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신은 고양이
“정말이야, 우리 아들이 드론을 만드는 회사 사장님이라고?”
“아, 예, 그렇게 됐어요.”
교회에 다녀오신 엄마는 동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반색을 하셨다.
그동안 내가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리고, 집도 새로 지어 드렸지만, 내가 로또에 당첨된 돈으로 주식 같은 걸 하나보다 생각하시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로또에 당첨된 돈으로 사업을 시작한 거지?”
“예, 그런 셈이죠.”
어머니에게도 그냥 복잡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고 대충, 로또 1등에 당첨된 돈으로 벤처 기업을 차려서 성공했다고 말씀 드렸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었지만, 부모님들은 그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아들이 번듯한 벤처 기업 사장이 되었다고 진심으로 기뻐하시는 모습이셨다.
“신통하기도 하지, 어떻게 저런 드론을 만든 거야? 진수 너는 손재주는 없었잖아?”
“엄마는 무슨 벤처 창업을 하는데 손재주가 무슨 상관이에요? 저는 그냥 돈을 투자만 하면 기술 개발을 따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 아무튼 tv에서 드론이라는 건 많이 봤는데, 저런 큰 드론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역시 내가 새벽마다 기도를 해서 그런가? 우리 아들 사업이 승승장구 하는 것 같으니 말이야.”
엄마는 어쨌든, 아들 잘되게 해달라고 시간 날 때마다 기도를 하시는 모양이었다. 무신론자인 나는 종교에는 무심한 편이지만, 어떤 심리학자 말이 종교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헛된 믿음이라도 인간에게는 어떤 희망을 주고 그건 삶의 희망과 행복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모든 인간은 백 년을 살지 못하고 죽게 마련이다. 지구의 역사가 45억 년이고 인류가 몇만 년의 역사가 있다고 해도, 사실상 인간에는 최대 백 년의 삶이 있을 뿐이다.
주관적인 관점에서 모든 세계는 백 년 정도의 시한부의 세계일 뿐이고 인간의 죽음과 함께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삶이란 무의미하고 돈이든 사람이든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하지만 대충 거짓이라도 뭐라도 믿으면서 마치 죽음이라는 건 나를 피해갈 것이라고 믿으며 죽기 전까지 죽음이라는 것은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엄마가 교회 목사님의 말이라면 뭐든 믿고, 쓸데없는 기도를 하고 헌금을 내든 말든, 그게 어머니의 인생에 어떤 안정감을 준다면 그걸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인간이란 어차피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뿐이니까 말이다.
부모님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내가 드론 회사 사장이라고 믿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엄마는 내가 드론 회사 사장이라는 것으로 충분히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었고, 더이상은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으셨다.
“오늘은 집에서 자고 갈 거지?”
“서울에 일이 있어서요. 저녁만 먹고 올라가 보려고요.”
오랜만에 내려온 시골집이었지만 서울 생활에 익숙해져서인지 고향 동네는 좀 답답한 느낌이었다.
“그럼, 엄마가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조금만 기다려.”
“예. 2층에 올라가 있을게요. 다 되면 부르세요.”
부모님 집을 새로 지어드리면서 주로 부모님들의 생활공간은 1층에 마련하고 2층은 옥상과 내 방을 배치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시니까 계단을 올라가는 일은 피하는 게 좋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2층에는 별로 쓸 일은 없지만 내 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2층의 내 방에는 내가 집에 왔을 때 잘 수 있는 침대와 전에 내가 쓰던 물건들이 좀 어수선하게 보관되고 있었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내 방을 둘러보니, 집은 달라졌지만, 예전에 쓰던 책상이며 책들이며 내 추억이 묻어 있는 물건들이 보였다.
책장에는 어렸을 때 내가 읽던 동화책 같은 것들도 있었다.
“음, 이건, 뭐지? 장화 신은 고양이?”
