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권력 (67/200)

돈과 권력

드림엔터테인먼트 사장실.

“인사해, 이쪽은 윤아영 전무, 이쪽은 한은정이라고 이번에 새로 들어오게 된 연습생이야.”

“윤아영 전무예요. 최진수 사장님의 학교 후배라면서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한은정이라고 합니다.”

“내 학교 후배라서 뽑은 게 아니라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진짜 잘하거든.”

윤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 한 번 불러 볼래요?”

한은정은 영진 빌딩 펜트하우스에서 불렀던 노래를 기타를 치며 다시 불렀다. 아마도 가장 자신 있는 곡인 모양이었다.

남자의 내가 듣기에는 달달하고 듣기좋은 감미로운 목소리인데, 나름 전문가인 윤아영이 듣기에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은정의 노래를 부르자, 윤아영은 무표정하게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윤 전무님이 듣기에는 어때요? 나는 좋은 것 같던데.”

“음, 음색이 탁월하네요. 보기드문 목소리기는 해요. 테크닉이 뛰어난 건 아지니만, 목소리 자체가 굉장히 아름답네요.”

테크닉이 뛰어난 건 아니라는 건가? 그래서 합격이야 불합격이야?

“그럼, 윤아영 전무 생각에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글쎄요. 최근에 여자 솔로 가수는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라,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걸그룹 전성시대잖아요. 아이돌 그룹이 아니고는 신인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운 편이죠.”

“하지만 민소희는 솔로 앨범을 낼 거잖아요?”

“그거야, 민소희도 아이돌 그룹으로 인지도를 쌓은 후에 솔로로 독립을 하는 거니까, 좀 다른 문제죠.”

“그래요?”

“그리고 민소희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이돌 시스템에서 성장한 케이스라, 노래 스타일도 최근의 아이돌 음악에 적합해요. 단지, 그룹에서 솔로가 되는 것 뿐이라는 거죠.”

“흠..”

“하지만, 여기 한은정 씨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노래 스타일도 아이돌 가수들의 댄스음악과도 차이가 있어요.”

“그럼,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까?”

“가수로서의 재능은 충분하지만, 아이돌이 절대적인 강세인 현재의 대한민국의 트렌드에서는 벗어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저희 드림엔터테인먼트에서 그동안 키운 가수들도 다들 아이돌 그룹이거든요, 제작에 참여하는 작곡가나 편곡자들도 다 그런 장르의 전문가들이고, 당장, 한은정 씨에게 맞는 노래를 작곡할 작곡가도 없어요. 물론, 최진수 사장님은 돈이 많으신 분이니까, 과감한 투자를 하신다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죠.”

윤아영의 말은 한은정이 노래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트렌드에 적합하지는 않으니 사장인 네가 다 책임지고 투자하고 싶으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런 정도인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윤아영 전무님은 한은정 씨의 성공에는 부정적인 전망이군요?”

“예, 하지마 노래를 못 한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요즘 트렌드는 아니라는 거죠.”

듣고 보니, 윤아영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요새 인기라는 가수들을 보면 천편일률적이라고 할만큼 아이돌 그룹 일색이고, 음악들도 거의 비슷한 음악에 비슷한 춤들,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정형화된 모습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음반 제작자 입장에서는 그런 가수들이 결국 시장에서 반응이 좋고, 돈이 되기 때문에 그런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것일 것이다. 결국 대중의 선택은 그런 아이돌 그룹을 선호한다는 방증인 것이다.

반면에 한은정처럼 기타를 들고 나와서 혼자 솔로로 인기를 끄는 가수는 거의 본적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한은정의 노래 스타일은 아이돌이 등장 하기 전에 유행하던 발라드 스타일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성공 가능성만 놓고 보면 한은정의 앨범을 제작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앨범 제작하는 비용은 얼마나 들어가나요?”

“앨범요? 요새는 음원으로 출시되니까, 음원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일단 곡의 작곡료, 그 다음은 편곡료, 녹음을 해야 하니까 스튜디오 비용, 믹싱도 전문가가 필요한 일이죠. 그리고 마스터링까지. 한 곡 기준으로 이런 비용들이 합산되야 하는 거죠.”

“그래서 대충 얼마인데요?”

