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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변호사 (135/200)

재벌 변호사

“홍성진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민소희는 새로 드라마 제작을 책임질 사람이 신인 PD라는 말에 못 미덥다는 표정이었다.

“신인 연출가이기는 한데? 연출력은 있는 친구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어떤 드라마를 연출했는데요?”

“드라마는 아직 연출작이 없지만, 애니메이션 쪽으로는 유명한 사람인 것 같더라고.”

“어마, 그러면 드라마는 이번이 입봉작인 거잖아요?”

“입봉?”

입뽕이 뭐야? 뽕나무는 알아도 입뽕이라는 것도 있었나?

“그러니까, 이번에 첫 번째 작품이라는 말이잖아요? 드라마 연출은 처음이라는 건데 그건 좀 불안한 것 같아요.”

어차피 민소희도 드라마는 처음인 주제에 은근히 따지는 게 많네..

“소희 씨도 드라마는 처음이잖아요? 같이 신인 PD와 연기자끼리 으쌰으쌰 하면서 패기 있게 도전해 보는 거 어때요?”

“회장님 그건 의도는 좋은데 현실적으로 저도 드라마 연기는 처음인데 거기다 감독까지 초짜면 드라마가 잘 되겠어요? 둘 중에 하나는 경험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 거라면 걱정할 거 없어요. 다 잘 될 테니까.”

“그걸 어떻게 아세요?”

“감이라고나 할까요? 이번 드라마는 반드시 잘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는 거죠.”

“음, 뭐, 할 수 없죠. 어차피 회장님이 돈을 투자하시는 거잖아요? 회장님 맘대로 하는 거 아니겠어요.”

민소희는 약간 토라진 것 같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나의 의견에 따르는 것 같았다.

어차피 민소희도 연기자로서의 경력을 쌓으려는 거니까 드라마의 성패보다는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주연 여배우는 민소희로 이미 정해진 것이니까, 다음으로는 남자 주인공과 악역을 맡을 주연급 조연을 찾아야 했다.

민소희가 나가고 나자 윤아영이 들어왔다.

“주연 배우는 민소희로 결정된 거니까. 남자 주인공은 누구로 할까요?”

“남자 주인공요? 그거야 잘 생긴 남자 배우들이라면 많잖아요? 제가 골라볼까요?”

윤아영은 잘생긴 꽃미남 배우들을 생각하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뭐지? 왠지 잘생긴 녀석은 뽑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잖아?

하지만 공은 공 사는 사, 공사 구분은 철저히 해야 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 주인공이라면 어느 정도 인기도 있고 잘생긴 배우를 뽑아야 할 것 같기는 했다.

“괜찮은 배우가 있을까요?”

“정수현은 어때요?”

“정수현? 그게 누구지? 처음 들어보는데요?”

“어머, 사장님은 어떻게 정수현을 모를 수가 있어요. 요즘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핫한 배우라고요.”

“그래요?”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인기가 있는 신인 배우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남자 배우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으니까 대충 윤아영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건 윤아영 씨 말대로 정수현으로 캐스팅을 해보죠.”

“정말이세요? 제가 당장 정수현에게 연락해 볼게요.”

“저..저기. 윤아영 씨.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악역을 맡을 여자 조연도 필요하잖아요.”

“음, 뭐, 그건 신인오디션을 보는 게 어떨까요?”

“오디션요?”

“제가 캐스팅을 해보려고 여배우를 알아봤는데 역할 자체가 악역이기도 하고 또 민소희가 주연이잖아요?”

“그게 왜요?”

“왜긴요? 여배우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데요. 민소희 같은 아이돌 출신에 연기 경력도 별로 없는 배우가 주연인데 어지간한 여배우들이 민소희가 주연인 드라마에 조연으로 나오려고 하겠어요?”

“그게 연기하는 거 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요?”

“있죠. 연예계 특히 연기를 하는 배우들 세계에서는 그런데 굉장히 민감하다고요. 텃세도 심하고 특히 가수 출신들이 연기를 시작하면 같은 배우 취급 안 하는 그런 것도 있고요.”

“그래요?”

“연기학과 출신이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연기자로 시작한 배우가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요. 특히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 아이돌이 갑자기 연기자로 전향하나는 건데 그나마 조연부터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민소희처럼 단번에 주연으로 치고 들어오는 애들을 좋아하겠어요?”

“그렇기는 하겠네요.”

굳이 여배우들이 아니더라도 여자들끼리 시기와 질투 그런 것들은 상당히 심한 편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남자들과는 또 다른 여자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궁중의 암투처럼 말이다.

아무튼 민소희 때문에 인지도 있는 여배우들은 이번 드라마에 출연을 꺼린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결국, 윤아영의 말대로 신인 배우 오디션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신인급 배우들이고 주연이 결정된 상황에서 추가로 조연을 뽑는 오디션이라면 배역이 아쉬운 배우들이 지원을 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민소희도 그렇고 정수현도 신인급 연기자에 홍성진 PD도 드라마는 처음이니까, 뭔가 조연급 연기자들도 완전 신인으로 신선하게 채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좋아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조연들도 신인 오디션으로 뽑읍시다.”

***

드라마 재벌 변호사 공개 오디션장.

“지원자가 2만 명이라고요? 아니, 배역은 10개도 안 되는데?”

