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옥 이전
2천 4백억을 얼마 되지 않는다며 큰 소리를 치는 것은 좀 오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쩄든 나에게는 그다지 큰 돈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계약하시는 건가요?”
한송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예, 마음에 드네요. 계약하기로 하죠.”
***
가로수길, 드림엔터테인먼트 본사.
“정말요? 사옥 건물을 계약하고 오신 거예요?”
윤아영 전무는 진수의 말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되물었다.
“예, 적당한 건물을 샀으니까. 아영 씨도 아마 마음에 들 거예요.”
“위치가 어디인데요.”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곳인데...”
내가 설명을 하자 윤아영도 대충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와, 거기라면 강남에서도 노른자 중에 노른자 땅 아닌가요? 제이제이 타워라면 가격도 엄청날 것 같은데, 진짜로 그 건물을 통째로 사신 거예요?”
“물론이죠.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는 않더군요.”
2천 4백억이라면 어마어마한 가격이지만 강남불패란 말도 있듯이 강남에 부동산을 사면 가격은 오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제이제이 타워도 지금은 미친 가격에 산 것 같아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성공적인 투자가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행운의 과자의 행운으로 구매한 셈이니, 나중 일도 잘 풀릴 테고 말이다. 아직까지 행운의 과자에서 나온 인연이 나를 배신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2천 4백억이든 얼마든 비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빌딩 가격이 얼마인데요?”
“2천 4백억 원이죠. 대지 면적 기준으로 평당 9억 정도니까요.”
“2400억요? 진짜로 그럴게 비싸요? 그리고 진짜 그걸 사신 거라는 거죠?”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 소문이라는 것은 진짜 빠른 모양이었다. 내가 제이제이 빌딩을 2천 4백억 원에 매입했다는 소문은 바람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진짜야? 최진수 사장님이 강남역 사거리에 빌딩을 사서 회사를 그쪽으로 이전할 거라는데.”
“나도 들었어. 제이제이 타워라고 하는데 16층짜리 건물이라고 하더라고. 최진수 사장님이 2천 4백억에 플렉스 하셨다고 말이야.”
“빌딩 가격이 이천 사백억 원이라는 거지? 와, 진짜 어마어마한 빌딩이네.”
“뭐. 워낙에 돈이 많으신 분이니까, 그 정도 플렉스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하긴, 플라잉 폭스라고 7천억짜리 호화 요트를 타고 놀러다니는 사람인데, 그 정도야 우스운 거 아니겠어?”
“그렇기는 하다. 얼마 전에도 브라질에 갔다오셨다고 하잖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민소희 뮤직비디오도 찍고.”
“민소희는 정말 뮤직비디오 빨이야, 그걸로 유튜브 조회수도 잘 나와서 대박 난 거잖아.”
“그렇지, 난 한은정 노래가 더 좋던데, 아무튼, 민소희가 이번에 섹시 컨셉이 잘 맞아 떨어졌는지 솔로 앨범이 대박이 났으니까.”
“난 민소희 별로던데.”
“나도 그래. 그나저나 나도 최진수 사장처럼 돈 많은 남자 좀 만나봤으면.”
“그냥 사장님을 꼬셔보지 그래?”
“그래 볼까?”
여직원 휴게실에서도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새로 내가 인수한 제이제이 타워에 대한 것이었다.
두 직원이 나가자 나는 기둥 뒤에서 나와 휴게실을 나가는 여직원들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이것들이 나를 꼬시겠다고? 농담이기는 하겠지만 나를 꼬셔볼까? 라고 말한 여직원도 꽤 귀엽게 생기기는 했다. 속는 셈 치고 유혹에 넘어가 볼까?
아무튼, 강남 제이제이 타워로 회사를 이전한다고 하자, 드림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의 반응은 대환영이라는 분위기였다.
강남의 중심지라 위치도 좋고, 지하철역과 가까워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도 딱 좋은 곳이니 말이다. 그리고 건물도 신축한 새 건물이라 층고가 높아서 음악 스튜디오를 꾸미기에도 적당한 곳이었다.
신사옥으로 이전하는 일은 윤아영 전무가 맡아서 처리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연예 기획사의 사옥을 이전하는 일이라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들이 많았다.
