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브라 섬
민소희의 신곡들은 신나는 라틴 댄스 음악으로 이국적인 항구 리우데자네이루와 잘 어울리는 경쾌한 댄스곡이었다.
거기에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섭외한 현지의 삼바 댄서들까지 동원되어서 플라잉 폭스에서는 말 그대로 흥겨운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와, 선배님, 죽이는데요.”
“죽이긴 누굴 죽여?”
민영민은 갑판 앞쪽에서 현란한 춤 실력을 선보이는 브라질 댄서들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열정의 나라 브라질답게 댄서들의 춤 실력도 화끈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주로 여성 댄서들이라 요트와 해변의 분위기에 걸맞게 브라질리언 스타일의 비비드한 비키니를 입고 몸을 흔들어대고 있자,
배 안은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님, 브라질 댄서들을 부르기 잘한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아무튼, 그렇게 신나는 선상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뮤직비디오의 컨셉이기는 하지만 컨셉이든 뭐든 칵테일까지 몇 잔 마시고 나자,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는지 실제 파티를 벌이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이 그다지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민영민도 카메라를 들고 좀처럼 보기 드문 화려한 라틴 댄서들의 춤을 찍고 있었다.
그렇게 광란의 댄스 파티가 지나가고...
***
한은정은 녹음을 위해서 리우데자네이루에 세션들을 만나기로 하고, 드디어 플라잉 폭스는 리우데자네이루 항을 떠나 자구아눔 제도로 출발을 했다.
자구아눔은 꽤 유명한 휴향지로 리우데자네이루 남서쪽에 있는 섬이었다. 본섬은 물론 리조트나 호텔이 들어서 있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해변과 요트 선착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진수가 갈 곳은 자구아눔에서 꽤 멀리 떨어진 코브라 섬이었다.
“진짜 코브라들이 득실거리는 곳은 아니겠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섬이 코브라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니까요. 물론, 한 두 마리 정도는 뱀이 있을지도 모르죠.”
자구아눔 본섬에 조금 더 항해를 하자, 문제의 코브라 섬이 보였다.
“완전히 무인도는 아닌가 봐요? 뭔가 건물도 보이고요.”
“무인도는 맞는데, 자구아눔에서 가깝기도 하고 예전에 어떤 돈 많은 부자가 개인 별장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저 섬의 주인의 아버지라는 것 같아요.”
섬은 면적이 만 제곱미터 이상에 해안선 길이가 21km쯤 되는 꽤 규모가 있는 섬이었다. 하지만 땅이 넘쳐나는 브라질에서 굳이 이런 섬에 사람이 살 필요는 없었는지 거주하는 주민들은 없는 섬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인근에 자구아눔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근처의 무인도들도 리조트나 부자들의 개인 별장으로 개발이 된 모양이었다.
코브라 섬도 그런 케이스, 섬 해안 쪽으로 선착 시설이 있기는 했지만 플라잉 폭스가 직접 진입할 정도는 아니어서 플라잉 폭스에 상륙정을 타고 섬에 상륙하기로 했다.
플라잉 폭스의 측면이 개방되면서 고속 상륙정이 내려졌다.
“와, 멋진데요.”
민영민은 역시 카메라로 상륙정이 밖으로 나오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플라잉 폭스에는 모두 세 대의 보트가 안쪽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중에 한 대였다.
상륙정이라고 해도 11미터 길이의 럭셔리한 텐더 보트로 9명이 탈 수 있는 보트였다.
보트를 타고 상륙할 사람은 나와 엔젤라 그리고 민소희 민영민 그리고 간 김에 민소희의 촬영도 할 계획이어서 촬영 스텝들과 승무원까지 모두 9명이었다.
상륙정이 내려지고 보트에 타자, 모터 보트는 경쾌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코브라섬으로 향했다.
코브라섬은 해안선이 구불구불한 모양 때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뱀은 없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선착장에 내리자, 섬의 관리인이라는 사람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로 상주하는 관리인이 있는 것은 아니고 배를 타고 주기적으로 둘러보는 정도라고 했다. 산토스라는 브라질 남자로 자구아눔의 리조트에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했다.
