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광 시대
브라질, 코브라 섬.
리우데자네이루로 나와 한국에서 보낸 화물들이 도착하자, 플라잉 폭스는 다시 자구아눔 제도로 출항을 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선장은 과묵한 사람이라, 자구아눔의 코브라 섬에 내가 보내는 화물 상자에 대해서 딱히 궁금해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코브라 섬에 도착하자, 상륙정에 화물들을 실어 내려놓은 플랑잉 폭스는 다시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했다.
“섬에는 혼자 계실 겁니까?”
“예, 혼자서 섬에서 지내면서 뭐랄까? 명상을 해볼 생각입니다.”
“명상요?”
“조용한 곳에서 외부와의 교류를 끊고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거죠.”
크로아타인들인 플라잉 폭스의 승무원들은 명상이니 어쩌니 하는 말에 나를 괴짜 재벌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들 입장에선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거니까, 내가 하는 일에 큰 관심을 없기도 하고 말이다.
플라잉 폭스의 선원들이 모두 철수하고 나자 나는 화물 상자들을 꺼내서 본격적인 야마시타 골드의 발굴 작업에 돌입했다.
확실히 파워 슈트는 성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마치 아스가르드의 성벽을 쌓았다는 거인이 된 것처럼 나의 힘은 성인 남자의 3배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토굴 안의 야마시타 골드는 일단, 내가 준비한 전용 상자에 담겨 동굴 위쪽으로 옮겨졌다.
한국에서 가져온 전동 도르래를 이용해서 하나씩 상자를 위로 올리고 그 후에는 다시 스바딜파리의 등에 실어 산 아래까지 내려보낸다.
그리고 다시 상자들을 코브라 섬에 지하 금고로 옮기면 되는 것이다.
“스바야, 왜 내 모습이 이상해?”
작업을 위해서 파워 슈트를 입은 내 모습이 스바딜파리에게는 낯설었는지, 한동안은 당근을 내밀어도 받아먹지 않고 좀처럼 내게 다가오지 않던 스바딜파리는 내가 당근을 계속 흔들자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와 당근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파워 슈트와 전동 도르래, 그리고 스바딜파리의 도움으로 코브라 섬의 황금들을 산 아래의 리조트의 지하로 옮기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파워 슈트를 사는데 10억을 쓰기는 했지만, 덕분에 10조 상당의 황금을 쉽게 옮길 수 있으니 확실히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었다.
필리핀에서 하던 작업과 거의 비슷했지만, 차이라면 파워 슈트 덕에 황금상자를 들거나 옮기는 작업이 한결 수월해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발굴해야 하는 황금의 양이 10배로 늘어난 상황이라
작업시간도 더 길어지고, 노동의 강도 역시 줄어들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코브라 섬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황금상자를 나르고 또 미리 준비한 컨테이너들에 황금들을 모두 옮기고 밀봉 작업까지 마치자, 겨우 코브라 섬에서의 작업이 끝난 것이었다.
이걸로 10조 어치의 작업은 끝이 난 건가?
10조원 상당의 황금은 그렇게 일단 동굴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중간중간 한국에서 가져온 소설들을 읽고 있었다.
황금연구소를 설립한 김덕수 소장들이 최근에 출판한 일제 강점기 시절의 한국 소설들이었다. 1930년대는 그야말로 황금광 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는 금광 개발을 장려하고 또 전국에 금광 개발을 허가해 주어서, 이른 바 황금광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 시대 상황은 당시의 문인들의 소설에도 영향을 주어서, 감자로 유명한 김동인은 금따는 콩밭이라는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고, 채만식도 금의 열정 이라는 소설을 썼다.
1934년의 조선중앙일보 신춘 문예 당선작은 방인희의 황금광 시대였다. 1935년에는 김동인의 노다지가 가작에 뽑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황금광 시대의 한국 소설들을 읽다보면, 마치 로또에 열광하듯 황금을 찾아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꿈을 꾸던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던 한국인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황금 동굴의 보물들을 모두 옮겨 놓고, 동굴 입구를 다시 전처럼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해 놓은 나는 느긋하게 무인도에서 며칠 더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무인도에서 명상을 하겠다는 것은 그냥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지만, 인간의 욕망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황금을 발굴하는 힘겨운 작업을 마치고, 이국적인 브라질의 무인도의 해변에서 느긋하게 1930년대의 한국 단편 소설을 읽고 있으니,
시간의 개념이라는 것도 희미해지고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흘러가는 하얀 구름 너머로 모든 것이 아득한 꿈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
플라잉 폭스, VIP 마사지실
“로빈슨 크루소우도 아니고 혼자서 2주 동안 뭘 하신 거예요?”
