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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인생 (120/200)

빛나는 인생

“흥미로운 제안이군요. 한국에서 초대형 요트, 그걸 메가 요트라고 하나요?”

“보통 그렇게 부르죠. 초대형 요트라는 건 다소 생소한 물건이죠.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고 글로벌한 기업들과 투자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태어난 슈퍼 리치들이 나타나면서 새롭게 수요가 만들어졌으니까요.”

“뭐, 아무튼, 초대형 메가 요트라고 해두죠. 그런 메가 요트들을 한국에서 건조하자는 말씀이죠?”

“예, 지금 최진수 사장님이 소유한 플라잉 폭스 같은 경우에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조선소에서 만들어졌죠. 배의 크기가 크기 때문인데, 보통 그런 조선소에서 생산을 하는 방식은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편입니다. 요트 전용 도크가 아니라 일반 상선을 생산하는 시설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례적인 경우라는 거죠.”

“요트를 건조하는 과정이 비효율적이라는 거군요?”

빈센조 포에리오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경영이 어려운 조선소를 인수하는 거죠. 그래서 거기서 플라잉 폭스 수준의 초대형 요트를 건조하는 겁니다. 요트 선체만 건조가 되면 인테리어는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설계나 자재 같은 건 아즈무트 베네티가 모두 지원하겠다는 겁니다.”

포에리오 회장의 구상은 그런 것이었다.

비아레지오의 베네티 조선소에서 생산이 불가능한 초대형 요트를 한국에서 생산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부의 인테리어는 베네티의 기술력으로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제가 그 조건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하하,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죠. 어쨌든 저는 제안을 하는 겁니다. 당장 대답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일단은 두 분 다 먼 길을 오셨을 테니까, 오늘은 일단 쉬시고 내일은 비아레지오의 조선소를 같이 둘러보기로 하죠.”

“그러죠, 좀 쉬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포에리오 회장은 특별히 자신의 별장의 게스트룸을 내어주었다. 게스트룸이라고는 하지만 별장 규모가 상당한 편이라, 어지간한 호텔 못지않은 규모의 큰 방이고, 고급 요트를 만드는 아즈무트 베네티 회장의 별장이라 그런지 내부의 인테리어는 어지간한 고급 호텔급의 화려한 모습이었다.

물론,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 방이 하나뿐이에요?”

“뭐, 준비된 방이 하나뿐이라고 하네요. 일단은 같이 자죠. 전 침대 끝에서 잘 테니까. 아영 씨는 반대쪽 끝에서...”

윤아영은 화려한 침실을 둘러보며 알 수 없는 말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뭐, 준비된 방이 하나뿐이라면 어쩔 수 없죠. 대신 신사답게 행동하는 거 아시죠?”

“하하, 물론입니다.”

신사적이라?

***

다음날은 빈센조 포에리오 회장과 비아레지오의 조선소를 둘러보았다. 마침 조선소에서는 베네티의 새로운 대형 요트가 건조되고 있었다.

“다른 일반적인 상선들과는 다른 점이라면 내부 인테리어가 화려하다는 거죠. 고급 슈퍼 요트라는 건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배는 아니니까요.”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플라잉 폭스를 이용해서 야마시타 골드를 발굴하는 작업에 이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겠죠. 요트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부자들의 사치스러운 과시용 물건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조금 생기면 명품백 같은 걸 사죠. 그보다 더 큰 돈을 벌면 스포츠카 같은 걸 사고요. 더 여유가 생기면 별장을 원하죠. 그리고 명품이든 저택이든 스포츠카든 살만큼 사고 나면 그다음은 바다로 눈을 돌리는 겁니다. 베네티의 고객들은 그런 부자들이죠.”

“돈은 많고 그 돈을 어떻게든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인간의 욕망이라는 건 단순합니다. 자기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싶어 하는 거죠. 이미 가지고 있는 걸 욕망하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하하, 당연한 거 아닙니까?”

