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은 나니까.
문화대 주차장
“와, 이건 신형 벤테이가잖아요? 대박인데요.”
주차장에서 내리는데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강의실에서 들어도 민영민 주차장에서 들어도 민영민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선배님 새로 사신 겁니까?”
“어, 이제 연예 기획사 사장이 됐으니까, 좀 어울리는 차를 타고 다니려고.”
“벤테이가라면 연예인들이 좋아하는 차죠. 벤틀리 자체가 연예인들 취향이니까요.”
“그래?”
“그럼요? 화려하고 속보다는 겉이 드러나는 차죠.”
“겉만 번지르하다는 거야?”
“하하, 화려하고 멋있다는 의미입니다.”
하긴 이 차를 살 때, 최선화에게 들은 이야기도 비슷했다. 벤틀리는 화려한 감성의 차 어쩌고 하면서, 하지만 가격대를 생각하면 그렇게 고성능 차는 아니라고 말이다.
벤틀리는 슈퍼카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차라, 빨리 달리기보다는 우아하게 몰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벤틀리 모델 중에 남성적이고 파워풀해 보이는 벤테이가는 그런 화려함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차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말이다.
“일단 사진부터 찍어도 되겠습니까?”
“맘대로 해.”
“그럼, 외부부터 찍고, 내부를 찍은 후에는 드라이브도?”
“아니, 그건 좀 바빠서.”
딱히 바쁜 건 아니지만, 민영민과 벤틀리를 타고 드라이브라니?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최선화도 분명하게 벤틀리는 여자를 태우는 차라고 했었다. 벤테이가도 벤틀리에서 만든 차니까, 남자를 태울 수는 없는 일. 아무튼, 민영민과 드라이브는 안 될 일이다.
“무슨 일로 바쁘신데요?”
“일이야 많지, 민소희 솔로 앨범도 제작해야 하고.”
“아, 그거라면 저도 들었습니다. 소희가 그 소식을 듣고 사장님에게 너무 감사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전부터 솔로 앨범을 내고 싶다고 했거든요. 전에 솔베이지에 같을 때도 김준수 사장이 솔로 앨범 문제로 만나자고 해서 간 거였어요.”
“그래? 김준수 사장이 앨범을 낼 생각은 있었던 거였어?”
“아닐 걸요. 그 핑계로 소희를 불러낸 거죠. 원래는 둘이서 솔베이지에서 식사를 하자고 한 거였는데, 민소희가 김준수 사장이랑 단 둘이 만나는 건 불안하다고 해서 제가 같이 간 거였어요. 김준수 사장이 저를 보더니 되게 싫어하는 눈치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식사하는 내내 얼마나 불편했는지.”
뭐야? 민영민에게 그런 눈치가 다 있었다는 거야? 눈치라고는 전혀 없는 녀석인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김준수 라는 녀석도 형편없는 인간이었군, 음반 제작할 생각도 없으면서 여자 연예인들이 맘대로 불러내고 말이야.
기획사 사장이라는 녀석이 그렇게 공사 구분을 못하냐는 말이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 딱딱 구분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어머, 최 선배님, 이 차 벤테이가죠?”
뒤에서 어딘지 스위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은정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등에 기타 케이스를 메고 있었다.
“은정 씨군. 새로 산 차인데, 마음에 들어요?”
한은정은 나의 흰색의 럭셔리한 벤테이가를 보더니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정말 멋진데요. 흰색은 많이 보던 컬러인데, 흰색 차가 이렇게 럭셔리하게 보이는 건 처음이에요. 차가 정말 예뻐요.”
뭐, 예쁘다고? 멋진게 아니라? 하긴, 남자와 여자의 감성이 다른 거겠지. 어쨌든 긍정적인 의미라는 거 아니겠어.
그러고 보니, 한은정도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잖아? 플라잉 폭스에서 쭉쭉 빵빵한 크로아티아 출신의 미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인지, 어딘지 청순 발랄한 소녀 같은 한은정에게 묘하게 끌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한은정도 상큼한 느낌이라는 거지, 기본적으로는 키도 크고 늘씬한 체형이기는 했다.
약간, 아이돌 가수보다는 좀 진지한 발라드가 어울릴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기타도 등에 메고 있고, 전에 말한 오디션을 보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윤아영에게 신인 오디션을 준비하라고 하기는 했는데, 아직 일정은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선배님, 전에 말한 오디션은 아직인가요?”
“아, 오디션 말이지? 음, 그게...”
