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법칙
자구아눔 제도, 바나나 아일랜드.
플라잉 폭스는 세계적인 미항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나 자구아눔 제도로 향했다.
“사장님, 당나귀도 데리고 오셨네요.”
한나는 당근을 먹고 있는 스바딜파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나 봐요?”
“어릴 때, 수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물론, 지금 입고 있는 노란색 비키니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구아눔으로 향하는 길은 화창한 날씨였다. 바다도 잔잔해서, 에메럴드빛 바다 위로 하얀 요트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흰색의 선을 그었다 사라지는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요? 그런데 공부를 잘못해서 수의사는 못 됐을 거예요.”
“아무려면 어때, 동물을 좋아하면 그걸로 된 거지. 취미 삼아, 스바딜파리를 돌봐주는 것도 괜찮고..”
“이 당나귀는 은근히 귀여운 것 같아요. 이거 보이세요. 저한테 얼굴을 막 부비고 있어요.”
“그래, 나도 보고 있어.”
뭐야? 저 녀석, 은근히 부러운데, 동물이라 여자들도 방심하고 있잖아? 어쨌든 항해는 순조로웠다.
이번 행선지는 두 번째 보물섬인 바나나 섬이었다. 바나나처럼 길쭉하고 약간 휘어진 모양의 초승달 같은 형태의 섬이었는데, 무인도라 특별한 이름은 없고, 근처의 주민들이 바나나 섬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이 섬 역시도 엔젤라 누네스의 부동산 회사를 통해서 땅을 구입하고 리조트 공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리조트는 규모가 작은 편이었지만, 야마시타 골드를 보관할 정도의 지하창고와 금고를 설치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최 사장님은 바나나 섬에서 혼자서 뭘 하시려는 거예요?”
금발의 한나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뭐, 무인도에서 명상도 하고 좀 조용히 시간을 보내려고.”
“명상요?”
“그래, 도시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는 건 이제 좀 지겹기고 하고, 뭐랄까? 자본주의 세계를 벗어나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그런 걸 왜 하는데요?”
“나야, 돈은 많잖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돈이 많다고.”
“그거야, 그렇죠. 플라잉 폭스를 살 정도면 진짜 돈 많은 부자니까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돈이 많은 거예요? 재산이 얼마나 되는데요?”
“하하, 뭐, 그렇게 디테일하게 물어보는 건 별로야. 그냥 아무튼, 다 쓰지 못할 정도로 돈이 많다고 해두지.”
한나는 돈 이야기를 하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하긴, 돈 이야기가 가장 재밌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내 돈이든 남의 돈이든, 사람들은 돈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돈이라는 건 현대자본주의 시대의 마법의 묘약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 자체로도 호기심의 대상이고,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그걸 가지고 있는지, 하는 모든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는 매혹적인 대상인 것이다.
“아무튼, 돈이 필요 없는 곳에서 잠시 지내는 것도 나 같은 부자들에는 흥미로운 일이거든.”
한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잘 이해는 안 가지만 말이에요. 저라면, 그렇게 돈이 많으면 뉴욕이나 파리, 런던 그런 대도시들에서 쇼핑을 하고 돈을 마구 쓰면서 화려하게 살 거예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 뉴욕이나 파리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그렇게 돈을 쓰고 있으니까.”
한나와 갑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 섬이 보였다. 초승달 모양의 섬이었다.
“저게 바나나 섬인가?”
“그런 것 같은데요.”
***
바나나 섬에 상륙정으로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섬은 관리인이 주기적으로 방문을 하고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볼로콥터 3대를 비롯해서 식량과 필요한 장비들을 내려놓은 플라잉 폭스는 자구아눔 본섬으로 떠나가 버렸다.
섬에는 스바딜파리와 나만 남은 것이다. 멀리 플라잉 폭스가 점점 작아지는 모습이 아련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제 일을 할 시간이군, 스바딜파리, 너도 같이 일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바딜파리는 지난번에 당한 부상도 있고, 이번에는 무리한 일은 시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신, 볼로 드론이 스바딜파리를 대신해서 황금을 옮겨줄 것이다.
