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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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

한국, 산토리니의 사랑, 시사회장.

“아무리 그래도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어쩔 수가 없지 않습니까? 채 감독은 영화의 흥행을 원하지 않는 겁니까?”

유럽에서의 영화 촬영이 끝난 영화의 편집도 마무리가 되고,

오늘은 산토리니의 사랑, 의 시사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사회장 한 편에 전시된 것은 프랑스에서 가져온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였다.

부가티에 70억에 구매한 시론 에르메스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김우혁과 민소희가 파리 시내에서 멋진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 잘 사용되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그때의 촬영장면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파리 시내에 갑자기 출연한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는 동양에서 온 이름 없는 배우들의 촬영현장 보다 훨씬 더 파리지엥들의 시선을 끈 것이었다.

그래서 프랑스 현지 뉴스에 나온 기사의 내용도 한국에서 온 영화 촬영팀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파리 시내에 등장한 부가타 시론 에르메스 에디션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프랑스 현지에서 화제가 된 뉴스가 바로 번역되면서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가 된 것이었다.

프랑스 현지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크림색의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를 운전하고 있는 김우혁의 모습이 포착된 사진들이 공개되며 부가티를 타는 김우혁이라는 기사가 큰 관심을 모은 것이다.

“최진수 사장님, 아무리 투자자라고 하시지만, 영화 시사회장에 부가티를 전시하는 건 횡포 아닙니까?”

“횡포라뇨? 다 채은성 감독님을 위한 건데요.”

“저를 위해서라고요?”

“영화를 잘 찍으면 뭘 합니까? 홍보가 돼야죠. 요새 개봉하는 한국영화가 한 두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블록버스터도 아닌, 우리 영화가 성공하려면 언론의 관심을 끌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 부가티를 전시해서 관심을 끌자는 겁니까?”

“그거라면 채 감독님도 잘 아시잖아요. 파리에서 촬영할 때도, 우리 배우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영화 촬영하는 데는 관심도 없던 파리 시민들이 부가티 시론이 나타나니까, 다들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났었잖아요.”

“흠, 그거야, 한국 배우들이 유럽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으니까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죠. SNS에서 화제가 된 건, 현지 신문에 실린 기사 중에서 부가티에 관한 내용들이었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그리스의 산토리나와 프랑스 파리 등에서 해외로케로 촬영한 산토리니의 사랑은, 생각보다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 했다. 영화계에서는 나름 연출력을 갖춘 신인 감독으로 평가받는 채은성 감독의 본격적인 상업영화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일반 대중들은 채은성이라는 이름도 생소했고, 김우혁이나 민소희가 나름 알려진 연예인들이기는 했지만, 원래 주연 배우들이야 다 스타들이 찍는 거니, 영화배우가 유명한 스타라고 흥행이 보증되거나 관심을 받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결국,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영화 촬영에서 영화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이 바로 내가 프랑스의 부가티 본사까지 가서 구입한 70억짜리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였다.

부가티라면 최고급 자동차의 대명사로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알고 있는 브랜드다. 하지만 차알못들이라면 나처럼 부가티를 사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차알못들도 에르메스 정도라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에르메스가 한국에만 한 해에 4800억의 매출을 올렸다니 말이다.

팔리기도 많이 팔렸고, 에르메스가 워낙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이니, 특히 여자들은 돈이 없어 사지 못 한 사람들도 에르메스의 제품 하나쯤 갖고 싶은 로망의 대상이라, 에르메스는 여자들에게는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다.

주로 남자들이 차에 관심이 있고, 여자들은 고가의 백에 관심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부가티와 에르메스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는 남녀 모두의 관심을 받을 만한 욕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70억이라는 엄청난 가격, 최고가 하이퍼라는 부가티 시론이 평균 35억 정도, 강남의 아파트 한 채 수준인데, 그중에서도 에르메스 에디션의 가격은 평균적인 시론의 가격의 2배인 70억에 달하는 것이다.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 가격이라고 할 수 있었고 그 가격만으로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그런 물건이었다.

