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재벌
드림엔터테인먼트 사장실.
윤아영이 호들갑스럽게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고 어떻게 저렇게 뛸 수 있는 거지? 여자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실로 뛰듯이 들어온 윤아영은 몸을 헐떡거리며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대...대단하잖아...
“흠. 윤아영 씨, 무슨 일이에요?”
“대성 이노베이션요. 그거 사장님이 인수하신 거에요?”
“아, 그거 말이군요. 뭐, 내가 만든 회사를 통해서 인수한 거죠. 골드 컴비네이터라는 투자회사를 통해서 말이죠.”
“맞아요. 저도 뉴스에서 봤어요. 골드 콤바인지 뭔지 아무튼 그런 회사였어요.”
온라인의 뉴스는 물론이고, 주요 신문사에도 대성 이노베이션의 경영권이 나에게 넘어온 것은 엄청난 뉴스거리가 되고 있었다.
대성그룹이 가진 미래성장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회사로 한국에서는 업계에서 2위, 세계 전체로 봐도 5위 안에 드는 우량 기업인 대성 이노베이션이 갑자기 주가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대성그룹과 연기금이 갑자기 주식을 매각하면서 외국계 투자회사인 골드 컴비네이터가 지분의 40%을 인수하고 사실상 경영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경제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언론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성그룹의 입김 때문인지, 이번 대성그룹과 연기금의 대성 이노베이션 철수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사는 거의 없었다.
주요 일간지에서는 오히려 대성그룹 장태식 회장이 문어발 경영을 벗어나 자신들의 주력 분야인 반도체에 집중하기로 한 과감한 결정을 내렸고,
그렇게 자체적인 구조조정으로 대성전자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거라는 긍정적인 예상을 내놓았다. 연기금이 주식을 급하게 팔아치운 것에도 별다른 언급은 없었고 말이다.
역시, 돈의 힘은 대단한 것 같았다. 돈과 권력의 유착도 문제지만, 그런 권력과 재벌들을 견제해야 할 언론들도 이미 돈의 맛을 본 건지, 재벌기업에게 불리한 기사 같은 것은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뭐, 그건 나 같은 재벌들에게는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김영석 사장은 행운의 과자를 통해서 신뢰할만하다는 것이 증명되기도 했고, 역시나 이번에도 일을 깔끔하게 잘 처리해냈다.
지금은 시가총액이 좀 떨어지기는 했지만, 정상적으로 주가가 돌아온다면, 시가총액이 50조에 달하고, 앞으로 더 성장이 기대되는 전기차 배터리 회사인 대성 이노베이션의 경영권을 무리 없이 장악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차지한 주식이 40% 나머지는 해외 투자자들과 국내의 개미 투자자들인데, 그들이 힘을 합쳐도 나의 경영권을 위협하기는 어렵다는 평가였다.
“와, 정말 대단하시다. 사장님이 돈이 많은 건 알았지만, 대성그룹 계열사를 인수 하실 줄은 몰랐어요.”
“자본주의 시대 아닙니까? 돈이 있으면 뭐든 살 수가 있다는 거죠. 대성그룹이라고 다를 건 없죠.”
신문 기사에는 대성그룹과 연기금의 주식을 인수해서 대성 이노베이션의 최대주주로 떠오른 골드 컴비네이터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있었는데, 외국계 투자기업으로 최대주주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방점이 찍혀져 있었다.
뭔가 외국계 회사지만 주인은 한국인이니 한국의 주요 기업이 외국인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였다.
그러면서 골드 컴비네이터의 최대주주인 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물론, 디테일한 정보들은 아니었고, 최진수라는 이름과 한국계의 젊은 투자가라는 정도였다. 사진도 나오지 않아서 최진수라는 흔한 이름으로는 기사만 봐서는 그게 나라는 것을 특정하기도 쉽지 않은 다소 추상적인 기사였다.
어쨌든, 윤아영은 그게 나라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그러면 주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다시 주가가 올라가는 거 맞죠?”
“이전 수준 그러니까, 배터리 결함 기사가 나오기 전 수준으로는 회복될 거에요. 배터리 문제는 해결이 됐으니까요.”
“정말이죠? 휴우, 주식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다고요.”
“하하, 뭐, 내가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해서 주가는 다시 회복될 거라고 했었죠?”
“예, 사장님 말을 믿기를 잘했어요. 덕분에 투자로 돈을 좀 벌게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윤아영은 주식 투자로 만족을 한 모양이었지만, 나로서는 이번 대성 이노베이션의 주식 인수로 가지고 있던 현금을 거의 다 소진하고 말았다.
