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원을 말해봐 (90/200)

소원을 말해봐

강남, 제이에스 인터네셔널

“또 차를 사시게요?”

최선화는 차를 사러 온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늘은 뭘 사시려고 온 건가요?”

“롤스로이스를 좀 보러 왔는데요.”

“롤스로이스요?”

“예, 전에는 좀 부담스러워서 롤스로이스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다른 사람이 롤스로이스를 타는 걸 보니까,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음, 롤스로이스라면 최고의 차죠. 그러면 어떤 모델을 원하세요?”

최선화는 롤스로이스라는 말에 벌써부터 입가에 미소가 감도는 느낌이었다. 최고급 자동차를 팔수 있는 기회고 거기에 단골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면 차를 팔기에 쉬운 고객일 것이다. 차의 가격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나니까 말이다.

“팬텀은 좀 부담스럽다고 하셨죠?”

롤스로이스하면 대표적인 모델은 팬텀이다, 롤스로이스라는 자동차 브랜드가 원래 영국의 귀족들이 폼나게 타던 귀족적인 자동차다 보니까, 차 자체도 합리성보다는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압도적인 사이즈와 스타일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롤스로이스의 기함은 바로 팬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팬텀이라면 사이즈도 압도적이고 그리스의 판테온 신전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수직 그릴도 유명하고 말이다. 하지만 좋은 차임에는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기사를 하나 두고 뒷좌석에 타는 차로 적합하다는 생각이었다.

길이 자체도 너무 길이서 좀 부담스러운 것도 있고 말이다.

“팬텀은 좀 부담스럽더라고요. 보기에는 좋지만 차도 너무 큰 거 같고, 그보다는 오너가 직접 운전하기 좋은 그런 롤스로이스가 없을까요?”

최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롤스로이스하면 팬텀이지만 최근에는 고스트나 던, 그리고 컬리넌 같은 모델들이 더 인기가 좋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래요?”

“아무래도 최근에 수입차가 늘어나면서 한국의 수입차 시장도 커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독일 3사는 너무 흔해져서, 그 윗 등급을 찾는 분들도 많아지고, 거기에 요새는 해외 경험도 많다 보니까, 최고급 사양의 수입차들에 대한 정보도 많은 편이고요.”

최선화의 말로는 확실히 최근에는 벤츠나 아우디 정도로는 남들과 차별화된다고 할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좋은 차 탄다고 한다면, 최소한 포르쉐 정도는 타야 하지 않을까요?”

“포르쉐가 좋기는 하죠. 슈퍼카지만 데일리로 타기에도 부담이 없고, 슈퍼카 치고는 가격도 착한 편이고요.”

나 역시도 처음을 산 차는 포르쉐 파나메라였으니까 말이다. 고급차 시장의 입문용으로는 포르쉐가 괜찮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후에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와 벤테이가 그리고 포르쉐 488과 F8 스파이더까지...

이제 남은 것은 럭셔리 세단의 끝판왕인 롤스로이스 차례인 것 같았다.

“지난번에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를 구매하셨었죠?”

“맞아요. 그때는 롤스로이스는 좀 부담스러운 것 같아서, 마이바흐로 했는데 역시 고급 차를 타나 보니까, 이제 롤스로이스가 좋아 보이네요.”

“지금 있는 모델 중에는 뉴고스트와 던이 있는데 어떠세요?”

최선화는 구석에 전시되어 있던 롤스로이스 두 대를 보여주었다.

“확실히 좀 작네요.”

둘 다 작은 차는 아니었지만, 바로 옆에 팬텀이 있어서 그런지 뭔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이게 고스트고 이건 던인가요? 이름들이 조금 특이하네요.

“예, 롤스로이스의 특징이라면 정숙성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팬텀, 고스트, 그리고 던까지 유령처럼 조용하다거나 새벽의 고요함을 나타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죠.”

