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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마리나 개발 사업 (68/200)

해운대 마리나 개발 사업

권력의 맛, 자본주의 맛, 그게 뭐든, 내가 얻은 새로운 일상은 즐겁고 달콤한 맛이었다. 민소희와의 저녁도 맛있었고 말이다.

아침 일찍 일어났을 때는 혼자였지만, 영진 빌딩의 펜트하우스의 침실에서 나는 뭔가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렇게 창을 활짝 열고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자, 뭔가 남자의 야망이 차오르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야마시타 골드로 얻은 돈으로 시작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이제 막 시작한 정도지만, 의외로 나의 적성에 맞는 느낌이었다.

여직원들과 주로 걸그룹 연습생들이 많은 풋풋한 드림엔터테인먼트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음반을 제작하는 일들이나 오디션을 보고 매력적인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그런 일들도 나에게는 즐거운 일들이었다.

역시, 나는 연예기획사 사장을 할 관상인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봐야, 드림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 된지 며칠이나 됐고? 한 일이라 봐야, 한은정의 오디션, 그것도 정식 오디션도 아니고, 그저 나를 찾아온 한은정의 노래를 들어보고 음원 제작을 결정한 정도였다. 그리고 원래부터 솔로 음반을 내고 싶어하던 민소희의 솔로 앨범 제작을 결정한 것이 다라고 할 수 있었다.

겨우 그 정도 일을 해놓고, 무슨 대단한 사업이라도 한 것처럼 적성에 맞느니 어떠니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약간은 가소로운 느낌도 들었다. 거울 속의 나에게 말이다.

아무튼, 적성에 맞든 말든, 자금만 충분하다면, 이런 쇼비즈니스도 그렇게 어려울 건 없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자본주의 시대에 일을 하는 것은 자본가가 아니다. 음원을 제작하는 과정만 해도, 곡은 작곡가가 쓰고, 편곡자가 따로 있고, 녹음은 당연히 가수와 세션 연주자들이 하는 거고 말이다. 요는 자본가는 돈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 내지는 노동자를 고용하면 그만이라는 거다.

하지만 아무리 각 분야의 재능이 있더라도 돈을 주는 사람이 없으면 이 사람들이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음반 제작이든 뭐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고, 자본가인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움직이기 때문에 자본가는 권력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결국, 내가 잠시 누리고 즐겼던 그런 권력이라는 것도 결국 돈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돈은 야마시타 골드라고 불리는 일본군의 약탈 황금에서 나온 것이니, 뭔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는 상황적인 상황이었다.

권력을 더 누리고, 자본주의 시대에 돈의 맛을 더 향유하려면,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황금 말이다. 더 많은 황금, 돈이 많다고 하루에 열끼를 먹을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더 강한 권력을 누릴 수는 있을 것이다.

가진 자본의 크기가 클수록 할 수 있는 일들도 많고, 그에서 파생되는 권력도 더 강해질 테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찾으러 갈지, 잠시 고민을 한 적도 있었던 브라질 해안 지대의 야마시타 골드도 반드시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진 3조의 돈으로도 나 혼자 소비하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돈이지만, 단순히 돈으로 소비재를 소비하는 걸 넘어서, 사업을 하고, 그에 따르는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한 마디로 다다익선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플라잉 폭스가 필요했다.

김영석은 계약을 잘한 거겠지? 일단,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최진수 사장님, 플라잉 폭스의 계약을 잘 마쳤습니다.”

“그래요?”

“예, 사장님이 잔금만 지불하시면 될 겁니다.”

“좋아요. 그러면, 배는 언제 오는 겁니까?”

“일단, 싱가포르에 있으니까, 한국까지 가려면 1주일 정도는 걸립 겁니다.”

“일주일요? 그러면 어디로 오는 거죠?”

“아무래도, 부산항으로 가야겠죠. 아니면 인천항이든요.”

“어디가 더 좋은 거죠?”

“부산항이 시설이 더 좋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이면 해운대 마리나로 오는 건가요?”

“여기서 확인해보니까, 해운대 마리나는 백미터 이상의 대형 요트는 계류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그러면 어디로요?”

