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앞 한강뷰 (84/200)

눈앞 한강뷰

용산구, 더좋은 부동산.

“생각보다 젊으신 분이네요.”

“하하, 그런 말을 많이 듣는 편이죠.”

김현경은 30대 초반 정도의 키가 큰 여자였다. 언뜻 모델처럼도 보이는 큰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처음에는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나를 향해 약간 의심스러운 듯한 표정을 보였지만, 내가 최근에 강남역 사거리의 제이제이 타워를 인수했다는 걸 듣고는 태도가 한결 나긋나긋해졌다.

“드림엔터테인먼트의 최진수 사장님이셨군요. 이야기는 저도 들었어요. 2천 4백억짜리 빌딩이라면서요?”

부동산업계에서는 꽤 핫이슈였는지 김현경도 제이제이 타워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제이제이 타워도 인수하시고 이번에는 고급 빌라를 찾으신다는 거죠?”

“빌라요? 예, 빌라도 괜찮겠죠. 아파트는 좀 지겨운 감도 있어서요.”

“전에는 어디에 사셨는데요?”

“성수동 트리피오 아파트라고 아시나요?”

“예, 물론이죠. 트리피오도 괜찮은 곳이죠. 그럼 평형은요?”

“56평이죠. 사실 거기에 입주할 때만 해도 꽤 큰 아파트라는 생각이었죠. 혼자 사는 곳이었고.”

김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56평형 트리피오 같은 신축 아파트면 사는 게 불편하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거기에 혼자 쓰시기에는 공간이 부족할 것 같지도 않고.”

“공간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아파트는 사생활 보호가 좀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같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말입니다. 고급 아파트라고 해도 타인은 타인이죠.”

“그렇기는 하죠.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고 싶으시다는 거군요?”

“예, 커뮤니티를 이용하면서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도 귀찮아져서요.”

김현경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글서글한 얼굴에 미소도 시원스러워서 보기에 편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사실, 아파트가 선호도가 높은 곳이기는 하지만 거주공간이라는 개념으로만 보면 고급 빌라가 더 장점이 많거든요.”

“빌라요?”

“예, 용산 쪽에는 유엔빌리지가 유명하죠.”

“어디서 들어본 것 같네요. 연예인들도 많이 사는 곳 아닌가요?”

김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사실 한강뷰가 좋은 고급 빌라들이 많은 곳인데 단점이라면 아무래도 아파트에 비해 매매가 쉽지 않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그것도 최진수 사장님 같은 수준의 분이라면 큰 문제는 안 되실 것 같고요.”

“매매가 어렵다? 그건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돈이라면 이미 많이 벌었으니까요.”

“어머, 그러세요. 부럽네요. 저도 돈 걱정 없이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역시 아버님이 돈이 많으신 거겠죠?”

뭐, 대충 그렇다고 해두자.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벗어나지 못 하는 법이니까. 내가 야마시타 골드에 대해서 말한다고 해도 김현경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마 농담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보다는 아버지가 재벌이라고 하는 편이 더 쉽게 이해할 테고 말이다.

“예, 뭐, 아버지에게 많은 걸 물려받았죠. 덕분에 돈 걱정은 하지 않고도 살고 있으니까요. 저로서는 고마운 일이죠.”

왠지 아버지 돈으로 흥청거리는 재벌가의 망나니가 된 느낌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오해를 받기는 하지만 야마시타 골드의 비밀을 지키는 데는 이편이 더 유리했다.

어쨌든, 나 같은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수십조의 자산가가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그럼, 주택 구입 예산은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세요?”

“예산요?”

사실, 돈은 신경을 안 쓰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충 집을 사는데 백억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백억이면 한국에 더 좋은 집은 없는 거 아닌가?

“사실, 가격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집이라면요. 괜찮은 최고급 주택들은 가격이 얼마나 하나요?”

“음, 가격은 상관이 없으시다는 거죠? 와, 정말 부럽네요. 저도 백화점 명품 코너에서 최진수 사장님처럼 한번 말해보고 싶어요. 가격은 상관없어요, 이렇게 말이에요.”

“뭐, 진짜로 가격은 상관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집이 마음에 드냐? 하는 거죠.”

“그러시다면 괜찮은 신축 빌라가 있는데 한 번 보시겠어요?”

