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드론 회사를 창업하자는 나의 말에 서종수 사장은 잠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뭐, 그러시죠. 대답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한남동 유엔빌리지, 센트럴 파르크
“와, 정말, 한강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요.”
윤아영은 잔뜩 들뜬 목소리였다.
“마음에 들어요?”
고향에 다녀온 동안 이사업체가 이사를 마치고 센트럴 파르크 빌라에 입주하게 된 것이다. 돈이 많고 부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별다른 짐은 없었다. 가전제품이나 가구들은 트리피오에서 가져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트리피오 아파트는 아직 팔리지 않았다는 건가요?”
“팔리지 않은 게 아니라, 팔 생각도 없어요.”
“왜요?”
“뭐, 그냥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잖아요?”
“그러면 세금 문제라던가? 그런 게 있지 않나요?”
“별로요. 세금이야 많이 내면 좋은 거 아닌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탈세라면 이미 충분히 하고 있었다. 김영석 사장은 카리브의 섬나라들을 통해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드는 방법으로 나의 돈세탁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야마시타 골드를 매각한 돈에 대해서는 세금을 한 푼도 내고 있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내가 한국에서 쓰는 돈은 해외에서의 투자금 형식으로 들어오는 돈이었다.
트리피오에서 한남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아파트를 팔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귀찮기도 하고 내가 서민들처럼 집 한 채만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팔지 않고 보유하기로 했다.
“최 사장님은 재밌는 분이세요. 나라를 위해서 세금을 부자들이 많이 내야 좋은 일이라는 그런 의미인 거죠?”
“뭐, 그런 셈이죠. 세금이 있어야 나라가 돌아갈 거 아닙니까? 아스팔트도 깔고 말이에요.”
세금을 한 해에 200조쯤 나라에서 쓴다고 하는데, 아마 쓸데없이 아스팔트를 깔고 보도블록을 놓고 하는 데 나가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그런 면에서 새어나가는 세금이 많은 나라다. 특히, 지방에 가면 그런 일들이 많다. 나 역시도 지방 출신이지만, 지방의 자치단체는 대부분 재정적자 상태이다.
자기들이 걷는 세금보다 돈을 더 많이 쓴다는 것이다. 낙후된 시골에는 세금을 낼 회사들도 없고 고소득자들도 적어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인데 그래도 한국 지방 자치의 특성상 자치 단체장들은 다리를 놓고 도로를 놓는 일에 돈을 펑펑 쓰게 마련이다.
그런 적자들은 도시에서 걷은 세금으로 충당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쓸데없이 나가는 세금이 상당한데 시골 사람들은 순진하게 나라에서 세금을 많이 따낸다고 좋아하며 별 도움도 안 되는 다리와 도로들에 열광을 하니 말이다.
“하긴, 돈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많이 내야 선진국이 되겠죠. 아무튼, 돈 걱정은 없으신 모양이네요. 보통 사람들은 새로 이사를 하면 이전에 집은 팔고 그 돈으로 새집을 사는 데 말이에요.”
“제가 그런 서민들은 아니니까요.”
“역시, 대단한 재벌 가문이라는 거죠?”
“저는 집안 이야기는 잘 안 합니다. 아버님이 어디 가든 겸손하라는 말씀을 항상 하셨거든요.”
“좋은 아버님을 두셨네요. 많은 걸 물려주셨으니 말이에요.”
“하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번에도 고향에 내려갔더니, 직접 농사를 지으신 고구마도 주시고 어머니도 서울 가서 먹으라고 김치며 밑반찬들을 싸주셨으니까 말이다.
돈이 많아서 강남의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들을 즐겨 먹는 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인은 집밥을 먹어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엄마의 손맛이 담긴 반찬들이 딱 내 입에 맞았다.
“냉장고에는 반찬들이 많이 있네요. 이런 건 다 사서 드시는 거죠?”
“아, 만들어 주시는 분이 계세요.”
“음, 그러시구나. 도우미 아줌마 그런 분요?”
“하하, 뭐 비슷하죠.”
집이 워낙 커서 청소를 해주시는 아주머니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반찬은 주로 어머니가 만들어서 보내주신 것들이지만 말이다.
