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150 랩터 (71/200)

F150 랩터

드림 엔터테인먼트 사장실.

“정말이에요? 사장님, 영민 오빠 말이 사장님이 초대형 요트의 주인이라면서요?”

민소희는 자기의 솔로 앨범보다도 플라잉 폭스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플라잉 폭스 말이야?”

“그래요, 영민이 오빠에게는 구경시켜 주셨다면서요.”

“소희는 그보다는 솔로 앨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 아닌가?”

“그렇기는 하지만, 저도 그 플라잉 폭스에 한번 타보고 싶다고요.”

민소희는 어딘지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태워줄게.”

“정말이죠. 약속하신 거예요.”

“그래, 그러니까. 지금은 솔로 앨범에 집중하자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나 역시도 민소희의 솔로 앨범에는 큰 관심은 없었다. 역시나 관심사는 새로 산 플라잉 폭스와 그리고 브라질에 있을 거라는 야마시타 골드의 존재 여부였다.

어쨌든, 배도 준비가 되고 이제 위대한 탐험가들의 전례를 따라,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민소희가 나가자, 사장실 문이 열리고 윤아영이 들어왔다.

“사장님, 필리핀에서 뭔가 택배가 왔다는 것 같은데요.”

“택배?”

“예, 무슨 당나귀라는 것 같아요. 인형 같은 거 말고요. 진짜 당나귀요.”

“스바딜파리 말이군.”

“스바 뭐요?”

“윤아영 씨 그건 필리핀에서 가져온 나의 조력자 그러니까, 애완동물이야. 당나귀 말이야. 하하...”

브라질에서 야마시타 골드를 찾게 되면 뭔가 필리핀에처럼 작업이 필요할 것이고, 그런 작업을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동시에 야마시타 골드의 비밀에 대해서 입을 다물 그런 과묵한 녀석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야마시타 골드 덕분에 가는 곳마다 관심을 받고 인기를 누리는 인기인이 되었지만, 야마시타 골드의 비밀에 대해서는 터놓고 말할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김덕수 소장이 그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 김덕수 소장은 정신적으로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정상적이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강박증상이 심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야마시타 골드를 처분해주는 이른바 금세탁 작업을 도와주는 김영석 사장도 나의 비밀의 일부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아니지만, 스바딜파리는 나의 비밀스러운 작업과 보물들에 대해서 비교적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나귀에 불과했기 때문에 비밀을 누설할 염려는 없는 믿음직스러운?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는 소중한 당나귀였지만, 윤아영이 보기에는 그저 예쁜 구석이라고는 없는 사납게 생긴 당나귀일 뿐이었던 모양이었다.

“사장님, 이 스바인지 뭔지? 정말 애완동물 맞아요? 어머, 미쳤나 봐. 어딜 핥아?”

복도로 들어온 스바딜파리는 윤아영의 미끈한 다리를 눈여겨보더니 이내 혀를 내밀어 핥기 시작했다.

“진정해, 당근을 주면 얌전해질 거라고.”

“어머, 당근이 어디 있는데요?”

“사람을 보내서 사오라고 해. 시장이든 마트든 팔지 않겠어?”

일단은 스바딜파리는 어디 넓은 장소로 보내야 할 것 같았다. 어디가 좋을까?

시골집에 보내서 마당에서 키우면 괜찮을 것 같았지만 부모님에게 당나귀까지 보내서 귀찮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트리피오의 아파트는 당연히 불가능, 아이케이 빌딩 15층은 오피스 빌딩이라 곤란할 테고, 아무래도 신사동의 영진빌딩의 펜트하우스의 루프탑이 좋을 것 같았다.

“7층의 루프탑은 옥상 정원처럼 꾸며져 있어서, 당나귀 한 마리 정도는 키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스바딜파리는 다행히 당근 몇 개를 주자 얌전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영진 빌딩의 펜트하우스까지 어떻게 이동시키냐 하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차들이 많기는 하지만 다들 고급 세단이나 슈퍼카, 아니면 벤테이가 같은 고급차들 뿐이라, 당나귀를 싣고 이동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화물 트럭이나, 아무튼 뭔가 당나귀 한 마리쯤 싣고 다닐 차가 필요할 것 같았다.

“윤아영 씨, 일단, 스바딜파리에게 당근을 주면서 좀 진정시키고 있어요. 필리핀에서 오느라 신경이 예민해진 것 같으니까.”

