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노예
강남, 제이제이 타워. 드림엔터테인먼트 본사, 사장실.
“정말, 주가가 폭락하고 있잖아.”
사장실의 컴퓨터는 주로 연예계 뉴스를 보거나 심심할 때 게임이나 하는 용도로 쓰고 있었는데, 오늘은 나의 컴퓨터 모니터가 주가 차트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김영석 사장에게 들었던 것처럼 주가 조작이 시작되고 있었고, 그 첫 단계로 대성 이노베이션에 대한 악성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기사를 읽어보니 대성 이노베이션이 개발 중인 전기차 배터리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더해, 대성 이노베이션 관계자의 인터뷰도 더해졌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만간 해결될 거라는 내용이어서 결과적으로 문제를 인정한 셈이었다.
대성 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결함, 이라는 기사들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가면서 주식 시장에 큰 파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주가도 거기에 반응해 큰 폭으로 하락 중이었다.
문이 열리고, 윤아영 전무가 들어왔다.
“어머, 사장님도 주식하세요? 아니, 하긴 주식투자로 큰 돈을 버신 거죠? 아버님이 말이에요?”
“아버님이요? 우리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주식보다는 땅에 투자를 하시는 분이죠.”
“어머, 역시 아버님이 부동산이나 그런 쪽으로 투자를 하시는 거였군요. 어쩐지, 제이제이 빌딩도 그렇고 사장님이 사신 빌딩들이 다 가격이 올랐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나저나 뭘 그렇게 열심히 보세요?”
“아, 그냥, 주식 관련해서 좀 보고 있어요.”
“이거, 대성 이노베이션이잖아요? 여기 주식에 관심 있으세요?”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곳이라고 해서 좀 관심을 가지고 있죠. 미래는 전기차의 시대 아닙니까?”
“저도 대성 이노베이션 주식이 좀 있는데, 이번에 완전 망한 것 같아요. 뭐, 배터리를 개발했는데 결함이 있다고 뉴스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주식도 반토막 나버리고 속상해요. 남은 거라도 손절하는 게 그나마 손실을 줄이는 거겠죠?”
“손절요?”
윤아영 전무도 대성 이노베이션의 주식에 투자를 한 건가? 들어보니, 그다지 많은 액수는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뭐, 지금 손절할 것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하락하겠지만, 기초가 탄탄한 회사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큰 유망한 분야기도 하고요. 좀 더 버텨보지 그래요. 나도 여기에 투자를 할 생각인데.”
“예, 사장님이 대성 이노베이션에요?”
“주식이라는 게 원래 떨어질 때 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은 다들 회사가 망할 것처럼 난리지만 조만간 이 소동이 정리가 되면 주가는 회복될 겁니다.”
윤아영은 뭔가 잠시 생각해 보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한 번 더 확인하듯 물었다.
“정말, 사장님이 대성 이노베이션에 투자를 하실 거라는 말이죠?”
“물론이죠. 내가 투자하는 건 확실하니까, 아영 씨도 걱정하지 말고,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요. 손해볼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
며칠 후에는 대성 이노베이션은 주가는 한 번 더 폭락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연기금이 주식을 대규모로 매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대성그룹이 대성 이노베이션을 포기할 거라는 기사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장님, 어떻게 된 거예요? 대성 이노베이션 주가가 또 떨어졌어요?”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걱정하지 않게 생겼어요. 전 사장님이 대성 이노베이션에 투자할 거라고 하셔서 주가가 확 올라갈 줄 알고, 통장에 있던 돈까지 털어서 대성 이노베이션 주식을 더 샀단 말이에요. 내가 미쳤지.”
윤아영은 원래 가지고 있던 주식에 더해, 여유 자금까지 모두 털어 넣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주가가 더 떨어지고 연기금도 대성 이노베이션 주식을 매각하고 있으니,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사장님은, 대성 이노베이션에 투자를 하시기는 한 거예요?”
“아직요.”
“예? 나한테는 당장이라도 투자할 것처럼 말해놓고서 설마, 저한테 거짓말하신 거예요?”