에니카는 어깨를 부드럽게 누르며 말했다.
“혼자는 아니었어. 거기서 여러 가지 실험들도 하고, 스바딜파리와 시간도 보내고 책도 읽고 말이야.”
“책요?”
“어, 한국의 오래된 책들이었지.”
방인희가 쓴 황금광 시대의 주인공인 순복은 마을 복덕방에 모여 다른 동네 사람들과 함께 외지 청년의 무용담을 듣는다.
이야기인 즉, 빚 때문에 팔려간 어떤 아름다운 처녀의 이야기다. 원래 둘은 애인 사이였지만 빚 때문에 처녀는 팔려가게 된 것이다. 결국 청년은 애인을 구하기 위해 금광을 찾아 나서고 고생 끝에 황금을 찾게 되는 것이다.
금을 찾은 청년은 자신의 애인을 다시 되찾아 오게 되고 둘은 금을 찾아 번 돈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청년의 이야기가 끝나자 순복은 금을 찾아 부와 사랑을 손에 쥔 청년의 행운에 감탄을 하게 된다. 순복 뿐만 아니라, 복덕방에 모인 동네 사람들은 청년이나 노인 할 거 없이 그 황금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로또에 열광하는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1930년대의 식민지 조선의 모습인 것이다. 한 세기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가난한 서민들에게 로또나 금광 같은 기막힌 행운이 아니라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황금광 시대의 순복은 황금의 이야기 매료되기는 하지만 그 시절 한국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비극적 결말로 끝을 맺게 된다.
하지만 나의 결말은 그와는 달리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1930년대의 금광을 찾던 사람들 못지않은 중노동을 2주 동안 하고 돌아왔지만, 그러고도 대부분 빈털터리로 오히려 금광 개발 비용만 날린 대다수의 조선인들과 달리, 나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막대한 황금을 발견하고 그걸 안전하게 지하 저장고에 옮겨 놓고 온 것이었다.
에니카가 어깨쪽 마사지를 하고 나자, 이번에는 한나가 들어왔다. 상큼한 향수 냄새와 함께 들어온 한나는 이번에는 다리 쪽을 마사지 해주기 시작했다.
“어머, 사장님, 다리가 많이 뭉쳤어요.”
“어, 좀 그렇죠. 코브라 섬에서 산도 올라가고 그랬더니 근육이 좀 뭉친 것 같아.”
파워 슈트는 덕분에 허리와 어깨 쪽은 힘이 덜 들었지만, 상대적으로 파워 슈트의 무게 덕분에 다리 쪽에는 더 무리가 간 것 같았다. 그래서 종아리가 많이 뭉쳐 있었는데, 한나가 부드럽게 종아리를 풀어주기 시작하자,
뭉쳐있던 근육이 풀리며 다리 쪽에 순환되는 느낌이었다.
“아아...그래 바로 거기야. 거길 좀 더 해줘요.”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황금의 양이 어마어마하군요.”
브라질에서 황금이 도착하자 김영석은 혀를 내둘렀다. 브라질의 코브라 섬에서 가져온 황금은 150톤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었다. 한국 돈으로 10조가 넘는 막대한 황금이 쿠알라룸푸르로 몰래 들어온 것이었다.
“다 처분할 수는 있는 거겠죠?”
이미 여러번 황금을 홍콩의 금거래시장에 판매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어마무시한 양의 황금이었다.
양이 워낙 많고 무게도 엄청난 황금이라, 코브라 섬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세진 로보틱스에 구매한 파워 슈트덕에 나의 허리는 무사할 수 있었지만 대신 스바딜파리는 좀 무리가 갔는지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스바딜파리는 특별히 싱가포르에 있는 동물 치료소에 보내서 요양을 시켜주기로 했다.
