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향기
영진빌딩 7층 펜트하우
“어때, 스바딜파리야, 여기가 네 새 집이야. 필리핀에 살 때보다 훨씬 좋지 않아?”
여길 김영석 사장에서 처음 샀을 때만 해도, 겨울이라, 루프탑은 약간 삭막한 느낌이었는데, 여름이 다가오는 지금은 확실히 루프탑에 조성한 화단의 꽃들도 만발하고 자연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야, 스바, 꽃을 먹으면 어쩌냐? 여기 당근 많잖아.”
스바딜파리는 확실히 말 못 하는 동물이라, 내 말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스바딜파리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말을 못 하니 야마시타 골드의 비밀에 대해서도 당연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테고 말이다.
말귀는 못 알아듣는 녀석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짐을 나르고 사람도 태우던 녀석이라, 짐은 충분히 옮길 수 있으니 나는 그걸로 족했다.
어쨌든, 나에게 이미 수조 원의 황금을 발굴하는데 도움을 준 녀석이라, 녀석이 좋아하는 당근은 박스로 사다 놓고 실컷 먹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당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뭔가 다른 것도 좀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아무튼, 영진 빌딩의 7층 루프탑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 같았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당나귀를 키울 수 있는 곳은 여기 외에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아파트든 뭐든, 고양이와 개까지가 한계가 아닐까? 그보다 한참 더 큰 당나귀를 애완동물로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6층과 7층 모두 사용하고 있는 나로서는 7층 루프탑에 당나귀를 키우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야외에 충분한 공간도 있고, 내 건물의 7층 루프탑이라면 누구 눈치 볼 것도 전혀 없고 말이다.
“어머, 사장님, 진짜, 당나귀잖아요?”
진수의 펜트하우스로 올라온 것은 3층의 마사지샵의 서지영 원장과 윤선아였다.
“어, 원장님이 웬일이세요.”
스바딜파리를 데리고 올라오면서 윤선아를 만났고, 윤선아에게 마사지를 하러 와달라고 부탁하기는 했는데, 서지영 원장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서지영 원장도 직접 마사지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마사지샵의 에이스는 원장님이라는 이야기를 윤선아에게 듣기는 했었다.
상상이 되었다.
두 명의 미녀 마사지사들에게 동시에 황제 마사지를 받는 그런 상상 말이다.
하지만 나의 상상과는 달리, 서지영 원장은 윤선아에게 내가 당나귀를 데리고 펜트하우스를 올라갔다는 말을 듣고 당나귀 스바딜파리를 구경하러 온 것 같았다.
“선아 씨가, 최진수 사장님이 당나귀를 데리고 올라갔다고 하시잖아요. 설마일까 했는데, 진짜였을 줄은 몰랐어요.”
서지영 원장은 특유의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혀 놀란 표정이나 목소리나 아니었다.
천성이 그런 건지, 굉장히 차분하고 아담한 스타일의 서지영 원장은 마사지사로는 적합한 성격일 것 같았다.
마사지라는 게 마사지 기술이나 손의 압 같은 부분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교감이라는 것도 중요하니까 말이다.
마사지를 받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사지가 불편하게 한다면 마사지를 받아도 몸이 편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아무튼, 최 사장님은 부러운 분이에요.”
“제가요?”
“돈도 많으시고,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시니 말이에요. 대한민국 서울에서 이렇게 집에서 당나귀를 키우는 사람이 또 있겠어요?”
“하하, 그렇기는 하네요.”
윤선아도 루프탑 정원에 묶어 놓은 스바딜파리를 신기한 듯 쳐바보며 물었다.
“대체, 당나귀는 어디가 좋아서 키우시는 거예요?”
그거야, 스바가 일을 잘 하니까...
“뭐, 두 분 말씀처럼 특이하잖아요. 남들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지는 즐거움이랄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하루 세끼밖에 못 먹죠. 하루에 열 끼를 먹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결국,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남들이 먹지 못 하는 특별한 걸 먹을 수 있다는 거죠. 그게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죠.”
“정말, 돈이 많기는 많으신가 봐요. 본인 스스로가 부자라고 할 정도면? 진짜 재벌 3세나 그런 건가요?”