“하하,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이제 본격적으로 대성 이노베이션의 인수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이..인수요? 인수?”
윤아영은 내가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할 거라는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윤아영은 늘씬한 몸매에 세련된 미녀라고 할 수 있었다. 한때 연예인 지망생 출신으로 어지간한 연예인들 뺨치는 미모이기도 하고 말이다. 거기에 연예계의 사정도 잘 알고 지금의 드림엔터테인먼트에서 나름 수완 좋은 능력자이기도 해서 평소에는 상당히 똑부러진 느낌이기도 한데,
내가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하겠다는 말을 하자, 마치 예쁜 마네킹이 된 것처럼 멍한 표정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왠지, 상상이 되었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마테킹이 되어 버린 윤아영...
“아영 씨? 괜찮아요?”
“아, 주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좀 어지러운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사장님이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할 거라고 하신 거 맞죠?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하하, 맞아요. 아영 씨가 꿈을 꾼 것도 아니고, 내가 분명하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1급 비밀이라고 할 수 있죠. 아무튼, 아영 씨가 산 주식은 내가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하면 원래 가격 이상으로 올라갈 테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정말요? 진짜죠?”
“뭐, 내가 언제 실없는 소리 하는 사람입니까? 아영 씨나 비밀 철저하게 지키세요.”
***
드림엔터테인먼트 직원 휴게실.
“윤아영 전무님이 대출을?”
“그래, 아까, 은행에 전화해서 대출 더 받을 수 없냐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윤아영 전무가 그렇게 돈이 궁한가?”
“듣기로는 주식해서 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래? 역시 주식으로 손해를 봐서 그런 건가? 안 됐네.”
“안 되기는? 그러게 남의 돈 거저 먹는 게 쉬운 줄 알아? 주식 그거 순 도박판이라고.”
“주식이 도박까지는 아니지, 아무튼, 윤아영 전무도 딱하게 됐네.”
직원 휴게실 기둥 뒤에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등 뒤에서는 우연하게 여직원들의 대화가 들려오고 있었다.
다행히, 윤아영은 내가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한다는 소문을 퍼뜨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대신 크게 하락해 있는 대성 이노베이션의 주식을 줍기 위해서 은행 대출을 받을 생각인 것 같았다.
윤아영이 그렇게까지 재테크에 열을 올릴 줄은 몰랐지만, 뭐,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폭락한 주식이 반등할 거라는 걸 안다면 누구라도 있는 돈을 끌어모아서 주식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래를 아는 사람은 돈을 벌 기회가 많은 것이 주식 시장이고, 미래까지는 몰라도 한 기업의 내부 정보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벌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업의 내부 정보 내지는 대주주들 간의 비밀스러운 거래에 대해서 개미 투자자들이 접근할 방법은 없는 셈이니까,
주식 시장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기울어진 이 운동장은 나에게는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으니 상관은 없었지만 말이다. 장태식 회장에게 개인적으로 빌려준 11조의 자금은 이번에 내가 9조를 투자해서 대성 이노베이션의 주식 40%를 장악하고 그걸로 경영권을 차지하게 되면 그 채무는 면제해 주는 조건이었다.
결과적으로 20조를 투자해서 시가총액 50조짜리 회사의 지분 40%를 매수하는 셈이니까,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이익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장태식 회장이나 김영석 사장의 판단으로는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대성 이노베이션은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회사였다. 그리고 행운의 과자의 판단도 대성 이노베이션의 주식을 인수하는 이번 투자를 선택했고 말이다.
그렇다면 당장은 큰 이익이 아니더라도, 대성 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으로 앞으로 큰 이익을 얻게 될 투자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20조의 돈을 이번 투자는 말 그대로 어마무시한 투자이기는 했지만,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갈 때 확인을 해주는 것뿐, 모든 거래는 해외에 있는 김영석 사장을 통해서 진행이 되고 있었다.