“사실, 정해진 가격은 없어요. 일단 가장 기본이 되는 작곡 비용만 해도 신인 작곡가는 곡당 50만원 정도를 받는 사람도 있고, 유명 작곡가라면 3백에서 5백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죠.”

“그래요?”

“편곡도, 편곡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프로급이라면 곡당 100만원 정도는 생각하셔야 하고요. 거기에 스튜디오 대여 비용은 그다지 비싼 편은 아니지만, 미디 대신 세션을 사용한다면 세션 비용만 수백만 원이 추가될 수 있고요.”

“그게 다인가요?”

“거기에 믹싱 비용도 잘 하는 사람은 100만 원 정도에, 최근에 히트곡들은 해외의 유명 믹싱 전문가가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은 곡당 5천불, 우리돈으로 6백만 원 정도로 받는 경우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마스터링은 20만원 내외도 가능하고, 해외에서 비싸게 해봐야, 4백불 정도로 알고 있어요.”

뭐가 이렇게 복잡해? 아무튼, 크게 돈이 들어가는 건, 작곡과 녹음, 믹싱 정도 인 것 같으니까, 대충 음원 하나당 천만 원 정도면 가능할 것 같았다.

“한 곡에 천만 원 정도면 되는 건가요?”

“그렇죠. 그 정도면 일반적인 음원 제작비보다는 높은 수준이니까요.”

“그렇게 12곡 정도 만들어봐야, 1억2천이면 충분한 거 아닙니까?”

“거기에 홍보 비용이 필요하겠죠? 홍보 마케팅 쪽은 상한이 없어요. 쓰는 만큼 홍보 효과가 커지는 거니까요.”

“아무튼, 일단, 몇 억 정도는 손해가 나도 상관없으니까, 음원부터 만들어 보죠.”

“정말요? 선배님, 정말 음원을 제작해 주시는 거예요?”

나에게 몇억이나 몇십억 아니, 몇백억이라도 큰 의미는 없는 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호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즐거운 일이라면 돈을 쓰는 일은 아깝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단, 내가 원하는 일에, 어느 정도 합리성을 가지고 돈을 쓰고 싶었다.

“윤아영 전무가 민소희 앨범도 제작하고, 한은정 음반도 같이 만들도록 하세요. 비용은 아끼지 말고, 우리 회사에 적당한 작곡가가 없으면 외부의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하세요. 돈은 얼마가 들어도, 아니, 업계 최고 수준으로 해도 상관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어차피 결정은 사장님이 하시는 거니까요.”

그렇게 앨범 제작이 결정되자, 한은정은 약간 감격을 했는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니, 사장님.”

“뭘, 그런 걸 가지고 눈물까지 보이고 그래? 다 한은정 씨가 가능성이 보여서 투자를 하는 것 뿐이야.”

“정말, 최선을 다해 볼게요.”

“음악이라는 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너무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그러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그러면서 한은정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있으니, 진짜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적인 기분이었다.

사장이 되는 일도 은근 재미가 있는 것 같았다. 일종의 권력, 권좌에 오르는 일 말이다. 단순히 돈이 많은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만족감이라고나 할까?

한은정이라는 가수 지망생에게는 어쩌면 인생이 걸린 중대한 결정을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내가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물론, 이런 권력은 내가 가진 돈, 야마시타 골드로부터 나온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돈은 그 자체로는 권력은 아니지만, 자본을 통해 설립된 기업은 조직을 가지고 그 내부와 외부와의 관계에서 권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헌법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권력은 동시에 돈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헌법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한은정과 윤아영 전무가 사장실을 나가고 잠시 멍하니 의자에 앉아서 사장, 최진수라는 명패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소희예요. 들어가도 돼요?”

“민소희 씨? 들어와요.”

드림엔터테인먼트는 규모가 작은 곳이라, 보통 대기업 사장실에 있는 여비서 같은 것은 없었다. 여비서가 있었다면, 노크 같은 건 필요없을 텐데 말이다.

이참에 비서실을 하나 만들어 볼까?

상상이 되었다. 늘씬한 미녀 여비서가 빨간색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일반적인 대기업 비서실의 비서라면 빨간 미니스커트는 무리겠지만, 연예 기획사라는 특성상, 직원들의 옷차림은 연예인 못지않게 화려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무튼, 아이돌 가수 뺨치게 잘빠진 몸매의 여비서가 들어와..

