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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것 (106/200)

질투는 나의 것

“그거 제가 사겠습니다.”

“예? 최진수 사장님 지금 파덱필립을 구매하시겠다고 하신 건가요? 어떤 모델을 말인가요?”

최선주 부사장은 확인하듯이 물었다.

“그거요,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영 씨.”

옆자리의 윤아영을 쳐다보니, 윤아영도 약간 당황한 표정이었다.

“사장님, 설마, 그랜드 마스터 차임을 말하시는 거예요?”

“아, 맞아요. 그랜드 마스터 차임, 파텍필립 그랜드 마스터 차임 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시계요.”

최선화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격이 한화 기준으로 370억으로 책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구매하시겠다는 건가요?”

“예, 카드로 결제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지갑에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어머, 저 사람 뭐야?”

“있잖아요. 최진수라고, 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살던, 샤또 루이 14세를 샀다는 그 사람,”

“저 사람이 그 최진수예요?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아버지가 돈이 많은가 보죠. 삼환그룹 회장님도 어리잖아요. 서른둘이라면서요.”

“그거야, 우리 아들은 능력이 있잖아.”

“정말, 파텍필립 그랜드 차임을 사겠다는 거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저건 오버 아닌가?”

“능력이 되니까 사는 거 아니겠어요? 저거 말고도, 7천억짜리 호화요트도 갖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래요? 7천억이면 우리 호텔보다 더 비싼 건데.”

“그러니까, 이 사장님은 엄두도 못 내는 저 시계를 아무렇지 않게 산다는 거겠죠. 안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시계 하나에 370억이라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내가 파텍필립에서 가장 비싼 시계인 그랜드 차임을 사겠다고 하자, 패션쇼장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다를 재벌급 집안의 사모님들이나 사업가, 아니면 탑스타 급의 연예인으로 우리나라에서 어딜 가도 꿀리지 않는 잘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최상류층들도 370억짜리 최고가의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구매한다는 것은 그저 입이 떡 벌어지는 놀라운 광경이었던 모양이다.

“최진수 사장님 정말, 파텍필립 그랜드 차임을 구매하시겠다는 겁니까?”

“예, 그거 파는 거 맞죠?”

“예, 판매용 제품은 분명합니다.”

“그럼, 돈을 지불하면 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다른 조건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일단, 파텍필립 측에 확인을 좀 해보겠습니다.”

최선주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판매용으로 전시를 하고 홍보를 하고 있던 그녀였지만, 설마, 한국에서 370억을 지불하고 진짜로 이 시계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올 줄은 예상을 못 한 모양이었다. 잠시 최선주 부사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직원이 다른 파텍필립 시계들을 설명해 주며, 10여 분이 지나갔다.

그리고 환한 얼굴의 최선주가 다시 안으로 돌아왔다.

“최진수 사장님, 파텍필립 그랜드 차임은 지금 당장 구매가 가능하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지금 당장 사고 싶은데요. 당장 구매하겠습니다.”

“그럼, 계약서 작성 절차가 있어서 사무실로 이동하시죠.”

“사장님, 정말, 그랜드 차임을 사는 거예요?”

“몇 번을 말해요. 시계 하나 사는 것뿐인데, 뭐 대단한 일이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손목시계를 370억이나 주고 산다는 건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었어도 시계는 시계일 뿐인데 명품이니 뭐니 해도 그것도 작은 손목시계 하나 가격이 수천만 원, 수억이라는 것은 가성비를 떠나서,

상식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싼 370억짜리 시계라면 어떨까?

이상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3천만 원짜리 시계는 너무 비싼 시계라는 생각이지만, 370억짜리 시계는 비싼 시계가 아니라, 일종의 투자 가치가 있는 예술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너무 큰 사물은 그 본질을 벗어나게 마련이다. 작은 곰인형이라도 수십 미터로 크게 만들면 그건 곰인형이라는 본질을 벗어나, 이른바 빅 씽, 거대한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은 그렇게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말을 예전에 소대장님에게 들었던 적이 있었다.