서지영 원장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왜 제 눈은 바라보시는 거죠?”
“눈을 보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알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요?”
“예, 보통 눈은 영혼의 창이라고들 하니까요. 눈을 보면 그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요.”
눈을 보고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서..설마..
“하하, 그러면 제 감정은 어떤 감정인가요?”
서지영 원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엉큼한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흐..흠..아니, 그..그건 아니죠. 하하...”
“아무튼, 당나귀 구경은 잘했고,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마사지 좀 해드릴까요?”
“마사지요? 원장님이 직접요?”
“예, 선아랑 같이 해드릴게요.”
뭐..뭐야? 서지영 원장은 진짜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건가? 내가 아까 한 상상을 알고 있는 건가?
물론, 서지영 원장에서 그런 독심술이 있을 리는 없었다. 진짜로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내가 황제 마사지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야마시타 골드의 비밀을 알아챘겠지만 말이다.
그래 봐야, 눈치가 빠른 정도일 것이 분명했다. 궁예도 아니고 무슨 관심법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아무튼, 남자의 마음을 잘 파악하기는 하는 것 같았다. 뭐, 어쩌면 남자들이 원하는 것이 다들 뻔한 것들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싫으시면 전 그냥 가고요.”
“아..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스바를 억지로 7층까지 끌고 왔더니, 어깨가 좀 뻐근한 것 같아요. 허리도 좀 아프고요.”
“쓰..쓰바요? 설마 욕하신 건 아니죠?”
“아닙니다. 이 당나귀 이름이 스바딜파리거든요. 줄여서 스바라고도 부르죠.”
“어머, 웃기다. 이름이 쓰바파리예요?”
“스바딜파리입니니다. 뭐, 북유럽 신화 속에 나오는 명마의 이름이죠.”
“음, 그렇군요. 아무튼, 당나귀는 당근을 먹고 있으니까, 우리는 안쪽으로 들어가요. 선아랑 같이 특별한 서비스를 해드릴게요.”
플라잉 폭스에서도 에니카와 한나에게 황제 마사지를 받았는데, 돈이 많아져서 그런지 황제 마사지를 받을 기회가 많아진 모양이다.
마사지라는 게 한 명에게 받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보통 여자 마사지사들에게 받다 보면 약간 힘이 모자라는 느낌도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압이 좋은 남자 마사지사가 더 시원하냐? 하면 절대 그것도 아니다. 뭐랄까? 남자의 손이 나의 몸에 닿는다는 것이 그리 좋은 느낌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필리핀에서 호기심에 남자 마사지사를 불러보았는데, 뭔가 이건 아니다 싶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럼, 일단 침실로 갈까요? 거기에 침대도 있으니까요.”
***
진수의 침실.
“와, 침실이 되게 커요. 어지간한 아파트 거실 크기인데요.”
“좀, 넓은 곳이죠? 저도 처음에는 침대도 방도 너무 크다는 생각이었는데, 뭐 쓰다 보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윤선아가 마사지 도구를 꺼내서 준비를 하고 있자, 아까 생각했던 남자 마사지사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아무래도 남자 마사지사는 인기가 없죠?”
서지영 원장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사실, 마사지를 배우는 남자분들도 많이 있고 잘하는 분은 정말 잘하시거든요.”
“그래요?”
“예, 하지만 남자분들은 이 업계에서 오래 못 버틴다고 할 수 있죠.”
“왜요?”
“아무래도 수요가 적거든요. 최 사장님도 마찬가지겠지만, 남자 마사지사는 마사지를 잘해도 잘 안 부르시잖아요?”
“그..그거야, 왠지 남자의 손길이 내 몸을 만지는 건 좀 그렇더라고요. 하지만 여자분들은 좀 다르지 않을까요? 남자 마사지사가 마사지를 해주면 좀 짜릿짜릿하다든지?”
“어머, 그럴 리가 없잖아요? 뭐, 애인이라면 또 모를까? 잘 모르는 남자가 몸을 만지면 여자들도 별로 안 좋아한다고요.”
“그래요?”
