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아이케이 빌딩, 15층
“일단은 여기를 사무실로 쓰도록 하세요.”
새로 설립한 드론 개발 회사의 이름은 이카로스 항공으로 하기로 했다.
“이카로스라면?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 아닌가요?”
서종수 사장은 이카로스라는 말에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예, 하늘을 날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 인물이죠. 한국의 드론 회사 이름으로는 괜찮지 않습니까?”
서종수 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네요. 드론이라는 것이 비행을 하는 기계장치이기도 하고 또 새롭게 시장이 커지고 기술도 개발되고 있는 중이니까요.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 싶어하던 이카로스의 꿈은 아직도 진행 중인 셈이죠.”
뭐,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냥, 신화 속의 인물 중에서 하늘을 나는 것과 관련된 이름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뭐, 이름은 아무래도 좋으니까, 일단은 여기를 사무실로 해서 회사를 설립하도록 하죠. 대표이사는 제 이름으로 해도 좋겠죠?”
“물론입니다. 최진수 사장님이 자본을 투자하시는 거니까요.”
“그럼, 사장은 제가 하는 걸로 하고, 서종수 사장님은 부사장을 하시면 되겠네요.”
“하하, 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이든 부사장이든, 회장이든 뭐, 그다지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기왕이면 사장이 좋잖아. 내가 개인 사무실로 쓰던 아이케이 빌딩의 15층은 이제 이카로스 항공의 새로운 사무실이 되었다.
“이카로스 항공요? 항공사를 차리신 거예요?”
“아냐, 희진 씨. 드론을 개발하는 회사야.”
“그래요?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희진 씨는 그냥 하던 일을 하면 되는 거지 뭐, 전에 하던 것처럼 건물 관리도 하면서 내 개인 비서도 하면 되잖아. 괜찮지?”
“일이 많아지는 거네요?”
“대신 연봉도 올려줄 테니까.”
“어머, 정말요?”
월급을 올려준다는 말에 이희진은 반색을 했다. 특별히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내 개인 비서 업무라고 해도 특별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사무실 인테리어는 새로 하기로 했다. 내 사무실에도 사장실이라고 명판을 붙이고 말이다.
어쨌든, 또 회사 하나를 설립해서 미래엔터테인먼트에 이어 두 번째 사장이 된 것이다.
***
한남동, 센트럴 파르크 빌라, 주차장
“이카로스 항공요? 비행기 말이죠.?”
민영민은 내가 타고 온 페라리 F8 스파이더를 찍고 있다가 잠깐 멈칫했다.
“드론 회사야, 항공기는 항공기지, 드론도 비행기잖아?”
“아, 그렇군요. 전 항공사라고 해서, 진짜 여객기를 운행하는 대형 항공사를 말하는 줄 알았죠. 그런 항공사 사장님이 되시면 정말 멋질 텐데요.”
“항공사 사장이라?”
“예, 폼나잖아요. 저 비행기도 내 비행기고, 저것도 우리 회사 여객기고 그러면서요. 공항 같은 곳에서 말입니다.”
“음, 공항이라고?”
하긴 항공사 사장이 된다면 폼이 나기는 할 것 같았다. 항공사 직원들이라면 미모의 스튜어디스들이 대부분일 거 아냐?
상상이 되었다. 아침에 회사를 출근하면 출근길에 마주치는 수많은 스튜어디스들이 나를 볼 때마다 상냥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인사를 받을 때마다, 나도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인사를 받아준다. 하지만 한 두 명도 아니고, 수많은 스튜어디스들을 인사를 일일이 받아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목에 담이 올 정도로 말이다.
“와, 아무튼, 굉장하네요. 페라리를 두 대나 플렉스 하시다니 말입니다.”
“뭐, 그래 봐야, 한 대당 4억 정도니까, 별로 비싸지도 않잖아.”
돈이 많고, 앞으로도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돈에 대한 감각이 살짝 이상해져 버려 있었다. 재벌이 되면 거만해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민영민 앞에서 거들먹거리기 위해서 4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마음속에 있던 말이 나온 것뿐이었다. 실제로 4억은 나에게 그다지 의미 없는 액수일 뿐이었다.
민영민 입장에서는 평생에 한 대 사기도 힘들, 4억짜리 페라리 두 대를 동시에 사는 내가 대단하고 부럽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미 나에게는 4억이라는 돈은 큰 의미가 없었다.