***

유엔빌리지, 센트럴 파르크

김현경의 소개로 간 곳은 고급 빌라들이 많은 유엔빌리지였다. 한강이 잘 보이는 한강뷰가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고, 조용한 고급빌라촌으로 사생활의 보호를 원하는 돈 많은 자산가나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그중에서 예전 호텔부지에 새로 신축한 센트럴 파르크는 위치나 화려함에서 현재 유엔빌리지에서 가장 주목받는 고급 빌라라고 했다.

유엔빌리지까지는 나의 벤테이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6대가 주차 가능한 세대별 독립 주차장이 나타났다.

“여기는 주차장이 작은 건가요?”

“작은 건 아니고요. 주차장이 세대별로 분리되어 있어요. 세대당 6대가 주차 가능하니까, 공간은 충분한 편이죠.”

“오, 세대당 6대요?”

뭐, 나 같은 경우에는 아이케이 빌딩의 주차장을 이용해서 주차장 걱정은 없지만, 아파트나 빌라에 세대당 6대의 주차공간이라면 상당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만큼 고급 빌라라는 말이기도 하고 말이다.

“여기는 몇 세대가 입주하는 겁니까?”

“세대는 모두 17세대고요. 최진수 사장님이 보실 곳은 5층과 6층 루프탑을 쓰는 펜트하우스입니다.”

김현정 말로는 이곳의 빌라 가격은 120억에서 170억 정도라고 한다. 17세대로 세대수가 적지만 층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고가의 170억짜리 펜트하우스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

센트럴 파르크, 펜트하우스

“와, 전망은 최고인데요.”

서울에서 흔히 한강뷰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한강뷰에도 등급이 있고, 이곳은 정말 탑클라스의 한강뷰라고 할 수 있었다.

“한강뷰 이야기를 하는 아파트들이 많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눈앞 한강뷰는 여기가 아니면 볼 수 없죠.”

거실로 들어서니까, 김현정의 말대로 한강이 정말 눈앞에 있는 것처럼 한강이 아주 가까이에서 내려다보이는 그런 한강뷰였다.

빌라 자체는 78평형으로 마스터룸과 서브 베드룸, 서재와 작업실로 쓸 수 있는 서브룸 2개가 있었다. 거기에 영화관과 스크린 골프장, 와인 셀러 등도 있는 나름 고급 빌라의 요건을 갖춘 곳이었다.

“170억짜리 빌라치고는 그리 크지는 않네요?”

나의 말에 김현정은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펜트하우스라 위쪽에 루프탑 공간이 있습니다. 한 번 올라가 보실까요?”

위쪽 계단으로 올라가니까, 개방감이 정말 좋은 루프탑이 나타났다. 면적만 놓고 보면 영진빌딩의 루프탑보다는 좁은 것 같았지만 이곳의 장점이라면 역시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눈앞 한강뷰였다.

옥상에 올라가자 탁 트인 느낌과 함께 한강이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느낌적인 느낌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날씨도 화창해서 한강의 잔물결에 햇살이 반사되며 어딘지 한가롭고 평화로운 기분도 들었다.

물론, 도로와 너무 가까워서 소음이 있기는 한 것 같았지만 나는 원래 소리에 민감한 스타일은 아니어서 그다지 거슬리는 것은 없었다.

“어떠세요? 눈으로 즐길 수 있는 한강과 서울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펜트하우스 아닌가요?”

“그런데 한강뷰가 그렇게 주택 가격에 큰 영향을 주나요?”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 다들 한강뷰에 집착하는가? 한강이 그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아무래도, 그렇죠. 한강뷰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한강이 진짜 잘 보이는 곳은 드물거든요. 서울은 세계적인 메가시티니까요. 사실 인구의 대부분이 한강뷰는 고사하고 다닥다닥 붙은 옆 건물을 보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서울 시민들에게 한강이 보이는 여유로운 환경은 말 그대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거죠.”

“그렇기는 하네요. 반지하에 사는 사람도 많고요.”

