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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필 무렵 (116/200)

개나리 필 무렵

이진석 사장은 나를 매장 한 가운데로 안내했다.

“음, 이건 람보르기니 우루스인가요?”

람보르기니를 상징하는 색은 노란색이다. 강렬한 노란색, 그리고 황소 이런 것들이 바로 람보르기니의 상징인 것이다.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최고의 마초를 위한 자동차, 나도 고급 슈퍼카들을 많이 사다보니까, 대충 자동차에 대한 지식도 생겨 있었다.

“요새는 SUV가 인기인가 보군요?”

이진석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진수 사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슈퍼카라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유럽의 자동차 경주대회를 통해서 명성을 얻은 차들이죠. 부가티나 페라리 람보르기니, 모두 고도의 스포츠성을 지닌 경쾌한 명마들이지만 아무래도 탑승자의 편의성은 좀 부족한 편입니다.”

“하하,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죠. 저도 부가티를 최근에 많이 타고 다니기는 했는데 소위 말하는 하차감이 좋은 차라는 것과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외관이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마이바흐의 승차감이 아쉬울 때가 많기는 하죠.”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도 가지고 계신가요? 듣기로는 고급차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시다고는 들었습니다.”

“마흐바흐도 있고 페라리와 아벤타도르 로드스터, 벤테이가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사실 슈퍼카를 가지고 있는 오너들도 층이 넓은 편입니다.”

“그래요? 어떻게 말인가요?”

“소위 말하는 카푸어들도 많고요. 믿기실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직장인들도 할부로 페라리나 포르쉐를 사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물론 중고를 할부로 구매해서 거의 수입의 대부분을 쏟아붓는 말 그대로 카푸어들이죠.”

나도 뉴스 기사에서 가끔 그런 사람들의 기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월급 30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포르쉐를 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부양가족이 없고, 인생의 가치를 집이나 다른 분야보다 자동차를 사는 것에서 더 큰 만족을 얻기 때문에 그런 카푸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카푸어들은 좀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도 있지만, 한영모터스에 진열된 멋진 슈퍼카들을 보고 있으면 하나하나가 멋지게 보이고 갖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하, 차 한 대를 위해서 모든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거군요. 솔직히 부럽네요.”

“예? 부럽다고요? 최진수 사장님이 그런 카푸어들을 부러워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멋지지 않나요? 인생을 걸고 도전할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아무튼 저도 처음에는 슈퍼카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견물생심이라고 하던가요? 좋은 차를 사다보니 이런 매장에도 자주 오게 되고 올 때마다 맘에 드는 차가 많아지네요.”

“하하, 최진수 사장님 정도의 재력이시라면, 슈퍼카 정도는 얼마든지 구매가능하시지 않으신가요?”

그렇기는 하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한 대를 사는 것도 진짜 인생을 건 모험이 될 수 있는 것이 고가의 슈퍼카들이다. 억대를 넘어가는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어마무시한 비용이기도 하고, 물론 서민들 기준으로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기회비용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차를 살 돈으로 집을 구할 수도 있고, 결혼을 할 수도 있고, 더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을 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면 부모님에게 효도를 해서 좋은 아들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슈퍼카 한 대를 살 돈이면 일반적인 서민층의 입장에서는 다른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다 포기하고 단지 차 한 대를 산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모험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눈총을 받을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몇억, 혹은 몇십억짜리 자동차라고 해도 나의 일상에 하등의 지장을 줄 이유가 없었다.

이미 나에게는 30조가 넘는 자산, 그중에서도 16조 이상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5조의 현금은 도지코인으로 일주일 사이에 공짜로 벌게 된 돈이라, 심리적으로도 돈을 좀 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할 정도였다.

