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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드는 이유 (91/200)

영화를 만드는 이유

제이제이 타워, 드림엔터테인먼트 휴게실.

“정말이야? 사장님이 영화를 제작한다면서?”

“진짜라니까.”

“우리 회사에서 말이지? 그런데 우리 회사가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있어?”

“없지, 우리는 아이돌 가수들을 키워내는 게 전부잖아.”

“그런데 갑자기 무슨 영화를 만든다는 거지?”

“그게 다 민소희 때문이라는 것 같아.”

“민소희?”

“그래, 민소희를 스타를 키워주려고 최진수 사장이 영화를 만든다는 거지.”

“와, 대박이네. 영화 한 편을 민소희를 위해서 만든다는 거잖아?”

“그래, 윤아영 전무가 그러는데 민소희가 사장실로 들어와서 영화 제작을 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고 하더라고.”

“어머, 민소희가 그렇게 대놓고 나를 위해서 영화를 제작해 주세요, 그랬다는 거야?”

“그래. 민소희 고 앙큼한 것이 어떻게 사장님을 구워삶은 건지 말이야. 아무튼, 사장님이 즉석에서 2백억을 투자해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는 거야.”

“민소희의 말 한마디에 2백억을?”

“그래.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아냐?”

아니, 저것들이... 말도 안 되는 건 알기는 아나 보지?

우연한 기회에 김우혁이 출연하는 영화의 제작에 투자하게 되었는데, 그 영화 제작에 대해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우혁을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 제작에 투자를 하겠다는 정도였지만, 벌써부터 민소희가 주연 여배우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것이다.

그건 단지, 드림엔터테인먼트의 남의 말 좋아하는 여직원들에게 도는 소문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두 명의 여직원이 휴게실을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숨어있던 기둥에서 나왔다. 헛소문이기는 하지만 민소희를 이번 영화에 주연으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민소희가 원하는 것은 연기자로 성공하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연기자로 데뷔를 해야 했다. 다른 경로로 오디션을 본다거나 하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이미 스타급 아이돌인 민소희가 오디션을 보거나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거기다 민소희의 연기력도 오디션을 통과할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연기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단 연기 공부부터 하는 것이 정석적인 방법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스타급 연기자 중에 연기를 못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말이다.

대충, 외모와 인기로 스타가 되는 배우들도 많다. 실제로 인기 스타들 중에 연기력으로 배우가 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중요한 것은 연기력이나 재능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을 해서 유명해지면 인기 스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소희를 내가 투자하는 영화에 바로 주연으로 투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민소희가 나름 귀여운 스타일이고 한 미모 하는 아이돌 스타라서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시키면 어떻게든 스타가 될 거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사, 영화가 망하더라도 2백억을 날리는 정도니까...뭐, 별거 아니잖아?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뭐 돈이 너무 많다 보니, 2백억쯤이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호구처럼 돈을 뜯기는 건 싫었지만, 그냥 내 마음대로 영화 한 편 찍다가 말아먹는 거야, 상관없다는 기분이었다.

딱히 민소희를 위해서 영화를 제작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재미 삼아 영화 한 편 제작해 보려고 했는데 민소희가 연기를 하고 싶다니까, 주연 배우 자리 하나쯤 준다는 그런 것이었다.

***

우성 필림, 사무실.

“드림엔터테인먼트 최진수 사장님이시군요.”

“예, 처음 뵙겠습니다. 최진수입니다.”

“굉장히 젊으신 분이라 저는 다른 분인줄 알았습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 아니겠습까?”

“하하, 그렇기는 하죠.”

우성 필름의 대표는 최대식이라는 50대 초반의 남자였다. 왕년에는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겸 연극 연출가로 이름을 날리다가, 영화 제작에도 손을 대었고, 그동안 몇 편의 영화를 성공시키면서 나름 영화계에서 유명한 영화제작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가칭이기는 하지만, 산토리니의 사랑이, 영화의 제목인데 시나리오는 읽어보신 거죠?”

“아뇨. 시나리오까지 제가 알아야 하나요?”

사실, 한 번 읽어볼까? 하다가 분량도 많고, 책이든 시나리오든 뭔가를 읽는 것은 질색이라 그냥 윤아영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던져 주었다.

윤아영 말로는 시나리오는 괜찮다고 했다. 무슨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배경으로 백만장자와 가난한 여자의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했다.

뭔가 진부한 내용인 느낌이었지만, 여자들은 좋아할 시나리오라는 것이 윤아영의 평가였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스토리라는 것이다.

어차피, 영화 내용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난 단지 영화에 투자하고 영화 제작을 경험해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말하자면 2백억을 투자해서 영화 제작 체험을 해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하, 뭐, 돈을 투자하시는 분이 영화 제작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알아야 할 필요는 없기는 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돈은 많지만 영화 쪽은 잘 모릅니다.”

“드림엔터테인먼트라면 아이돌 기획사죠?”

“예, 사실은 드림엔터테인먼트도 얼마 전에 인수해서 앨범 두 개를 제작한 것이 제가 한 일의 전부죠.”

“음, 그러시군요. 그러면 연예계 쪽으로 투자를 늘려나가시고 계시다는 의미인 건가요?”

“그렇습니다. 좀 심심하기도 하고요.”

“하하, 심심하시다고요? 상상이 잘 안 가네요. 돈이 많으신 분이라는 말은 김우혁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지만, 그 정도인가요? 재미 삼아 연예 기획사를 인수하고 영화 제작에도 투자를 하실 정도로 말입니다.”