어쩌지, 하긴 오디션이라고 해봐야, 노래를 한 번 들어보고 전문가 내지는 기획사 고위층의 의견을 들어보는 형식적인 절차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재능이 있어 보이면 선발해서 가수로 키워주는 것 뿐이니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저 노래와 재능을 한 번 확인해보는 것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디션 때문에 만나고 싶었는데.”
“정말요? 오디션이 준비된 거예요?”
“그래. 마침, 지금 준비가 돼서 바로 가자고, 오디션장으로 말이야.”
“지금요?”
“그래, 나도 수업이 다 끝났는데, 은정 씨는 어때요? 시간 있으면 바로 가서 오디션을 진행하기로 하고.”
“그래도 될까요?”
“편하게 생각해요. 준비된 걸 보려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능을 보려는 거니까, 평소해 즐겨 부르는 노래나 자신 있는 노래를 하면 되죠 뭐.”
그래, 오디션이라고 말도 안 되게 까다롭게 평가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어차피, 가수를 선발하는 거니까, 들어보고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 부르면 그만 아닌가? 뭐든 그런 것 같다. 보고 좋으면 돼고, 재밌으면 재밌는 것이고, 들어서 듣기 좋으면 좋은 음악이고 말이다.
대체 개인이 듣고 보고, 즐기는 대중 문화의 영역에 그렇게 전문가가 많이 필요하고 이것저것 따지는 오디션이 필요한지 말이다.
노래를 듣고 즐기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나처럼 음악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도 말이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도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문화 컨텐츠면 되는 거지, 굳이 복잡하게 문화와 예술을 재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대중 문화에 대한 생각적인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 혼자 들어보고 신인가수를 선발하는 오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의 취향도 대중 문화에는 중요하니까 말이다.
“선배님 아까는 바쁘시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민소희 앨범도 제작하시고?”
“그러니까, 기획사 일로 바쁘다는 거지, 신인가수 오디션도 기획사에서 하는 공적인 업무잖아. 아무튼, 은정 씨, 오디션 보고 싶으면 나랑 같이 벤테이가를 타고 가고? 어때요?”
한은정은 잠시 생각해 보는 것 같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 꼭 가수가 되고 싶거든요. 사장님 어디라도 따라 가겠습니다.”
음, 그렇게 적극적이어야 좋지.
“그럼, 타요. 같이 갑시다.”
***
신사동, 영진 빌딩, 펜트하우스
“어머, 여기가 어디예요?”
“나의 아지트예요.”
“아지트요?”
한은정은 오디션을 보러 간다면서 7층짜리 빌딩의 펜트하우스로 올라가자 약간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걱정할 건 없어요. 조용하게 은정 씨의 노래를 들어보려는 거니까.”
“여기가 사장님 건물인 거죠?”
“그렇죠. 6층하고 7층은 나 혼자 쓰는 곳이라 조용해요. 그리고 7층은 루프탑이 있어서 정말 좋거든요.”
“그래요?”
“예, 이쪽으로 올라와 봐요.”
이 집은 지금은 나의 돈세탁과 싱가포르에서 초호화 메가 요트인 플라잉 폭스의 인수 작업을 도와주고 있는 김영석이 살던 곳이었다.
검찰 수사 문제로 아직 김영석은 국내로 입국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급하게 해외로 도망치느라, 내가 싸게 샀던 이 건물은 말 그대로 나의 아지트로 잘 사용하고 있었다. 요새는 여기저기 일이 많아서 자주는 못 왔지만,
개인적으로 뭔가 화려하면서도 동시에 한적하기도 한 이 동네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말이다. 특히, 지금 같이 저녁 무렵에 루프탑에 오르면, 슬슬 해가 지면서 붉게 물든 저녁의 강남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뭔가 감성이 폭발하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와, 여기는 완전히 옥상정원이네요?”
“그렇죠, 전 주인이 다 꾸며놓은 건데, 신경을 많이 썼던 모양이에요.”
“전 주인요?”
“예, 급하게 해외 나가는 바람에 내가 싸게 인수를 한 건데. 아무튼, 여기 루프탑은 뭔가 도시적이면도 감성적인 느낌이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에요. 은정 씨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좋기는 좋네요. 강남에 이런 옥상 분위기를 즐길 곳은 드물 것 같아요. 저녁이라 좀 푸근하고 한가로운 느낌도 있고요.”
