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의 시대
“공동 개발을 제의해 온 곳은 신성자동차 그룹입니다.”
“신성자동차그룹이라?”
전자와 반도체, 휴대폰 분야에서 대성그룹이 한국의 탑클라스의 재벌그룹이라면, 자동차와 중장비, 건설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성그룹이었다.
그 중에서도 신성자동차그룹은 그룹 내에서 핵심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신성자동차라면 한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 아닙니까?”
“그렇죠. 국내 시장에서는 라이벌이 없는 수준이니까요.”
“이동준 사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두 회사가 힘을 합치면 소위 말하는 시너지가 나올까요?”
“최진수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이제 배터리 사업에서 핵심이 되는 건 자동차용 배터리가 될 겁니다.”
“흠, 그렇겠죠. 전기차가 내연기관을 대체한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예, 차량용 배터리는 그 형태를 놓고도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기존의 파우치 방식은 자동차 같은 이동 장치에는 위험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온 상태입니다.”
“파우치라면? 얇은 사각형 스타일인 거죠.”
“예, 노트북이나 핸드폰 같은 경우에는 얇고 가볍게 제품을 설계하기 위해서 그런 얇은 막 구조의 배터리가 필요했었죠. 그걸 만드는 기술이 첨단 베터리 기술로 인정을 받았던 적도 있고요.”
이동준 사장 말로는 휴대폰이나 노트북으로 개발되엇던 파우치형 배터리는 심플하고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장점은 있지만, 얇은 형태 때문에 구조적으로 불안정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 배터리 화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서 더 그 단점이 부각되고 있다고 했다. 휴대폰은 크기도 작고 배터리 용량도 작은 편이다, 그리고 사람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정도라 외부 충격이랄 것도 없지만,
자동차는 육중한 무게도 문제고 수백 킬로미터로 움직이는 운송수단이라는 점, 그리고 충돌사고의 위험이 상시로 존재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작은 충격으로도 배터리가 발화해 화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존의 파우치 구조보다는 전통적이 원통형 배터리가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대성 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생산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회사입니다.”
“그래요?”
“예, 그래서 국내의 다른 배터리 회사들과 달리 원통형 배터리 기술도 보유하고 있죠.”
지금 업계 1위인 LK 케미컬 같은 경우에는 대성에 비해서 전반적인 매출이나 기술력을 인정받고는 있지만 그건 주로 파우치형 배터리에 한한 것이었다.
“대중가요도 복고풍이 유행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90년대 가수들이 소환되기도 하고요.”
tv에서도 한창 복고가 트렌드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히 패션이나 음악을 넘어,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대중의 정서가 그들을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인기 있던 가수들이 다시 tv에 복귀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배터리 기술에도 복고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고전적인 원통형 배터리였다. 배터리 산업의 무게 중심이 노트북과 휴대폰에 집중되며 외면받았던 오래된 기술이었는데,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재평가를 받은 것이다.
일단, 자동차는 휴대폰에 비해 공간의 제약이 적은 편이고 대신 충돌 같은 위험성은 더 큰 것이다. 당연히 배터리도 소형화보다는 안정성이 더 중요해지면서 차량용 배터리 시장에서 원통형 기술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는 안전이 제일이니까, 다시 구식 원통형이 유행이라는 거군요?”
“하하, 구식까지는 아니고요. 원통형이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용으로 적합한 구조고 배터리 분야에서 오랜 전통이 있는 대성 이노베이션의 후신인 우리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이 원통형 배터리 기술력은 최고라는 겁니다.”
“신성자동차에서 탐을 낼 만큼 말이군요?”
“예, 신성자동차도 차량용 배터리가 필요하니까요. 한국 기업끼리의 협력을 한다면 세계시장에서도 서로 시너지를 내지 않겠습니까?”
뭐, 좋은 것 같은데, 그럼, 그러도록 하지 뭐.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저기, 회장님.”
“예?”
“이런 큰 결정은 아무래도 오너들끼리의 담판을 짓는 것이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너들끼리의 담판요?”