어렸을 때 재밌게 봤던 동화였다. 가난한 젊은이가 고양이에게 장화와 옷을 구해줬더니 고양이가 젊은이의 부하가 돼서 도움을 주는 그런 이야기다. 고양이가 도움을 주는 방식은 젊은이를 거짓말로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가난한 주인공을 거짓말로 부자라고 속여서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게 해주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말미에는 진짜 부자, 장화 신은 고양이가 젊은이의 재산이라고 속인 영지의 진짜 주인이었던 마왕의 성으로 가게 되고, 마왕을 속여서 쥐로 만들어서 꿀꺽 삼켜버려서 젊은이를 마왕의 성의 진짜 주인으로 만들어주게 된다. 그리고 가난한 젊은이는 진짜 부자가 되어 미녀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살았다는 그런 뷰디풀한 결말인 것이다.
군대에서 소대장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소대장님은 특이하게 고양이가 장화를 신었다는 것이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데렐라처럼, 신발 때문에 지위가 변했다는 것인데, 장화를 구해주자 고양이는 평범한 고양이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고양이가 되게 된다. 서양에서 신발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고흐의 구두 그림도 그래서 유명한 거고 말이다.
아무튼, 신발, 즉 그 사람의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고양이는 장화를 신고 뛰어난 인재가 되었고, 가난한 젊은이는 변변찮은 백수에 불과했지만, 마왕이 가졌던 영지와 성을 차지하고 나자, 젊고 멋진 전도유망한 돈 많은 젊은 귀족이 되어서 아름다운 여인에게 최고의 신랑감이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이란 내면에 본질적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외형, 지위나 돈, 그가 가진 껍데기가 오히려 인간의 진정한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그런 의미적인 의미가 있는 동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마치, 내가 돈을 벌고 빌딩을 사고, 멋진 슈퍼카들을 사고, 고급 주택과 회사를 사들이게 되면서 성공한 유능한 사업가라고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껍데기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지도 몰랐다. 내면에 진짜라고 할 수 있는 뭔가가 더 있는 것은 아니다.
장태식 회장 같은 진짜 재벌들도 단지 돈이 많을 뿐이잖아? 그리고 나도 장태식 회장처럼 돈이 많으니까, 진짜 부자고 진짜 재벌인 것이다.
중요한 건 껍데기니까 말이다.
“진수야, 저녁 준비 다 됐어. 밥 먹어.”
“예, 오랜만에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어 볼까요?”
1층 주방으로 내려가서 엄마가 차려준 찌개며 밑반찬이 차려진 집밥을 먹으니 진짜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
***
볼로 드론 코리아 본사.
“드론의 성능은 마음에 드시나요?”
서종수 사장은 드론을 테스트하고 돌아온 나의 반응을 물었다.
“마음에 드네요. 드론이 좀 크기는 하지만 그거야 큰 상관은 없고요. 간단하게 조작이 가능하고 무거운 화물을 옮기기에 딱 좋은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참, 그런데 이 드론은 다 수입을 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독일에 본사가 있죠.”
“한국에서는 드론을 생산하는 회사는 없나요?”
“드론요? 없는 건 아니지만, 드론 쪽은 중국이나 미국이 많이 앞서 나간 분야라서.”
“그래요? 중국도요?”
서종수 사장도 한때는 드론을 개발하려고 창업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드론 분야에서는 중국 쪽이 워낙 독보적이라 한국 기업들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했다.
“중국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가 드론 기술을 선도하는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생산이라는 면에서 보면 중국 회사들이 많이 앞서 있고요.”
“기술은 미국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기본적인 과학 기술이나 드론 개발 기술은 미국도 좋지만, 생산을 하려면 공장이나 인력도 필요하니까요. 기술력에 생산력까지 합치면 아무래도 중국 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앞서나가는 편입니다.”
한국이 중국보다 드론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의외라는 생각이었다.
“한국은 드론 기술은 많이 떨어지나요?”