어쨌든, 현금으로 20조를 지불하고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한 셈이라, 내가 가지고 있던 22조의 현금 중에 남은 돈은 이제 1조 5천억 정도만 남아 있었다.
물론, 그 돈만 해도 어마무시한 현금이기는 했다. 통장에 1조 이상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뭐든 상대적인 것인지 계좌에 22조를 가지고 있다가, 1조 5천억으로 줄어들어 버리자, 뭔가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물론, 현금만 없을 뿐, 대성 이노베이션이라는 우량 기업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작은 회사도 아닌데 그 회사 경영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대성 이노베이션을 경영하는 데도 또 추가로 돈이 들어갈 수도 있고 말이다. 앞으로 투자도 더 해야 하고 그런 거 아닌가?
대기업의 최대주주, 실질적인 오너가 되었다는 것은 만족스러웠지만, 동시에 어깨가 무거워지다 못해 결려오는 기분이었다.
어깨와 목의 만성 통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약간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렇게 목과 어깨가 아프다니, 어쩔 수 없이 마사지를 받으러 가야 하는 것인가?
“사장님 어디 불편하세요?”
“어, 아니에요. 이번에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하느라 좀 신경을 썼더니, 목도 뻣뻣하고 어깨도 좀 결리고, 스트레스성 근육통이 좀 있거든요.”
“어머, 세상에, 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분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스트레스가 많으신가 봐요?”
“그러게요. 사업을 하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많네요. 할 수 없죠, 이게 다 운명이라고 생각해야죠. 하하...”
“정 불편하시면 제가 마사지 좀 해드릴까요?”
“마사지요?”
뭐지? 윤아영이 나를 마사지를 해준다고? 왠지 나쁘지 않은데.
“윤아영 전무님이 마사지를 할 줄 알아요?”
“예, 예전에 마사지샵에서 일해 볼까,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마사지샵요?”
“배우를 하려고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발성이 안 좋다. 그런 말도 자주 듣고, 대사 처리가 너무 미숙하고 그런 게 있어서 오디션에 계속 떨어졌었거든요.”
음, 그런 사연이 있었군. 하긴, 윤아영이 말도 좀 빠른 편이고 살짝 발음도 뭉개지는 것도 있기는 했다. 약간 혀짧은 소리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충 미모와 몸매가 있으니까, 귀엽게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예,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고 괜히 PD나 감독들이 술자리에 나오라고 그래서 이래저래 짜증도 나고요. 그래서 연예인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려고 마사지 기술을 좀 배운 적이 있거든요.”
“그럼 자격증도 있어요?”
“물론이죠. 그때는 마사지샵에서 한번 일해 보라는 곳이 많았어요.”
상상이 되었다. 윤아영이 아로마 마사지샵에 새로운 마사지사로 들어오면 상당한 인기를 끌었을 것 같았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사근사근한 편이니까, 고객 관리도 잘했을 테고, 그쪽으로 진출했어도 대성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사장님 덕에 주식으로 돈 좀 벌 것 같기도 하고요. 아직은 주가가 그다지 오르지는 않았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서비스로 한 번만 해드릴게요.”
사실은 어깨가 아파서 영진빌딩으로 가서 마사지를 받아볼까도 생각하고 있었다. 두 명에게 동시에 받는 황제 마사지로 말이다. 하지만 의외로 윤아영에게 마사지를 받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평소의 세련된 강남 미녀 스타일의 윤아영의 마사지 실력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뭐, 아영 씨가 한 번 옛 추억을 되살리며 해보고 싶다면 기꺼이 상대가 되어 드리죠. 그럼, 어디에 누워야 하지 않나요?”
“음, 여기 소파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윤아영은 내 사무실 앞쪽에 소파를 가리켰다.
보통은 손님들 접대용으로 쓰는 소파지만, 충분히 큰 사이즈라 내가 편하게 엎드릴 수 있는 공간은 충분했다.
소파에 편하게 엎드려 있자, 뒤에서 윤아영이 재킷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눈이 뒤에도 달려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인간에게는 상상의 눈이라는 게 있으니까, 때로는 진짜로 보는 것보다 상상으로 보는 것이 더 즐거울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럼, 시작할게요.”
눈을 감고 있자, 뒤에서 윤아영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어딘지 프로 마사지사들에 비해서는 약간 어설픈 감도 있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허당도 아니어서 손으로 지압점에 적당히 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 그래도 어디서 배운긴 배운 모양이네요. 뭔가 프로페셔널한 느낌적인 느낌인데요.”
“후후, 마사지 배울 때, 꽤 잘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상상이 되었다. 윤아영을 내 전속 마사지사로 고용하는 것이다.