“중세의 기사도라는 것 말입니다. 뭐, 포장은 그럴듯하지만 용맹스러운 기사와 그녀의 헌신을 받는 아름다운 귀부인 이런 것도 이런 욕망의 법칙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기사와 귀부인요?”

“기사도의 핵심은 헌신이죠. 그런데 그 헌신의 대상이라는 걸 생각해보십쇼. 대부분의 기사도 소설에서 헌신의 대상은 아름답고 우아한 귀부인들이죠. 물론 남편이 있는 겁니다. 중세는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륜이 만연하던 시절이죠. 인간이라는 건 보통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갖고 싶어하니까요.”

“그건 잘 몰랐네요.”

“기사들이 모험을 떠나거나 결투를 하는 건 알고 보면 굉장히 치졸한 욕망에 기반하고 있는 거죠.”

“현대의 유럽은 어떻습니까? 조상들이 살던 중세 시대보다 도덕적인가요?”

“하하, 중세의 기사도가 불륜의 장이었다면, 이런 호화 요트들은 현대판 기사도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어떤 헌신 같은 것은 없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헌신 대신 헌금이라고나 할까요? 자신의 몸을 바쳐서 용맹함이나 사랑을 증명할 필요는 없는 거죠. 단지 돈으로 살 수 있는 화려한 요트면 충분한 겁니다.”

“바로, 그런 화려한 요트를 만드는 곳이 바로 이곳이군요. 중세의 기사들처럼 말입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적이 있던 기사도 소설의 내용은 사실 많이 순화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읽기에 부적합한 내용은 다 삭제된 이야기니까 말이다.

아무튼, 인간이 사는 방식이라는 것은 시대가 변해도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았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이성호 사장은 바로 구입할 수 있는 요트들이 있다고 하던데요?”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여기는 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드리려고 온 것이고 진짜 완성된 요트들을 보여드리죠.”

***

조선소 앞쪽은 요트 계류장이었다. 건조 작업을 마친 요트들이 새로운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비아레지오는 휴양지는 아니었지만, 지중해의 바다라는 것은 어디든 특유의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바로 이 배입니다. 아즈무트 베네티의 최고가 요트인 FB272 루미너시티죠.”

베네티의 조선소 앞 계류장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배였다.

“와, 사장님, 정말 요트가 예쁜 것 같아요.”

“그래요? 플라잉 폭스보다는 훨씬 작은 느낌인데, 아영 씨는 마음에 들어요?”

“물론이죠. 요트라는 게 항공모함처럼 클 필요는 없잖아요. 어차피 타고 다니면서 적당히 놀러다니려는 거 아니겠어요. 전 오히려 플라잉 폭스보다 이 정도 사이즈가 더 좋은 것 같은데요.”

무조건 더 큰 배를 갖고 싶어하는 나와 달리 윤아영은 사이즈는 작아도 좀 더 이탈리아 감성의 럭셔리한 외관의 FB272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나도 윤아영이 마음에 든다는 말에 찬찬히 배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이즈가 플라잉 폭스보다 작은 배지만, 확실히 요트라는 정체성이 더 확실한 배인 것은 분명했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좀 더 화려한 모습이고 말이다. 약간 태평양 같은 대양을 항해할 수 있을까 싶은 느낌도 있었지만, 어차피 이런 배를 타고 먼 바다를 항해할 일은 많지 않기는 하다. 주로 해안이나, 아니면 지중해 같은 잔잔한 바다를 여유있게 항해를 하면 될 테고,

큰 바다를 항해할 때는 이런 배의 오너라면 비행기로 따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말이다.

“규모가 작다고는 해도, 107미터 정도의 선체 사이즈라면 작은 배는 아니군요.”

“하하, 그렇죠. 보시다시피, 헬기 이착륙장도 있고요.”

“플라잉 폭스에는 두 개가 있죠. 하지만 헬기를 탈 일이 많지는 않더군요.”

이런 대형 요트에는 헬기 착륙 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직접 초대형 요트를 소유해 보니 그다지 많이 헬기를 이용할 기회는 없었다. 물론, 개인 헬기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중에 헬기나 아니면 전용 제트기 정도는 하나쯤 사볼까?

