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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만족 (69/200)

대리 만족

며칠 후 동진 마리나 개발에서 연락이 왔다.

“접니다. 서기호 사장, 회장님이 최진수 사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럼, 동진 마리나 개발의 지분을 저에게 넘기기로 하시는 겁니까?”

“예, 대신 지난 번에 말씀하신 투자금은 확실하신 거죠?”

“그건 걱정하지 마시죠. 그리고 해운대 마리나 재개발과 별도로 지금 빨리 플라잉 폭스를 위한 계류 시설이 필요합니다.”

“하하, 성격이 급하시군요. 벌써 말인가요?”

성격이 급한 게 아니라, 브라질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려면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플라잉 폭스를 한국으로 가져와야 하니까, 일단 임시 계류장부터 만들어 주시죠. 플라잉 폭스를 위해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이제는 최진수 사장님이 오너시니까요. 일단 임시 계류장을 만들 공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싱가포르에서 배가 다음 주에 올 계획인데.”

“일주일만에 만들기는 시간이 촉박할 것 같은데요.”

“임시 시설을 만드는데 뭐가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1주일 안에 만들어 놓으세요.”

“아, 예. 1주일 내로 준비하겠습니다.”

결국, 동진 마리나 개발의 지분 60%를 인수하게 되었고, 이걸로 해운대 수영만의 마리나 사업권도 나의 것이 되었다. 당장 엄청난 수익이 생기는 사업은 아니었지만, 마리나 개발 회사의 오너가 되었고, 플라잉 폭스를 입항시킬 준비도 빠르게 진행 될 수 있었다.

***

1주일 후, 해운대 수영만 마리나

1주일만에 임시 계류장 공사를 마친 해운대 마리나로 한 척의 초대형 호화 요트가 우아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드문 초호화 요트의 등장에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해운대 마리나를 이용하는 요트 동호회 회원들도 136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요트의 출현에 다들 호기심 어린 표정들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와, 진짜 큰 요트잖아?”

“플라잉 폭스라는 요트라는데, 한국인 재벌이 최근에 인수했다는 것 같아.”

“한국인 재벌? 누구?”

“최진수라고 나이는 굉장히 어려, 20대 초반이라는 것 같더라고.”

“그 나이에 그만한 재력이 있다는 건가? 역시 재벌3세?”

“그렇겠지, 한국에서 20대 초반에 플라잉 폭스 같은 요트를 살 수 있는 돈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아버지에게 물려받는 것 뿐이잖아?”

“하긴 그렇지. 저 플라잉 폭스 인수 가격이 7천억이라고 하더라고.”

“7천억? 와, 정말 어마무시한 금액인데...”

“왜? 박 원장도 부러워?”

“부럽지, 나 같은 의사가 그런 요트를 어떻게 사겠어?”

“저런 요트는 무리지만 그래도 강남에서 잘 나가는 성형외과 원장이잖아?”

“강남에서 병원장이면 뭐 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돈이 최고지. 내가 7천억이 있으면 진즉에 병원은 때려 치우고 요트나 타면서 놀러다니겠다.”

“하하, 그건 그래. 나도 7천억이 아니라, 7백억만 있어도 로펌 때려치우고 요트 타고 세계일주나 떠나고 싶으니까.”

중년의 두 남자가 해운대 마리나로 들어오는 플라잉 폭스를 바라보면 나누는 대화였다. 들어보니, 한 명은 강남의 성형외과 원장, 다른 한 명은 로펌에 다니는 변호사인 모양이었다.

다들 우리나라에서는 고소득자들이고 엘리트 소리를 듣는 의사와 변호사였지만, 그들 말대로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돈이 최고였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좋은 학벌의 엘리트들이겠지만 그들 말대로 그런 의사나 변호사들도 평생을 벌어도 벌 수 없는 돈이 7천억이었다.

실제로 플라잉 폭스의 인수 가격은 6천 2백억 정도기는 하지만, 아무튼, 무조건 공부해서 의사, 판검사 하라는 우리나라의 입시 지옥의 최종 승자들인 그들도 내가 가진 압도적인 초대형 메가 요트의 위용 앞에서는 그저 저 배의 주인을 부러워하는 평범한 소시민이 될 뿐이었다.

“세상 참 불공평하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죽어라고 공부하고 과외받고, 거기다 의대에서 공생고생하면서 또 공부하고, 병원 개업도 빚까지 져가며 겨우겨우 해서 강남에서 겨우 성공했는데,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살아봐야, 저런 금수저들 하고는 비교도 안 되잖아.”

