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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 폭스 (62/200)

플라잉 폭스

한남동 프레스티지 힐, 김덕수 소장의 집

“그러니까, 7개의 좌표가 나왔다는 건가요?”

“그래. 아마존이라는 문서의 내용은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주도로 필리핀에 있던 황금들을 브라질로 옮기는 전시 비상 작전 계획이었어, 상선으로 위장해서 몰래 황금을 브라질의 해안지대로 옮기고 그곳에 황금을 감추어두려던 거야.”

김덕수 소장은 아마존 문서의 내용을 꼼꼼하게 번역한 서류를 보여주었다.

뭐 자세한 내용은 김덕수 소장이 간단하게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구글 맵으로 그 위치들을 찾아봤는데, 그 중 네 곳은 브라질의 섬이고 세 개는 해안 지역의 숲이야.”

김덕수 소장은 자세하게 찾아본 모양이었다. 혹시나 김덕수 소장도 브라질로 가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소장님 어떠신가요? 전에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지만, 지금은 자유로운 몸이니까, 같이 브라질에 가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하하, 나보고 야마시타 골드를 찾으러 가자고, 고마운 말이지만 이제 나는 늙었어. 그리고 나는 야마시타 골드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하고 있네. 내 평생을 바쳐 연구했던 일이 무가치한 일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았으니까. 그냥 나는 한국에서 자네를 응원하도록 하겠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김덕수 소장이 같이 황금을 찾으러 가겠다고 한다면, 약간은 내 일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로 번거로운 일들이 생길 것 같았다. 다행히, 김덕수 소장은 그 강박증약 때문인지, 전처럼 야마시타 골드에 광적으로 집착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강박증 약이라? 나도 그걸 먹게 되면 황금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는 것일까? 양가감정이라고 하나? 김덕수 소장이 아마존 문서의 보물을 찾으러 가지 않겠다고 하자, 한편으로는 그런 김덕수 소장이 부럽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집에서 가족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고, 거기에 내가 보내주는 돈도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아 보이고 말이다. 그에 비해서 나는 3조가 넘는 현금이 생기기는 했지만,

황금을 찾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고, 거기에 저 멀리 남미대륙의 브라질로 또다시 위험한 모험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냥, 강박증약 같은 것을 먹고, 욕망을 모두 제거해버리면, 나도 편안하게 지금 가진 돈으로 여생을 즐겁게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잠시, 그런 고민적인 고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3조라도 충분히 부자지만, 30조라면 더 좋고, 100조라면 더 좋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으니까.

그리고 혼자 쓴다면 3조라는 돈을 다 쓸 수도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업을 하면 3조로는 부족한 돈일 수도 있다. 당장, 민영민 덕분에 5조를 투자하게 되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튼, 다다익선, 돈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그렇다면 브라질에 있는 섬들과 해안지대에 보물이 있다는 것인데, 이걸 어떻게 발굴을 해야 하는 거지?

“김 소장님, 브라질에는 안 가시겠다는 거군요. 뭐, 결국 저 혼자 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런데 이 보물들을 혼자서 다 어떻게 찾아서 가져오죠?”

“그걸 나에게 물으면 어떡해? 필리핀에서는 황금을 어떻게 찾은 거야?”

“필리핀에서요? 그거야, 요트를 사서, 요트를 타고 섬들을 돌면서 보물을 찾았죠. 그리고 보물을 발굴하기 위해서 법인을 설립해서 무인도를 사들이고 위장용으로 리조트도 만들고 말이죠.”

“그러면 브라질에서도 그렇게 하면 되잖아?”

“브라질에서도요?”

그렇기는 하네, 필리핀에서 하던 것처럼 브라질로 가서, 좌표에 나오는 섬을 사들이고, 리조트든 뭐든 만들어서 창고도 만들고, 그리고 스바딜파리도 데리고 가서 같이 땅을 파고 야마시타 골드를 찾아서 옮기면 된다는 거지. 그 후에는 김영석에게 부탁해서 돈세탁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단 브라질에서 필리핀이나 홍콩까지는 금괴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김영석을 통해서 황금을 처분하는 루트는 아시아의 금 거래망을 이용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문제라면, 브라질까지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필리핀에서 잘 쓰고 있던 베네티 클래식 수프림 132는 브라질까지 가기에는 뭔가 버거워 보이는 느낌이다.

그래, 베네티 요트가 멋지고 호화롭기는 하지만, 그걸로 태평양을 건너 브라질까지 간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은데..그렇다고 브라질 현지에서 금을 처분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아무래도 익숙한 필리핀까지만이라도 야마시타 골드를 운반할 수단이 필요했다.

뭐가 좋을까?

