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침실
“3천 6백억짜리 대저택을 플렉스하셨다고요?”
채은성 감독은 약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 제가 채 감독님에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영화 제작에 관해서는 최대한 지원을 하겠다고요. 빌리기로 한 샤또인지 뭔지가 없다고 하니까. 아예, 사버렸습니다.”
“돈이 많으신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영화 제작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네요.”
물론, 영화 제작 때문에 그 대저택을 산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유럽에 그런 대저택 하나쯤을 가지고 싶었으니까, 라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였다.
의외로 돈이 너무 많으니까, 돈을 쓰는 것도 쉽지 않다. 예전에는 돈이 없으니까, 사고 싶은 것들도 많았는데, 돈이 수십조 단위로 많아지니까, 돈으로 살만한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경제는 수요와 공급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다수의 상품들은 중산층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숫자는 적지만 돈이 많아, 구매력이 큰 부유층을 위한 고급 소비재 시장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시장이고, 나처럼 수십조의 자산가들을 위한 최고급 소비재들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한국에는 부자들도 별로 없고, 있다고 해도, 대기업 총수나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마음 놓고 사치스러운 소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재벌기업이라는 것 자체가 뭔가 대중의 눈치를 봐야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수십조의 자산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눈치를 볼 사람은 없었다. 내가 기업을 통해서 수익을 내는 것도 아니고, 부정한 일을 저지른 것도 없었다. 드림엔터테인먼트와 드론 사업 같은 것들을 하고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취미 생활 내지는 야마시타 골드를 채굴하기 위한 사전준비 작업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한국에 비해 유럽은 부자들도 더 많고, 워낙 고급스러운 소비재나 미술품 시장 같은 것들도 있어서 돈을 쓰기에는 더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빈 살만 왕세자 같은 사람도 유럽에 와서 이런 저택에 살았던 것일 테고 말이다.
“영화 제작을 위해서 그 대저택을 산 거니까요. 채 감독님도 책임감을 가지고 영화 제작에 더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는 걸 알아달라는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최 사장님.”
“민소희의 연기력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도 이제 하지 마세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의 주연 여배우인데 감독이 연기력 타령을 해서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그..그렇죠. 최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채 감독님도 직접 봐서 알겠지만, 내가 돈은 진짜 많은 사람입니다. 이미 벌 만큼 벌었죠. 영화는 돈을 벌려고 제작하는 게 아니라...”
“돈을 벌려고 제작하는 게 아니시라면? 역시, 예술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건가요?”
뭐? 뭘 사랑해? 난, 황금 이외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자본주의형 인간이라고.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나와 나를 부자를 만들어 줄 황금뿐이라는 말이야.
“하하, 그렇죠. 예술이라는 것은 고상한 취미 아니겠습니까? 역사적으로 봐도 부자들은 예술을 사랑했죠. 음악이든 미술이든, 그 자체로는 돈을 벌 수 없는 비상업적인 활동이죠. 부자들이 허영심이든 뭐든 예술품들 사주었기 때문에 그런 예술이 발전할 수 있었겠죠.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중세 르네상스도 메디치 가문 같은 돈 많은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더군요.”
“음,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드는 영화는 상업예술 아니겠습니까? 관객이 돈을 지불하는 그런 구조죠. 최근의 한국 영화의 흥행 성적도 좋은 편이고요.”
“영화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돈까지 벌게 되면 더 좋겠죠. 아무튼, 제가 이렇게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으니까. 채 감독님은 영화 촬영에만 전념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산토리니에서의 촬영은 마무리가 되었고, 다음 촬영을 위해서 프랑스로 이동을 해야 했다. 스텝들의 규모가 상당했지만, 샤또 루이 14세라면, 어지간한 호텔 수준의 방들이 있으니까, 숙박 문제는 걱정이 없었다.
***
프랑스, 파리 근교, 샤또 루이 14세
“와, 대박이네요. 이게 정말 최진수 선배님의 저택이라는 거죠?”
“그래, 원래는 사우디의 왕세자가 살던 곳이라고 하더라고.”
민영민은 화려한 정통 바로크 양식의 샤또 루이 14세의 본관이며 그 앞으로 펼쳐진 정원과 수영장 같은 부대 시설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도 쉴새 없이 럭셔리한 대저택을 찍고 있었다.