취재를 하러 온 자동차 전문 기자들의 말로는 국내에 지금까지 수입된 자동차들 중에서는 최고가라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도 가장 비싼 자동차 중에서도 특별한 에디션인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가 한국인에게 팔렸고, 그 부가티가 영화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었다.

물론, 영화보다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가 더 유명해진 것은 좀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영화 홍보도 할 겸, 시사회장에 프랑스에서 가져온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를 전시하기로 한 것이었다.

채은성 감독은 자기 영화보다 더 관심을 받는 부가티가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영화 제작자인 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한발 물러나는 제스추어를 취했다.

“이렇게 자동차를 전시하는 시사회는 처음이지만,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요. 영화가 관심을 끌고 관객이 많이 들어야, 채 감독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거 아닙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맘 편하게 생각해요.”

“예, 그럼, 저는 시사회 준비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채은성 감독이 무대 뒤쪽으로 사라지고, 윤아영이 다가왔다.

“와, 이걸 다시 보게 되네요. 반갑다, 시론 에르메스...”

윤아영은 확실히 화려한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프랑스에서도 실내 인테리어가 예쁘다는 말을 많이 했고, 특히 인테리어를 에르메스가 직접 맡아서 했다는 말에, 뭔가 살짝 감격한 눈치였다.

전체적으로 화이트에 가까운 크림톤의 자동차 인테리어가 화려하고 멋지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잘 만든 건지는 모르겠던데, 여자들의 반응은 확실히 달랐다.

아마도,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의 힘인 것 같았지만 말이다.

윤아영도 그렇고, 이 차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시선은 하이퍼카라기보다는 끝에 붙은 에르메스에 방점이 찍혀져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가 이 차의 정식 이름인데,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가티라는 말에, 와우, 하고 감탄사를 내뱉고, 여자들은 끝의 에르메스라는 단어에 감동을 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남자들에게는 하이퍼카, 여자들에게는 에르메스의 인테리어가 어필하는 것이 바로, 이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라는 녀석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던 것이다.

“시사회장에 이렇게 차를 전시하는 건 좀 예외적인 일이죠?”

“아무래도 그렇죠. 차가 주인공인 영화라면 모르겠지만, 로맨스 영화에서 자동차가 그렇게 큰 비중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채은성 감독은 좀 맘에 안 들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어쩔 수가 없죠. 예술가들이야, 좀 고리타분하잖아요.”

윤아영은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격적으로 시사회가 시작되기 전에 식전 행사로 부가티 시론 에르메르를 공개하는 시간이 먼저 시작되었다.

보통 영화 시사회장에서는 영화 팬들과 영화 전문 기자들이 모여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오늘은 좀 분위기가 달랐다.

채은성 감독이 불만이었던 것처럼, 자동차 관련 기자들과 유튜버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를 찍으러 온 자동차 매니아들까지 시사회장에 모여든 사람들 대부분이 영화 팬들이 아니라, 부가티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건, 큰일인데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다들 카메라를 매고 있는 폼이 영화 때문에 온 사람들이 아니라, 부가티를 찍으러 온 사람들인 것 같은데요.”

시사회장에 찾아온 민영민도 걱정스러운 듯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역시, 사람들 관심이 다 부가티에 집중이 된 모양이네.”

처음 제작한 영화의 시사회장인데, 너무 나의 부가티에만 관심이 모이는 것 같아서 살짝 아차 싶은 생각도 들었다.

원래는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되라고 부가티 전시회를 기획한 거였는데 말이다.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와, 영민이 형이다. 형, 안녕하세요.”

자동차 매니아들이 잔뜩 모여든 시사회장에는 소위 말하는 도산파파라치들도 대거 입성해 있었다. 그리고 도산파파라치들 세계에서는 꽤 유명인사인 민영민을 보자, 몇몇은 민영민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너희들도 부가티 찍으러 온 거야?”

“예, 물론이죠. 영민이 형이 먼저 올린 사진들 때문에 난리가 났잖아요. 한국에서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를 보게 될 줄이야. 그나저나, 저 부가티 주인하고 친하다면서요?”