“예, 그래서 남자 손님들은 남자 손님들대로 여자 마사지사를 찾고, 여자들도 여자 마사지사를 선호하니까, 남자 마사지사들은 일거리가 없는 거죠.”
“그렇겠네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마사지를 받을 때 압이 어떻고 테크닉이 어떻고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심리적인 요인도 큰 것 같으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둘이 동시에 마사지를 하면 효과가 더 크죠. 황제 마사지라고도 하는데, 아무래도 여자들은 남자들을 마사지하기에는 좀 힘이 부족한 것도 있는데, 이렇게 둘이 하면 하는 쪽도 덜 힘들고 받는 쪽에서도 더 시원하기도 하고 만족감이 크니까요.”
하긴, 두 명의 미모의 마사지사에게 마사지를 받는 것은 확실히 만족감이 큰 것은 사실이었다. 진짜 황제가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돈이 좋기는 좋은 것 같았다. 내가 부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서지영 원장이 자청해서 윤선아와 같이 마사지를 해주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나이는 어리지만 건물주에 돈 많은 재벌 3세라는 생각에 나에게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거 아니겠어?
그런 생각을 하자,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기분적인 기분이었다. 돈 많은 재벌이 되니까, 아등바등 원하는 걸 요구하지 않아도 뭔가 저절로 사람들이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물론, 나와 친해져서 뭐라도 얻어먹으려는 마인드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면 어때? 아주 호구 취급당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내가 가진 것을 주고 원하는 것을 받는 거래도 나쁘지는 않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사람들에게 줄 것들이 많았다. 주로 돈으로 산 건물이나 회사, 요트, 아니면 돈 그 자체든가 아무튼, 모두 야마시타 골드로부터 나온 나의 자산들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나의 돈을 노리고 나에게 접근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세상이란 건 서로 기브 앤 테이크, 원하는 것과 가진 것을 적당히 교환하는 게 아닐까?
그게 자본주의든 사랑이든, 우정이든 어쨌든, 일방적인 것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의 돈을 원하고 나는 그것들을 돈으로 산다는 해도, 뭔가를 주고받는 거래라는 점에서는 다른 인간관계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단지, 차이라면 나에게는 엄청난 돈이 있고, 그걸 바탕으로 사람들과 원하는 거래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돈, 즉 교환할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 교환의 거래로 얻을 수 있는 것도 그것에 비례해서 많다고 할 수 있었다.
복잡하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나는 돈이 많고, 그래서 원하는 건 뭐든 다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적인 이야기다.
영진 빌딩의 펜트하우스 침실에서 나는 느긋하게 두 명의 미모의 마사지사의 손길을 즐기고 있었다.
“아, 거기 아주 좋은데요.”
“어머, 여기요? 허리가 안 좋으신가 봐요? 남자는 허리가 중요한데.”
서지영 원장은 아무래도 연륜이 있어서인지, 윤선아와는 달리 노련하고 과감한 느낌이었다. 수줍은 듯 조심스러운 선아 씨의 손길과는 달리 뭔가 내가 원하는 곳을 꾹꾹 눌러주고 있었다.
“역시 원장님이 실력이 좋으시네요.”
“어머, 언제는 제가 최고라도 하시더니, 최 사장님이 너무하세요.”
“하하, 선아 씨도 잘하죠. 그래도 원장님이 아무래도 경력이 있으셔서 그런지 뭔가 더 시원하게 근육이 풀리는 맛이 있네요.”
어쨌든 황제 마사지를 받고 났더니 몸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두 여자는 향긋한 초여름의 향기를 남기고 그렇게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나는 침대에 누워 느긋하게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펜트하우스 침실 창 너머로 파란 하늘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고, 루프탑에는 스바딜파리가 거짓말처럼 화단의 꽃들을 뜯어 먹고 있는 뭔가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이 꿈결 같은 순간은 모두 야마시타 골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즐거움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황금이 필요했다.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김영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진수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예, 플라잉 폭스를 타고 항해를 갈 생각입니다. 준비를 좀 해주세요.”
“항해요? 어디로 말인가요?”
“브라질요. 남미의 브라질로 갑시다.”
“브..브라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