“채 감독님 어떻습니까? 영화 촬영을 위한 곳으로는 제격이지 않습니까?”
채은성 감독도 샤또 루이 14세를 둘러보며, 약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주연 배우인 김우혁과 민소희도 마찬가지여서, 대저택의 규모와 베르사유 궁전을 연상시키는 화려함에 약간 충격을 받은 표정들이었다.
“최진수 사장이 돈이 많다고 하더니, 진짜 어마 무시한 자산가가 맞나 봐?”
“그러게, 이 저택 가격이 3천 6백억이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걸 그냥 일시불로 계약했다는 거야.”
“일시불?”
“그렇게 들었는데, 계약서에 서명하고 바로 송금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프랑스 부동산 회사에서도 깜짝 놀랐다는 것 같아. 워낙 거액이잖아.”
“그 말은 계좌에 현금이 그렇게 많다는 건가? 뭐, 한국 재벌들 중에 수십 조 자산가들이 있다고는 하던데, 그렇다고 해도 즉흥적으로 이런 대저택을 구입하고 한 번에 3천 6백억을 송금할 정도로 현금이 많은 사람은 없지 않나?”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내가 재벌도 아니고..”
촬영 스텝들도 여기저기 모여서 내가 이 대저택을 현금 그것도 일시불로 플렉스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대체, 최진수 사장은 정체가 뭐야?”
“듣기로는 대학생이라고 하던데.”
“대학생?”
“그래, 민소희 사촌 오빠라고, 보디가드라고 데리고 다니는 녀석 있잖아. 민영민이라고 말이야.”
“아, 앞으로 해도 민영민, 거꾸로 해도 민영민 어쩌고 하던 녀석?”
“그래, 민소희 보디가드라면서 사진만 찍고 다니고는 있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 녀석 하고 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하더라고, 문화 대학교 경영학과라는 것 같아.”
“문화 대학, 경영학과면 그렇게 명문은 아니잖아?”
“왜? 인서울 4년제 경영학과면 괜찮지.”
“그런 말이 아니라, 무슨 전국적인 수재들이 다니는 그런 곳은 아니라는 말이지, 그렇다면 학벌은 평범하고, 외모도 평범한데, 역시 아버지가 돈이 많은 금수저나 그런 거겠지?”
“당연한 거 아냐? 저 나이에 무슨 자수성가를 했을 리도 없고, 요새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 사람이 많다는데, 비트코인으로 아무리 대박이 나도, 저렇게 한 번에 3천 6백억을 쓰려면 그걸로도 부족할 걸, 아마, 아버지가 어마어마한 대재벌이겠지.”
“아버지가 대체 누구길래? 무슨 재벌가의 재벌 3세라면 대충 누군지 정보가 있을 텐데, 최진수 사장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뭐하는 분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더라고.”
“한국의 재벌은 아니고, 무슨 워렌 버핏하고 동업하던 그런 분이라는 것 같아. 민영민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워렌 버핏하고 최진수 사장 집안이 좀 관련이 있다고 말이야.”
“오, 역시,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과 같은 수준의 투자가라는 말이군, 최진수 사장의 아버지가 말이야. 그렇다면 좀 이해가 가는데, 기업과 달리, 투자가라면 정체가 잘 안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
촬영 스텝들은 대부분,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이나 아니면 영화가 좋아서 돈이 안 되는 고된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돈에는 관심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스텝들도 나의 재력에 대해서는 관심들이 많았다.
하긴,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스텝들도 그렇지만 주연 배우인 김우혁도 나의 재력에 놀란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나름 한류스타에 한남동에 나와 같은 고급 빌라에 살고 있는 그였지만, 이런 어마무시한 프랑스 최고의 대저택을 내가 한 번에 별다른 고민 없이 구매했다는 이야기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니퍼 팍이라고 하셨죠?”
“예, 미국 교포예요. 이번에 좋은 기회가 닿아서 최진수 사장님과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영화배우 김우혁 씨죠? 저도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봐서 한눈에 알아봤어요.”
“하하, 프랑스 계신 분도 절 알아본다니 나쁘지 않은 기분이네요.”
