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거물
사진을 찍으라는 말에 민영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플라잉 폭스의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엄청나군요. 이런 배는 정말 처음보는데,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의 호화요트 아닌가요?”
“글쎄, 세계 최고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고 레벨 정도는 되는 거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가진 이클립스와 이 플라잉 폭스는 구조적으로는 같은 배거든.”
“와, 그 첼시 구단주 말이죠?”
“그래, 러시아 석유 재벌이라고 하더라고.”
나로서는 이미 다 본 것들이라 따로 신기한 것은 없었지만 민영민은 카메라로 플라잉 폭스의 화려한 인테리어들 찍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배가 커서 내부에도 찍을 게 진짜 많은데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민영민이 카메라를 메고 배를 돌아다니자, 에니카와 한나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최 사장님, 저희가 모델을 해드릴까요?”
“모델요.”
“예, 전에도 제라드 칸 사장님을 위해서 요트의 홍보 모델을 자주 했었거든요.”
에니카의 말로는 한나와 둘이서 제라드 칸이 가진 여러 요트들을 배경으로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도와주는 모델 일도 했다는 것이었다.
“공짜로 한 건 아니겠죠?”
“예, 모델료는 받았어요.”
하긴, 자본주의 시대에 공짜는 없으니까..
“좋아요. 민영민의 촬영을 좀 도와주도록 해요. 모델료는 따로 지불할 테니까.”
에니카는 원하던 대답을 얻었는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영민아 그냥 요트 사진만 찍으면 심심하잖아.”
“그냥 사진만 찍어도 멋진데요.”
“아무튼, 이런 초호화 요트에는 금발의 스웨덴, 아니 크로아티나아, 아무튼, 금발 미녀들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예? 선배님 그게 무슨 말이세요?”
“영민아 뒤를 돌아보라고.”
민영민은 뒤쪽으로 이미 화려한 비키니로 갈아입은 에니카와 한나가 화끈한 몸매를 자랑하듯 서 있었다.
“이쪽은 플라잉 폭스의 전속모델인 에니카와 한나.”
“전속 모델요?”
“그냥 해본 소리야. 아무튼, 에니카와 한나가 영민이 너의 촬영을 도와줄 거야. 그냥 배만 찍는 건 밋밋하잖아.”
“하긴, 저 두 명의 금발 미녀들과 같이 촬영을 하면 밋밋할 일은 없겠네요.”
“그래, 바로 그거야. 화끈하게 멋진 사진을 찍어보라고.‘
도대체, 내가 왜 민영민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잠시 들기는 했지만, 기왕 민영민이 나의 플라잉 폭스의 사진을 찍어서 여기저기 소문을 낼 거라면 좀 더 멋진 사진이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민영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퍼지게 될 나의 소문을 더 럭셔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모델을 붙여주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민영민은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늘씬한 몸매의 유럽 출신의 금발 미녀가 나타나자, 더 신이 나서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서기호 사장도 놀랍다는 듯이 플라잉 폭스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정말 엄청난 요트군요. 저도 마리나 운영 사업을 하면서 국내의 내놓으라는 부자들의 요트들을 많이 봤지만, 이런 요트는 정말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배네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도 요트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그럴 겁니다. 요트라고 하면 부자들이 사치를 한다는 생각이 많아서 이래저래 눈치가 보이니까요.”
“그래요?”
“사실, 한국에도 돈 많은 부자들이 많으니까요. 재벌 총수들 중에서도 고급 요트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죠.”
“재벌 총수라면? 누굴 말하는 건가요?”
“하하, 뭐, 최진수 사장님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대성 그룹 장태식 회장님만 해도 요트에 관심이 많죠, 50미터짜리 슈퍼 요트도 가지고 계시고요.”
“그래요? 장태식 회장도 말입니까?”
서기호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장태식 회장의 재산도 30조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사실, 마음만 먹으면 플라잉 폭스 같은 초호화 요트도 소유할 수 있는 분이죠.”
국내 부동의 1위라는 평가를 받는 대성 그룹의 회장인 장태식의 주식 가치가 대략, 30조쯤 된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 자산이면, 이클립스를 가진 러시아의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거의 비슷한 재산인 셈이었다.
