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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빚쟁이 (102/200)

한국 최고의 빚쟁이

천하의 대성그룹 장태식 회장이 나에게 부탁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한국 최고 재벌기업의 회장님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할 일이 있다니 말이다.

“부탁이라면? 어떤 일을 말입니까?”

“뭐, 내가 최진수 사장에게 할 부탁이 뭐가 있겠습니까, 돈 문제죠.”

“돈요?”

돈 문제라고? 한국 최고재벌기업인 대성그룹의 장태식 회장이 나에게 돈 문제로 부탁을? 설마? 돈을 빌려달라는 건가?

내가 빌려간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돈을 갚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빌려가겠다는 말인 것 같은데, 물론 내가 현금만 22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장태식 회장도 30조가 넘는 자산가로 알려져 있는데 나에게 돈을 빌린다는 건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난번에 나에게 여의도의 동화 빌딩을 매각했던 적도 있었고, 사업을 하다 보면 자금이 부족할 수도 있는 일이고, 아니면 개인적으로 돈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일이 상식적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네요. 장태식 회장님이라면, 한국 최고의 부자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하하, 정확히는 한국 최고의 주식 부자겠죠? 안 그런가요

주식 부자? 그러고 보니, 그렇기는 하다. 장태식 회장은 포브스에서 선정하는 부자 순위 1위에 올라있는 한국 최고의 재벌이다. 하지만 포브스가 개인들의 자산을 파악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포브스의 랭킹은 이미 공개된 주식의 가치를 파악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한마디로 포브스 부자 순위는 정확하게는 주식 부자 순위인 것이다. 장태식 회장은 한국 최대의 재벌그룹은 대성그룹의 대주주, 정확히는 지주 회사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성그룹 전체의 주식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순환출자 구조로 얽혀있는 계열사들의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 회사의 지분을 장악하고 있고, 그로 인해 대성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반 주주들에게 좋은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재벌그룹은 다 이런 식이니까, 내가 신경 쓸 문제까지는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장태식 회장은 대성그룹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지주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주식 부자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식의 가치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그 주식의 몇 배 혹은 몇십 배의 영향력을 경제계에 발휘하고 있기도 한, 재계의 거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산 대부분이 주식 그것도, 경영권 문제로 사실상 매각이 불가능한 지주 회사의 주식이다 보니, 의외로 현금은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래서 나에게 비자금을 빌리려는 것인가? 장태식 회장이?

장태식 회장이라면, 예전에 문위우표를 30억에 팔았던 좋은 기억이 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30억은 너무 적은 돈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엄청난 거금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그걸로 샀던, 경희궁 아파트도 너무 좋았고,

뭐든 욕망의 충족이라는 것은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프랑스에서 구입한 샤또 루이 14세의 가격은 3600억이 넘는 엄청난 대저택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14억 정도에 샀었던 기억인 경희궁 아파트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나만의 집, 나만의 공간, 시골 출신인 나에게 서울에 근사한 나만의 아파트가 생겼다는 느낌에 가장 만족스럽고 즐거웠던 곳은 처음에 샀던 경희궁 아파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최고급 자동차를 많이 가진 걸로 유명한 유튜버에게 가장 좋았던 차가 뭐냐고 했더니, 처음으로 샀던 중고차 경차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차를 갖게 되었고 그걸로 기존과는 달리 생활 반경이 넓어지는 새로운 경험을 해서 가장 신나고 즐거웠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아무튼, 그때 처음 만났던 장태식 회장은 대성그룹의 신임 회장으로 나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고, 나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그런 상상할 수 없는 부자라는 이미지였다. 그런 장태식 회장이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저에게 돈을 빌리시겠다는 겁니까? 얼마나 말입니까?”

“하하, 주위에 아무도 없기는 하지만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좀 그렇고, 어디 조용한 곳으로 장소를 옮기죠.”