“예, 뭐, 이번 사안은 따로 밀고 당기고 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신성자동차그룹의 오너를 만나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도 그걸 원하고요.”
“신성자동차그룹의 오너와 말입니까?”
뭐야? 귀찮게, 내가 누구를 또 만나야 하는 건가?
***
크림색의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는 이카로스 이노베이션 본사 정문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백미러 뒤로 부가티를 향해 한동안 경례를 하고 있는 경비원의 모습이 보였다.
“선배님이 오너인 회사라, 예우가 굉장한 것 같아요.”
김준희는 이런 대기업은 처음이고 기업의 임원급들이 모두 나에게 굽신거리는 모습 같은 걸 보고 큰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하긴, 나도 야마시타 골드로 인해 수십조의 자산가가 된 지 꽤 되었지만 돈을 펑펑 쓰면서 고급 매장에서 vvip 대접을 받은 정도였지, 이 정도의 대기업, 직원이 1만 명이 넘는 거대 기업의 본사에서 회장님 대접을 받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얼떨떨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옆에 김준희 같이 귀여운 신입생이 있는데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하하, 뭐, 자본주의 시대 아니겠어? 돈을 가진 자, 자본을 가지고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사람이 회사의 주인이고, 오너고, 말하자면 왕 같은 거지.”
김준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동안 경영학과에 들어와서 막연하게 책으로 기업의 경영을 배우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대기업에 방문해서 회사 투어도 하고, 진짜 경영자들도 만나보고 하니까, 정말 많은 걸 느끼고 배운 것 같아요.”
“뭐,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아까 사장실에 들어가셔서는 무슨 말씀을 하신 거예요?”
“어, 그거?”
사실, 별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저 원통형 배터리를 신성자동차와 협력을 해서 개발하자 뭐 그런 거?
“왜, 궁금해?”
“예, 최진수 선배님 같은 대기업 오너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하잖아요?”
“그건, 기업의 일급 비밀이라 다 얘기해 줄 수는 없고, 간단하게 말해주자면 차량용 배터리 문제로 다음 주에 신성자동차 김동혁 사장을 만나기로 했어.”
“어머, 정말요? 와, 신성자동차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자동차 회사잖아요?”
“그렇지, 그쪽에서도 전기차나 아니면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필요한 배터리가 필요한 것 같더라고 마침,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의 최신 기술과 협력을 하자고 제의를 해와서 말이야.”
“그래서 두 분의 오너가 만나기로 하신 거예요?”
“그런 셈이지. 원래 재벌기업들의 비즈니스는 오너들이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 하는 일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와, 최진수 선배님이 대단한 부자라는 말은 들었지만, 오늘 이렇게 따라와보니, 정말 무슨 드라마 주인공 같은 삶을 사시는 것 같아요. 오전에는 대학에서 수업, 오후에는 최대 주주로 있는 대기업을 방문해서 경영자와 면담을 하고, 다음 주에는 신성자동차 사장과 미팅을 하고요.”
사실, 별거 아닌데, 또 그렇게 말해주니 상당히 그럴 듯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하하, 뭐,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멋지고 화려한 인생처럼도 보이지,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니까.”
부가티 시론은 대로로 나와 시원하게 뚤린 도로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한남동 진수의 빌라.
“역시, 이 집은 한강뷰가 최고야.”
눈을 떴을 때는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휴대폰을 집으러 가는 길에 보이는 창밖 풍경은 환한 햇살이 넘실거리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눈을 뜨며 이렇게 아름다운 한강을 볼 수 있다니, 이 집이 170억이라는 가격도 어마무시하지만 그만한 가지가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잠시나마 아름다운 풍광에 기분이 좋아지니 말이다.
“김영석 사장님 무슨 일이신가요? 내가 보낸 황금은 잘 받으신 거죠”
“예, 화물은 잘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홍콩에서 이번에는 대금을 도지코인으로 지불하고 싶다는데 괜찮을까요?”
“도지코인요?”