나 역시도 돈 없는 편의점 알바 시절에 그나마 탁 트인 느낌이 있는 옥탑방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한강이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한강이 보일 정도로 주변 공간에 여유가 있는 곳들이 주거 환경도 좋은 곳이기는 할 것 같았다. 서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구가 너무 많은 곳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로 모든 편의시설이 다 갖추어진 곳으로 이곳을 떠나서 시골로 가서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서울이 가진 편의성과 거기에 마치 지방의 한적한 전원주택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한강이 보이는 전망이 좋은 지역들이 각광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투자 가치로는 어떤가요? 지금 분양가가 170억이라는데, 가격이 더 오를까요?”

김현정은 살짝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최고급 빌라는 사실 가격 상승은 크게 기대하시기는 어려워요. 분양가가 워낙 높기도 하고 이미 분양가에 빌라의 가치가 대부분 반영되었다고 보시면 되고요. 그리고 아파트처럼 세대수가 많은 곳은 아니니까요. 거기에 주변 환경도 학군이나 역세권이라는 개념보다는 프라이버시 보호에 강점이 있는 곳이죠.”

“한 마디로 부자들이 플렉스하는 곳이라는 거군요?”

김현정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저도 부동산 중개를 하다 보니까, 돈 많은 자산가들이나 연예인들도 많이 보지만, 이런 고급 빌라는 진짜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그래요?”

“진짜 연예인들 중에서도 한류 스타급이나 진짜 돈 많은 사업가들이 이런 곳에 사는 거죠. 어중간한 부자들은 집이 자산의 대부분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tv에 자주 나오는 스타급 연예인도 재건축을 기다리면서 강남의 낡은 아파트에 사는 분도 있더라고요.”

“그래요?”

“예, 가격은 40억이 넘는 아파트가 가보면 정말 가관인 곳도 많아요.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랄까요?”

“하긴, 어지간한 강남 부자들이라고 해도 아파트가 재산의 전부인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아파트 한 채 가격이 40억, 50억이라면 그 한 채만으로도 서민 기준으로는 엄청난 부자이기는 하다, 로또 1등에 다섯 번은 당첨되어야 그런 낡은 강남 아파트 하나를 살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아무튼, 돈 좀 있다는 강남 주민들도 아파트의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당장의 쾌적한 생활보다는 재건축으로 가격이 상승하기만을 기다리면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 같은 진짜 부자들에게는 남들이 투자 목적을 생각하면 쉽게 살 수 없는, 아니 170억짜리 빌라는 가격 때문에라도 살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어지간한 부자들도 꿈꾸기 힘든, 이런 최고급 신축 빌라, 그것도 이 센트럴 파르크에서 최고가인 펜트하우스를 사는 것도 나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일단,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그리 넓은 빌라는 아니었다. 유엔빌리지에서도 최고가라고 해서 한 2백 평쯤 되지 않을까 했는데, 우리나라 서울에서 그런 빌라는 불가능해 보이고 아무튼, 기대보다 사이즈는 좀 작았지만,

대신 한강뷰는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오늘은 날씨가 화창해서 한강을 배경으로 서울의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것이다.

“한강뷰가 너무 맘에 드네요. 빌라 자체의 컨디션도 신축이라 그런지 최상인 것 같고요.”

“그럼 계약은?”

“좋습니다. 170억짜리 신축 빌라라 나쁘지 않은 가격이네요.”

투자 가치는 조금 떨어지는지 몰라도, 대지 지분도 많고 나중에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는 김현정의 말도 있고 해서, 센트럴 파르크의 펜트하우스을 계약하기로 했다.

***

제이제이 타워, 드림엔터테인먼트 사장실.

“센트럴 파르크요? 유엔빌리지 말이죠?”

센트럴 파르크의 펜트하우스를 계약했다는 말에 윤아영은 감탄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윤아영 씨도 알아요?”

“그럼요? 거기 이번에 신축했다고 해서 친구랑 한 번 구경간 적도 있었는걸요.”

“빌라를 사려고요?”

“아뇨, 그냥 그런 건 아니고. 친구가 부동산 쪽 유튜버를 하거든요. 촬영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간 거였죠. 저도 센트럴 파르크라면 진짜 최고급 빌라고 한강뷰도 끝내준다고 해서 진짜 어떤 곳인지 많이 궁금했었거든요.”

전형적인 강남 여자 스타일의 윤아영이라 그런지, 고급 빌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마치 새로 나온 로봇 장난감을 구경하는 어린아이 같은 설렘적인 설렘 같은 것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이번에 계약을 했는데 그럼 한번 놀러 올래요?”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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