“박 원장 오늘따라 시니컬하게 왜 그래? 그나마 우리 정도면 성공한 사람들이잖아. 요트도 가지고 있고 말이야.”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그나저나, 저 플라잉 폭스라는 배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이클립스랑 같은 조선소에서 건조한 쌍둥이 배라지?”

“그렇다는 것 같아. 기본 베이스는 같은 거니까. 거의 비슷한 요트라고 봐야지.”

“아무튼, 최진수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부럽기는 하네.”

한동한 플라잉 폭스의 입항 모습을 바라보던 강남 병원장과 변호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쨌든, 나름 한국에서 성공했다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도 플라잉 폭스를 바라보며 신세 한탄을 할 정도로 엄청난 위용의 메가 요트였다. 그리고 그런 플라잉 폭스를 소유한 나는 한국에서는 최고의 성공을 이룬 사람들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시대에, 수조의 자산가이고 앞으로도 수십, 수백조의 자산가가 될 수도 있는 나는 이미 성공했고, 앞으로도 장래가 촉망되는 행운아였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온몸에 기쁨의 호르몬이 충만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날씨도 좋고, 새롭게 나를 위해서 임시 계류장 공사를 마친 계류 시설로 플라잉 폭스가 정박을 하고 있었다.

브라질에 야마시타 골드를 찾으러 가기 위해서 구입한 배였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이미 플라잉 폭스 같은 초대형 호화 요트를 인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이룬 기분이었다.

“정말 엄청나네요.”

뒤를 돌아보니 동진 마리나 개발의 서기호 사장이었다.

지분은 내가 60%을 인수해서 동진 마리나 개발의 사실상의 오너가 된 셈이었다. 하지만 마리나의 재개발은 동진 마리나 개발의 모기업인 동진 건설에서 맡아서 진행하기도 계약이 되어 있었고, 동진 마리나도 서기호 사장이 계속 운영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의 위상이었다.

1주일 전만 해도 해운대 마리나를 찾아온 정체불명의 청년이었지만, 이제는 서기호 사장의 보스가 된 것이다.

“서기호 사장이 보기에도 마음에 드나요?”

“그럼요, 역시 최진수 사장님의 스케일은 대단하십니다. 한국에 저런 초대형 요트를 소유하신 분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마리나를 운영하는 서기호 사장이 나타나자, 마리나에 있던 요트 소유주들도 수군거리며 서기호 사장과 나를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최진수라는 사람인가? 플라잉 폭스를 인수했다는?”

“그런 것 같은데, 그 뭐라더라? 에메럴드 시티 크루즈라는 회사 대표가 저 최진수라는 것 같아.”

“에메럴드 시티 크루즈? 그러면 저 배로 크루즈 사업을 하려는 건가?”

“그렇겠지, 저런 대형 요트를 타고 놀러 다니려고 샀겠어? 그건 아닐 것 같고, 아무튼, 사업을 위해서 산 거라고 해도 정말 엄청나기는 하네, 한국에서 저런 호화 요트를 보게 될 줄이야.”

이번에도 어디선가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최근들어 청력이 좋아진 건지, 어딜가도 나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소리들을 많이 들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진짜 부자가 된 이상 사람들의 부러움과 관심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런 시선들이 즐겁기도 하고 말이다.

“서기호 사장님도 요트 구경을 한 번 하시죠.”

“하하, 그럴까요? 그렇지 않아도 내부가 궁금하기는 했었는데.”

“선배님, 정말, 이 배가 선배님 배라는 말씀이신 거죠?”

아니? 이 목소리는? 민영민, 앞으로 해도 민영민 거꾸로 해도 민영민, 서울에서 들어도 민영민, 뭘 해도 민영민이 분명했다.

뒤를 돌아보니, 평소처럼 카메라를 어깨에 멘 민영민이 감격을 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너, 여기는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요? 제가 누굽니까?”

네가 누구냐고?

그야, 민영민? 뭐, 도산파파라치?

“누구긴 누구야? 민영민이 민영민이지 앞으로 해도 거꾸로 해도 민영민 말이야.”

“선배님, 저 민영민이라면 도산파파라치이자, 한국의 럭셔리 한 것들이라면 다 쫓아다니면서 사진으로 기록하는 럭셔리 파파라치라고 할 수 있죠.”