“일반 화물선용 부두로 입항하는 수밖에 없죠. 마리나처럼 럭셔리한 느낌은 아니겠지만, 배가 정박하는 데는 차이가 없으니까요.”

뭐야? 부산에는 플라잉 폭스 같은 대형 요트가 정박할 시설도 없다는 건가? 너무하는데.

그렇다면 이참에 마리나도 좀 개발해보면 어떨까?

“좋아요, 일단은 싱가포르에 배를 대기시켜 놓으세요.”

“한국으로 가는 게 아닙니까?”

“플라잉 폭스를 위해서 계류 시설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 같군요.”

***

광진구, 베네티 코리아 본사.

“와, 결국, 플라잉 폭스를 인수하셨군요.”

베네티 코리아의 이성호 사장은 자신이 제라트 칸과 주선을 해주었지만, 내가 진짜 플라잉 폭스의 구매 계약을 했다는 말에,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예, 그러니 이제 배를 한국으로 가져와야 하는데, 한국에 그런 대형 요트를 정박할 계류장이 없다면서요?”

이성호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겁니다. 한국에서 그나마 요트 마리나 있는 곳이 부산이고, 잘아시겠지만 해운대 마리나 정도가 있죠. 원래 해운대 수영만에 처음 요트 마리나를 만들 때는 레저 스포츠로 요트를 즐긴다는 건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거든요.”

“그래요?”

이성호 베네티 코리아 사장 말로는 해운대 수영만에 요트 마리나가 생긴 건 1988년으로 올림픽 요트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시설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 당시 한국에서 요트라는 건, 올림픽 같은 경기용 세일 요트라서 계류 시설도 딱 그런 경기용 요트를 위한 시설이 건설된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 한국에서도 저희 베네티 코리아처럼 슈퍼 요트를 판매하는 회사들이 늘면서 해운대 마리나의 시설이 낙후되었다는 말이 자주 나오죠. 대형 요트의 계류 시설이 부족하거든요.”

현재 해운대 마리나는 해상에 273척, 육상에 190여척을 계류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형 요트 기준으로, 중대형급 요트는 계류 시설이 부족한 편이고, 더구나 플라잉 폭스 같은 초대형 요트는 마리나 계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수영만 마리나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권을 따낸 회사가 자금난으로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죠.”

“어디서 재개발을 하는 겁니까?”

“동진건설이 개발권을 따내서 2척억을 투자해서 693척 규모의 아시아 최대의 마리나 시설을 만든다는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고는 있는데, 동진건설이 요즘 자금 사정이 안 좋다고 하더군요.”

“2천억요?”

“예, 마리나와 주변에 컨벤션 센터와 12층 규모의 호텔까지 해서, 그 정도 비용이면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 같습니다.”

***

동진 마리나 개발(주)

“어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베네티 코리아의 이성호 사장님 아니십니까?”

“서기호 사장님도 여전하시네요. 이쪽은 최진수 사장님이십니다.”

“아, 그 요트계의 큰손?”

서기호는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키가 큰 남자였다. 안경을 끼고 자주 눈을 찡긋거리는 습관이 있어서 약간 산만한 느낌도 있었지만, 키가 커서인지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렇게 눈과 목소리가 묘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요트 계류장이 필요하시다고요?”

“예, 제가 운영하는 회사가 싱가포르에서 요트를 하나 들여오려고 하는데, 마땅한 계류장이 없어서 말입니다.”

“요트라면 어느 정도 규모인가요?”

“선체 길이가 136미터짜리 초대형 요트입니다. 플라잉 폭스라고 지금은 싱가포르 원 15요트 클럽 마리나에 계류 중이죠.”

“136미터요? 그건, 요트가 아닌데요.”

“요트가 아니라뇨?”

서기호 사장은 그 정도면 대형 선박이지, 레저용 요트는 아니라는 말투였다.

옆에 있던 이성호 사장이 끼어들었다.

“그래도, 분명히 요트입니다. 초대형 메가 요트로 분류되는 배죠. 싱가포르 원 15 요트 클럽에서도 받아주고 있고요. 로만 아브라모비치라고 아시죠? 러시아 석유 재벌 말입니다.”