김영석은 일단 홍콩의 금거래상들에게 거래 의향을 타진해 보기로 했다. 워낙 엄청난 양의 황금이라 거래가 쉽게 성사될 지는 김영석으로서도 미지수라고 했다.
***
그렇게 쿠알라룸푸르에서 불안한 대기 기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홍콩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홍콩 쪽에서 거래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요? 얼마나 거래가 가능한 겁니까?”
“우리가 가진 전량을 매수하겠다고 하네요. 금이라면 얼마든지 거래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정말요?”
김영석 사장의 말로는 최근에 중국의 경제가 급성장하고 인도 역시도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이 두 나라의, 아시아의 인구 대국 두 곳의 금 수요가 급등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인도와 중국은 금을 선호하고 서민들도 금을 많이 소비하던 나라죠. 그러다가 소위 말하는 서구의 제국주의 시대에 황금이 많이 수탈이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중국은 아시다시피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개인이 황금을 소유하기 어렵게 되었던 거죠.”
그렇게 한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황금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었던 중국과 인도의 황금들은 해외로 빠져 나가는 일들이 많았지만, 이 두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고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다시 폭발적으로 금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금에 대한 수요가 많은 곳은 중국이라고 했다.
“중국의 공산당 고위층들도 그렇고 돈 많은 부자들도 그렇고 황금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싶어서 난리라고 합니다.”
“공산당의 고위층과 재벌 그런 사람들 말인가요?”
김영석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은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적인 나라죠. 아시아에서도 카드 사용량이 가장 많은 곳이 중국입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중국은 거지들도 카드로 돈을 받는다면서요.”
중국에서는 노숙자들이 동냥을 할 때도 카드 단말기로 돈을 받는다고 하니, 뭐랄까? 디지털 거래가 가장 앞서 나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은 아직도 동전 사용량이 많고, 카드 사용액이 전체 소비의 30% 정도라고 한다. 한국은 그 중간쯤 되는 것 같고 말이다.
“중국이 온라인 거래가 많고 신용거래가 활발한 곳이지만, 동시에 부정부패가 심한 곳이라 공산당 간부들 중에는 집에 현금을 쌓아놓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죠. 그런 사람들은 돈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가치가 유지되면서 은행에 넣지 않고 보관하기 쉬운 황금에 대한 수요가 엄청난 겁니다.”
“그래요?”
“최근에 비트코인이 급등하는 것도 중국 쪽의 자본과 연관이 있다는 말이 있으니까요.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재벌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아직 공산주의 사회라 잘 나가는 재벌들도 자기 재산을 안전하게 유지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중국에서 가끔씩 들려오는 뉴스들에서 자주 들어본 이야기였다. 어쨌든 부정하게 큰 돈을 번 사람들이 집 안의 금고에 막대한 현금이나 황금을 보관한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아무튼, 중국 쪽에서 금의 수요가 어마어마하다고 하니까요.”
“우리에게는 잘 된 일이군요.”
“예, 그런 거죠. 특히 최진수 사장님에게는 말입니다.”
150톤이나 되는 황금의 출처에 대해 궁금해 할 법도 한데 김영석은 묵묵하게 황금을 홍콩을 통해 처분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VVIP들을 상대하던 은행원 시절의 습관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은 수수료만 챙겨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건지, 더 이상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김영석 사장의 말대로 중국의 큰 손들이 금을 어마무시하게 사들이고 있었고 덕분에 브라질에서 1차로 들여온 야마시타 골드는 어렵지 않게 모두 처분할 수 있었다.
아마도, 부정축재로 번 돈일 것 같은 그런, 중국 쪽의 자금들이지만 어차피 나는 그런 돈의 출처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 황금을 사는 쪽도 마찬가지로 이 황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단지 서로 교환을 원하는 두 세력이 막대한 자금과 황금을 서로 교환하게 된 것이다. 태생부터 어둠의 거래였던지라 당연히 세금 같은 것도 낼 필요도 없는 그런 거래가 이루어지고,
중국에서 온 10조 이상의 자금이 김영석의 페이퍼 컴퍼니 몇 군데를 거치며 다시 돈세탁이 되어 나의 계좌들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10조가 넘는 현금이 나의 차명 계좌들에 들어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