소대장님이야 쓸데없는 책이나 읽는 분이었지만, 아무튼, 명품 시계 하나가 수천만 원이라는 가격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최고가의 한정판, 단 하나뿐인, 최고 등급의 시계, 어쨌든, 세간의 평가가 그러한 최고가의 시계를 370억에 구매하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건 단순한 시계를 넘어 역사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시계니까 말이다.

고흐의 그림 같은 것도 원가를 생각하면 얼마나 되겠어? 피카소의 그림도 그렇고. 하지만 뭔가 거기에 예술가의 명성이 더 해지고 이런저런 스토리와 해석이 추가되면 예술사의 학 획을 긋는 걸작으로 평가를 받으면서 수백억에서 수천억의 가치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매장 사무실에서 준비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그 자리에서 나의 아멕스 블랙으로 결제를 하기로 했다.

계좌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몇천억 정도는 있을 테니까, 결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보다는 370억을 카드로 결제해 보는 것은 처음이라는 최선주 부사장이 좀 당황한 표정이었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370억이 일시불로 결제되었네요.”

“그럼, 이 시계는 이제 내 껀가요?”

“예, 보증서와 전용 케이스에 담아드리겠습니다.”

“케이스와 보증서 같은 건 대충 주시고요. 시계는 바로 차보죠.”

“예, 원하신다면요.”

그래, 내가 원하는 대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지,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유리 케이스 잘 보관 중이던 파텍필립 그랜드 차임을 꺼내 보았다.

뭐, 고급스럽기는 한데, 그래 봐야 시계 아니겠어?

“와, 사장님, 정말 엄청난데요. 시계가 아니라, 보석 같은 느낌이에요.”

“어지간한 보석보다도 고가의 시계죠. 370억이나 하니까요.”

“그 정도면 같은 크기의 다이아몬드와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네요.”

다이아몬드 가격은 잘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손목시계 정도인 이 녀석의 가격이 370억이니 같은 무게의 다이아몬드 가격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시계를 손목에 차보니 느낌은 확실히 좋았다.

“사장님, 그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시려고요?”

“그럼, 손목시계를 어떻게 차고 다녀요?”

“그래도, 370억짜리를 막 손목에 차고 다녀도 되려나?”

나도 순간 잠시 고민이 되었다. 가격도 가격이고, 세계최고의 명품 시계를 만드는 파텍필립에서도 단 한 개만 만들었다는 수백 년 시계 역사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시계를 내가 샀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손목에 차고 다녀도 되는 건지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명품이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 쓰자고 만든 물건이 아닐까? 시계의 성능과 품질 관리 그런 게 잘돼서 점점 더 가치가 올라가기는 했겠지만, 시계는 역시 시간을 확인하는 물건일 뿐이다.

나는 살 때의 가격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만 원짜리 싸구려 시계처럼 편하게 손목에 차고 다니기로 했다.

“시계는 시계일 뿐이죠. 그나저나 이건 시간은 맞는 건가요?”

“예, 시간은 정확합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죠.”

시간은 대충 정확하게 맞추어진 것 같고, 아무튼 특이하게 투 페이스 와치라고 해서 컬러가 두 가지로 되어 있었다. 나는 남자니까, 블랙에보니로 일단 가보기로 했다.

“잘 어울려요? 아영 씨.”

“그럼요. 멋진데요. 정말 럭셔리해 보여요.”

윤아영은 나보다는 시계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시계의 주인은 바로 나니까 말이다.

계약을 대충 마치고 파텍필립 그랜드 차임을 손목에 차고 다시 패션쇼장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의 손목에 꽂혔다.

“정말, 그랜드 차임으로 구입하신 거예요?”

나는 대답 대신 가볍게 왼쪽 손목을 들어 보였다.

“잘 어울리나요?”

딱히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내가 파텍필립 그랜드 차임을 구매하느라 잠시 중단되었던 패션쇼가 다시 시작되었지만 왠지 분위기는 시들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명품이라는 게 최고급, 최고가, 남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나만 갖는다는 그런 심리적인 쾌감으로 구매를 하는 것인데, 눈앞에서 370억짜리 최고가 시계를 내가 사버리고 나니, 다들 김이 빠져버린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렇게 루이비통의 초미니패션쇼도 끝이 나 버렸다.