“회장님, 오늘은 어떤 마사지를 해드릴까요?”
“회장님? 내가 회장님이야? 미스 윤.”
“그럼요. 대성 이노베이션을 시작으로 대성 반도체도 인수하시고 신성자동차 그룹도 인수하셔서, 이제 대한민국 재계 1위의 재벌 회장님이 되셨잖아요.”
“하하, 그랬었지. 워낙 쉽고 빠르게 기업들을 인수 했더니 잘 기억도 안 나서 말이야. 하하..그나저나 미스 윤은 언제부터 내 전속 마사지사가 된 거였지?”
“어머, 회장님 너무해요. 제가 회장님 전속 마사지사만 몇 년째인데요. 회장님이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하실 무렵에 조금씩 특별 서비스로 해드리다가, 대성 반도체를 인수하신 후에는 아예 전속 마사지사가 되었잖아요.”
“하하, 맞아. 그랬었지? 내가 좀 깜빡깜빡해. 재벌그룹 회장이 되고 나서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까 말이야.”
“그러면 오늘은 스페셜 서비스를 해드릴까요?”
“스..스폐셜 서비스?”
“시원하시죠?”
“와, 정말 시원한데요.”
윤아영의 제법 능숙한 손길이 어깨를 타고 척추를 눌러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사장실 문이 열렸다.
“어머, 뭐..뭐 하시는 거예요?”
“어, 갑자기 어깨가 좀 결려서..무슨 일이에요?”
“사장님, 결제를 받으러 왔는데,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결제 서류를 들고 있던 여직원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
직원 휴게실.
“그렇다니까. 사장실 소파 있잖아?”
“그거 알지, 사장님 책상 앞에 있는 거 말이지.”
“그래, 사장님이 직원 면담 할 때도 쓰는 거기 말이야. 거기서 윤아영이 사장님 몸 위에 올라타서..”
“사장님 몸 위에 올라타? 정말이야? 실화야? 올라타서 뭘 했는데?”
“올라타서, 어깨를 막 주무르고 있더라고.”
“어깨를? 그럼 사장님은 위를 보고 누운 거야? 아래를 보고 엎드린 거야?”
“물론, 바닥 쪽으로 얼굴을 하고 엎드려 있던 거지.”
“그러면 좀 애매하네, 사장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던 거잖아?”
“아니, 윤아영 전무가 대체 왜 사장님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는데? 윤아영 전무가 마사지사야?”
“어, 마사지사야.”
“정말?”
“그래, 윤아영 전무가 무슨 마사지 자격증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예전에 자격증을 따서 마사지샵에서 잠시 일했던 적도 있다는 것 같아.”
“그래?”
“원래 윤아영 전무도 연예인 지망생이었잖아? 연예인 지망생 하다가 안 풀리면 영락없는 백조 신세인데, 그래서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도 배우고 자격증도 따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왜? 회사에서 꽤 유명한 이야기인데, 아무튼, 마사지 자격증도 있으니까. 잠깐 마사지도 해주고 그런 모양이지.”
“그래도 회사에서 무슨 마사지야?”
“야, 그게 다 사회생활 잘하는 거야. 그렇게 남자 사장 비위도 맞춰주고 그래야 승진도 잘 되고 그러는 거지.”
“그런가?”
“거기다, 이번에 뉴스에 보니까, 최진수 사장이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했다는 것 같아.”
“정말? 대성 이노베이션이 뭐 하는 곳인데?”
“자동차 배터리, 그러니까, 전기차 배터리 생산하는 곳인데. 세계적인 기업이라고 하더라고. 지금은 주가가 좀 떨어졌는데 잘 나갈 때는 시가총액이 50조 정도 되던 회사라고 하더라고.”
“50조? 50조 원?”
“그래, 아무튼, 대성그룹에서도 상당한 알짜 기업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이번에 최진수 사장이 그 회사 최대주주가 되어서 경영권을 장악했다는 기사가 나왔더라고.”
“와, 대박이네, 최진수 사장님이 돈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였어?”
“야, 그러니까, 윤아영 전무도 뭔가 돈 냄새를 맞고 최진수 사장님에게 마사지도 하고 그러면서 꼬리를 치는 거 아니겠어?”
뭐, 꼬리를 쳐? 기둥 뒤에서 듣고 있던 나의 존재는 모르는지 한동안 나와 윤아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두 명의 여직원은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아무튼, 윤아영의 마사지 덕분인지 어깨는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대성 이노베이션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더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 다시 브라질로 가자. 황금을 찾아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