상선이나 그런 것도 좋지만 베네티 요트처럼, 호화 요트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황금을 이동하는 용도로도 쓰고, 그리고 그런 요트라면 돈 많은 부자들이 타고 다니는 그런 초호화 요트로 가격도 엄청나겠지만 철저하게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장점이 있다. 비밀스러운 여행을 즐기기에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큰 배, 아니 초호화 요트가 한국에도 있었나?

***

광진구 동현빌딩 베네티 코리아 본사

“한국에는 없고 현재 싱가포르에 정박 중이죠”

“싱가포르요?”

“최 사장님은 정말 운이 좋으시군요. 마침 그런 초호화 럭셔리 요트가 싱가포르에 대기 중인 상황에 저를 찾아와 주셨으니까요.”

이성호 사장은 내가 말한 초호화 요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더니, 지금 싱가포르에 있는 호화 요트인 플라잉 폭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와, 엄청 큰 요트네요.”

“정확히는 요트라기보다는 크루즈로 분류되는 배죠. 선체의 길이가 99미터 이상이라면 메가 요트를 넘어 크루즈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성호 사장이 보여준 요트, 크루즈? 아무튼 호화 요트는 플라잉 폭스라는 이름의 136미터 길이의 어마무시한 녀석이었다.

“이름이 플라잉 폭스인가요?”

날아다니는 여우? 라는 의미인가?

“예, 유럽 쪽에서는 예전부터 빠른 배에는 플라잉이라는 단어를 붙였죠. 실제로도 지금 최 사장님의 베네티 요트와는 속도 면에서도 비교가 안 되죠. 최대 25노트까지 가능한 배니까요.”

거기에 덧붙여 이성호 사장은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요트나 배를 여성형으로 부른다고 했다.

“보통 이런 배들은 이름 외에 her 라는 대명사를 씁니다.”

“왜죠? 배라는 건 남자들이 주로 타는 남성적인 물건 아닌가요?”

“그러니까요, 역설적으로 배에는 여자들이 타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남자들의 세계였던 거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남성의 욕망의 대상인 여성으로 불리웠던 거죠.”

“음, 그렇군요. 사진으로 보는 거지만 어마어마해 보이는 배네요.”

“예, 크기와 속도도 그렇고. 각종 편의시설들도 어마무시한 배죠. 일단 36명을 태우고 크루즈 항해가 가능한 배고요. 보통은 11명의 승무원과 25명의 승객을 태우고 항해를 하는 배입니다.”

배의 크기를 보니 승무원이 그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았다. 선장이나 항해사 그리고 요리사와 기관장, 그리고 배가 크다 보니, 청소할 사람도 필요하고 기타 등등, 하긴 태평양을 항해해서 브라질까지 배니까, 그 정도 규모와 인원은 당연히 필요하고,

거기에 25명의 승객을 태울 공간이 더 있다는 거군. 이 정도 배라면 창고에 화물도 적재할 공간도 넉넉할 테고. 일단 브라질로 야마시타 골드를 찾으러 갈 탐사용 선박으로는 사이즈 면에서는 합격이었다.

이성호 사장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를 보이자,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보시다시피, 메인 데크를 포함해서 갑판이 4개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루프 데크에는 헬기 이착륙이 가능한 착륙장이 있고요. 메인 데크에는 12미터짜리 미니 풀이 있죠. 자쿠지가 아니라 진짜 수영이 가능한 12짜리 수영장이죠.”

“월풀이 아니라 진짜 수영장이네요?”

이성호 사장은 플라잉 폭스의 사진을 더 보여주었다. 내부 공간의 인테리어도 럭셔리한 호텔 느낌으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거기에 워낙 큰 배라, 배 측면 공간에는 12.5미터짜리 9인승 텐더 보트와 역시 9인승의 상륙용 11미터짜리 럭셔리 오픈형 텐더 보트, 그리고 8.5미터짜리 럭셔리 고무보트도 장착하고 있습니다.”

이성호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측면 공간이 윙탑처럼 열리면서 고속정 1대와 오픈형의 모터보트, 그리고 고무보트형의 배, 이렇게 3대의 보트가 안에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이런 배들은 해안을 항해하다가 해변에 상륙하는 용으로 쓰기 좋고요. 고속정은 급한 일이 있을 때, 근처의 항구나 다른 배로 이동하기에도 좋은 보트죠.”

대형 요트에 보관되는 작은 보트들이라고 해도 길이가 12미터 이상으로 어지간한 요트 수준의 배들이었다.

섬이나 해안에 상륙용으로는 좋겠군. 136미터나 되는 대형 선박이라 얕은 해안으로는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저런 상륙용 보트가 따로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헬기 착륙장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마치 영화 속의 재벌들처럼 헬기를 타고 호화 요트로 날아가서 파티를 즐기고, 또 헬기를 타고 회사로 돌아와서 업무를 보고 말이다.

뭔가 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런 멋진 초호화 요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배는 가격이 어느 정도인가요?”

“좀 비싸기는 합니다. 4백만 달러 정도는 생각하셔야 합니다.”

