가 말이다. 4억 3천이면 최선화의 말대로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