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가티와 에르메스 (99/200)

부가티와 에르메스

“예, 보시다시피, 영화 촬영용으로 쓸 가장 비싼 차가 필요합니다.”

“가장 비싼 차요?”

“아까 뭐라고 했었나요, 30억짜리, 붕가?”

“부가티요?”

“맞아요, 부가티. 그거 프랑스에서는 최고급 차라는 거죠? 가장 비싼 거 말입니다.”

제니팍 팍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가티는 원래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죠. 가격도 비싸지만 아무에게나 팔지도 않거든요.”

돈이 있어도 못 산다고? 고객을 가려 받는다는 건가?

“돈이 있어도 못 산다고요?”

“예, 대량생산하는 차는 아니니까요. 페라리나 롤스로이스드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최고급 차들은 소량 수제작을 하는 거죠. 말 그대로 명품이나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죠.”

“그건 알겠는데, 그럼 돈이 있어도 살 방법이 없다는 겁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다니엘 페오와 부가티는 협력관계니까요.”

“협력관계요?”

“예, 다니엘 페오는 프랑스의 고급 주택을 거래하는 곳으로 유명하거든요. 부가티와는 고객층이 겹친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서로 고객들을 연결해주는 파트너쉽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부가티를 사는 사람들과 다니엘 페오의 최고급 주택의 구매자들이 겹치면서 서로 고객들을 연결해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일견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둘 다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을 상대하는 일이었고 그런 부자 고객들을 연결해주는 것도 서로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부가티를 살 수 있게 소개를 시켜주시죠. 지금 당장 사고 싶으니까요.”

부가티를 사겠다는 말에 민영민도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진수 선배님 정말, 부가티를 사시려는 겁니까?”

“그래, 영화 촬영에 최고급 차가 필요하다고 하잖아. 마침, 부가티의 본고장, 프랑스까지 왔으니까 부가티를 사보는 것도 괜찮겠지.”

“그럼, 부가티 본사로 한 번 가보시겠어요?”

“부가티 본사요? 그게 어디인데요?”

***

프랑스, 독일 접경지역, 스트라스부르, 몰스하임 아틀리에, 부가티 본사.

제니퍼 팍의 소개로 방문하게 된 부가티 본사는 파리에서 꽤 떨어진 스트라스부르라는 도시에 있었다. 부가티의 역사는 19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샤또 세인트 쟝이라는 고성에서 부가티 브랜드가 탄생한 것이다.

“와, 여기도 샤또군요?”

“예, 하지만 부가티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1956년에 파산을 하면서 막을 내려요. 그러다가 폭스바겐 그룹이 1998년에 와서 이 오래된 부가티 브랜드를 다시 부활시키는 거죠.”

“음, 그렇군요. 부가티는 브랜드고 사실은 폭스바겐 그룹 계열사라는 거죠?”

“대부분의 럭셔리카 브랜드들이 그런 실정이죠. 최고급 자동차라고는 하지만 그런 최고가의 자동차를 구매할 고객들이 많지가 않거든요. 부가티만 해도, 30억이 넘는 차를 살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당연히, 차를 30억에 팔아도 개발 비용이나 부품 조달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비용 대비 판매량은 너무 저조하기 때문에, 30억짜리 차를 팔아도 적자를 본다는 말이 나오니까요.”

“그래요?”

하긴, 차 가격이 비싸도, 개발 비용을 생각하면 팔리는 차의 대수가 적다면, 적자가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제니퍼 팍의 소개로 간 곳은 몰스하임 아뜰리에 라는 곳으로 예전에 부가티가 본사 건물로 쓰던 샤또 세인트 쟝 고성과 연결된 현대식의 건물이었다. 이곳이 바로 현재 폭스바겐 그룹 산하의 부가티의 본사가 있는 곳이었다.

제니퍼 팍과 그리고 부가티 본사를 구경하고 싶다고 같이 따라온 민영민과 나까지 3명의 일행을 맞아준 것은 부가티의 대외 홍보 담당이라는 장 미셸이라는 남자였다. 큰 키게 세련된 외모의 금발의 남자였는데 프랑스인이지만 독일인 느낌이 나는 사람이었다.

“차를 구매하고 싶으시다고요?”