보통은 운전기사가 운전을 하는 차를 타는 장태식 회장이었지만, 오늘은 기사 없이 혼자서 국산 대형 세단을 몰고 와 있었다.

“국산차를 타시는군요?”

“나도 수입차를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회장이 되고 나서는 좀 눈치가 보이더군요. 정부의 고위 인사들, 대기업 회장들은 국산 세단을 타는 게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겠군요. 저 같은 사람이야, 눈치 볼 이유가 없으니 편하게 마음대로 차를 타지만 말입니다. 아무래도, 조직을 이끌어야 위치에 있는 분들은 모범을 보이기는 해야겠죠.”

“하하, 모범이라고요? 아무튼, 내가 먼저 갈 테니까, 천천히 따라오시죠.”

***

성북동, 하이엔드 레스토랑, 미향.

장태식 회장의 세단을 따라간 곳은, 성북동의 골목길이었다. 주변은 고급 주택가이기는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주택 앞에서 장태식 회장의 차가 멈추어섰다.

그리고 내가 운전하고 있는 크림색의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도 다소 요란하게 장태식 회장의 뒤를 따라 멈추어 섰다.

그리고 잠시 후, 앞쪽의 문이 열리고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장 회장님 어서 오시죠.”

주차장 입구도 열리고, 직원인 듯한 사람들에게 발렛 파킹을 맞기고 장태식 회장은 나와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데, 아래쪽에서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부가티잖아. 굉장한데..”

“그러게, 좋은 차들을 많이 봤지만, 부가티를 보게 될 줄이야.”

“그 젊은 최 사장이라는 사람이 엄청 부자라고 하더라고.”

“하긴, 장태식 회장이 여기로 초대할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니지, 여기는 대기업 회장급이나 적어도 장관들을 모시는 곳이잖아.”

“그러게, 나이도 어린 것 같고, 뭐 하는 사람이지?”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차나 조심해. 부가티는 가격이 30억이 넘는다는 것 같아.”

“정말? 와? 이거 파킹하는 것도 살이 떨리네. 조심해야겠는데.”

귀가 밝아서인지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잘 들렸는데,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성북동의 부잣집 정도로 보이는 곳이지만, 대기업 회장이나 고위직 인사들이 자주 출입하는 곳인 것 같았다.

계간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자, 제법 넓은 마당이 있는 고급스러운 주택이 나타났다. 하지만 겉모양은 그래도 안쪽은 잘 꾸며진 고급 레스토랑이고 할 수 있었다.

장태식 회장 말로는 이곳 이름이 미향이라고 하는데, 외부에 간판도 전혀 없고, 레스토랑 현관 앞에 미향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이는 것이, 소수의 단골 고객들만을 상대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의 느낌이었다.

일반인들은 이런 레스토랑의 존재도 모를 것 같은 좀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아마도 대기업 회장들이 업무상 누군가를 접대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그런 프라이빗한 하이엔드 레스토랑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무슨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은 곳이군요.”

장태식 회장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영화 사업도 하시고, 최근에 강남역 사거리에 제이제이 빌딩도 인수하셨다면서요?”

“하하, 저에 대해서 뒷조사라도 하신 겁니까?”

“기분 나쁠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조사를 했습니다.”

뭐야? 감히 내 뒤를 캐고 다녀? 그래 봐야, 특별히 나올 정보는 없을 것이다. 죄를 짓고 살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장태식 회장의 내 뒷조사를 했다고 해도 나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에 대해서 그럼, 어떤 정보를 가지고 계신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조사는 실패했습니다. 도저히 대성그룹의 정보력으로도 파악 불가능하더군요.”

“하하, 그래요? 대성그룹의 정보력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조금 실망이네요.”

“그건 아닐 겁니다. 우리 대성그룹의 정보력이라면 한국정부보다 한 수 위라고 자부할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대성그룹의 정보망으로도 최진수 사장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건, 그만큼 최진수 사장님이 대단한 분이라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뭐, 제가 그렇게 신비로운 인물은 아닌데요.”