“예? 4백만 달러요?”

뭐야? 우리 돈으로 45억 정도?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이라고? 너무 싼 거 아냐?

“아니 그렇게 싼가요? 저런 초호화 럭셔리 요트 가격이 45억이라는 겁니까?”

“하하, 물론, 1주일 렌트 비용입니다. 주당 45억이죠. 싼 가격은 절대 아니죠.”

“주당, 일주일에 45억요?”

“예, 보시다시피, 저 플라잉 폭스는 소수의 선택된 고객들에게 렌탈 서비스를 하고 있는 배입니다.”

뭐야? 나는 배를 빌리려는 게 아니라, 사려는 건데, 브라질에서 오랫동안 작업을 하려면 배를 빌리는 걸로는 부족하고 구매를 해야 했다. 내 배가 필요한 것이다. 황금을 찾는 작업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황금을 옮기려면 배의 내부를 개조해서 금고도 만들어야 하고 말이다.

“저, 이성호 사장님, 저는 요트를 렌트하려는 게 아니고 구매를 원하는 겁니다.”

“구..구매요? 이런 초대형 요트를 말입니까? 하하, 아니, 무슨 아브라모비치도 아니고, 그게 가능한가요?”

“이브라히모비치요? 축구선수?”

“하하, 즐라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예전의 첼시 구단주였던, 러시아의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말하는 겁니다. 아브라모비치도 이클립스라는 초대형 요트를 보유하고 있죠.”

“그래요?”

“예, 사실, 이 플라잉 폭스는 이클립스와 베이스가 같은 요트입니다. 한 마디로 쌍둥이 자매쯤 되는 거죠.”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러시아의 석유 재벌로 취미 삼아 첼시라는 구단을 사들여서 게임하듯 축구단 운영을 했다는 전설적인 인물.”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지금은 몰라도 전성기에는 재산이 24조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클립스라는 초호화 요트의 가격도 7400억?

“이클립스 가격이 7400억 정도인가요?”

“하하, 뉴스에도 자주 나올 정도로 유명한 배죠. 플라잉 폭스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클립스와 쌍둥이 같은 배입니다. 다만 차이라면 이클립스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개인 요트로 명성을 누린 것에 비해서 플라잉 폭스는 렌탈용으로 그다지 주목은 받지 못한 정도죠.”

“그럼, 플라잉 폭스는 개인이 살 수는 없는 배인가요?”

“하하, 아까 직접 검색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이클립스급의 최고급 요트로 가격이 7000억이 넘는 배인데, 구매가 가능하시겠습니까?”

이성호는 딱히 나를 비웃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무리 돈 많은 재벌 3세라고 해도 나에게 그 정도 돈은 없지 않냐는 뉘앙스였다.

7천억이라? 그 플라잉 폭스, 헬기 착륙장에 배 안에 3대의 중형 보트까지 보관이 가능한 136미터짜리 초호화 요트, 월풀이 아닌 12미터짜리 진짜 미니 수영장까지 있는 4층 규모의 호화 요트의 끝판왕 같은 이 요트를 사기 위해서는 7천억을 지불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강남에 빌딩도 사고, 여의도에도 대형 오피스 빌딩을 구매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또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장태식 회장에게서 인수했던 여의도의 동화 빌딩이 2천 2백억이었는데, 한성그룹의 본사 건물로 쓰는 그런 대형 빌딩이 2천 2백억인데, 요트 한 대가, 물론, 럭셔리의 끝판왕이라고는 하지만 요트 한 대 가격이 7천억이라는 건가?

미친 가격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3조라는 현금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단순히 놀러다니려고 이런 배를 사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업무용으로 구매하는 거다.

물론, 그냥 비슷한 크기의 다른 상선을 구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뭔가 브라질의 해안과 섬들을 돌아다니면서 남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런 호화 요트가 더 유리한 점도 있었다.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면서 떠 있어도 그저, 어마무시한 아시아의 재벌이 유유자적 놀러다니는 줄 알 테니 말이다.

7천억이 거액이기는 하지만, 브라질에서 찾게 될 보물의 가치가 수십조가 될 수도 있다면? 7천억의 투자로 밑지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거기에, 이런 호화 요트라면? 상상이 되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12미터짜리 미니 수영장에 환상적인 몸매의 비키니를 입은 미녀들이 수영을 하고, 나는 헬기를 타고 배에 도착해서 럭셔리한 요트에서 환상적인 브라질의 해변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저, 최 사장님?”

“예?”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 뭐, 7천억 정도 한다는 거죠? 그 플라잉 폭스인지, 여우인지 하는 배 말입니다.”

“하하,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45억이면 렌트가 가능하니까요.”

“렌트는 필요 없고요. 그 배, 제가 사겠습니다.”

“예, 배를 사신다고요? 구매하시겠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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