“저는 사고 싶은 건 다 살 수 있죠. 사실, 우루스보다 더 좋은 차들도 많지만요. 그래도 컬렉션을 채우는 것처럼 살 수 있는 건 하나씩 다 사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런 재미가 있지 않습니까?”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보통 어지간한 부자들도 슈퍼카 여러 대를 동시에 소유하는 경우는 드물죠. 차를 좋아해서 새차를 사더라도 기존의 차는 중고시장에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진석 사장 말로는 슈퍼카 오너들은 자동차 거래가 활발한 편이라고 했다. 다들 금수저들이기는 하지만 워낙에 고가의 자동차들이라 새차를 사기 위해 기존의 차를 팔 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저는 아직까지 산 물건을 되판 적은 없습니다. 자동차도 그렇지만 일단 산 것은 보유하고 있는 편이죠.”

“차가 꽤 많으실 것 같은데, 주차 문제는 없으신가요?”

“하하, 그거라면, 신사동 쪽에 아이케이 빌딩이라는 곳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하 주차장에 꽤 넓은 공간이 있거든요.”

“하하, 강남 건물주라 역시 다르시군요.”

사실은 아이케이 빌딩의 주차공간도 슬슬 문제가 생기고 있기는 했다. 아이케이 빌딩에 이카로스 항공이 입주하면서 내가 쓰던 주자장을 나눠 써야 하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튼, 이 우루스는 맘에 드네요. 그런데 가격은 상관없지만 당장 내일 여수에 갈 때 써야 하는데 이건 신차 아닌가요?”

“문제없습니다. 신차는 맞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계약을 하고 인증까지 다 마친 자동차라 당장 내일이라도 먼저 사용하시고 절차를 진행해도 상관없는 자동차입니다.”

“그래요?”

이진석 사장이 보여준 우루스는 람보르기니에서 개발한 SUV로 색깔도 람보르기니의 상징인 황소를 연상시키는 밝은 노란색이었다.

“역시 람보르기니는 노란색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예, 역시 보는 안목이 있으시군요. 그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정확히는 지알로 아우지라는 우루스의 시그니처 컬러입니다. 밝은 노란색이라는 이탈리어죠.”

“그래요? 아무튼, 맘에 드네요. 날씨도 좋고 이런 개나리색을 타고 여수의 봄을 즐기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개나리색요? 그러고 보니, 개나리색과 비슷하네요. 봄에는 잘 어울리는 컬러죠. 사실 이 차는 옵션이 좀 들어가서 기본가격인 2억 5천보다는 비싼 3억 5천의 가격이 책정된 차입니다.”

3억 5천? 뭐, 얼마 안 하는군. 3억 5천이라는 말에도 나의 마음은 평온한 호수 그 자체였다. 3억 5천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였고, 보통 사람들이라면 엄청난 가격이라면서 충격을 받았을 상황이었지만, 나에게는 3억 5천은 보통 사람들의 3만 5천 원 정도의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이미, 70억짜리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를 타고 다니고, 그보다 더한 대저택과 빌라, 초호화요트들 그리고 최근에는 20조짜리 이카로스 이노베이션이라는 대기업까지 인수했는데, 3억 5천짜리 자동차 한 대쯤이야 나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차는 예쁜 것 같았다. 거기에 람보르기니에서 만든 SUV로 람보르기니의 특유의 감성에 더해 운행하기에도 상대적으로 편한 것 같고 말이다.

“마음에 드네요. 결제는 카드로 하겠습니다.”

나는 지갑에서 블랙카드를 꺼내들었다. 이걸로 노란색... 지알로 뭐라고 했더라? 아무튼 개나리색의 람보르기니 우루스는 내 차가 된 것이었다.

***

여수 가는 길..

여수시에 들어서는 길가에는 봄을 맞아 노란색 개나리들이 잔뜩 피어있었다.

“와, 개나리다, 봄이라 개나리들이 한창이네요.”

윤아영은 봄에 어울리는 파스텔톤의 미니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차 색이랑 잘 어울리죠? 이 차 색도 이탈리아어로 지랄로..흠, 아무튼, 이탈리아 말로 개나리색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이탈리아에도 개나리가 있어요?”

“예?”

이탈리아에도 개나리가? 있는 건가?

“이탈리에도 개나리가 있겠죠. 이름이 달라서 그렇지 안 그래요?”