“알죠? 그 사람도 요트광 아닙니까?”

“맞습니다. 아브라모비치의 이클립스와 쌍둥이 요트입니다. 같은 크로아티아 조선소에서 제작한 배거든요.”

“그래요? 와, 그럼 가격도 엄청난 배일 텐데?”

이성호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로는 인수가격이 거의 7천억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칠..칠천 억 원요?”

실제로는 김영석 사장이 협상을 통해서 가격은 6천 2백억까지 다운시켰지만, 대외적으로는 7척대의 거래라고 하기로 합의한 것이었다.

베네티 코리아의 이성호 사장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예, 그걸 바로 여기 옆에 계신 최진수 사장님이 인수하신 겁니다. 그 뭐였죠, 최 사장님 회사 이름이?”

“회사 이름요? 음, 그..그게..”

김영석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 이름이 에메럴드 뭐였는데? 내가 직접 한 일이 아니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아, 생각났다. 에메럴드 시티 크루즈였지.

“하하, 에메럴드 시티 크루즈 말인가요?”

“아,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머리가 나빠서 한 번에 기억을 못 했습니다. 최 사장님. 양해해주시죠.”

나도 기억을 못하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 이름이었지만, 이성호는 내가 한 번 서류를 보면서 말해준 회사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사과를 하고 있었다.

역시, 돈과 권력이 있으니 이렇게 알아서 기는 건가?

“아무튼, 에메럴드 시티 크루즈가 플라잉 폭스를 7천억에 인수해서 한국으로 가져오려는 겁니다. 그래서 해운대 마리나에 계류장이 필요하고요.”

서기호 사장은 이야기를 듣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젊으신 분이라, 동생분을 데려오셨나 했더니, 어마어마한 사업가셨군요?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실제로 대학생이기도 하고요. 나이가 많이 어리죠.”

“음, 학생이시군요? 그러면 역시 아버님이?”

“다들 저를 만나면 아버님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더군요.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외부에 노출되는 걸 꺼리시는 분이라. 그저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 땅을 파고 계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이거지? 우리 아부지 농사꾼입니더. 나의 대답은 이런 의미였다.

“미래 먹거리? 땅을 파신다면? 석유 개발을? 해외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이런 걸 개발하신다는 의미인가요?”

“하하, 그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니까요. 그건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하죠.”

“아, 예..죄송합니다. 제가 주제 넘게..”

서기호 사장도 나의 재력을 대충 눈치챘는지, 50대 중반의 나보다 한참 연상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공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약간은 씁쓸하지만, 돈이 권력이고, 돈이 선배고, 돈이 정의인 대한민국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제가 원하는 건 대형 계류장입니다. 플라잉 폭스가 정박할 수 있는 정도의 계류장 말입니다.”

“음,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았는데, 그 정도 대형 요트 계류 시설은 저희 마리나에는 없습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참에 마리나 사업에 투자를 하고 싶은데요.”

“마리나 사업에 말인가요?”

“듣기로는 모기업인 동진 건설의 자금난으로 수영만 마리나 재개발이 흐지부지되고 있다면서요?”

“예,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이 좀 안 좋은 편이죠. 재개발도 미뤄지고 있고, 그래서 지금 있는 시설도 관리가 부실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제가 2천억의 개발비를 투자하면 어떨까요?”

“이..이천억을요? 그 정도 투자가 가능하시다는 건가요?”

이성호 사장이 다시 끼어들었다.

“여기 최진수 사장님은 7천억짜리 요트를 구매하신 분인데 2천억을 투자하지 못하겠습니까?”

이성호의 말에 서기호 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군요.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이클립스의 쌍둥이 배라고 하니? 어머무시한 초호화 요트겠죠. 인수가격도 7천억이나 되고요.”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2천억의 개발비용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해운대 수영만 마리나 개발권을 가진, 동진 마리나 개발의 지분 60%를 인수하고 싶은데, 서기호 사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음, 2천억을 투자하고 지분 60%를요? 일단 본사 회장님에게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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