뭐야? 대성그룹에서도 나에 대한 정보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건가?

“솔직히 최진수 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여러 경로로 알아봤지만, 알 길이 없더군요. 무진시 출신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었다는 소문이 있기는 했지만, 자체조사 결과 동명이인으로 결론이 났죠.”

내가 편의점 알바였다는 것까지 알아낸 건가? 하지만 사람들은 진실이라는 것은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 하고는 한다. 어느 추리소설 속 탐정의 말처럼, 사람들이 진실을 발견하지 못 하는 것은 진실이 발견하기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결정된 진실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미 정해놓은 답을 찾으면서 진짜 답이 눈앞에 있어도 그것은 절대 답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장태식 회장이나 대성그룹의 그 대단한 정보원들도 엄청난 재력가인 최진수를 찾으려고 하고 있으니, 진짜 최진수의 존재를 보고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 했던 것이다.

“뭐, 저에 대해서 너무 관심을 갖은 것은 부담스럽군요. 저나 그 편의점 알바생이나 최진수라는 이름을 쓰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죠.”

“그래요? 하지만 두 사람이 가진 자산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나요? 한쪽은 시급 1만 원 정도를 받고 일하고 한쪽은 수천억짜리 저택과, 호화 요트, 부가티 같은 최고급 자동차까지 호화로운 인생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 저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계시군요. 하지만 그보다, 저에게 돈을 빌리시겠다고 하시는데 무슨 돈을 얼마나, 왜 빌리겠다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장태식 회장은 입가에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 맞아요. 최진수 사장의 정체에 너무 접근하는 건 실례가 될 수도 있겠죠. 아무튼,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내가 재벌가의 3세 경영인이라는 건 알고 있겠죠?”

“그렇습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을 이어받으신 거 아닙니까?”

“예, 운 좋게도, 할아버님이 창업하신 사업이 성장을 거듭했고, 아버지도 성공적인 경영으로 지금의 대성그룹을 이루어놓으신 거죠. 그리고 현재의 내가 대성그룹을 물려받아서 경영을 승계했습니다.”

“그러면 돈은 역시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장태식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영권이라는 것이 핵심 지주 회사의 주식이죠. 그걸 상속받았는데, 대충 가치로 환산하면 22조 정도로 평가가 됩니다.”

“30조가 아니고요?”

“그건, 아버님에게 본격적으로 상속을 받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지분까지 합친 거죠. 아무튼,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아버님의 주식을 모두 상속을 받게 되었는데, 그게 22조 상당의 주식입니다.”

“실제 가치는 더 엄청나지 않나요? 지주 회사 주식이라고 하지만, 대성그룹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거니 말입니다.”

“그렇죠. 아무튼, 22조가 왜 중요하냐면, 그게 국세청에 세금납부, 즉, 상속세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상속세? 그러고 보니, 그 정도 액수의 상속을 받았으면 세금도 상당하겠는데?

“상속세라면? 액수가 얼마나 되나요?”

“상속 세금만 13조입니다.”

시..십삼조? 그렇게나 세금이 많아? 장태식 회장의 고민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한국 최고 재벌인 장태식 회장이라도, 13조의 세금을 낼 현금은 없을 것이다.

물론, 상속받은 주식의 가치가 22조로 평가되고, 자신의 보유한 주식도 8조 원 정도 더 있다고 해도 말이다. 대부분의 주식은 대성그룹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지분일 테고, 그 외에 부동산 같은 자산을 팔아서 어느 정도 돈을 마련해 본다고 해도, 13조를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상속세는 어떻게 내신 겁니까?”

“아직 못 냈습니다. 국세청에 6년간 분할해서 내기로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해마다 2조씩은 내야 하는 액수죠.”

“일 년에 2조씩요?”

“사실, 전 알고 보면 한국 최고의 빚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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