“하하, 뭐, 그렇지. 차주하고 나하고 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이번에 같이 유럽에도 같이 갔었잖아. 부가티 본사에도 같이 가고.”

“와, 그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몰스하임 아뜰리에 말이죠?”

“맞아요. 영민이 형이 올린 부가티 작업장 사진도 다 봤어요. 진짜 대박이던데요. 도산파파라치 중에서 부가티 본사까지 진출한 사람이 나올 줄이야, 역시 존경합니다. 영민이 형, 형은 가장 성공한 도산파파라치일 거예요.”

“하하, 뭐, 성공? 존경까지야. 하하, 너희들도 꿈을 가지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상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라는 그런 말이야.”

“알겠습니다. 영민이 형.”

뭐야? 꿈을 가지고...정상이라고...이 녀석, 정상이 아닌 거 아냐? 아니지, 사람들은 결국, 각자의 영역에서 살고 있는 사회적 존재가 아니던가? 보편적인 시선으로 보면, 특정한 집단은 이상하게도 보이겠지만,

군대든, 학교든, 회사든, 아니면 파파라치 동호회든, 나름의 세계를 구성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영민이 속한 도산파파라치의 세계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 세계에서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민영민도 나름 대우를 받는 스타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후배? 파파라치들 앞에서 잔뜩 거드름을 피우던 민영민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녀석들 아는 애들이야?”

“예, 선배님, 온라인 동호회에서 만난 후배들인데, 차를 좋아하는 애들이라, 부가티 실내를 좀 구경하고 싶다는데 괜찮을까요?”

“뭐, 안쪽을 보여달라고?”

“예, 꼭 보고 싶다고 해서 말이죠.”

뭐, 그래, 차를 보여주는 게 뭐 별거라고 말이야. 민영민 녀석도 나름 입장이 있겠지.

“그래, 여기 키 줄 테니까, 실내 인테리어도 좀 보여주고, 트렁크도 열어서 보여주고, 시동도 걸어서 배기음도 좀 들려주고 그래. 그런 것들을 원하는 거 아냐?”

“와, 정말요? 키까지 주시는 겁니까. 시동도 살짝만 걸어보겠습니다. 그러면...”

70억짜리 최고가의 차지만, 차고에만 애지중지 모셔두려고 산 차는 아니었다. 뭐, 이런 차 하나 사고서 사고 날까, 흠집 날까, 어디 한 군데 고장이 날까, 벌벌 떨 일은 나에게는 적어도 없는 것이다.

비싸기는 하지만, 25조 자산가인 나에게는 그저 한 대의 자동차일 뿐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받는 즐거움과 소위 말하는 하차감 때문에 샀을 뿐이지, 그 외에는 그저 타고 다니는 차라는 의미였다.

그러니, 구경시켜주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쨌든, 민영민도 어떤 의미에서는 나랑 친한 후배 녀석인데, 가오를 세워 줄 필요도 있고 말이다.

나에게서 부가티의 키를 받은 민영민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키를 흔들며 도산파파라치 후배들 쪽으로 다가갔다.

“와, 선배님, 저분이 차주 분인 최진수 사장님이시죠?”

“그래, 나랑 친한 형동생 하는 사이야. 이거 뭔지 알겠어?”

“헉, 이건,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의 키?”

“그래, 부가티 시론 중에서도 한 대뿐인, 에르메스 에디션의 스페셜한 키라고, 어때, 키 하나도 뭔가 품격이 느껴지지 않냐? 이걸로 안쪽 인테리어도 좀 찍고, 시동도 걸어보자고. 배기음도 들려줄 테니까. 영상도 잘 찍으라고. 알겠지?”

“와, 영민이 형, 진짜 대단한다.”

“그러게, 역시, 클라스가 다르다니까.”

“진짜, 파파라치계의 원탑인 것 같아.”

뭐지? 왠지 민영민에게 좋은 일만 시켜준 건 아니겠지?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최진수 사장님이시죠?”

“예, 누구시죠?”

“한영모터스의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한영모터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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