“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 당나귀 변태 아니에요? 돌아다니면서 여자들만 보면 쫓아다니면서 다리를 핥고 있다고요.”

“진정해요. 캄 다운. 그래 봐야, 당나귀일 뿐인데 뭘 그래? 사람도 아니잖아?

“하지만 이상해요. 당나귀의 탈을 쓴 변태 같다고요.”

상상이 되었다. 하지만 너무 더러운 상상이라...

그건 그렇고, 윤아영의 반응과는 달리 스바딜파리는 그저 필리핀에서의 장기 여행으로 조금 피곤해져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

에스제이 인터네셔널.

“최진수 사장님 어쩐 일이세요? 벤테이가에 문제는 없으신 거죠?”

최선화는 화사한 핑크색의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다. 마치 봄의 진달래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도 들고 말이다.

“벤테이가는 잘 타고 있어요. 그런데 에스제이 인터네셔널에 화물 용달차 같은 거도 파나요?”

“요..용달차요? 뭘 하시려고요?”

“당나귀를 실어야 하는데, 벤테이가는 좀 그렇고, 다른 차들도 마땅한 게 없어서요.”

최선화는 약간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차분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큰 차가 필요하시다는 거죠? 뒤에는 화물을 적재할 공간도, 그러니까 당나귀를 싣고 다닐 수 있는 그런 픽업트럭 같은 거 말이죠?”

“픽업트럭요? 오, 그러면 되겠네요. 괜찮은 차가 있을까요?”

“그런데, 당나귀는 대체 뭐죠?”

“하하, 애완동물입니다.”

“음, 애완동물이라?”

최선화는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를 괴짜 취미를 가진 재벌 3세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다지 나의 취향에 관심을 갖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나에게 적합한 자동차를 골라주고 차를 파는 것에 집중한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픽업트럭이 그렇게 활발하게 거래되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요?”

“예, 트럭이라면 뭔가 화물차 정도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거든요. SUV도 최근에야 유행하기 시작한 거니까요. 아무튼 전통적으로 세단을 선호하던 한국인들도 이제 SUV는 많이 익숙해졌고, 그렇다면 앞으로는 픽업트럭도 앞으로 유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픽업트럭이라? 사실, 픽업트럭이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네요. 한국에서 그렇게 흔하지는 않잖아요?”

“SUV에 트럭 형태의 적재 공간이 추가된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승용차면서 동시에 화물 운송도 용이해서 미국에서는 인기가 높은 형태의 자동차지만, 한국에서는 그동안 유독 인기가 없었죠.”

“그럼, 어떤 픽업트럭이 좋을까요?”

“지금 우리 매장에는 포드의 F150이 있는데, 한국 기준으로는 좀 큰 차이기는 하지만 주차 공간에 문제가 없으시고 애완용 당나귀를 태우고 다니실 거라면 추천해드릴 수 있는 차죠.”

포드? 미국차잖아? 포드라면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로 자동차왕이라고 불리던 헨리 포드로도 유명한 자동차 회사. 하지만 다 옛날이야기고 포드 자동차를 한국에서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그다지 못 본 것 같았다.

다들, 벤츠, BMW, 아우디 같은 독일 차들을 선호하고 그보단 급이 높은 차라면 포르쉐, 그리고 그 이상은 슈퍼카나 럭셔리 브랜드라고 할 수 있고 말이다.

미국차라는 건 말 그대로 미국 사람들이나 타는 차라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다지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 미국차지만 픽업트럭만큼은 미국이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픽업트럭을 미국처럼 좋아하는 나라는 드무니까 말이다.

“좋아요, 포드는 처음이지만, 미국이라고 자동차를 못 만드는 나라는 아니니까.”

“그렇죠. 미국차도 세계적인 수준이고요. 사실, 취향에 안 맞아서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 것뿐이지, 튼튼하고 실용적인 걸로는 미국차만한 게 없죠.”

“연비가 나쁘다는 말도 있던데?”

“연비요? 그게 신경 쓰이세요?”

“하하, 연비가 신경 쓰이냐고요? 하하..물론 아니죠.”

그래, 연비가 대체 나한테 무슨 상관이야. 내가 그런 거 신경쓸 처지는 아니잖아?

“연비는 상관없죠. 당연히, 뭐, 그 포드 뭐라고요? 일단 한 번 보여주시죠.”