제니퍼 팍은 계약을 마치고 저택 내부의 시설들을 일일이 소개시켜 주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채은성 감독이나, 민소희 같은 배우와 스텝들도 제니퍼 팍의 설명을 들으며 마치 오래된 프랑스의 고궁을 둘러보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런 돔형 천정 위에 그려진 그림이나, 홀의 벽면의 장식들 같은 건 다 1600년대의 프랑스 바로크 양식을 재현한 거죠.”
“그게 루이 14세 시대인가요?”
“예, 태양왕 루이 14세가 살던 시대가 17세기 초에서 후반까지니까요. 프랑스 하면 베르사유 궁전이잖아요? 베르사유 궁전이 만들어진 것도 그 무렵이라 바로크 양식은 프랑스의 예술적이고 엘레강스한 건축 스타일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죠.”
“와, 진짜, 무슨 건물이 장인이 한 땀 한 땀 완성한 예술품 같은 느낌이네요.”
나는 그저 비싸고 좀 고급스럽다는 인상 정도였지만, 미술을 전공했다는 채은성 감독은 샤또 루이 14세의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에 더더욱 매료된 표정이었다. 그리고 제니퍼 팍의 자세한 설명까지 더 해지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대충 샤또 루이 14세에 대한 설명은 다 한 것 같네요. 그 외에 디테일한 설명은 동영상으로 제작해 놓은 것이 있으니까요. 그걸 참조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샤또 루이 14세 저택으로 스텝들의 이동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영화 촬영이 시작되었다.
대저택이라 방들도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메인 마스터룸은 당연히 내 차지였다. 빈 살만 왕세자가 쓰던 곳이라는데, 사실 무슨 운동장처럼 큰 방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니퍼 팍의 설명으로는 베르사유에 있던 루이 14세의 침실을 그대로 재현한 방이라고 했다.
샤또 루이 14세의 가장 화려한 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고미술 전문가들이 고증을 통해 루이 14세의 방을 완벽하게 재현한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내 눈에는 좀 화려한 유럽풍의 침실이라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
“레디...액션..”
“와, 민준 씨, 이 저택이 정말 민준 씨 집이에요?”
“정확히는 우리 아버지 집이죠. 우리 아버지는 프랑스 최고의 억만장자 재벌이거든요.”
“민준 씨는 입양아라고 하셨죠?”
“맞아요. 한국에서 한 번 버림을 받고 입양이 된 거죠.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프랑스에서 멋진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요. 나를 버린 친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아요.”
“음, 그럼, 양아버지에게는 다른 자녀들도 있는 건가요?”
“야뇨, 나 혼자뿐이에요. 아버지는 무정자증이셨거든요. 그래서 돈도 많고 여자 친구들도 수도 없이 많으셨죠. 무슨 말인지 알겠죠? 하지만 씨 없는 수박이었던 거죠.”
“아, 그랬군요. 씨 없는 수박? 그럼, 이 저택과 아버지의 모든 재산은 모든 민준 씨의?”
“예, 모두 제가 상속을 받을 예정입니다.”
“와, 그럼?”
“수진 씨가 나와 결혼해 준다면, 이곳은 우리의 신혼집이 되는 거죠. 어때요? 수진 씨, 나와 결혼해 줄래요?”
“컷..”
“좋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뭐야? 채은성 감독은 꼭 중요한 장면에서 컷을 하는 것 같단 말이야. 감질나게..
촬영을 중단한 채 감독이 크리스티나 킴에게 뭔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크리스티나 킴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구경을 하고 있던 나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저기, 최 사장님, 어디서 고급 차량을 구할 수 없을까요?”
“고급차?”
“예, 지난번에 예약한 샤또는 관광호텔이라, 그쪽에서 의전용으로 쓰던 벤츠나 롤스로이스도 빌려주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그걸 타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데이트를 하는 씬을 촬영하려고 했었는데..”
“고급 차가 필요하다는 거군요.”
“그럼, 저의 회사의 롤스로이스 팬텀을 빌려드릴까요?”
“제니퍼 팍의 회사 차를요?”
촬영을 구경하고 있던 제니퍼 팍이 차를 빌려주겠다고 제의를 해왔다.
“예, 뭐, 최진수 사장님 같은 vvip 고객님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서비스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뭐, 고맙기는 한데 차를 빌리는 것보다 차를 사고 싶은데요.”
“차를 구매하시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