“섬이 아름답군요.”
“예, 환성적인 섬이죠. 육지에서 너무 먼 곳이라 생활하기는 어려운 곳이지만, 최 사장님처럼 돈 많은 부자분이라면 개인 별장으로 쓰기에는 좋은 곳입니다.”
“그렇겠네요. 이곳에서 사시는 건 아니시죠?”
“하하, 전혀 아닙니다. 저는 자구아눔 센트럴 리조트 직원이에요. 근처의 섬들 관리도 해주고 있죠.”
산토스는 30대 중반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전형적인 브라질 남자였다. 라틴계로 구리빛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열대의 섬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섬의 소개를 좀 해주시죠.”
“그럴까요? 따라오세요.”
제법 큰 섬이었지만 해안가에 전 주인이 쓰던 별장이 하나 있는 것을 제외하면 그저 자연 그대로의 섬이라고 했다.
“이 별장 외에 다른 건 없는 건가요?”
“뭐, 별로요. 보시다시피, 모래사장이 이어지는 해변이 있죠. 그리고 산도 있고요.”
“산에는 특별한 건 없나요?”
“특별한 거요?”
“뭐, 동물 같은 거 말입니다.”
“하하, 전혀요. 새들 뿐입니다. 이런 작은 섬들은 외부와 차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생태계도 아주 단순하죠.”
“뱀들은 정말 없는 거죠? 이름이 코브라 섬이라서 좀 걱정이 돼서요.”
산토스는 가끔 이곳에 오지만 뱀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뱀도 먹을 게 있어야 생존이 가능한데 여기는 새들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생태계도 굉장히 단순한 곳이라 뱀도 잡아먹을 게 없겠죠.”
“동굴 같은 건 없나요?”
“동굴요.”
산토스는 잠시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았다.
“저는 가본 적은 없지만, 산속에 동굴이 있다고는 하더라고요.”
“그래요?”
“예, 예전 주인이 동굴을 발견해서 창고로 썼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동굴이라? 왠지 필리핀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일본군들은 황금을 숨길 장소로 동굴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야마시타 골드는 주로 천연 동굴의 안쪽을 파고 인공 토굴을 만들어서 그 안에 황금을 매장한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단순히 황금을 묻어 두는 것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눈에 띄지 않게 하기에는 천연 동굴이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은 무인도는 화산 활동 등으로 생겨난 경우가 많아서 제주도처럼 해안지대나 산속에 동굴이 많기도 하고 말이다.
“그 동굴이 어디쯤인지 알 수 있을까요?”
“동굴요?”
산토스라는 남자는 약간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남미 사람들 특유의 나태한 정서라고나 할까? 놀 때는 열정적인 편이지만 일 할 때는 무기력한 것이 이 지역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았다.
“저기가 숲의 입구고 올라가는 길이 있을 거예요.”
“음, 그래요? 뭐, 그러면 다들 바쁜 것 같으니까, 일단 나 혼자 올라가 보기로 하죠.”
코브라섬에 상륙한 사람들 대부분은 민소희의 화보 촬영을 돕는 스텝들이었다. 코브라섬에 온 것도 화보 촬영을 위해 온 것이기는 했다.
물론, 그것은 위장용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화보 촬영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민소희의 솔로 앨범 홍보에 쓰일 사진들이니 말이다.
평소에 나를 따라 다니던 민영민도 코브라섬의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광에 매료되었는지 산으로 올라가는 나에게 건성으로 인사를 할 뿐이었다.
“선배님, 정말 산으로 탐험을 하러 가실 겁니까?”
“그래, 내가 산 섬인데 뭐가 있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그렇게 배낭에 삽 한 자루까지 끼워 넣고는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해변에서는 관리인인 산토스가 비키니를 입고 해변을 누비는 민소희를 끈적이는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엔젤라도 어느새 에메럴드빛의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민영민은 카메라로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 그리고 엔젤라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젠장, 다들 잘 놀고 있군..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일을 할 시간이었다. 스바딜파리는 아직 플라잉 폭스에 남아 있었다. 일단은 동굴 탐사정도니까, 스바딜파리는 필요 없었다.