일반적인 기업의 사옥이라면 오피스 빌딩으로 각각의 사무실과 사장실 내지는 회장실 그리고 빌딩 로비를 꾸미는 일 정도라면 충분하겠지만
연예기획사의 사옥은 소속사 연예인들을 홍보하기 위해서 입구부터 신경 쓸 것들이 많기도 했고, 지상 16층 지하 3층 규모의 빌딩을 활용해서 연습실과 녹음실 같은 특수 시설도 만들어야 했다. 거기에 대해 직원 내지는 소속 연예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에도 투자를 하기로 한 것이다.
***
“구내 식당도 필요하다는 거죠?”
“예, 아무래도 연습생들은 돈도 없고요. 그게 아니더라도, 연예인 지망생들이라 사생활 보호라는 측면에서도 좀 외부출입을 줄이는 게 필요하니까요.”
“그렇겠네요. 식사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연예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들은 기본적으로 정식 직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활동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입은 거의 없는 편이라고 했다. 물론, 비교적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라 부모님과 같은 사는 경우도 있지만,
지방에서 연예인을 꿈꾸며 무작정 상경한 케이스도 많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연습생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연습생들을 위해서 식당은 무료로 개방하기로 했다. 드림엔터테인먼트의 직원과 연습생들은 전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꽤 규모가 큰 식당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 외에 방음시설을 갖춘 녹음 시설 공사도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사옥 이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빌딩 외부에도 드림엔터테인먼트라는 간판과 대형 광고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건물 입구와 로비에도 여러 가지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광고를 하기로 했는데,
모두 소속사의 연예인들을 위한 홍보를 위해 사용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강남역의 신사옥으로의 이전이 시작되었다.
***
강남역, 제이제이 타워.
“와, 이게 최진수 선배님의 빌딩이라는 거죠?”
민영민도 소문을 듣고 새로 단장을 마친 제이제이 타워를 찾았다. 민영민의 어깨에는 오늘도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위치가 괜찮아서 인수한 건데 새로 인테리어도 하고 나니까 제법 그럴듯한데.”
제이제이 타워 앞쪽으로는 드림엔터테인먼트라는 간판과 광고판에서 나오는 드림엔터테인먼트와 소속 연예인들의 홍보 영상들이 이곳이 연예 기획사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려한 강남역 사거리 일대에 진수의 소유의 빌딩이 생긴 것이다. 이정도는 되어야 진짜 강남 건물주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새로 단장한 제이제이 타워의 간판과 전광판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여기, 연예 기획사가 들어왔나 봐.”
“그러게, 드림엔터테인먼트? 낯선 이름인데.”
“민소희 소속사라는 것 같아, 저기 전광판에도 민소희가 나오네.”
“별로 유명한 회사도 아닌 것 같은데 회사 건물은 좋은 걸 쓰네, 통째로 빌린 건가?”
“임대가 아니라 건물을 샀다고 하더라고.”
“정말? 민소희 소속사가 그렇게 돈이 많은가? 민소희가 이번에 솔로 앨범이 잘 되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돈을 많이 번 거야?”
“그건 모르겠는데, 여기 사장이 원래 돈이 많다고 하더라고, 무슨 재벌 3세라는 것 같아.”
“그래? 아무튼, 돈이 많으니까, 이런 빌딩도 샀겠지. 여기가 강남에서도 진짜 비싼 동네인데 말이야. 어쨌든 부럽다. 이런 빌딩을 가진 남자는 어디 없나?”
지나가던 회사원 정도로 보이는 두 명의 여자들은 눈앞에 보이는 내가 이 빌딩의 주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는 모양이었다.
빌딩 사진을 찍고 있는 민영민과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화려한 빌딩을 대하는 남녀의 차이는 확연히 갈리는 것 같았다. 남자들은 보통 이런 빌딩을 보면 나도 가져보고 싶다거나, 가격이 얼마나 될까? 어떻게 하면 이런 빌딩을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여자들은 대부분 빌딩의 주인인 돈 많은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하면 이런 건물주와 사귈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희망이라는 공통점은 있었다.