“음, 이탈리아에는 안 가봐서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한 번 같이 갈래요?”

“이탈리아에요?”

윤아영은 화창한 봄날이라 기분이 약간 들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이야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보다는 여수 가는 초엽에 잔뜩 피어있는 진달래와 개나리들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봄날의 개나리들을 지나서 개나리색 우루스는 여수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

“잘 오셨습니다. 안내를 맞게 된 소지영 과장입니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상큼한 인상의 여자였다.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미니 원피스 차림의 윤아영과는 달리, 수수한 치마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나름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신성건설의 홍보 담당이라는 것 같았다.

“건설사 과장님이라 남자일 줄 알았는데, 여자분이시군요?”

소지영은 잠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남녀가 하는 일이 따로 있나요. 거기다 홍보 분야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진출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요.”

“저기 앞에 보이는 섬이 경도인가요?”

“예, 아직은 다리가 없어서 배를 이용해야 하지만 조만간 다리도 착공될 예정입니다. 해양 리조트 단지에 맞추어서 말이죠.”

소지영 과장 말로는 경도는 여수 앞쪽에 위치해서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곳이라고 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돌산도 금오도 같은 큰 섬들이 앞쪽을 막아주고 있어서 잔잔한 만이 형성되는 곳이고요. 앞에 경도, 정확히는 옆에 있는 작은 소경도와 구분해서 대경도 섬이 본격적인 해상 리조트로 개발이 될 예정입니다.”

입지 조건은 괜찮은 것 같았다. 대경도라는 섬은 육지와 주변 섬들로 둘러싸여서 잔잔한 내해라고 할 수 있었고, 오다 보니 여수공항 같은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입지 조건이 좋아 보이는데요. 어때요? 아영 씨가 보기에는요?”

“바다가 너무 예쁘고 좋은 것 같아요. 여기에 마리나가 들어서고 리조트를 만들면 좋을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왜 굳이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으려는 거죠?”

소지영 과장은 잠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투자 컨소시엄이라는 곳은 대부분 단기 투자 수익을 내는 걸 목적으로 하죠. 수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빨리 수익을 내는가도 중요하거든요. 그런 투기성 자금들이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하다 보면 아무래도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개발 사업을 하기는 어려워지는 거죠.”

자본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그 자본의 주체들도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단지 돈을 많이 가진 자본가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다양한 투자 펀드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 투자 펀드들은 단기간의 고수익만을 바라고 세계를 떠돌며 닥치는 대로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자금 그 자체다 보니, 어떤 인격에 의존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이런 아름다운 바다에 낭만적인 마리나와 리조트를 만들고 싶은 꿈이라고 꿨을 것 같은데 말이다.

대경도까지 가려면 페리선을 기다려야 했다. 소지영 과장이 특별히 예약해 둔 특별 페리선이 도착하자, 나의 개나리색 우루스는 페리선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리고 대경도까지 짧은 항해를 마치고 람보르기니 우루스는 다시 육지로 내려와 경도 주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우루스에 윤아영과 소지영을 태우고 몇몇 장소들을 둘러보았는데 소지영 과장의 설명대로 바리나와 리조트를 개발하기에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가 마리나 예정지라는 거군요?”

“예, 지형 자체가 배를 정박하기 딱인 곳이죠.”

“그러게요. 계류장 시설만 만들면 싱가포르의 센토사보다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부산의 수영만 마리나도 나름 괜찮은 곳이지만, 이곳은 섬의 지형과 연계해서 굉장히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마리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조화된 아름다운 마리나 말이다.

그렇게 짧은 듯 긴 경도 투어가 마무리가 되었다.

“최진수 사장님을 잘 안내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어떠셨는지 모르겠네요?”

“덕분에 경도 구경은 아주 잘 했습니다.”

“그러면? 투자 계획은 어떠신가요?”

“좋습니다. 투자하는 걸로 하죠.”

“어머, 정말요?”

“예, 한 번 멋진 마리나와 리조트를 개발해보도록 하죠.”

1조 5천억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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