“나도 그래요. 사실, 이 동네는 밤에는 굉장히 화려한데, 그 직전인 저녁 무렵에는 좀 조용해지거든요. 그래서 뭔가 감성적인 느낌이라, 여기서 은정 씨, 오디션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요.”
“오디션요? 여기서 오디션을 하라고요?”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오디션이 별거 인가요? 노래를 한 번 들어보면 되는 거죠.”
“사장님 혼자 오디션 심사를 보신다는 거잖아요?”
“어차피, 다른 전문가들이 있어도 사장은 나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네가 고집이 있는 편이라, 내가 좋으면 무조건 합격이지만, 내 귀에 별로면 합격 시키지 않는다고요.”
“정말요? 너무 독재하시는 거 아닌가요?”
“독재든 뭐든 내가 사장이니까요. 특히 노래 같은 건 내가 들어서 판단하지 못 할 건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대중 음악을 만드는 거고, 클래식처럼 전문 지식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맞아요. 저도 사실 클래식도 들어서 좋으면 그만 이라고 생각해요. 꼭 역사를 알고, 화성학을 이해해야 음악을 제대로 듣는 건 아니잖아요.”
“은정 씨도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네요. 아무튼, 여기서 은정 씨 음악을 들어보고 싶은데 어때요?”
한은정은 말없이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기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서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기타는 잘 모르지만, 코드를 한 번에 치는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줄을 튕기면서 뭔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듣기 좋은데요, 그렇게 치는 걸 뭐하고 해요?”
“이거요, 아르페지오라고 하는 거예요. 코드의 음을 하나씩 치는 거죠. 좀 잔잔한 반주용으로는 이게 좋아요.”
“기타를 잘 치나 봐요?”
“잘 치는 건 아니고, 어렸을 때,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는 했어요. 그리고 가수가 되려고 통기타도 좀 배웠고요.”
“오, 둘 다 잘 치는군요.”
“후후, 아무튼 노래를 한 번 해볼께요.”
한은정은 노을이 지는 저녁 풍경을 배경으로 달달한 팝송과 가요 하나씩을 연달아 들려 주었다. 둘 다 한은정의 달콤한 목소리와 그리고 적당히 튀지 않는 기타 반주가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뭐야? 생각보다 노래를 잘 하잖아? 일단 내 귀로 듣기에는 현재 활동하는 어떤 가수들보다 듣기 좋은 노래였다.
소위 말하는 끝판왕 급의 가창력을 들려주는 건 아니지만, 잔잔하게 기타 반주에 실려 전해오는 스위트한 목소리는 그냥 일반인인 내가 듣기에는 더 없이 편안하고 감미로운 천상의 멜로디였던 것이다.
“노래가 듣기 좋아요. 특히 목소리가 좋네요.”
“그런 이야는 자주 들어요.”
한은정은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김영석의 전화였다.
은정 씨 잠시만요. 급한 전화가 와서.
“김영석 사장님 일은 잘 된 겁니까?”
“예, 제라드 칸과 거의 협상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최진수 사장님이 승낙해 주시면 계약을 체결하려고 말입니다.”
“가격은요?”
“가격은 6천2백 억까지 다운이 되었는데 이 정도면 적당한 가격인 것 같습니다.”
“오, 그래요? 8백억이나 깍은 거군요. 상당한 성과네요.”
“하하,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계약을 체결할까요?”
“예, 우리가 인수하도록 하죠.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계약은 그렇게 진행하고 나중에 또 연락하죠.”
“알겠습니다.”
“누구 전화예요?”
“아, 싱가포르 쪽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그러고 보니, 이 펜트하우스는 원래 김영석이 살던 곳인데, 지금은 해외를 떠돌면 내 사업을 도와주고 있으니 그것도 특이한 인연이라면 인연인 셈이었다.
“사업을 크게 하시나봐요? 8백억이라고 하는 말도 나오던데? 8백억 원이라는 의미겠죠?”
“아, 뭐, 싱가포르에서 요트를 하나 인수하고 있어요. 상대측에서 원래는 7천억을 요구했는데, 우리 쪽 직원이 8백억을 깍은 거죠. 그래서 6천 2백억에 초대형 요트를 인수하게 된 거고요.”
아니, 한은정에게 그런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오디션을 보다가 뜬금없이 말이다. 어쩌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거지?
“와, 정말요? 선배님 진짜 재벌 3세셨군요.”
한은정은 6천 2백억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놀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더 귀여워 보였다.
아무튼, 오늘 오디션은 합격이었다. 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