예전의 편의점 알바를 할 때, 5백 원짜리 캔 커피를 뽑아 마시던 느낌이랄까?
자판기에서 5백 원짜리 캔 커피 두 개를 뽑는 것처럼, 4억짜리 캔, 아니 페라리 두 대를 뽑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었던 것이다.
“둘 다 컨버터블이라서 요즘 같은 날씨에는 딱인데요. 요새는 봄인데 신기하게 황사도 없고 정말 날이 화창한 것 같으니까요.”
“그래, 나도 마음에 들어, 이런 차는 날씨 좋을 때 드라이브하기에는 제격이더라고.”
“오, 벌써 드라이브를 하신 건가요?”
“물론이지.”
“와, 그럼 저도 한 번..”
“드라이브는 좀 그렇고, 집구경 하고 싶지 않아? 영민이 너는 슈퍼카든 집이든 화려한 걸 찍는 걸 좋아하잖아?”
“그거야, 그렇죠.”
“와, 그런데 저건 누구 차죠.”
“뭐가?”
“저쪽 주차장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J도 있고 롤스로이스 컬리넌도 있네요.”
“그래?”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야 나도 가지고 있는 차고, 롤스로이스라고?
“컬리넌이라고 롤스로이스에서 만든 최초의 SUV죠.”
“최초의 SUV?”
“예, 롤스로이스라면 전통의 명차로 원래 영국 귀족들이 타던 최고급 세단의 대명사죠. 그래서 당연히 SUV는 만들지 않았거든요.”
“오, 그래?”
“우리나라도 SUV는 짐차라고 생각해서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적도 있었죠. 요새는 인식이 바뀌어서 SUV 열풍이지만요.”
민영민의 말로는 SUV의 인기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전세계적으로 SUV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인기 덕분에 전통적으로 SUV를 만들지 않았던 고급차 메이커들도 SUV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들이 SUV를 만들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죠.”
“그래?”
“벤틀리는 벤테이가를 만들었고, 람보르기니도 우르스를 만들어서 대박이 났죠. 롤스로이스도 그동안 세단만 만들던 전통을 깨고 최고급 SUV라고 할 수 있는 컬리넌을 출시한 거고요.”
민영민의 말에 옆집 주차장을 보니 롤스로이스 특유의 묵직한 느낌의 SUV가 보였다.
“흠, 컬리넌이라?”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의 이름이죠. 그만큼 럭셔리의 끝판왕이라는 의미로 말입니다.”
“끝판왕? 저런 건 가격이 얼마나 하는데?”
“컬리넌이라면 정확히는 모르지만, 최소 6억부터 시작일걸요. 거기에 롤스로이스는 옵션이 많기로 유명해서 옵션 몇 개만 추가해도 7억은 훌쩍 넘어갈 겁니다.”
7억 정도라는 건가? 뭐 별거 아니잖아. 예전에 돈 없는 편의점 알바 시절이라면 7억이라면 평생 모아도 모을 수 없는 거액이고 그런 7억짜리 차라면 후덜덜한 느낌이었겠지만, 지금 나에게 7억은 껌값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진짜 7억 어치 껌을 씹다가는 턱이 나갈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별 감흥이 없는 정도의 금액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센트럴 파르크 빌라의 주차장들은 서로 간격을 두고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입주자들의 주차장이랑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어서 지나가면서 다른 주차장들도 보이는 구조였다.
“컬리넌이라 이건 무슨 탱크네 탱크야.”
민영민은 컬리넌의 사진을 찍으면서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굉장하죠. 롤스로이스는 뭔가 압도적인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는 한데, 차도 너무 크고, 이렇게 육중할 필요가 있나?”
컬리넌이 롤스로이스가 내놓은 고급 SUV계의 끝판왕이라고는 하는데, 내 눈에는 좀 답답해 보이는 차였다. 고급스럽기는 하지만 너무 무거운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에 비해서 람보르기니에서 내놓은 SUV인 우루스는 좀 경박한 느낌이고 말이야, 결론은 내가 타고 다니는 벤테이가가 적당한 것 같았다. 적당히 고급스럽고 약간 스포티한 감성도 있고 말이다.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롤스로이스는 롤스로이스죠.”
“이름값이 있다는 거야?”
“디자인이 어떻든 롤스로이스라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럭셔리함이 있는 거니까요.”
“그래.”
“선배님도 롤스로이스 한 대 사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롤스로이스를?”