“예, 새로 나온 코인인데, 비트코인을 대체할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 가치가 많이 오르기도 하고, 일론 머스크도 이 도지코인에 투자했다는 말이 있고요.”
도지코인? 금시초문인데? 비트코인이야 전부터 유명하던 거니까, 지난 번에는 홍콩의 금거래상에게 야마시타 골드의 매각 대금을 비트코인으로 받았었다. 운도 좋아서 중간에 비트코인 가격이 올라서 2조 정도 수익을 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도지코인은 낯선 이름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아침이라 좀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예. 그러시죠. 제가 너무 일찍 전화를 드렸나요?”
“아니에요. 일찍 일어나면 더 좋은 거죠.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도 있고요. 1시간 후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일단 전화를 끊고 도지코인이 뭔지 검색을 해 봤다.
무슨 개처럼 생긴, 그런 이미지의 코인인데 검색을 해보니 개발자들이 비트코인을 비꼬기 위해 장난으로 만든 코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자꾸 커져서 도지코인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비트코인 못지않게 많은 투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
뭔가 최근에 유행인 코인인 것은 맞는 것 같은데, 비트코인과 달리 무한대로 채굴이 가능한 그런 코인인 것 같았다.
비트코인도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도지코인이라? 재미 삼아 투자해 볼만한 그런 물건인 것 같기는 했지만 나의 경우에는 시가 10조 원에 달하는 야마시타 골드를 매각하는 문제였다. 가격도 엄청나고, 최근에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에 20조를 쏟아부으면서 나의 현금도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번 거래를 통해서 현금의 확보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홍콩의 금거래상은 자금 추척을 피하기 위해 이런 대규모 거래에는 암호화폐를 통한 대금 지불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변동성이 큰 코인들로 대금을 받는 것은 불안한 요소라고 할 수 있었다.
잘 하면 지난번처럼 코인이 폭등해서 큰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폭락해서 수조 원을 손해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는 행운의 힘에 기댈 수 밖에 없겠군.”
나는 행운의 과자병을 꺼내 들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결정할 때에는 이 행운의 과자가 제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선택지를 만들었다.
도지코인으로 대금을 받는다는 1번, 도지코인으로 대금을 받는 것을 거절한다는 2번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과자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과자의 맛은 아침 햇살처럼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과자 특유의 달콤함에 더해 아침의 상쾌한 풍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역시, 서울에서 가장 좋은 집은 이곳인가? 최고의 한강뷰를 즐길 수 있는 집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과자를 씹고 있는데 입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종이에 적힌 것은 심플한 숫자, 1이었다.
쉽고 단순한 선택이었다. 도지코인으로 대금을 받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이익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기도 하고 말이다.
“김영석 사장님, 도지코인 말입니다. 제가 좀 알아보니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럼, 황금의 매각 대금은 도지코인으로 받는 걸로 할까요?”
“예, 도지코인으로 받아서 대신 최대한 빨리 매각을 하세요. 나는 코인에 투자를 하려는게 아니라 현금이 필요한 거니까 말이죠.”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거래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일주일 후 김영석 사장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15조요?”
“예, 운 좋게도 며칠 사이에 도지코인이 폭등을 했네요. 받을 때는 10조 원 가치의 도지코인을 받았는데. 지금은 15조까지 올랐습니다.”
뉴스를 보니, 일론 머스크가 도지코인에 대해서 뭐라고 멘트를 한 모양이었다. 그게 대서특필 되며 도지코인이 급등을 해버렸다.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에 나의 도지코인이 매각이 되며 10조원 상당의 야마시타 골드 매각 대금은 며칠 만에 15조로 불어난 것이었다.
야마시타 골드로 수십조를 벌고 있는 나로서도 믿기 힘든, 그야말로 코인 광풍의 시대였다.
문득, 이러다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뭐,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자본주의의 붕괴라는 건 판타지가 붕괴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판타지가 붕괴한 후에 나타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실재의 사막일 뿐이다.
일시적으로 붕괴할 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주의라는 판타지는 다시 복구될 것이 틀림없엇다. 자본주의라는 판타지는 영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