***

루이비통 매장을 나오자, 매장 앞으로 발렛 파킹을 맡겼던 차들이 다시 나오고 있었다. 내가 윤아영과 타고 온 차는 부가키 시론 에르메스, 차가 매장 앞에 멈추어 서자 다른 패션쇼 참가자들이 이번에도 살짝 감탄을 하는 느낌이었다.

“굉장하네, 안 그래요? 신 여사. 우리도 어디 가면 재벌가 사모님 소리 듣는 사람들이지만, 저 최진수 사장은 뭔가 레벨이 다른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기업하는 사람들은 저렇게 대놓고 사치스럽게 살기는 어려운데, 대체 정체가 뭐야?”

“듣기로는 아버지가 해외에서 엄청난 투자자라고 하더라고요. 워렌 버핏하고 같이 투자를 해서 아무튼 현금 자산이 엄청나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까도 파텍필립을 370억에 바로 아멕스 블랙으로 일시불 결제를 했다고 하지.”

“음, 그러니까, 무슨 사업을 해서 돈을 번 게 아니라, 아버지가 돈이 많다는 거지?”

“그런 모양이에요. 사업도 하기는 하는 모양인데, 그걸로 저렇게 쓸 정도로 돈을 벌 정도는 아닌 것 같고.”

“그러니까, 현금이 그렇게 많다는 말이지?”

“왜요? 신 여사님도 현금 필요하세요?”

“내가 무슨 현금이 필요해? 나는 아니지만, 우리 강 회장이 혹시 돈이 필요할 수도 있잖아, 사업하다 보면 여기저기 비자금도 필요하고 말이야.”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가 도착하고 윤아영과 차에 오르는데 뒤에서 두 여자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르는 척 일단 차를 몰고 대로로 나갔다.

“아까, 그 두 여자 누군지 알아요?”

“아, 그 사람들요. 한 명은 삼환그룹 회장님 사모님, 아니, 회장님 어머니 아닌가요?”

삼환그룹이라? 거기도 꽤 유명한 재벌그룹인데, 삼환그룹이라면 우리나라에서 건설 쪽으로는 1등이라고 하는 삼환건설을 계열사로 보유한 대재벌 기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부동의 1위는 대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대성그룹이겠지만, 삼환그룹도 국내에서 5위 안에는 들어가는 재벌기업이었다.

“거기 회장님 어머니요?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던데요?”

“원래, 거기 강진만 회장님이던가? 그분이 회장님이셨는데, 몸이 안 좋으셔서 시골에서 요양 중이시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드님이 한동안 부회장을 하다가 이번에 회장으로 취임했다는 것 같던데, 이름이 강현석이라는 것 같던데.”

“그래요? 윤아영 전무는 어떻게 그런 걸 잘 알아요?”

“재밌잖아요. 대기업 회장님, 후계구도, 젊고 잘생긴 재벌 3세 그런 거요. 드라마의 단골 소재죠.”

“하하, 그 강현석이 잘생긴 사람인가요?”

왠지 질투가 났다. 윤아영은 뉴스 기사에서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대기업의 후계자인데다가, 무슨 하버드에서 MBA 인지, NBA인지를 따고 키도 크고 잘생긴 녀석이라는 것이었다.

윤아영의 설명대로라면, 드라마라 속의 재수 없는 재벌 3세, 그러니까, 남자들 입장에서는 말이다. 여자들 입장에서는 백마탄 왕자님이 따로 없겠지만,

아무튼, 엄친아의 끝판왕 같은 녀석인 모양이었다. 금수저에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잘생기고 거기에 서른두 살이라는데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벌써 후계자로 회장이 되고 말이다.

“저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는데, 다들 그러더라고요. 실물이 진짜 잘생겼다고. 매너도 좋고요.”

“누가 만나봤는데요?”

“배우나 아이돌 지망생들 중에는 강남의 부자들하고 오빠 동생 하는 애들도 많거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하긴, 연예인이나 연예인 지망생들이라면 미모로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으니 말이다. 돈 많고 잘 나가는 남자들과 연결될 고리들은 많은 것이다.

“아무튼, 시계 하나는 잘 산 것 같네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볼수록 매력이 있어요.”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는 화려한 강남의 밤거리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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