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주인
아이케이 빌딩, 이카로스 항공 사무실.
“스파이더 드론이라고요?”
“예, 모양이 꼭 거미같이 생긴 형태입니다.”
거미라면 왠지 귀여운 녀석이잖아?
서종수 사장은 그동안 신형 드론 개발에 매진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장님께서 원하시던 드론이 길이 험한 오프로드에서 화물 운송을 하기 위한 그런 장비 아니었나요?”
그렇기는 하다. 브라질의 자구아눔 제도와 그 인근의 해안 지대의 동굴들, 그러니까 산속에 있는 동굴들에서 드론을 이용해서 야마시타 골드를 평지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하려는 거니까 말이다.
지난번에 바나나섬에 갔을 때는 볼로 드론에서 만든 블로콥터를 이용해서 큼지막한 황금상자들을 쉽게 해안의 창고로 이동시킬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중을 위해서 서종수 사장에게는 드론을 개발하라고 지시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다행히 서종수 사장은 내 지시를 충실하게 실행하고 있었다.
볼로콥터와 비교해서 크기는 좀 작은 것 같았지만 차이라면, 드론의 아래쪽에서 거미처럼 기다란 다리가 뻗어 나온다는 것이다. 그 끝에는 고압의 흡입판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드론 바로 아래에도 흡입판이 있어서 화물을 사방에서 분산에서 들어 올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볼로 드론과 차이라면, 볼로 드론은 사람이 화물을 고정하는 작업을 해줘야 하지만 이 스파이더 드론은 자신이 다양한 형태의 화물을 바로 집어서 수송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 그래요? 일을 할 때는 도움이 많이 되겠네요.”
정글에서 야마시타 골드를 옮기는 작업을 하기에는 적합한 녀석인 것 같았다. 황금을 옮기는 작업은 온전히 나 혼자 해야 하는 일인데, 상자를 드론에 고정시키는 일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에너지 소모가 크다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역시 엘리트라 뭔가 다르군요. 이런 혁신적인 발명을 하다니 말입니다.”
브라질에 갈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여기저기가 아프고 일하기 싫어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나마 일거리가 줄어든다고 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다음 주에는 브라질로 출발해야 하니까, 준비를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완벽하게 준비해 놓고 있겠습니다. 참, 그런데 뉴스를 보니까, 사장님이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하셨다는데 사실인가요?”
“아, 그거요. 그렇게 된 셈이죠. 이제 제가, 아니 정확히는 내가 소유한 투자회사 골드 컴비네이터가 대성 이노베이션의 최대 주주가 되었으니까요.”
뭐지? 서종석 사장도 대성 이노베이션의 주식을 가지고 있나?
“서 사장님도 주식에 투자를 하셨나요?”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예전에 다니던 회사기도 해서.”
“그래요?”
서종수 사장 말로는 드론 사업을 하기 전에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입사했던 회사가 대성 이노베이션이라고 했다.
“전 개인 사업을 하고 싶어서 퇴사를 하기는 했지만 괜찮은 회사였죠. 아시다시피 2차 전지 사업은 미래형 사업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하하,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까, 드론에도 배터리가 들어가는 거잖아요? 충전지 배터리 말입니다.”
“맞습니다. 전기차에 쓰면 전기차 배터리고, 드론에 들어가면 드론 배터리죠.”
맞는 말이네, 배터리야 크기나 용량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많은 곳에 다양하게 쓰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드론이나 로봇 개발에도 배터리가 도움이 된다는 말인데...
“배터리 관련해서 대성 이노베이션과 협력을 할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세요. 이제 그쪽은 내가 대주주이니까요.”
“음, 그런 것도 가능하겠는데요. 만약에 대성 이노베이션과 콜라보로 뭔가를 만들어 낼 기회가 있다면 우리 이카로스 항공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거라면 내가 대성 이노베이션 경영진에 얘기해 보죠.”
“경영진이라면 지금의 최대현 사장 말이십니까?”
“예, 그 사람이 사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시는 분입니까?”