산토스의 말대로 산 입구로 들어가자 풀이 무성하기는 했지만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자, 길 옆으로 다시 인공적으로 만든 나무 계단이 보였다.
이쯤인가?
계단을 올라서 산 중턱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자 진짜 제법 큰 동굴 입구가 보였다.
찾았다. 동굴이다. 산토스가 말한 그 동굴인 모양이었다. 안에 들어가 보자, 진짜 창고로 쓰려던 것인지 나무로 만든 문이 있었다.
일본군이 만든 것 같지는 않았고 비교적 최근에 만든 나무문이었다. 다행히 자물쇠는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동굴 특유의 냉기가 쏟아져 나왔다. 뭔가 묘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말이다.
아무튼, 동굴 안쪽에는 의자와 탁자 하나가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동굴의 규모가 꽤 컸다.
필리핀의 무이무이섬의 동굴의 대여섯 배는 될 것 같은 넓은 면적이었다. 그리고 길이도 깊었다.
동굴에는 문이 설치되어 있을 뿐 따로 전기 시설은 없는 것 같았다. 랜턴을 켜자, 안쪽까지 더 밝아지며 동굴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동굴이 더 크잖아? 바닥을 파면 뭔가 나올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어디를 파야 할지 좀 난감했다. 어딘가 토굴 입구가 있을 것 같지만 동굴도 크고 바닥도 훨씬 넓은 곳이라 딱 여기다 싶은 곳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역시 이럴 때는 행운의 과자가 필요한 건가?
한동안 행운의 과자를 먹을 일은 없었다. 필리핀에서 발견한 황금을 팔아서 3조가 넘는 현금이 생겼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마법 같은 행운과자의 행운이 아니어도 어디서나 친절하게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돈은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마법이고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명사회를 떠나 열대의 섬에 홀로 있는 지금은 다시 마법 같은 행운이 필요했다.
일단, 삽으로 바닥을 쿡쿡 눌러보았다. 바닥은 부드러운 흙으로 되어 있었다. 파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삽 끝으로 동굴 바닥에 금을 긋기 시작했다. 바닥 여기저기를 가로지르며 삽 끝으로 그은 선들은 바닥을 일정하게 분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누어진 바닥 위에 숫자를 하나를 써넣기 시작했다.
대략 42번까지 번호를 쓰고 나자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은 과자를 꺼내 행운의 숫자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행운의 과자는 언제나 행운의 숫자를 나에게 가져다 주었으니까, 이번에도 행운의 과자의 행운을 믿어 보기로 한 것이다.
병에서 꺼낸 과자를 입안에 넣자, 고소하고 또 이국적인 풍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브라질에 와서인가? 뭔가 남미의 열정적인 그런 달콤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입안에 이물감이 닿는 것이었다.
역시 행운의 번호인가?
스마트폰으로 확대를 시켜보자, 번호는 27이었다.
동굴 안쪽으로 좀 들어가서 평평한 땅의 가운데쯤이었다.
오..여기라면 딱인데..뭔가 동굴 안쪽의 한 가운데라는 위치라 토굴의 입구로는 적당해 보이는 위치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간사해서, 아까는 막막하고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 넓은 동굴 바닥이었지만, 행운의 과자가 번호를 골라주자, 그 위치가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아무튼, 이제는 진짜 일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만한 보상은 받을 수 있으니까, 나의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일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 하지만 나는 그 이상으로 대가를 받고 있었다.
그 이상 정도로가 아니라 이상할 정도로 어마무시한 대가를 말이다.
이번에도 열심히 땅만 판다면 야마시타 골드든, 히틀러의 황금이든 뭔가 나올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삽질을 하면서도 힘이 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물론, 뭔가 강렬한 쾌락의 호르몬이 지배하는 나의 뇌와는 달리 나의 몸에서는 과도한 근육 사용에 따른 에너지의 소모와 그로 인한 체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 빠르게 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의 뇌와 육체는 일시적으로 뭔가 불일치한 모습을 보이며 미친 듯이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삽 끝에 뭔가 묵직한 것이 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