윤아영은 나의 냉장고를 보더니 이것저것 신기한 모양이었다.
“저는 대재벌이라고 하셔서, 뭔가 특별한 걸 먹을 줄 알았는데, 반찬 같은 건 그냥 평범하네요.”
“돈이 많을 뿐이지 그 외에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죠.”
윤아영은 전부터 유엔빌리지의 고급 빌라들에 관심이 많았었다고 했다. 마침 내가 이사를 왔다고 해서 초대에 응한 것이었다.
“아영 씨도 유엔빌리지 같은 고급 빌라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그냥 관심만 많아요. 아마 여자들은 다 그럴걸요. 여자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이런 예쁜 집들이잖아요.”
“그래요? 난, 여자들은 명품백이나 그런데 더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백이야 집에 비하면 별거 아니잖아요. 침실도 좀 구경해도 되죠?”
“마음대로 구경하세요. 아영 씨 집이라고 생각하고요.”
“제 집요?”
편하게 구경하라고 한 말이었는데, 윤아영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볼이 발그레해진 것 같았다. 수줍은 여자의 볼은 왠지 매력이 있다. 나를 남자로 생각하고 얼굴이 빨게진 건가?
왠지, 상상이 되었다. 윤아영 같은 예쁜 강남 스타일의 미녀와 이런 집에 같이 살게 되는 상상 말이다.
한강이 눈앞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눈앞 한강뷰가 내려다보이는 넓고 쾌적한 침실, 널찍한 고급 침대 위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오른쪽으로는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왼쪽으로는 아직 잠이 들어 있는 아름다운 윤아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와, 한강이 정말 가까이 보여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이런 환상적인 뷰가 보인다는 거죠?”
잠에서 깨어난 윤아영은 옷을 입기 위해 드레스룸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 환상적이네요.”
“후후, 최 사장님은 여기가 집이잖아요. 매일 이런 멋진 걸 보실 거면서...”
“매일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네요.”
“창문 열어봐도 돼요?”
“그럼요.”
드레스룸에서 짧은 핫팬츠를 입고 나온 윤아영은 침대로 뛰어들어서 나를 껴안고 볼을 부비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를 깨우려는 듯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와, 창문까지 여니까, 더 상쾌한 것 같아요.”
창을 열면 소음이 있는 편이지만 소리에 민감한 편은 아니라 뭔가 도시의 생동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오히려 나는 너무 조용한 것보다는 이렇게 차들이 다니는 소리가 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창을 닫으면 조용하기도 하고 말이다.
“일단 한강뷰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거기에 날씨도 좋아서 오늘은 정말 천국에 온 그런 기분이에요.”
“저도, 그렇네요.”
윤아영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나에게 장난스럽게 키스를 했다. 처음에는 잠을 깨우려는 듯 눈에 키스를 하더니 그다음은 이마, 그다음은 입술, 그리고 목덜미, 점점 아래로 내려가며 계속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런 데 살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것 같아요.”
“상상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어쩌면 현실보다 상상이 더 즐겁고 행복한 순간 아닐까요?”
“그런가요? 하긴, 저 같은 서민들은 상상으로만 즐겨야겠죠.”
“아마, 천국은 상상 속에 있을 것 같아요. 저도 항상 상상을 즐기는 편이죠.”
“드레스룸에는 뭐가 있어요.”
“궁금하면 열어 보세요.”
윤아영의 모닝 키스 공세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윤아영의 손에 이끌려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꿈속의, 아니 나의 상상 속의 윤아영은 신기하게 한 마디도 말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윤아영은 드레스룸에 있는 수많은 화려한 원피스와 스커트들 중에서 오늘 어떤 걸 입을지 골라 주기를 바랐다.
“와, 이게 드레스룸이에요? 웬만한 아파트 거실 크기인데요.”
“예, 드레스룸이 좀 크기는 하더라고요. 고급 주택이라는 걸 감안해도 말이에요.”
연예인들이 많이 입주할 걸 기대하고 만들었다는 말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펜트하우스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공간에 비해서 드레스룸이 좀 큰 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옷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넓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그러게요. 사장님은 옷을 좀 사셔야겠어요.”
내 옷은 별로 없지만, 윤아영은 옷이 너무 많아서 드레스룸은 이미 꽉 차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봄날의 화창한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청량한 흰색의 원피스를 골랐다.