하지만 푸틴을 피해, 런던에서 생활하며 눈치 같은 건 볼 것 없는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정부나 시민 단체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장태식 회장의 처지가 같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마, 장태식 회장이 플라잉 폭스 같은 초대형 메가 요트를 인수해서 타고 다니면서 여행을 즐긴다면, 국내에서 상당한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인지, 장태식 회장은 50미터급의 슈퍼 요트도 대중의 눈을 피해서 몰래 타고 다닐 정도로 조심스럽다고 했다.
“하하, 장태식 회장님도 타고난 금수저로 원하는 건 다 갖고 사시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대성 그룹이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또 선대의 주식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편법 논란도 있어서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소송도 진행 중이고.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세금을 척척 납부한 건 아닌 것 같더군요.”
“그럴 겁니다. 장태식 회장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법대로 세금을 다 내게 되면 대성 그룹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도 있으니까요.”
“하기는 그렇기는 하겠네요.”
아직도 기업이라는 것은 사유재산이라는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는 기업을 창업한 창업자가 나이가 들어 물러나면 그 아들이 물려받는 것을 당연시 하는 편이다.
하지만 상속이나 증여 관련한 세금이 워낙 커서, 어지간한 재벌그룹의 후계자들도 경영권을 다음 세대에 적법하게 이전하기가 쉽지가 않고, 그러다 보니 편법이나 탈법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한국 재벌들은 이래저래, 눈치 볼 일들이 많죠. 그래서 돈이 있어도 이런 초대형 요트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대부분 이런 초대형 요트들은 미국의 IT 재벌들이 많이 소유한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한 케이스들이죠.”
“최진수 사장님은 그럼 어떤 케이스입니까? 역시, 아버님에게 자산을 물려받은 금수저인 건가요?”
“하하, 저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자수성가형 말입니다.”
“자수성가요? 아니, 나이가, 20대 초반이시라면서요?”
“운이 좋았죠. 아마 저처럼 큰 돈을 단기간에 벌기 위해서는 운이 기가 막히게 좋지 않고는 어려운 법이니까요.”
“단기간에, 기가 막힌 행운으로 돈을 벌었다면? 역시 비트코인?”
“하하, 비트코인요?”
하긴, 야마시타 골드가 아니라면, 나 같은 나이에 이런 엄청난 재산을 자수성가로 벌 수 있는 것이라면, 비트코인 정도 외에는 없을 것 같았다.
“하하, 뭐 비슷한 고수익 투자라고 해두죠.”
서기호 사장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1층 데크의 선미에서 간드러진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선미 쪽의 미니풀에서 에니카와 한나가 수영을 즐기며 농염하게 포즈를 잡고 있었고, 그 장면을 민영민의 카메라가 쉬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
문화대학 휴게실
“야, 너 뉴스 봤어.”
“뉴스? 무슨 뉴스?”
“내일 뉴스라는 곳에 민영민이 찍은 사진과 기사가 나왔다는데.”
“민영민이 기자였어?”
“기자는 아니고, 원래 사진 찍는 거 좋아하잖아. 도산파파라치로 유명하고, 괜찮은 자동차 사진을 잘 찍는다고 소문이 나서 인터넷 언론사에서 민영민 사진을 자주 쓰는 모양이더라고, 민영민은 그걸로 용돈도 벌고.”
“그래? 민영민이 그런 재주가 있었나? 그런데 내일 뉴스에는 무슨 사진이 나온 거야.”
“그게, 지난 주말에 해운대에 마리나에 초대형 요트 하나가 들어왔는데, 일단 이 사진들 좀 봐봐.”
스마트폰을 뉴스를 검색하던 녀석이 기사와 함께 민영민이 직접 찍어서 내일뉴스에 보낸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와 대박이네, 이거 무슨 비키니 화보 아니야?”
“그치, 죽이지, 여자들도 그렇고, 이 요트 규모가 장난 아니잖아. 이 여자들 지금 그 플라잉 폭스라는 요트 선미에 있는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거라고.”
“배 안에 수영장까지, 이거 배가 얼마나 큰 거야?”
“여기 나오네, 선체 길이가 136미터라니까.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보다 훨씬 큰 거지. ”
“진짜 어마무시하네, 그런데 이거 배가 크기만 한 게 아니라 되게 럭셔리한 배 같은데? 여기는 파티룸인가? 가구들도 고급스럽고.”
“최고급 요트라고 할 수 있지, 이 요트 한 대 가격이 7천억이라니까 말이야.”