하긴, 민영민이라는 녀석이 슈퍼카를 시작으로 고급 아파트나, 연예인, 기타 등등... 비싸고 럭셔리한 물건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특히, 그것들을 사진으로 찍는 걸 좋아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일종의 심리적 대리만족이라고나 할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민영민 녀석은 그렇게 사진을 통해서 자본주의 시대의 소비에 대한 욕망을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민영민이 찍은 사진들은 온라인 상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대다수의 평범한 서민들도 화려한 부자들의 성공과 그들의 호화로운 소비재들을 사진을 통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남들이 가진 것이나 소비하는 것을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 보며 대리 만족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요새 유행하는 먹방 같은 것도 그렇고, 그렇게 직접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타인의 경험을 시각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심리적인 만족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럭셔리한 부자들의 슈퍼카 사진을 자주 찍어서 올리는 민영민도 나름 온라인 세계에서는 유명인사고 했다.

그리고 민영민은 자신의 개인적인 만족감에 더해 온라인 세계의 파파라치의 명성을 위해서 더더욱 그런 럭셔리한 부자들의 일상 내지는 물건들을 찍는 일에 열중하고 있고 말이다.

“럭셔리 파파라치? 그러면 설마 플라잉 폭스를 찍으러 일부러 왔다는 거야?”

당연하게도 민영민에게 플라잉 폭스를 인수한 일이나, 플라잉 폭스가 한국으로 온다는 말을 해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녀석은 플라잉 폭스가 해운대 마리나로 입항하는 날에 맞추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것이었다.

“설마? 젊은 한국인 사업가가 이 플라잉 폭스를 7천억에 인수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게 최진수 선배일 줄은 몰랐습니다.”

녀석은 요트 동호회를 통해서 어디선가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아마도 이 일의 내막을 잘 아는 배네티 코리아의 이성호 사장이 소문의 지원지라는 의심적인 의심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아무튼, 선배님, 이게 정말 최진수 선배님의 배라는 거죠?”

“내 배가 아니라, 내가 소유한 에메럴드 시티 크루즈의 배라고 하는 게 정확하지.”

“그게 그거 아닙니까? 최진수 선배님이 에메럴드 시티 크루즈의 오너시니까요.”

“하하, 그런 셈이죠. 여기 최진수 사장님의 지인이신가요?”

“예, 최진수 선배님의 학교 후배, 민영민이라고 합니다.”

“나는 서기호라고 하는데, 해운대 마리나를 관리하는 동진 마리나 개발의 사장이죠. 후배분이라고 해서 하는 말인데, 최진수 사장님이 정말 대단하시기는 해요. 이 플라잉 폭스도 소유하고 계시고, 이번에 동진 마리나 개발의 지분도 인수하셔셔 이 마리나도 최진수 사장의 소유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해운대 마리나도 말입니까?”

서기호 사장은 약간 과장을 해서 말하고 있었다. 마리나의 소유가 아니라 마리나 사업 운영권 정도니까 말이다.

“그래요, 동진 건설로부터 마리나 운영과 그리고 앞으로 해운대 마리나 재개발 사업을 인수하셔서 이제 이 일대를 완전히 럭셔리하게 재개발을 하실 겁니다. 이미 2천억을 투자해서 사업을 진행하고 계세요.”

“2천억을 투자해서 마리나를 재개발까지?”

“자자, 사업에 관한 이야기는 조용한 곳에서 하기로 하죠. 여기저기 듣는 사람이 너무 많군요.”

“하하, 죄송합니다. 최 사장님, 제가 좀 입이 가벼웠죠?”

“영민이 너도 사진 찍으려면 따라와, 배 구경을 시켜줄테니까.”

“정말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기호 사장과 민영민과 함께 플라잉 폭스에 올랐다.

배에서는 크로아티아인 선장과 승무원들이 일제히 도열해 나를 반겨주었다.

“최진수 사장님 여기에요.”

“어, 에니카와 한나도 왔군.”

스웨덴, 아니 크로아티아의 미녀 마사지사 두 명도 플라잉 폭스와 함께 한국행을 선택한 것이었다.

“선배님 누굽니까? 둘 다 금발에 정말 쭉쭉빵빵한 글래머 미녀들인데요.”

“여기, 플라잉 폭스의 승무원이야, 마사지실 담당이지.”

“선배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초럭셔리한 이 요트에 저런 미녀 마사지사들까지..이..일단 배의 사진부터 촬영하겠습니다. 그래도 돼죠?”

“그래, 사진이라면 얼마든지 찍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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