서종수 사장은 잠시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제가 대성 이노베이션은 2년 정도 다니다가 퇴사를 하기는 했지만, 동기들이 꽤 있어서 그 회사 사정은 좀 아는 편입니다.”
“그래요?”
“예, 최대현 사장이라면 아무래도 장태식 회장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죠. 대성그룹 회장 가문과 오랜 인연이 있는 사람이고요.”
“그거야 그렇겠죠. 원래 장태식 회장과 대성그룹이 경영권을 쥐고 있던 회사니까요.”
“아무래도 대성그룹 사람이라, 이번에 최진수 사장님이 경영권을 넘겨받은 대성 이노베이션을 이끌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긴, 서종수 사장 말이 맞기는 하다, 삼국지로 비유를 하자면 익주가 유비에게 넘어왔는데, 익주를 유종의 심복에게 경영하게 하는 일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유비도 아니고 말이야, 유비에게는 제갈공명도 있고 따르는 무리가 있었지만, 나는 홀로 독고다이일 뿐이다.
김영석 사장이 나의 브레인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검찰에 쫓기고 있어서 한국에는 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는 한데, 달리 경영을 맡길 믿을만한 사람이 있어야 말이죠.”
서종수 사장은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유능한 인재를 소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능한 인재요?”
***
한남동 유엔 빌리지, 메종 올리비아
“와, 여기는 뷰가 정말 좋군요.”
서종수 사장이 소개시켜주겠다던 인재는 대성 이노베이션의 이동준 상무였다. 서종수 사장과는 서울대 동문으로 대성 이노베이션에 재직할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요새 한남동의 핫플레이라고 하더라고요. 유엔빌리지가 원래 한강뷰가 좋은 곳이죠.”
메종 올리비아는 유엔빌리지에 있던 고급 단독주택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곳인데 워낙 뷰가 좋고 부지가 넓은 곳이라 한강뷰를 즐기며 여유롭게 식사를 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거기다 한남동에 있는 나의 빌라와도 가까워서 집에서 설렁설렁 걸어와서 종종 저녁 식사를 즐기는 곳이기도 했다.
“원래는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는데 사업 이야기를 하자고 불러내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저도 이렇게 좀 편한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딱히 숨길 것도 없고요.”
지난번 장태식 회장은 상속세를 빌리기 위해서 나를 성북동에 있는 비밀 아지트 같은 곳으로 초대를 했지만, 내가 이동준 사장을 만나는 데는 비밀스러울 일은 없었다.
불법적인 일도 없고 말이다.
“얼마 후면 주주 총회가 있을 겁니다. 저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죠.”
“두 가지 선택지요?”
“예, 지금의 최대현 사장 체제를 유지하던가, 아니며 새로운 신임 사장을 선임하는 겁니다. 물론, 제가 단독으로 할 수 일은 아니겠죠. 제가 가진 지분은 40% 정도니까요.”
“40%라면 과반은 아니지만 다른 대주주가 없는 상황이니까, 이변이 없는 한 최진수 사장님의 뜻대로 될 겁니다. 개미 투자자나 외국인 주주들이 똘똘 뭉치기는 어려운 법이죠.”
그건, 이동준 상무의 말이 맞을 것이다. 현재의 최대 주주는 나고 나를 견제할 대주주는 없는 상황, 사실상 대성 이노베이션의 경영권은 이미 나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서종수 사장 말대로 최대현 사장은 대성그룹의 장태식 회장이 선임한 경영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의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럼, 최진수 사장님의 선택은 어떤 것입니까?”
“그게 결정이 좀 어렵네요.”
물론, 이미 결정은 내린 상황이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행운의 과자로 이동준 상무를 신임 사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어떨지 한 번 행운을 테스트 해본 것이었다. 결과는 이동준 상무를 대성 이노베이션의 신임 사장으로 선임하라는 것이었다.
행운의 과자 역시도 이동준 사장을 추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동준 상무님은 회사에서 오래 계셨으니까 내부 사정을 잘 알거 아닙니까?”
“하하, 그렇기는 하죠.”