최대식은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약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최대식 같이 영화계에서 바닥부터 잔뼈가 굵은 베테랑 제작자에게는 지금의 내가 돈 많은 졸부, 그것도 나이로 봐서 자기가 돈을 번 졸부도 아니고, 아버지에게 돈을 물려받아서 멋대로 돈을 쓰고 다니는 재벌가 망나니 아들 정도로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그런 망나니 금수저는 아니지만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돈이 너무 많아도 탈인 듯했다.

10조가 넘는 현금을 가지고 있으니, 돈 2백억 정도는 진짜 우습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약간 건방지게 보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겉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돈이라면 정말 많은 편이죠. 농담이 아닙니다. 주체가 안 될 정도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하하, 지금 농담을 하시는 건지? 아니면 진짜 진지한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분간이 안 가네요.”

“하하, 뭐, 진담인 듯 농담이고 농담인 듯 진담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가볍게 이야기를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상관은 없겠죠. 그렇게 돈이 많으신 분이라면 투자자로서는 최고의 조건을 가지신 분이니까요.”

약간 나의 돈 자랑을 하는 태도가 어이없기는 한 것 같았지만 최대식은 베테랑 영화제작자였고, 영화를 만드는데 어설픈 열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자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투자자가 누구든,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라면 최대식에게는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다.

“영화 제작비는 충분히 투자할 생각입니다. 로맨스 영화라고 하던데, 해외 로케가 좀 있기는 하지만, 2백억 정도라면 제작비는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최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2백억을 다 투자하신다는 거죠?”

“예, 투자금은 확실합니다. 대신 영화 제작에 제가 몇 가지 관여하고 싶은데요.”

“어떤 관여 말인가요?”

“뭐, 별거는 아닙니다. 일단 주연 배우 중에서 여자 주연은 제가 원하는 배우를 쓰고 싶습니다.”

“여배우를요?”

“예, 민소희라고 드림엔터테인먼트 소속이죠. 최대식 사장님도 아시지 않나요? 나름 유명한 여자 아이돌이죠.”

최대식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라면 저도 들었습니다.”

“예, 어디에서요?”

“포털의 연예기사에 봤죠.”

“그래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김우혁이 주연하는 영화에 투자비를 댄다는 말을 한 순간부터 여러 경로로 다양한 소문이 퍼져 나갔고, 드림엔터테인먼트 직원들 사이에 돌던 소문이 연예기자들에게 퍼져 나간 것이다.

“그래서 최진수 사장님이 민소희를 주연으로 쓸 거라는 이야기는 저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하, 뭐,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미리 알고 계셨다니 말입니다. 그러면 민소희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일은 문제없겠죠?”

최대식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주연 배우 문제라면 감독과 미리 사전에 약속이 된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감독요?”

최대식 사장 말로는 이번에 제작하기로 한 영화는 김우혁을 주연으로 시나리오가 미리 준비가 되었고, 거기에 최근에 주가를 높이고 있는 젊은 감독인 채은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이었다고 했다.

“채은석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가요?”

영화 쪽에는 관심이 없어서인지 채은석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그럼요, 청용 영화제에서 지난해에 신인상을 받기도 하고 연출력이 대단한 친구죠. 한마디로 천재 감독입니다.”

천재 감독? 뭐 그건 내가 알바가 아니고, 내가 원하는 건 내 돈으로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과 내가 원하는 배우, 민소희를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시키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 제작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돈으로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을 사고 그걸로 게임으로 진행 시켜서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처럼, 내가 가진 진짜 돈 2백억을 투자해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또 민소희도 배우로 키워 보는 것이다.

영화를 재미 삼아 제작한다는 것은 게임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브라질에서 야마시타 골드를 찾아서 10조가 넘는 현금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현실이 게임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실의 세계를 마치 게임처럼 쉽고 단순하게 조작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뭐든 얻을 수 있는 그런 초현실적인 수준의 자산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수십 조의 자산가에게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가진 현실은 그저 현금으로 뭐든 살 수 있는 일종의 게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게임치고는 난이도가 낮은 그런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여자 주인공은 민소희가 하는 걸로 하죠.”

“하지만 채은석 감독이 고집이 센 편이라, 젊은 예술가라 자기주장이 강하죠.”

“최대식 사장님, 그 감독이 중요합니까? 제작비 2백억이 중요합니까?”

“예? 아, 그..그건..”

“최대식 사장님이 설득을 하시든지 아니면 다른 감독을 알아보세요. 영화를 제작하고 싶으면요.”

자본주의 시대에 그것도, 돈이 없어서 제작이 중단된 영화에 투자를 하겠다는데, 내가 젊은 천재 감독을 신경 써야 하겠어?

천재 감독이든 뭐든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그리고 나 말고 달리 돈을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없어 보이고 말이다.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저 그게...최진수 사장님, 민소희를 꼭 주연을 쓰셔야겠습니까? 아직, 연기 경험도 없는 걸로 아는데 기왕이면 연기력이 검증된 연기자를 써야 영화 흥행에도 유리하고요.”

흥행? 영화로 돈을 번다는 건가? 하긴, 영화라는 게 돈 벌려고 만드는 거였지. 하지만 내가 이번 영화를 제작하는 건 돈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순수하게 호기심과 나의 즐거움, 그리고 민소희의 연기 데뷔라는 목적을 가지고 이번 영화 제작을 하려는 것이었다.

“영화의 흥행은 상관이 없습니다.”

“예? 하지만 2백억이나 투자를 하시겠다면서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개인적인 취미 정도랄까요. 저에게 2백억이 큰 돈도 아니고요. 저는 영화 제작 경험에 더해 우리 기획사의 민소희를 주연으로 쓰면 영화의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만족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최대식 사장은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채 감독을 설득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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