“치..칠천억? 와, 미쳤네. 그런데 민영민이 무슨 재주로 이런 고급 요트까지 들어가서 이런 금발 미녀들이랑 사진을 찍은 거야?”
“그러니까, 놀라지 마, 이 배 주인이...”
“배의 주인이 누구인데, 일론 머스크? 아니면 제프 베조스?”
“한국 사람이야.”
“한국사람? 그럼, 장태식 회장? 한국 부자 1위는 장태식 회장이지 아마?”
“장태식 회장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과 최진수 선배라는 거야.”
“최..최진수 선배가? 설마?”
“진짜야, 민영민도 플라잉 폭스라는 초호화 요트가 해운대로 들어온다고 해서 사진을 찍으러 간 거였는데, 거기에 최진수 선배가 딱 있더라는 거야.”
“진짜?”
“그렇다니까, 7천억짜리 플라잉 폭스는 물론이고, 해운대의 마리나도 이제 최진수 선배가 소유했다는 거 같아.”
“그래? 그 마리나라는 거 항구 시설 그런 거 아니야? 그걸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거야?
“민영민에게 얼핏 듣기로는 해운대 일대의 빌딩이며 땅이 다 최진수 선배라는 것 같던데.”
“해운대가 최진수 선배 소유라고? 야, 그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냐? 최진수 선배가 진짜 재벌3 세라는 건 나도 알겠는데, 어떻게 해운대가 전체가 최진수 선배 땅이야?”
“그렇지? 내가 잘못 들었나? 아무튼, 해운대에 빌딩도 있고, 마리나도 최진수 선배 꺼고, 그리고 이 플라잉 폭스라는 요트는 진짜 최진수 선배 소유라고 하더라고. 이 여자들도 다 최진수 선배 소유라는 것 같아.”
“여자들?”
“그래, 여기 이 요트에서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는 금발의 여자들 말이야.”
“큰일날 소리하네, 여자들이 어떻게 누구 소유가 돼? 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나 그런 의미 아니야.”
“뭐, 아무튼, 이 플라잉 폭스가 최진수 선배 소유라는 건 확실한 이야기니까.”
약간 내용이 와전되기는 했지만, 민영민은 나의 예상대로 플라잉 폭스에서 찍은 사진들을 학교에 퍼뜨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내일 뉴스라는 인터넷 신문사에 투고까지 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의 플라잉 폭스는 문화 대학교는 물론이고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를 모르게 된 것이었다.
나도 전과 달리 민영민이 나의 재산이나 소유물들에 대해서 소문을 내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그런 것을 즐기는 것도 있어서,
학교에 내가 플라잉 폭스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온라인에서 한국의 재벌 3세의 초호화 요트라는 제목으로 플라잉 폭스의 사진들이 화제가 되는 것이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한국의 금수저 클라스라는 제목으로 나의 플라잉 폭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놓은 게시글도 있었다.
읽어보니, 플라잉 폭스의 재원이나 가격, 그리고 플라잉 폭스의 쌍둥이 배인 이클립스와 비교를 자세하게 해놓은 글이었다.
온라인의 여론은 한편으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같은 세계적인 재벌들이나 타고 다니는 초호화 요트를 한국인이 구입해서 해운대로 가져왔다는데 호기심과 부러움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었고,
동시에 이런 화려한 요트를 구입하는 데, 7천억이라는 돈을 썼다는 이야기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거기다 플라잉 폭스의 새로운 주인이 20대 초반은 젊은 사업가라는 소문이 돌면서 자연스럽게 돈 많은 재벌 3세라고 단정하는 분위기였다.
소위 말하는 네티즌 수사대가 플라잉 폭스의 소유자가 누구냐고 조사를 벌였지만, 나에 대해서 특별한 정보를 찾지는 못한 것 같았다.
몇몇 댓글에서 무진시 출신의 최진수라는 대학생과 동일 인물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가난한 서민 출신으로 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고, 최진수가 편의점 알바를 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근거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보다는 플라잉 폭수의 소유자인 최진수의 아버지가 엄청난 재력가이고 워렌 버핏과 같이 사업을 해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워렌 버핏 못지않은 자산가라는 헛소문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그렇게 네티즌 수사대가 신상털기에 실패하자 나에 대한 신비로운 소문들은 더 강해졌다. 신분을 철저하게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지닌 거물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