윤아영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하얀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흰색을 좋아하시나 봐요?”
“예?”
“옷이 흰색과 검은색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블랙 앤 화이트가 패션의 기본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죠.”
“아영 씨도 흰색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제가요? 전 흰색은 싫어해요.”
“왜요, 전 흰색 옷을 입은 여자들이 예쁘던데. 뭔가 청순해 보이잖아요.”
“어머, 징그럽게, 왠지 변태 같아요. 변태들이 흰색을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벼..변태요?”
“사장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무슨 심리학책에 그런 말이 나왔어요. 저는 무책색보다는 비비드한 컬러가 좋거든요.”
윤아영은 흰색의 드레스를 벗더니 이번에는 생동감이 넘치는 핑크색 미니 원피스를 입었다. 슬림하게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는 한결 섹시한 느낌이었다.
“핑크색도 잘 어울릴 것 같네요.”
“핑크색이라면 좋죠. 여자들은 역시 핑크 아니겠어요.”
윤아영은 특히 옥상의 루프탑 공간을 마음을 마음에 들어했다. 둘이 테이블에서 커피도 한잔 하고 있으니 정말 야외의 분위기 좋은 카페에 와 있는 기분도 들고 말이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서종수 사장이었다.
“여보세요, 서 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최 사장님이 지난번에 말씀하신 드론 사업 말입니다.”
“아, 생각해 보셨나요?”
“예, 저에게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까 싶더군요.”
“그래요? 그러면 같이 드론 회사 창업을 하시겠다는 거죠?”
“예,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이런 행운은 제 인생에 이번 한 번뿐일 것 같습니다.”
“하하, 행운의 기회라? 좋습니다. 저랑 사업을 하시면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전 항상 운이 좋은 편이니까요.”
“그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투자금은 지난번에 말씀하신 천억이 확실한 거죠?”
“예, 투자금은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사업 준비를 해주세요.”
통화를 하고 있는 나를 윤아영이 힐끔거렸다.
“어디 또 투자를 하세요?”
“예, 드론 회사에 투자를 하려고요. 한국에 제대로 된 드론을 만드는 회사가 없다고 해서 직접 창업을 할 생각입니다.”
“드론요?”
“예, 앞으로는 드론이 미래의 유망 사업이 될 거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드론으로 택배도 하고 그러면 좋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그러면 택배기사들은 실업자가 되는 거 아닌가요?”
뭐야? 그렇기는 하네, 택배기사님들이 수고하시는데, 다들 실업자로 만들어드리는 건가?
“뭐, 그거야, 미래의 일이죠. 아직 기술이 그 정도로 발전하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제가 해외에서 하는 일에 드론이 좀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 천억 정도 투자해서 국산 드론을 개발해볼 생각입니다.”
“천억을 참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시네요.”
“저에게는 별거 아니니까요.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사실, 나에게 천억이라는 돈은 정말 별거 아니기는 했다. 지금도 이미 10조가 넘는 현금이 있고, 앞으로 그건 100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행운의 과자로 그 돈을 불려 나가면, 2백조가 넘어서 일론 머스크보다 더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10조..100조..200조, 재산이 늘어날 때마다, 나의 인생도 업그레이드되는 것일까?”
지금 10조만 가지고도 내 인생은 황금빛, 아니 장밋빛으로 달콤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커피가 좀 달아요. 최 사장님은 달달한 걸 좋아하시나 봐요?”
“인생이든 커피든 달콤한 걸 좋아하죠. 식사나 하러 가시죠.”
주차장에는 3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회사에서 윤아영을 태우고 온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와 얼마 전에 산 두 대의 페라리였다.
“레스토랑에는 페라리를 타고 갈까요? 날씨도 좋은데요.”
“그럴까요? 저야 좋죠. 페라리는 처음 타보거든요.”
“그래요? 재밌을 겁니다.”
버튼을 누르자 하얀색 페라리 F8 스파이더의 탑이 열렸다. 밖은 컨버터블을 타기에 좋은 봄 날씨였다. 주자장을 나와 도로로 들어서자 하늘은 파랗고 어디선가 신선한 꽃향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