“뭐, 슈퍼카들도 좋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고급차의 끝판왕은 롤스로이스니까요.”
사실, 전부터 롤스로이스를 한 번 사볼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민영민 말처럼 고급차의 대명사고 워낙 전통을 가진 유명한 차니까 말이다.
하지만 롤스로이스는 뭐랄까? 대기업 회장님이나 유럽의 귀족이 타고 다닐만한 그런 차라는 인상이었다. 차는 럭셔리하고 좋지만 너무 거창하다고나 할까? 슈퍼카들은 그래도 가격은 비싸도 차도 작은 편이고 오너 드리븐용이라는 느낌인데 롤스로이스는 차도 크고 운전기사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은 소퍼 드리븐 차라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기사를 두고 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차를 타는 즐거움이라면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즐거움인데 기사를 두고 타는 것은 편하다기보다는 귀찮은 느낌이었다.
“롤스로이스는 너무 거창해 보이지 않냐? 이런 차 타고 다니면 너무 눈에 띄기도 하고 주차하기도 힘들 것 같아. 운전기사도 필요할 것 같고 말이야.”
“왜요? 요새는 롤스로이스도 젊은 오너들이 많이 타고 다니는데요.”
“그래?”
“팬텀 같은 차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고스트나 던은 젊은 취향에도 잘 어울리는 차들이죠.”
“그런가?”
민영민과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컬리넌이라는 롤스로이스의 SUV를 둘러보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번에 새로 이사 오신 분인가요?”
“헉, 김우혁 배우님 아니세요?”
김우혁?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키가 크고 꽤 잘생긴 남자였다. 내가 보기에는 좀 느끼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여자들이 보면 잘생겼다고 칭송할 그런 스타일 말이다.
고급 빌라라 연예인들이 많이 산다고 하더니, 역시 연예인인가? 솔직히 무슨 영화배우처럼 생기기는 했는데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서 누군지는 모르겠다.
“영민아 아는 분이니?”
“선배님 정말 김우혁 씨를 모르세요. 천국의 사랑에 나오신 분이잖아요?”
“천국의 사랑? 그게 뭔데?”
“하하, 뭐, 이거 저도 분발해야겠는데요. 나름 유명한 연예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아직도 저를 모르는 분들도 많군요. 인사드리죠. 연기자 김우혁이라고 합니다.”
“아, 예, 최진수입니다.”
“드림엔터테인먼트 사장님이시죠?”
뭐야? 이미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건가? 하긴, 연예인이라면 이 계통의 정보가 빠를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170억짜리 최고급 펜트하우스의 새로운 주인이 누군지, 이런 고급 빌라 입주자들도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고 말이다.
“예, 맞습니다.”
“저는 민영민이라고 합니다. 아이돌 스타 민소희의 사촌 오빠입니다.”
“아, 민소희 씨 사촌이시군요. 하하, 반갑습니다.”
뭐야? 민영민 녀석, 창피하지도 않나? 기껏 남자 녀석이 사촌 여동생 오빠라고 자기를 소개하다니 말이야, 하지만 민영민 입장에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화 대학교 경영학과 학생이라도 소개하기도 그렇고 나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 비해서 번듯한 연예 기획사의 사장이라는 타이틀이 있으니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기에는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지나가다가 차가 멋있어서 사진을 좀 찍고 있었는데 괜찮겠죠?”
“하하, 뭐 상관없습니다. 사진 촬영은 다 하신 건가요? 전 약속이 있어서, 나중에 또 뵙죠.”
김우혁은 컬리넌에 올라서 시동을 걸고는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와 대박인데요. 김우혁도 같은 빌라에 살고 말입니다.”
“뭐, 연예인 처음 보니? 민소희도 연예인이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민소희야 제 사촌 동생이고요. 어릴 때부터 보던 애라 별로 연예인 느낌이 안 난다고요. 아무튼, 저런 한류 스타급 연예인이나 되어야 이런 빌라에 살겠죠?”
“왜 부러워?”
민영민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부럽다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해야 느껴지는 감정 아닐까요? 솔직히 최진수 선배님과 저는 너무 차이가 나는 사람이라, 부럽다기보다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뭐야? 존경? 부담스럽게 무슨 존경은, 나도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고, 단지 행운이 좀 따른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롤스로이스라? 왠지 간지가 나잖아, 나도 롤스로이스나 하나 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