“아무튼, 갖출 건 다 갖춘 배라는 느낌이네요.”

“하하, 사실, 루미너시티의 진짜 매력은 안쪽의 인테리어죠. 이탈리아의 인테리어 기술을 정수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포에리오 회장은 나와 윤아영을 요트의 안으로 안내했다. 전체적인 크기는 플라잉 폭스보다 작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새로 건조된 새 배라는 느낌도 강하고 특히 실내 인테리어는 플라잉 폭스보다 확실히 한 수 윗등급 배라고 할 수 있었다.

“와, 정말 예쁘다. 무슨 최고급 호텔이 들어온 느낌이에요.”

확실히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이런 고급스런 인테리어에 더 반응하는 것 같았다. 윤아영은 호들갑스럽게 FB272 루머니시티 내부를 둘러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보다 더 큰 요트를 찾으신다면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이 정도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최고급 요트라고 할 수 있죠.”

빈센조 포에리오 회장의 자신만만한 표정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베네티의 수프림 클래식 132를 이미 가지고 있는 나였기 때문에 베네티의 요트라면 대충 예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107미터짜리 대형 요트라고는 하지만 이미 그보다 더 큰 플라잉 폭스를 가지고 있기도 해서 베네티의 야심작이라느 FB272 루머니시티라는 최고급 임페리얼 요트에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실물로 본 FB272 화려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최고급 명품이나 고급 소비재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초호화 요트라서 그런지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탈리아 특유의 럭셔리함이 물씬 풍기는 느낌이었고,

남자인 나보다도 윤아영 같은 여자들은 진짜 명품들로 꾸며진 요트에 들어와 있는 기분에 잔뜩 들뜬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보다 윤아영이 들뜬 모습에 이 배가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고급 스포츠가나 대저택을 구입하는 이유는 본인의 만족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도 매력적인 여성에게 어필하려는 것이 강하니까 말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동물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새들도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깃털을 가진 것은 수컷들이 대부분이다. 동물계에서 화려한 모습으로 암컷을 유혹하는 것은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하, 아름다운 미인에게 잘 어울리는 화려한 요트라고 할 수 있죠. 윤아영 씨 같은 아름다운 분이 있으니까, FB272가 그 이름처럼 더 빛나는 느낌입니다.”

루머니시티라는 이름처럼 화려함으로 밝게 빛나는 요트였다. 물론 그 아름다운 빛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돈이라면 이미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이 벌고 있었다.

“이 배의 가격이 2억 5천만 유로라고 하던데요?”

“그만한 가치를 가진 배죠. 그만한 재력을 가진 최고의 부자들을 위해서 만든 배니까요?”

2억 5천만 유로라면 한화로는 3천 3백억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가격만 놓고 보면 프랑스에서 구입한 샤또 루이 14세 저택에 버금가는 엄청난 거액,

샤또 루이 14세라면 그래도 최소한 부동산이고 정원을 비롯한 막대한 부지라고 있는 거지만, 그에 비해서 이 최고급 요트 FB272 루머니시티는 말 그대로 떠다니는 배 한 척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투자 가치가 있는 부동산에 비해 시간이 지나면서 감가상각이 큰 요트는 단순 비교 대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비슷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하락하는 자동차나 요트는 주택이나 빌딩에 비해서 훨씬 기회 비용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부동산에 투자한 3천억과, 요트에 투자한 3천억은 차원이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진짜 어마무시한 돈 걱정이 없는 부자들이 아니고서는 이런 요트를 구매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런 요트는 진짜 아무나 가질 수 없고, 그 소유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단순에 사로잡을 수 있는 최고의 자본주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배 사고 싶군요?”

“하하, 진짜로 이 요트를 구매하시겠다는 겁니까? 가격이 2억 5천만 유로인데요?”

“뭐, 상관없습니다. 저에게는 그리 큰 돈은 아니거든요. 이 배 사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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