음, 그러고 보니 이름들이 다 그런 이름들이네. 왜 고급차에 팬텀이니 고스트니 하는 이름을 붙였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던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기술이 많이 좋아졌지만 롤스로이스가 처음 나왔을 무렵만 해도 자동차의 소음이 상당하던 시절이었고 고급차의 기준은 소음이 적은 정숙성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전기차가 나와서 일부러 소음을 페이크로 만들어 내기도 하는 시대니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뉴고스트와 던은 둘 다 롤스로이스치고는 젊은 감성을 가진 자동차라고 할 수 있었다. 흰색의 뉴고스트라 검은색의 던, 둘 다 괜찮기는 보이기는 했다.

“저는 흰색의 뉴고스트가 더 마음에 드네요. 뭔가, 롤스로이스의 느낌도 나면서 운전하기에 부담스럽지 않는 느낌이라서 말입니다.”

최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가격이 어느 정도인가요?”

“뉴고스트도 6억 중반 정도의 가격이죠. 팬텀보다는 저렴하지만, 상당한 가격이기는 해요.”

롤스로이스의 플레그쉽인 팬텀은 가격이 10억까지도 올라간다고 하니까, 거기에 비하면 저렴한 가격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를 살 수 있는 정도니까 자동차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가격인 것은 분명했다.

“좋아요, 계약하기로 하죠.”

“사업이 잘되시나 봐요? 고급차들을 부담 없이 사시는 걸 보면요.”

“하하, 맞습니다. 최근에 사업이 잘되고 있죠. 해외에서 말이에요.”

사업이 잘된다는 말에 최선화는 호기심을 보였다.

“해외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데요?”

“뭐, 지하에서 자원을 개발하는 일이라고나 할까요? 땅속에는 값진 자원들이 많이 들어 있죠.”

“석유 같은 거 말이죠?”

“석유라? 뭐, 비슷하죠.”

석유를 검은 황금이라고도 하니까, 황금은 노란 석유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아무튼, 땅속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부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황금과 석유는 비슷한 부류라고 할 수 있었다.

***

며칠이 지나자 제이에스 인터네셔널에서 롤스로이스 뉴고스트가 출고되었다.

한남동 센트럴 파르크 주차장.

지난번에 계약한 뉴고스트가 출고되었다.

“롤스로이스도 가지고 계시군요.”

주차장에서 내리는데 뒤에서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우혁 씨군요.”

“새로 출고하신 건가요?”

“예, 롤스로이스가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전부터 롤스로이스가 한 대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죠.”

“하하, 저도 컬리넌을 가지고 있는데 하차감이 좋은 차죠.”

“남들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시나 보군요?”

김우혁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연기자다 보니까,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차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팬들의 눈도 있고요. 그리고 같은 연예인들끼리도 경쟁이랄까요? 그런 게 있죠.”

“연예인들끼리의 경쟁요?”

“예, 서로 누가 더 잘나가냐는 그런 경쟁이죠. 아무래도 연예인들의 인기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것이다 보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에 오히려 더 집착하는 게 있습니다.”

“고급 자동차나 호화 주택을 가진 사람이 더 인기 있는 스타라는 건가요?”

“하하, 자본주의 시대 아닙니까? 인기는 곧 돈으로 연결되고 돈이 많은 연예인이 인기가 있는 거죠.”

인기가 곧 돈이니, 돈이 많으면 인기가 있어 보인다는 그런 의미인가?

“최진수 사장님도 재력이 상당하시다니, 이런 롤스로이스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뽑으시는군요. 하긴, 7천억짜리 호화 요트를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아, 플라잉 폭스 말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브라질에 다시 갈 생각입니다.”

“브라질요? 휴양지로는 좋은 곳이죠. 브라질이라면 어디로 가십니까?”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구아눔이라 섬이 있습니다. 주위에 작은 섬들도 있어서 자구아눔 제도라고 불리는 곳이죠.”

“오, 그래요? 거기에는 무슨 일로?”

“거기에 섬들 몇 개를 가지고 있죠. 해안가에 땅도 좀 가지고 있고요. 아무튼, 경치도 아름다운 곳이라 리조트로 개발을 하려고 말입니다.”

“브라질에 말이죠? 와 무슨 정말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이야기네요.”

“영화요?”

“예, 사실 얼마 전부터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영화사에 문제가 생겨서 영화가 고꾸라지게 생겼습니다.”

