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회장님
문화 대학교 교정
“와, 최진수 선배님이잖아?”
“이번에 대성 이노베이션을 인수했다는 것 같은데.”
“그거 이름 바뀌었어.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으로.”
“이카로스 이노베이션?”
“아무튼, 거기도 대기업 아냐?”
“그렇지, 왜?”
“왜기는 대한민국 대학생들 꿈이 뭐냐? 대기업이나 공무원 되는 거 아냐.”
“그래서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에 취업해 보려고?”
“혹시 모르잖아. 우리나라에 그 정도 안정된 대기업이 많은 건 아니니까.”
“하긴, 그렇기는 하네.”
“오빠들도 이제 슬슬 취업 준비해야 하지 않아요?”
“그건 너희들도 마찬가지잖아.”
한 무리의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뒤에서 나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내가 대성 이노베이션, 그러니까, 지금은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으로 이름을 바꾼 배터리 회사를 인수한 것은 말 그대로 쇼킹한 뉴스로 학교에서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경영학과라는 특수성도 있어서, 교수님들도 최근에 우리나라 경제계의 가장 핫한 뉴스인 나의 이카로스 이노베이션 인수에 대해서 다들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대성그룹에서도 가장 미래가 기대되는 2차전지 사업을 나에게 넘긴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개중에는 대성 이노베이션이 나에게 넘어가는 와중에 악성 루머가 떠돌고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보다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국내 굴지의 배터리 사업체를 인수한 나의 자금력이나 혹은 내가 가진 사치스러운 물건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플라잉 폭스 외에도 샤또 루이 14세 대저택, 그리고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 파텍필립 그랜드 차임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마어마하게 사치스러워 보이는 물건들이지만, 실제로는 야마시타 골드를 발굴하기 위해서 혹은 그만한 사정이 있어서 사게 된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진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다들 내가 가진 외양에 감탄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외양을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물건들이 오히려 나의 본질인양 비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 인간이란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는 존재다. 뒤에도 눈이 달리지 않은 것처럼, 빛의 반사를 감지하는 시각에 의존하는 인간은 사물의 전체를 볼 수 없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늘씬하고 육감적인 뒷모습을 한 아름다운 여인을 따라간다고 해도, 그녀의 앞모습까지 기대했던 것처럼 아름답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군대에 있을 때 소대장님은 이것이야말로 후설의 현상학을 설명하는 좋은 사례이며, 후설의 현상학을 이해하면 현대 철학은 모두 아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소대장님이 한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인간이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세상과 사물, 인간의 단면을 본다는 그런 의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제한적인 시각이 전부라고 착각을 하고 산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은 오직 자신의 상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착각이든 뭐든, 나를 좋게 봐주는 아니, 대단한 인간이라고 봐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나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강의실에서도 단연 화제는 내가 인수한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에 관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님들도 경영학과라는 이유로 내가 인수한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에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최진수 군이 이카로스 이노베이션, 그러니까, 구 대성 이노베이션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는데 앞으로 경영에 대한 계획이라도 있나요?”
“하하, 경영 말씀이십니까?”
물론, 나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제 경영학과 2학년 복학생에 불과한 내가 경영이나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건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찍는 일 정도의 경험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대기업의 주식을 대량으로 인수해서 경영권을 확보했을 때는 뭔가 야심찬 계획이 있었겠죠?”
교수님의 질문에 다들 나에게로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귀엽게 생긴 1학년 여학생도 과연 나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대체 나에게 뭘 기대하는 거야?
나는 왼손을 번쩍 쳐들었다.
“바로 이게 저의 계획입니다.”
“뭐야? 뭐지?”
“시계? 저건 파텍필립이라는 그 370억짜리 시계 아냐?”
교수님도 파텍필립이 차여진 왼손을 번쩍 쳐든 나를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계가 최고급 시계라는 건 나도 뉴스를 통해서 봤습니다만, 그 시계와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의 경영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겁니까? 혹시 돈으로 해결하겠다 그런 의미인가요?”
“물론 아닙니다. 파텍필립은 최고가 시계 메이커로 유명하지만, 그런 엄청난 가격에도 사람들이 파텍필립을 구매하는 것은 오랜 시간을 이어온 장인정신과 그 장인들이 보유한 기술력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 그런 의미인가?”
“시계가 멋있기는 하네.”
“그럼 최진수 군은 파텍필립처럼 기술력을 개발하겠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습니다. 베터리처럼 첨단 기술 분야는 아쉽게도 전통적인 마케팅 이론이 그다지 먹히지 않는 분야라고 할 수 있죠. 경영학 수업 시간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그렇지만, 마켓팅처럼 대중을 기만하는 판매 전략은 기업 간의 거래에서는 거의 소용이 없는 것들이죠.”
교수님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요. 중공업이나 자동차 부품 같은 분야라면 기업 간 거래가 다수를 차지할 테고 홍보니 마켓팅보다는 본질적인 기술력이나 가격 경쟁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겠죠.”
“흠, 그런 의미입니다.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생산능력에 장점이 있고, 현재로서는 전기차가 가장 큰 미래의 시장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차량용 배터리 분야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직 기술 개발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오는데, 아까 그 귀엽게 생긴 1학년 여학생이 나를 따라왔다.
“최진수 선배님 아까는 멋있으셨어요.”
“뭐가?”
“그 파텍필립 시계를 들어보이면서 기술개발로 승부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했을 때요.”
“아, 그거.”
생각나는 게 없어서 아무말 대잔치를 한 것이었는데, 그걸 좋게 봐주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1학년 신입생이죠?”
“예, 김준희라고 합니다. 저도 나중에 최진수 선배님처럼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창업이나 그런 거요?”
“예, 그래서 동아리도 벤처 창업 동아리에 들었거든요.”