“아무래도, 조금 투자가 늦었다고 봐야죠. 원래 드론이야 군사용으로 개발된 기술이라 미국은 일찍부터 발달이 되었고, 중국도 군사적 가치에 주목해서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죠. 거기에 생산력을 갖춘 드론 기업들이 나타나면서 급성장한 케이스죠.”
그에 비해서 한국은 항공이나 드론 관련 연구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이미 드론 시장을 중국이나 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대표하는 드론 기업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도 현실적으로 드론 쪽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창업은 포기하고 대신 수입 판매 회사를 설립한 겁니다.”
“음, 그래요? 아쉽네요.”
“하하, 국산 드론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말인가요?”
“그런데 서종수 사장님은 이제라도 드론 개발을 해보실 생각은 없나요?”
“제가 말입니까?”
“오현준 사장님과 같은 학교 동기였다면서요? 서울대 컴공과요. 오현준 사장님은 파워 슈트를 개발해서 로봇 분야에서 나름 성공을 하신 것 같던데.”
“현준이와 저는 입장이 다르죠. 사실 현준이도 그렇게 성공했다고 할 정도는 아닌 걸로 알지만 말입니다. 오현준 사장은 그래도 투자를 받아서 그럭저럭 시제품 개발에는 성공을 했지만 저는 투자 단계에서부터 막혀 버렸죠. 그렇다고 제가 금수저라 집에서 창업 자금을 대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입니다.”
“그래요? 돈만 있으면 드론을 개발할 능력은 있으신 겁니까?”
“뭐, 자금만 있다면 못 할 건 없죠. 지금도 드론의 수입 판매 회사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드론을 연구하는 일도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누가 투자를 하겠습니까?”
“천억 정도 투자를 하면 드론을 개발할 수 있을까요?”
“예?”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드론 회사를 한 번 창업해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진심이신 겁니까?”
서종수도 대충 내가 돈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드론 구매 계약을 하면서 새로 인수한 제이제이 타워 이야기도 했고, 페라리를 타고 회사를 찾아오기도 했으니까, 내가 상당한 자산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지금 가진 현금이 10조 이상이라는 것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이로 봐서 대충 재벌 3세 정도 되는 젊은 재력가라는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내가 갑자기 드론을 개발하고 싶다면서 천억의 돈을 투자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 세진 로보틱스의 오현준 사장에게 처음 이곳을 소개받을 때 오현준 사장이 서종수 사장을 대단한 천재라고 했던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자기의 학교 동기 중에서 가장 똑똑했던 동기라고 말이다. 서울대 컴공과 출신들 중에서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면 상당한 능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금이 부족해서 드론 회사를 창업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드론 판매 사업을 할 정도로 드론에 관한 애정도 있는 것 같고 말이다.
그런 서종수에게 창업 자금을 투자하면 드론 회사를 창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 드론 개발에 투자를 하시겠다면 저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갑자기 드론 회사를 창업하시려는 이유가 뭔가요?”
서종수는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이유는 별 게 아니라 시골에 내려가서 동네 어른들 앞에서 내가 드론 회사 사장이고, 가져간 대형 드론을 내가 창업한 회사에서 개발한 거라도 뻥을 쳤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악의적인 목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하지 않던가?
장화 신은 고양이의 가난한 젊은이도 자기가 대단한 영지를 가진 부자 영주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나중에 진짜 영지와 성의 주인인 마왕을 죽이고 그의 재산을 차지하게 돼서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나니까 말이다.
나 역시도 거짓말로 드론 회사 사장이라는 허풍을 친 것이지만 진짜 드론 회사를 만들어서 거짓을 진실로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는 마왕을 제거해줄 장화 신은 고양이는 없지만 대신 자본주의 시대의 장화 신은 고양이라고 할 수 있는, 야마시타 골드를 팔아 돈세탁까지 마친 10조가 넘는 현금이 있었다.
이 정도 돈이면 드론 회사를 차려서 거짓을 진실로 바꾸는 일도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돈은 제가 투자를 할 테니까? 어떻습니까? 드론 회사를 창업해 보는 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