“사장님, 민소희 씨가 면담신청을 하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민소희가? 매번 귀찮게 하는군. 혹시 민소희가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런 것 같습니다. 별일도 없으면서 매일 찾아오는데, 여자인 제가 보기에는 사장님의 재산을 노리고 뭔가 유혹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다는 거지? 하지만 오늘만 특별히 한 번 만나주기로 하지, 들어오라고 해.”

“사장님, 무슨 생각을 하세요?”

“어, 아니, 무슨 일이야? 소희 씨.”

“이번에 솔로 앨범 제작해주신다고 해서 감사인사 드리려고 왔죠.”

민소희는 빨간색은 아니지만, 무릎 위로 한참 올라오는 희색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다. 그에 비해 위쪽은 단정해 보이는 흰색의 블라우스라서 얼핏 보면 섹시한 여비서 같은 느낌이었다.

“솔로 앨범이야 이제는 때가 된 거지, 아이돌 그룹 생활은 오래 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 앨범이 잘 되면, 연기쪽도 해보려고 하는데, 사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연기?”

“예, 아무래도, 아이돌 가수는 생명이 짧잖아요. 인기를 끌기에 좋은 컨셉이기는 해도, 20대 초반이 전성기고 나이를 먹을수록 신선함이 떨어지니까요. 롱런하려면 이미지 변신도 필요하고 그러려면 연기를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연기라?”

민소희 말로는 소녀 같은 이미지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상큼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그걸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계속 연령이 더 여려지는 걸그룹이 나오고 있어서, 데뷔한지 몇 년 되지 않은 민소희 같은 경우에도 청순한 소녀 컨셉 같은 것은 더 이상 어렵고, 그렇다고 그동안 걸그룹으로 활동하던 이미지를 단번에 바꾸기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솔로 앨범은 기존 아이돌 컨셉에서 솔로 독립을 보여주는 걸로 하고, 이게 성공하면 그 다음은 연기를 통해서 좀 더 성숙한 여성 이미지로 이미지 변신을 하자는 거지?”

“예, 제가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데뷔를 일찍했고 활동을 많이 해서인지, 이제 소녀 이미지는 좀 아닌 것 같아요. 다들 저를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가 많게 보는 것도 있고요.”

민소희라면 이제 스물을 갓 넘긴 나이지만 10대 중반에 데뷔한 케이스라,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어린 소녀 컨셉을 내세운 후배 아이돌이 계속 늘어나서, 민소희 말대로 좀 더 성숙한 이미지로 변신할 필요성도 있고 말이다.

“그래, 듣고 보니까, 그것도 일리가 있어. 어차피, 여자들은 20살 전후로 소녀에서 여인이 된다고 봐야지, 아무튼, 그래도 일단은 솔로 앨범이 먼저고 그 후에 연기쪽도 생각해 보자고.”

“그러면 연기 수업은 언제부터 할까요?”

“연기수업?”

“예, 그동안 노래쪽만 해서, 연기는 배워본 적이 없거든요. 연기로 진출하려면 뭐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어요?”

역시, 생각없이 사는 나와는 달리, 연기자가 되기 위해 미리 연기수업까지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연기수업도 필요하다는 거지? 어디보자, 내가 적어놨다가 윤아영 전무에게 그것도 말해 놓을게. 그럼 된 거지?”

“예, 사장님, 정말 여러 가지로 감사드려요. 김준수 사장은 괜히 치근덕거리기만 하고 솔로앨범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최 사장님은 역시 화끈하신 것 같아요.”

“하하, 그래? 하긴, 내가 좀 과감하게 투자를 하는 편이지.”

“그럼, 오늘 저녁 식사 어때요?”

“저녁?”

뭐지? 이건 나를 유혹하는 건가?

“예, 앨범 컨셉에 대해서 좀 더 디테일하게 말씀드릴 것도 있고요.”

그러고 보니,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좋아, 그러면, 한 시간 후에 다시 만나자고, 저녁 같이하면서 앨범에 대해서 디테일한 이야기도 하고 말이야.”

“그럼, 이따가 봬요.”

후후, 권력자가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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