“예, 가장 비싼 차는 얼마입니까?”

“지금 판매 가능한 차들 가운데 가장 비싼 차는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 에디션입니다. 가격은 530만 유로입니다.”

“530만 유로요? 그게 얼마죠?”

“한화로 하면 70억이에요.”

옆에 있던 제니퍼 팍이 끼어들며 말했다.

“70억요?”

비싸기는 비싸네, 차 한 대 가격이 70억이라는 건가?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 가격이잖아?

말 그대로 강남 아파트를 타고 다니는 셈이었다.

장 미셸이 보여준 부가티 시론은,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세계에서 단 1대만 생산된 스페셜 에디션이라고 한다. 에르메스의 디자이너들이 인테리에 참가했다고 하는데,

아무튼, 에르메스와의 협업으로 에르메스 에디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자체가 희소성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었다.

“민영민 너는 어때? 나름 슈퍼카 전문가잖아? 도산파파라치 말이야.”

민영민은 나의 질문에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슈퍼카들이라면 저도 좀 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하이퍼카는 저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그래?”

“예, 한국에서 도산대로 같은 핫플레이스에서 슈퍼카들을 주로 찍어왔으니까요. 한국에 있는 차라면 그래도 사진도 찍어보고 가까이에서 살펴본 적도 있지만, 이런 하이퍼카들은 한국에는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고요. 한 두 대쯤 있다고 해도 주로 조심스럽게 소장하는 정도지, 공도에서 운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 그럼 한국에는 이런 부가티는 거의 볼 수가 없겠네?”

“그렇죠. 그리고 있어도 도로에서 볼 수가 없어요.”

“그럼, 차는 뭐하러 사는 거야?”

“듣기로는 하이퍼카들은 타이어 하나 교체하는 데만 2천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건 잘못 아는 거겠지? 아무리 비싼 차라고 해도, 타이어 하나 교체하는 게 무슨 2천만 원이야?”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인 장 미셸을 쳐다보았다,

“장 미쉘 씨, 얘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거죠? 아무리 부가티라고 해도, 타이어 하나가 2천만 원이나 하나요?”

장 미셸은 나와 민영민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서 부가티를 구입해서 타이어 교체를 원하시는 경우에는 프랑스로 부가티를 가져와서 타이어를 교체하게 됩니다.”

“예, 설마요?”

“부가티 같은 경우에는 모든 부품 교체를 본사의 공장에서 입고해서 교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죠.”

“아니, 그럼, 타이어 하나도 프랑스 본사에서 교체를 해야 한다는 겁니까?”

“물론, 개인적으로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은 차의 소유주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에르메스 에디션 같은 스페셜 버전이라면 에디션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본사에서 직접 수리 및 교체를 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음,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아무튼, 수제 작업으로 만드는 최고급 자동차니까. 작은 부품 교체라도 직접 본사의 장인들이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부가티는 차를 사는 것도 엄청난 재정적인 부담이지만, 수리를 하는 작업도 까다롭고 수리 기간도 일반적인 자동차에 비해서 오래 걸리는 거죠. 그래서 그런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진짜 부자들만이 부가티를 탈 수 있다고 할 수 있죠.”

“음, 그러면 차를 사서 운행을 안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타이어 하나만 교체하려고 해도 비용이나 시간이 엄청나게 드니까 말입니다.”

“그렇죠. 특히 아시아 지역의 부자들이 부가티를 구입해서 소장용으로만 보관하는 경우가 많죠. 아시아는 거리도 멀고 한 번 수리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부품 하나를 교체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는 건가요?”

장 미셸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타이어 하나만 정품으로 교체한다고 해도 아시아의 한국이라면 6개월 이상이 걸릴 수가 있습니다. 부가티는 수작업이 원칙이고 소수의 장인들만 작업에 참가할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래서 제작과 수리 작업에는 일반 자동차와 비교 불가할 정도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죠. 쉽게 말해서 자동차 구입하는 비용이 전부라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듣고 보니, 가격도 엄청난 차지만, 뭐 하나만 부서져도 수리하는 데 6개월이 걸린다는 말이었다. 부품 교체 비용도 어마무시하고 말이다. 보통 부가티 시론의 가격이 35억 정도라는데, 그 35억이 문제가 아니라, 유지비용이 더 엄청난 셈이었다.