“요새 대성 이노베이션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이동준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사이 저녁 식사가 나왔다. 파스타와 스테이크, 리조또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최진수 사장님이 대주주가 되신 것도 그렇고, 대성그룹이 대성 이노베이션을 포기했다는 것에 내부적으로는 충격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요?”
“아시겠지만, 2차 전지 산업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미래먹거리 사업으로 알려져 있죠. 비록 대성그룹의 주력이 반도체와 휴대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대성그룹의 핵심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대성 이노베이션인데 말입니다. 갑자기 대성그룹에서 철수를 하겠다니 어이가 없어하는 반응들이었죠.”
“나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다들 불안해하는 건 사실입니다. 일단 나이도 굉장히 젊으시고 저희가 내부적으로 알아본 바로는 그다지 경영 쪽으로 경력이 있으신 분도 아니고 말입니다.”
“하하, 내 뒷조사를 한 건가요?”
“저희들도 회사의 새로운 주인의 정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나에 대해서 알아낸 건 어떤 것들입니까?”
“엄청난 자산가이고, 플라잉 폭스라는 초호와 요트, 샤또 루이 14세 대저택, 부가티와 최근에는 파텍필립까지 아주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화려한 분이라고 알려져 있더군요.”
“하하, 이 시계 같은 것 말이군요.”
마침 내 손목에는 세계 최고가의 시계 파텍필립 그랜드 차임이 차여져 있었다.
“뭐, 이런 시계가 몇백억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좀 관심을 가지는 모양이지만, 제가 가진 자산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동준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하기 위해서 수십조를 쓰기는 했지만, 앞으로 그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할 능력도 있고요. 필요하다면 말입니다.”
“정말이신가요?”
“하하, 제가 대성 이노베이션 같은 알짜 기업을 어떻게 인수할 수 있었겠습니까?”
“음, 그건?”
“자세한 얘기는 다 할 수 없지만, 다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죠. 대성그룹 못지않게 지원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동준은 잠시 나의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내 생각에 최대현 사장은 장태식 회장 일가의 심복이라고 알고 있는데 안 그런가요?”
“그건, 최진수 사장님의 말이 맞습니다. 배터리 사업 쪽에 전문 지식이 있다기보다는 장태식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죠.”
“신뢰라는 건 중요한 요소죠. 저도 믿을만한 사람을 중요한 사업에 대리인으로 내세워야 안심이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현 사장은 내 사람은 아니니까요.”
“역시 신임 사장이 필요하시다는 건가요?”
“서종수 사장이라고 아시죠? 지금은 이카로스 항공이라는 드론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데.”
“예, 사실, 서종수 사장이 저를 추천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이동준 상무님이 대성 이노베이션에서 경력을 쌓으시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신망이 높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문제는 최대현 사장처럼 대성그룹 사람인지 아니면 나를 위해서 일을 해줄 사람인지가 중요하겠죠. 어떻습니까? 이동준 상무님의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저는 처음 입사할 때부터 배터리 개발을 하고 싶어서 입사를 한 겁니다. 연구직으로 들어왔었죠.”
“오, 그래요?”
“대성그룹 계열사로 많은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대성그룹에 충성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지금도 배터리를 개발하는 일에 열정을 쏟으실 거라는 말이죠?”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서종수 사장도 그런 말을 했었는데, 이동준 상무는 누구에게 충성하고 그걸로 출세를 바라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는 일을 좋아하고 특히 배터리 개발 분야에 야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로서도 나쁘지 않은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능력은 검증된 사람이고, 회사를 이끌어갈 능력도 있는 것 같고 말이다. 대성그룹에도 그다지 미련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에게도 특별히 잘 보이거나 충성을 하겠다는 의지도 없는 것 같았지만, 대성 이노베이션에 대한 상당한 애정과 배터리 개발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였다.
“대성 이노베이션은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번 주총 이후에는 회사 사명도 바뀔 테고요. 경영진도 교체가 될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동준 사장님을 새로운 사장으로 만들어 드리고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