“영호사에 무슨 문제가요?”

“뭐 다른 문제가 있나요? 돈 문제죠.”

김우혁 말로는 시나리오도 괜찮고 감독도 다 정해지고, 김우혁도 주연으로 출연하기로 했는데 영화사의 자금 문제로 영화 제작이 무산 직전이라는 것 같았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는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영화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요즘은 제작비가 많이 올라서 100억에서 200억 정도는 필요하죠.”

“얼마 안 하는군요.”

“예.”

“200억 정도라면 저에게는 그다지 큰 돈은 아니라는 겁니다.”

김우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혹시 영화 쪽에 투자를 해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영화라? 글쎄요.”

“아까는 200억은 별로 큰 돈도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큰 돈이 아니라는 거지, 아무 데나 뿌리고 다니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면?”

“투자 제안서를 가져오면 검토는 해보죠. 드림엔테테인먼트로 투자 제안서를 보내 주세요.”

***

강남사거리 제이제이 타워, 드림엔터테인먼트 사장실.

“사장님, 우성 필름이라는 곳에서 영화투자제안서를 보내 왔는데요.”

“우성 필름이라? 김우혁이라는 배우하고 관련이 있는 곳 말인가요?”

“예, 김우혁 씨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라고 하더라고요. 우성 필름 쪽 사람 얘기로는 저희가 그러니까, 정확히는 최진수 사장님의 투자를 원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영 씨 생각은 어때요?”

“글쎄요, 영화 쪽은 그다지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김우혁은 인기 스타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요.”

“김우혁이 인기스타예요?”

“그럼요, 여자들에게 얼마나 인기인데요.”

그런가? 하긴 남자인 내 눈에 뭔가 거슬리는 느낌이 있는 걸로 봐서는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있을 수도 있겠군.

윤아영과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민소희가 급하게 사장실로 뛰어들어왔다.

“사장님, 저희 회사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게 사실이에요?”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영화에 투자를 좀 해볼까 하고 말이야.”

“그게 그거잖아요? 사장님 저 연기하고 싶어요.”

“연기?”

“예,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솔로 앨범 내고 나서 연기하고 싶다고요.”

그런 말을 들은 것 같기는 했다. 아이돌 스타는 생명이 짧으니까, 장기적으로는 연기자가 꿈이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영화에 투자를 하게 되면 저 하나 꽂아주는 것도 어렵지 않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영화 제작에 자금을 투자하게 된다면 영화제작자 내지는 투자자가 되는 거고, 자본주의 시대에 돈을 투자하는 쪽이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한마디로 영화 감독이든 뭐든 돈을 투자한 내가 갑이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주연 배우와 시나리오, 연출을 맡은 감독이 다 있어도, 돈이 없으면 영화는 만들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결국, 돈을 투자한 투자자가 영화를 제작에 대한 모든 권력을 쥐게 되는 것이다.

상상이 되었다. 영화 제작 현장에서 내가 나타나면 모든 스텝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면서 쩔쩔매는 것이다.

주연 배우도 감독도 모두 나의 사소한 지적에도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고 말이다.

연기나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오히려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에 관여를 하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다. 영화에 출연하는 조연급의 여배우의 비중도 마음대로 늘리고 말이다.

그렇게 연기 비중을 높인 것은 다름 아니, 솔로 가수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민소희였다. 아이돌그룹에서 솔로로 그리고 이번에는 연기에 도전하는 것이다.

물론, 연기력이 많이 부족해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내가 돈을 투자한 덕분에 만들어지는 영화라 내가 민소희를 출연시키기로 하자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민소희를 지원하며 스타로 키워주자, 민소희도 나에게 더 각별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사장님 덕분이에요. 그래서 보답을 하고 싶은데요.”

“보답?”

“예, 사장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들어드릴게요. 소원을 말해 보세요.”

“소..소원을..”

“사장님?”

“어?”

“무슨 생각 하세요?”

“아냐, 아무 것도..”

“영화에 투자하시는 거죠?”

그래, 그까짓 거 한 번 만들어 보지 뭐. 그래 봐야, 2백억이면 그리 큰 돈도 아니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