그래서 진짜 부자들, 돈 걱정이 없는 세계적인 부호들이나 이런 부가티의 소유주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부가티 역시, 자신들의 차들을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 한 대 한 대가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는 수제 작업을 통해 생산되는데, 제작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당 35억 받아도 부가티 입장에서는 거의 수익이 없다고 한다.

많이 팔아도 이익이 되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를 많이 팔기보다는 진짜 차를 구매해서 잘 탈 수 있고, 관리가 가능한 확실한 재력가들에게만 차를 판매하는 판매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에르메스 에디션은 어디에 있습니까?”

보통 일반인이라면, 이 부가티의 본사 건물에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다고 하지만 최고급 부동산 중개업체인 다니엘 페오와 고객들을 공유하는 부가티는 다니엘 페오로부터 3640억 짜리 최고급 부동산인 샤또 루이 14세를 구매한 나를 최고의 VVIP로 대접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 몰스하임 아뜰리에도 들어올 수 있었고 말이다. 장 미셸은 아뜰리에라고 불리는 본사 건물을 구경시켜 주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 부가티가 생산되는 생산 공장도 견학을 시켜주었다.

숙련된 장인들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과정이어서 자동차 공장이라기보다는 예술품을 만드는 공방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아무에게나 공개하는 차는 아니지만, 최진수 사장님에게는 특별히 보여드리는 겁니다.”

쟝 미셸의 안내를 받으며 간 전시실에는 크림색의 미끈한 자동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와, 이게 바로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 에디션?”

처음 보는 화려한 부가티 모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평소부터 자동차광이었던 민영민이었다.

“차가 진짜 멋진데, 촬영을 해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마음껏 촬영을 하시죠.”

장 미셸의 허락을 받은 민영민은 물 만난 고기처럼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 에디션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뭐가?”

“이렇게 최진수 선배님 덕분에 부가티 시론, 그것도 세계에 1대 뿐이라는 에르메스 에디션을 찍게 되다니 말입니다.”

자동차든 뭐든 화려한 것들의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민영민에게는 신나는 순간이 되고 있었다.

은은한 크림색의 부가티는 톤 다운된 화이트 컬러로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모습이 진짜 에르메스 같은 명품의 이미지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저는 최고급 자동차가 필요해서 왔는데 말입니다.”

“음, 정말 에르메스 에디션을 구매하실 생각입니까?”.

부가티의 홍보 담당인 장 미셸은 내가 차를 바로 사고 싶다고 하자, 그것도 에르메스 에디션을 사겠다고 하자, 약간 멈칫하는 느낌이었다.

“최진수 사장님이 정말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를 구매하고 싶으시다는 거죠?”

“예. 하얀색의 컬러가 인상적이네요. 보통 흰색의 슈퍼카라는 건 드문데 말입니다.”

“그렇죠. 하지만 에르메스의 럭셔리함을 잘 표현한 멋진 스페셜 에디션이기는 하네요. 저도 돈만 있으면 사고 싶은 차죠.”

부가티의 직원인 장 미셸도 사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을 정도로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는 완벽하게 럭셔리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영민이 네 생각은 어때?”

“최고죠, 저도 슈퍼카든 럭셔리카든 최고급 차들을 좋아하지만, 이건 정말 차원이 다른 끝판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내 생각도 그래, 우리 영화를 위해서는 최고의 선택 아닐까? 이 정도 부가티라면 억만장자의 차로는 딱이잖아?”

“아, 그렇죠. 영화 때문이었던 거죠. 아무튼, 제가 최진수 선배님이라면 반드시 이 차를 살 거 같습니다.”

“이유는?”

“일단, 너무 럭셔리하고 멋진 하이퍼카이기도 하고요. 세계에서 1대뿐이라는 희소성도 있어서 가격은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은 자동차네요.”

민영민 말로는 이런 한정판 모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수집가들에 사이에서 가격이 더 상승하는 품목이라고도 하는데, 나에게는 가격이 오르고 돈을 벌고 하는 것이 번잡하고 귀찮을 뿐이었다.

“아무튼, 맘에 드네요. 이 흰색 부가티는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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