내가 직접 대성 이노베이션의 주식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 김영석 사장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서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금 문제도 있고 나중에 자금의 출처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김영석 사장이 안전을 위해서 그런 작업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에서 그런 자금 세탁을 전문으로 하던 사람이라, 일은 그럭저럭 잘 해내는 것 같은데 문제는 김영석이라는 사람을 100%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까지는 아무 이상 없이 나의 야마시타 골드의 매각 작업을 도와주고 있었지만, 지금은 워낙 막대한 자금이 그것도 굉장히 복잡하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운용이 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편의점 알바를 하던 경력이 전부인 복학생 경영학도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김영석 사장이 벌이는 복잡한 대성 인노베이션 인수 작업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김영석 사장 같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머리 좋은 실무자가 잘 처리해주면 다행이지만, 딴마음을 먹고 돈을 빼돌린다면 무능력한 나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김영석을 신뢰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었고, 그것은 점점 불안으로 성장하며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젠장, 김영석이 맘만 먹으면 내가 투자한 20조를 빼돌릴 수도 있는데, 과연 김영석을 믿을 수 있는 건가?
비단, 내 경우만이 아니라, 경리 직원이 중소기업에서 수백억을 횡령하는 사건도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연간 매출보다 많은 액수를 횡령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아니, 한두 푼도 아니고 연간 매출에 근접한 액수를 빼돌렸는데 사장이나 다른 직원들은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하지만, 회계를 담당하는 직원이 마음만 먹으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이 현실이다.
물론, 영원히 그것을 비밀로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
아무튼, 김영석 사장을 정말 신뢰할 사람인지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그것 때문인지 점점 초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가슴도 두근거리고 뭘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울렁거리는 증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다른 곳에 이상은 없고 스트레스성이라고 했다. 김영석 사장이 나를 배신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야마시타 골드를 찾아서 매각하는 작업을 도와줄 다른 사람을 찾은 것도 어렵고,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 행운의 과자가 있었지? 과자를 이용해서 김영석 사장의 신뢰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해보면 되잖아?
심플 이즈 베스트,
복잡할 건 없었다. 야마시타 골드를 찾아서 그걸 매각하고, 그 돈을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서돈세탁을 하고 그 돈을 이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하는데 투자를 하기 위해서 복잡한 작업들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나의 지식과 경험을 대신해 줄 나의 대리인 김영석 사장이 필요했고, 거기에 더불어 야마시타 골드라는 자금의 출처를 감추기 위해서 불법적인 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김영석 사장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겔이던가? 주인과 노예의 관계란 이런 것이다. 분명 주인은 나이고 나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노예인 김영석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인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 노예가 더 똑똑하고 유능한 것이다.
현대 자본주이란 이런 것이다. 능력이 있고 똑똑한 자들이 역설적으로 무식하고 무능한 부자들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인과 노예의 기묘한 지배 관계에 핵심은 바로 신뢰다. 신뢰는 타인에게 약속을 지키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그 약속이 과연 정당한가 부당한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 본주의 사회에서는 약속을 어기는 것이 최고의 죄악이 되는 것이다. 그 약속이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쨌든, 김영석 사장을 신뢰할 수 있는지는 행운의 과자로 판단해 보기로 했다.
나는 종이 두 개를 꺼내 놓고, 1번과 2번을 적어 놓았다. 1번은 김영석을 신뢰할 수 있고 계속 사업을 진행한다. 2번은 김영석은 신뢰할 수 없으므로 그와의 관계를 끝낸다. 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과자병을 열어 천천히 과자 하나를 씹기 시작했다. 약간 기분이 불안해서인지 과자에서는 그다지 달콤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씹다 보니 특유의 고소한 풍미는 남아 있었다.
아무튼, 초초한 기분으로 입안에서 나온 쪽지를 확인해 보았다.
휴우... 다행히 적혀 있는 번호는 1번이었다.
행운의 과자의 판단이 맞다면 김영석이 나를 배신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김영석 사장님,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예, 축하드립니다. 최진수 사장님, 이제 최진수 사장님은 대성 이노베이션의 최대주주가 되셨습니다.”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