야마시타 골드가 진짜 있다면 말이다.
일단은 지도를 펼쳐놓고, 행운의 과자를 꺼내 들었다. 리조트를 건설하면서 지도 제작도 부탁해서 바나나 섬의 정교한 지도가 제작되어 있었다.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 지도에 숫자를 매겨놓고 행운의 과자로 숫자를 뽑아서 황금을 찾을 생각이었다.
행운의 과자 하나를 꺼내 들고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과자는 약간 짭짤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뭐지? 달콤한 맛이 아니라, 좀 짠맛이네? 하긴 과자의 맛은 먹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았다.
원래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하루하루 같은 날은 없다. 행운의 과자도 먹을 때마다 항상 뭔가 다른 맛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조금 짠 맛이 나는 과자를 씹다 보니 혀끝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과자에서 나온 것은 51이라는 숫자였다.
“어디 보자, 51이라?”
지도를 보며 그 구역을 찾아갔다. 역시 바나나 섬의 길쭉한 모양으로 뻗어있는 산의 끝부분 중턱쯤이었다.
이번에는 별다른 길도 없어서, 제법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열대 밀림 같은 곳을 헤치고 산 위로 올라가야 했다.
“이번에는 길도 제대로 없네.”
다행히 밀림을 들어갈 때, 쓰는 큰 칼이 있어서 그걸로 잡목을 탁탁 쳐내며 산 위로 올라갈 수가 있었다.
그렇게 산으로 꽤 올라오자 어디선가 물소리 들렸다. 그리고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자, 작은 계곡이 보였다. 계곡을 따라 위로 올라가자 작은 폭포가 나오고 그 옆으로 동굴 하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오, 저건가? 스바딜파리, 보물동굴을 찾은 것 같아.”
스바딜파리는 별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의 예감으로는 저 동굴 안에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동굴은 인공적인 것은 아니고 자연동굴이었다. 규모는 꽤 큰 것 같아서 안으로 들어가자 꽤 넓은 공간이 나오고 있었다.
먼저 야마시타 골드를 찾았던 코브라 섬의 동굴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연동굴의 안에 내부에 인공적인 토굴을 건설하는 방식 말이다.
“여기 어디쯤일 것 같은데? 행운의 과자는 이미 하나를 먹어서, 또 먹을 수는 없고 내일까지 기다리기도 그렇고.. 스바딜파리, 대충 어디쯤일지 찍어봐.”
내 말을 알아들은 걸까? 스바딜파리가 앞발로 동굴 안쪽 땅을 긁기 시작했다.
“뭐, 여기라고? 확실해?”
배낭에서 삽을 꺼내서 땅을 팔까? 생각했지만, 일단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 스바딜파리가 내 말을 알아들었을 리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행운의 과자를 하나 먹었기 때문에 오늘은 더 행운의 과자를 먹을 수도 없었다.
행운의 과자가 이 동굴의 좌표를 가리켰으니까, 이 동굴 바닥에 토굴이 있는 것 맞겠지만, 입구를 정확하게 찾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스바, 너 확실하게 알고 발로 긁는 거야?”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녀석이 그걸 알 리가 없잖아? 하지만 대충 위치로 봐서는 저쯤이 입구가 있기에 좋은 곳이기는 했다. 지난번에 코브라 섬의 토굴 입구도 그 정도쯤인 것 같았고...
그래 일단 파보자, 아니면 내일 다시 행운의 과자로 찾으면 될 일이고, 일단 내일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지루하니까...
배낭에 달고 온 삽으로 스바딜파리가 앞굽으로 탁탁 치며 긁어대고 있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바닥은 부드러운 흙이라 파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파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삽 끝에 뭔가 금속성이 닿는 느낌이었다.
이건 토굴 입구에 있는 철제 문이 틀림없었다.
“스바딜파리, 어떻게 된 거야? 넌 알고 있었구나? 아닌가?”
아무튼, 땅을 좀 더 걷어내자, 익숙한 철제 문이 나타났다. 동그란 손잡이도 코브라 섬에서 본 것과 같은 것이었다.