보통의 남자가 돈을 벌어서 이런 빌딩을 사거나, 아니면 평범한 여자가 이런 빌딩의 건물주를 만나기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영민아 사진은 이제 사진은 그만 찍고 들어가자. 안에도 보여줄 게 많아.”
“예, 선배님, 이제 사진은 다 찍었습니다.”
민영민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빌딩 로비에서부터 화려한 연예 기획사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제이제이 타워 1층은 일종의 홍보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 사옥으로 쓰는 건물의 로비는 회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니까 말이다.
1층 로비는 소속사 연예인들의 다양한 활동을 홍보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장치와 팬들이 연예인들의 굿즈에 구입할 수 있는 굿즈샵 같은 것들을 배치해서 여기가 연예 기획사 사옥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와, 예전에 쓰던 사무실과는 차원이 다르네요. 건물 위치도 너무 좋고, 지나가다가 여기까지만 들어와도 볼거리가 너무 많겠어요.”
“그래 맞아. 1층은 아무래도 지나가다 호기심에 들어오는 사람도 많고 해서 홍보 부스처럼 꾸며 놓은 거지, 음반이나 굿즈도 판매하고 말이야.”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였다. 팬들을 위해서 1층까지는 자유롭게 출입을 허가했지만 2층부터는 보안이 유지되는 구조였다.
일반적인 기업들의 사옥들이 로비부터 경비가 배치되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구조인 것과는 좀 차별화가 되는 것이었다. 1층에는 카페도 있어서 잠깐 커피를 마시기도 괜찮고, 나름 잘 꾸며진 것 같았다.
그리고 2층부터는 사원증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도록 통제가 되고 있었다. 사실상 2층부터가 진짜 사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충 이전 작업을 마무리해서인지 이미 사내 식당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선배님, 식당도 으리으리한데요.”
“좀 신경을 썼어. 아무래도 연습생들이 어린 친구들이 많잖아. 잘 먹어야 잘 크지. 안 그래?”
“그렇기는 하죠. 여기도 촬영를 좀 하겠습니다.”
민영민이야 원래 카메라로 찍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니 데리고 다니면서 촬영을 하게 해서 나중에 홍보 자료로 쓸 생각이었다.
“그래, 열심히 찍어 놔, 대신 찍은 자료들은 내가 회사 홍보용으로 쓸 거야.”
“얼마든지 사용하십쇼. 하하..저는 그저 사진 찍는 일이 즐거워서 하는 일이니까요.”
식당으로 들어서자, 식사를 하고 있던 연습생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어어..됐어. 밥 먹다가 왜 일어나고 그래? 앉아서 식사해요. 뭐,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사장이 괜히 이런데 들락거리면 민폐이기는 했다. 뭐, 그래도 나름 귀여운 여자 아이돌 연습생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인사를 해주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집이 지방이거나 좀 먼 아이들은 여기서 밥 먹고 그러면 좋겠네요.”
민영민은 조리실과 식당의 메뉴판도 자세히 찍으며 말했다.
“그렇지, 밥 먹는 게 사실 굉장히 중요하잖아? 나도 편의점 알바를 할 때 말이야...”
“편의점 알바요? 와, 선배님도 편의점 알바를 하셨어요?”
“어, 뭐, 잠깐,”
“하기는 선배님 같은 재벌가 사람들은 서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아무래도 서민생활 체험 같은 걸 하고 그러셨을 것 같네요. 유명한 정치인 중에도 버스 요금 잘못 말해서 낭패를 본 사람도 있잖아요.”
“음, 뭐, 그렇지.”
말을 하다가 편의점 알바라는 말이 나왔는데, 민영민은 내가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일종의 서민체험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메뉴판에는 가격이 없네요? 설마 다 공짜인가요?”
“그래, 직원과 연습생들에게는 다 공짜야.”
“와, 대박, 음식들 퀄리티도 장난이 아니고, 선배님 저도 사원증 같은 거 주시면 안 됩니까?”
“왜 여기서 매일 밥 먹게?”
“예, 그러면 안 되나요?”
“하는 거 봐서. 사진 잘 찍으면 사원증 하나 발급해 줄 수도 있고.”
“저..정말입니까? 선배님, 아니 사장님.”
뭐, 상관없겠지. 민영민 녀석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어?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