최선화는 싱긋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포드 F150은 랩터는 저희 회사의 주력 모델은 아니라 따로 옆 빌딩에 보관 중이거든요.“

최선화의 말대로 잘 나가는 모델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최선화를 따라 옆 건물로 들어서자 자동차들을 보관하는 공간이 나왔다.

주로 에스제이 인터네셔널에서 수입하는 슈퍼카나 럭셔리카들이 많았고 중고 슈퍼카들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맨 구석에 딱 봐도 미국차처럼 보이는 거대한 녀석이 보였다.

“저거군요. F150?”

“예, 멀리서 보셔도 느낌이 팍 오는 차죠. 어떠세요?”

“와 엄청 큰데요. 말 그대로 트럭이네요.”

“예, 화물 트럭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화물 운송도 가능할 정도로 적재 공간이 큰 차고요. 차체 자체도 일반적인 세단과는 차원이 다르죠.”

“차고도 높고 어마어마한 괴물이네요.”

“어떠세요? 이만하면 당나귀를 싣고 다니시기에는 충분한 사이즈의 픽업트럭이죠?”

“그렇겠군요. 아무튼, 차는 마음에 드네요.”

픽업트럭이라는 건 처음이었지만, 뭔가 남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상남자의 차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내가 상남자인가? 라는 것과는 별개로 남자들이 좋아하는 그런 외형적인 조건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최선화의 말대로 한국에서는 잘 팔릴 것 같지 않은 차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미국에서라면 널찍널찍한 도로와 주차장 그리고 대형 할인매장에서 박스로 식료품을 사서 나르기 좋은 차겠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큰 차는 괜히 여기저기 긁히고 주차도 어려울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아이케이 빌딩 지하에 전용 주차장도 있고 어차피 스바딜파리를 태우고 필요한 곳들만 운행할 목적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1톤 화물 트럭을 이용해도 당나귀 한 마리를 옮기는 것에는 문제는 없겠지만, 화물차보다는 뭔가 간지도 나는 것 같고 말이다.

“어떠세요? 호불호가 갈리는 차지만, 차 자체는 정말 멋지고 남성적인 차니까요. 여유가 있으신 최 사장님 같은 분에게는 데일리는 아니지만 레저용이나 화물 운송용으로 한 대 가지고 계셔도 좋을 차라고 생각합니다.”

“음, 그런 것 같네요. 큰 차라 그런지 마음에 드네요. 남자들은 뭔가 좀 큰 걸 좋아하니까요. 여자들도 큰, 그러니까 큰 차를 타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나요?”

최선화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작은 것보다는 큰 게 좋기는 하죠.”

“하하, 아무튼, 맘에 드네요. 아주 큼지막하고 튼튼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차는 가격은 얼마나 하는 겁니까?”

가격이야, 큰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궁금하기는 했다. 차가 커서 가격이 꽤 나갈 것 같기도 하고 또 미국차라 유럽차들처럼 고급은 확실히 아니라는 느낌이어서 생각보다 저렴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예, 지금 이 차량은 옵션 포함해서 1억 4백만 원으로 인수 가능하신 차량입니다.”

“일억요?”

“예, 그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의 덩치에 비해서는 꽤 저렴한 가격이네요?”

“예, 원래 자동차라는 게 크기와 가격이 비례하지는 않으니까요.”

“하하, 그렇군요. 아무튼, 지금 당장 이 차를 계약하기로 합시다.”

***

운 좋게도 에스제이 인테네셔널에서 바로 차를 받을 수가 있었고, 나는 스바딜파리를 데리고 가기 위해 드림 엔터텐인먼트로 향했다.

“윤아영 씨, 스바딜파리는?”

“사장실에 넣어놨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다들 놀랐다고요.”

사장실 문을 여니, 스바딜파리가 얌전히 창가에 서 있었다.

“그래, 여기는 좀 너무 좁은 곳이지? 일단 펜트하우스의 옥상 정원으로 데리고 가 줄게. 당근 하나를 주며 스바딜파리를 밖으로 끌고 나왔다.

다행히 스바딜파리는 필리핀에서 같이 일했던 나를 기억하는지, 내가 건네준 당근 하나를 씹으며 주차장으로 따라 나왔다.

그리고 픽업트럭 뒤에 스바딜파리를 싣고는 신사동의 영진빌딩 펜트하우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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