손잡이를 당기자 육중한 문이 삐걱거리며 위로 올라오며 열렸다. 안에서 서늘한 냉기가 순간적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70년 만에 문이 열리는 것이라면, 70년 전의 공기가 흘러나오는 것일 것이다.
랜턴으로 안을 비추자 코브라 섬과 비슷한 느낌의 서늘한 토굴이 나타났다. 역시 철제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자, 토굴 안이 좀 더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익숙한 느낌의 철제 상자들...
“스바, 어쨌든 네가 한 껀 한 것 같다.”
스바딜파리는 계단을 내려가 토굴 안으로 들어간 나를 신기한 듯 위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상자들에는 역시나 자물쇠 같은 것은 채워져 있지 않았다. 70년의 시간이, 그리고 어떻게 지켜졌는지 모르겠지만, 철저하게 함구된 비밀이 이곳을 지켜주는 자물쇠이자 방범장치였던 것이다.
“토굴에 별다른 것은 없는 느낌이네, 물론 야마시타 골드는 빼고 말이야.”
황금동굴에 들어서는 순간 혼잣말을 하게 된다. 남들과는 공유할 수 없는, 적어도 인간과는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의 공간인 것이다.
황금이 가득한 금괴 상자들, 금화 상자들, 그리고 보석들도 있는 보물의 방이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이곳에서 뭔가 사색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 시대를 사는 나에게 이 황금의 창고는 기묘한 곳이었다. 나의 모든 욕망을 들어주는 마법의 공간이기도 하고, 동시에 철저한 외로움과 막연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철제 상자를 열어 보았다.
익숙한 황금빛이 랜턴의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진짜 황금빛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금괴를 보면서 가슴이 떠질 듯이 뛰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좀 담담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황금이라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전히 기묘하고 신비로운 감상에 빠져든다.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이 요물이라고 할 수 있는 기괴한 금속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끝없는 모험의 세계로 이끄는 신비로운 원동력이라는 사실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상자들도 하나씩 열 때마다, 황금과 금화, 그리고 보석 반지와 목걸이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 있는 말 그대로 보물 상자들이 입을 벌리고 그 안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엄청나지 않아? 스바, 보고 있어? 코브라 섬의 보물들과 거의 비슷한 양인 것 같아. 이번에도 엄청난 보물들을 찾은 거라고. 뭐, 물론, 너는 이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무슨 영화에서 배구공하고 이야기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런 심정이었다.
야마시타 골드를 찾을 때마다, 누군가에게 이 엄청난 보물들에 대해 말해 주고 싶은 기분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존재하는 것은 선인지 악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야마시타 골드와 황금과 당근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분명히 당근을 고를 것이 분명한 당나귀 스바딜파리 뿐이었다.
토굴 안쪽은 밖과 달리 서늘해서인지 적당히 기분이 좋은 온도였다. 땅을 파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잠시 누워서 낮잠이라도 자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이 들면 뭔가 악몽을 꿀 것 같았다. 엄청난 보물들이 숨겨져 있던 곳이지만, 어딘지 사악한 악마의 소굴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들었던 것이다.
“스바, 여기는 좀 기묘해. 엄청난 보물들이 있지만 뭔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느낌도 든다는 말이야.”
일단, 계단을 다시 올랐다. 그리고 철제 문을 닫고 동굴 밖으로 나와 주위를 살펴보았다. 무인도라 사람이라고는 나뿐이었다.
“스바, 이제 일을 시작해야겠어. 이번에도 야마시타 골드가 10조 정도는 되는 것 같아. 상상이 돼? 10조로 당근을 사면 아마 당근 산이라도 만들 수 있을걸. 너는 평생 그 당근 산을 다 먹을 수도 없을 거야.”
물론, 스바딜파리가 내 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내 손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걸 보니 당근을 찾는 것 같았다.
“그래, 네가 뭘 알겠냐? 옜다. 여기 당근..”
나의 황금동굴에는 오직 이렇게 황금과 당근을 구분하지 못 하는 순수한 존재들만 같이 올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에덴의 동산처럼 말이다. 선과 악, 가치와 무가치를 구분할 수 있는 존재들은 모두 추방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법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