“아, 그래요?”
“아직은 준비 중이지만, 괜찮은 아이템이 생기면 한 번 찾아 봬도 될까요?”
“나를요?”
하긴 내가 투자자로 알려져 있으니 나에게 투자를 받고 싶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보통이라면 귀찮아서 단칼에 거절할 일이지만, 왠지 귀여운 얼굴에 대고 그런 냉정한 말을 하기는 어렵잖아?
“좋아요. 나도 투자를 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니까.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그럼, 나중에 보죠. 오늘은 좀 바빠서.”
“어디 가시는데요?”
“내가 이번에 인수한 이카로스 이노베이션 본사를 방문하려고요.”
“선배님,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예? 준희 씨가요?”
뭐, 혼자 가나 둘이 가나, 큰 차이는 없기도 하고. 사실 혼자서 가기에는 좀 심심하기도 한 참이었다.
“대신 회사에 가는 거니까, 후배라고 하지 말고, 내 개인 비서라고 하는 걸로 하죠.”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김 비서, 같이 출발해 봅시다.”
****
수원, 이카로스 이노베이션 본사.
수원에 있는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의 본사 건물은 강남의 화려한 건물 느낌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향 근처에 있는 지방 대학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약간 대학교 캠퍼스 느낌이네요.”
“선배님도 여긴 처음 와 보세요?”
“예, 나도 직접 방문하는 건 처음이에요.”
20조를 투자해서 최대 주주가 된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은 입구와 본사 건물 여기저기 간판도 대성에서 이카로스로 교체를 해 놓은 상태였다.
사실, 나의 공식적인 직함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최대 주주로 사실상의 오너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온다고 하자, 회사 로비 입구에는 사원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뭐지?”
“최진수 회장님의 회사 방문을 축하드립니다. 라고 쓰여 있는데요.”
“회장?”
언제부터 내가 회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의 사장은 아니니까, 아마 그렇게 높여준 모양이었다.
내가 탄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가 천천히 본사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의 최대 주주가 된 후로 처음 방문이라 그런지, 이동준 사장을 비롯해서 사원들과 임원들이 밖까지 나와서 나를 환영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와,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편의점 알바를 하던 복학생이던 내가 이런 대기업에 와보는 것도 처음인데, 이렇게 열렬한 환영까지 받을 줄이야, 역시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시대인 모양이다.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에서는 공식적인 직함도 하나 없는 나이지만, 실질적인 오너인 최대 주주라, 이곳 직원들은 나를 예전의 장태식 회장처럼 대우해 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탄 부가티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나와 김준희가 내리자, 여기저기서 박수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흡사, 북조선의 수령님이라도 된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어지간한 대기업들의 오너들은 그들만의 왕국에서 독재자나 다름없는 절대 권력을 쥐고 있으니 말이다.
“최진수 회장님 잘 오셨습니다.”
“아, 이건 다 뭔가요? 설마 나를 위해서 이렇게 모인 겁니까?”
이동준 사장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장태식 회장님이 올 때도 이렇게 하던 거였으니까요. 관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음, 그렇군요.”
사실,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를 환영해주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데 말이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아, 이쪽은 김준희...비서입니다. 내 개인 비서죠.”
“그러시군요. 아무튼 첫 방문이시니 회사를 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동준 사장은 나와 김준희를 회사 안쪽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규모는 상당한 편이었다.
회사 직원 수만 1만 명이 넘는 기업으로 세계 5위 수준의 배터리 회사라는 것이 실감이 날 정도로 엄청난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었다.
“직접 와서 보니까, 규모가 엄청나네요. 사람들도 많고요.”
“그렇죠. 지금도 상당한 규모의 대기업이지만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은 더 크니까요.”
회사를 한 번 둘러본 후에 이동준 사장은 나를 사장실로 안내했다.
“이곳이 사장실이군요?”
“예, 회사 투어는 대충 끝난 것 같고요.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업요?”
그래, 난, 이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의 오너였지. 뭐 지금까지 20조를 투자한 회사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와서 실물로 회사의 공장들을 둘러보는 느낌은 또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뭐랄까? 서류상으로만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라 이렇게 큰 회사라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눈으로 보게 된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은 정말 엄청난 규모의 대기업이었고, 직원들의 숫자도 1만 명이 넘는 어마무시한 규모였던 것이다. 그런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의 실질적인 오너가 바로 나라니, 어딘지 꿈만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꿈이라면 너무나 달콤한 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같이 온 김주희는 밖에서 대기하게 하고, 사장실 안에서 본격적인 비즈니스 구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회사의 경영권 장악은 완벽하게 끝난 거죠?”
“물론입니다. 제가 사장이 되기도 했고요. 최진수 회장님의 경영권은 확고하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제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업요?”
“예, 전부터 진행되던 것이기는 한데, 차량용 원통형 배터리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하는데요.”
“원통형 배터리요?”
“예, 배터리 타입은 그동안 여러 형태가 개발되어 왔습니다. 휴대폰이나 소형 전자 기기들이 나오면서 가장 인기를 끈 것은 얇은 사각형의 파우치형 모델들이었죠. 원통형은 예전 쓰던 길쭉하고 둥근 평범한 배터리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tv 리모콘 같은 곳에 들어가던 거 말입니다.”
“그런데 차량에도 원통형 배터리가 들어가나요?”
“핸드폰에서 많이 쓰던 파우치 배터리가 한때는 대세였지만, 얇은 형태 때문에 안전성에 문제가 많이 제기되었죠. 배터리 과열로 화제가 발생하는 일도 많고요. 구조적으로는 구형의 원통 방식이 가장 안정적이라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라, 이제는 원통형 배터리로 다시 회귀하는 추세입니다. 마침, 차량용 배터리도 원통형으로 개발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개발 제의요? 어디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