조연급 연기자 10명 정도를 뽑기로 한 공개 오디션이었는데, 지원한 사람들의 숫자가 2만이 넘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배우가 2만 명이나 되나요?”

오디션을 주관한 윤아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라고 다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배우 내지는 배우 지망생 그런 사람들까지 합치면 숫자가 어마어마하죠.”

“전업 배우들은 아니겠죠?”

“전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대부분은 다른 직업이 있거나 아니면 어린 학생들인 것 같아요. 신인 오디션이라 특히 대학생들이나 고등학생 같은 어린 친구들이 많이 오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요? 아무튼 지원자가 많다니까 다행이네요.”

예심은 홍성진 PD 윤아영 그리고 드림 엔터테인먼트 직원들 그리고 연기 전공 교수들을 초빙해서 진행했고 그렇게 1차와 2차를 거쳐 최종 3차 오디션에서는 드디어 내가 참석하게 되었다.

***

최종 오디션 당일.

최종 오디션을 보게 되는 배역은 모두 합쳐서 11개였다. 대부분은 비중이 낮은 조연급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남주와 여주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될 악녀 역할은 조연이라고는 해도 거의 주연급의 파급력을 가지는 배역이라고 할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다른 배역들과는 달리 연기 경력이 있는 신인급 연기자들도 많이 참가를 한 상태였다.

아직 배역이나 이름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가칭으로 서주희 역을 뽑는 오디션에는 경력이 제법 있는 배우들과 아이돌 그룹 출신들도 많이 참가한 것 같았다.

“서주희 역에는 경쟁이 제법 치열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드라마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고 최근 트렌드를 보면 악역도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홍성진 PD는 나의 옆자리에 않아서 심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요? 주연보다 더 돋보일 수도 있는 건가요?”

“그럼요. 조연이 착한 역할이면 그다지 주목을 못받지만 악역이라면 좀 다르죠. 주인공 옆에서 친구 역할 같은 거는 그저 극 진행의 감초 역할 정도지만 악역이라면 주인공에 맞서는 강렬한 대칭점이 되는 거니까요. 거기다 최근에는 인간의 욕망에 관대한 편이거든요.”

“욕망요?”

“예, 보통 악역이라고 해도 그가 가진 내면의 욕망을 잘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다면 나쁜 일을 하는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죠. 인간에게는 모두다 내재된 악한 욕망 같은 것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홍성진의 말로 일리가 있었다.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고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현대 산업화 사회에서는 더더욱 선과 악이라는 것의 구별이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괜찮은 참가자들이 보이는군요.”

연기나 다른 건 모르겠지만, 외모들이 돋보이는 참가자들은 많은 것 같았다. 시나리오라면 대충 살펴보았는데 서주희는 극중에서 유명 배우로 나오기 때문에 외모도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었다.

내면의 악한 욕망을 분출하는 화려한 탑스타 역이기 때문에 화려한 외모와 카리스마가 필요한 배역인 것이다.

하지만 주연급인 민소희도 그렇고 남자 주인공으로 내정한 정수현도 신인급 연기자들도 연기력이 출중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민소희는 아이돌 출신으로 막 연기에 입문한 정도고 정수현도 연기자로 아역부터 연기를 하기는 했지만 아직 20대 초반으로 떠오르는 라이징스타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이가 어린 두 명의 주연 사이에서 악역으로 극의 흐름을 이끌어 가야하기 때문에 연령도 비슷해야 하는 신인급 조연으로 서주희 역을 뽑아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윤아영과 홍성진 같은 심사위원들과 함께 최종 오디션이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3명 중에서 한 명을 뽑게 되었다.

“다른 배역은 결정이 되었는데, 역시 서주희 역이 고르기가 어렵네요. 역시 회장님이 직접 고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홍성진 PD는 최종 결정을 나에게로 미루었다.

“제가 직접 뽑으라는 겁니까?”

홍성진 PD는 나름 연출력을 인정받은 애니메이션 감독이었지만 드라마는 처음이라서 약간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있었다.

보통은 이런 배역 같은 것은 알아서 선발할 테지만 중요한 배역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나에게 책임을 미루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드라마에 출연할 배우를 내 손으로 직접 뽑는 일도 재밌는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생각대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맘에 드는 배우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서는 신중하게 선발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가볍게 내가 보기에 맘에 드는 사람을 선택하기로 했다.

“전, 오진희가 맘에 드네요.”

“음, 역시 그러시군요. 저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홍성진 PD도 오진희가 좋다고 하면서 결국 서주희 역에는 오진희를 뽑기로 했다.

오진희 역시도 연기 경력은 짧은 편이었다. 원래는 CF와 잡지 모델 정도를 하다가 최근에 와서 연기를 시작한 케이스였다.

고등학생 때 길거리에서 캐스팅이 되었을 정도로 외모는 화려하고 매력이 있는 배우였다. 연기력은 의문이지만 일단 탑스타역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주희 역으로는 적합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렇게 오디션도 마무리가 되고 본격적인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었다.

***

종로, 센트럴 타워 옥상, 헬기 이착륙장.

에어버스 슈퍼 푸마가 옥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걸 보던 정수현은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들여다본다. 정수현의 손목이 잠시 클로즈업된다.

정수현의 손목에 걸린 시계는 파텍필립의 그랜드 차임이었다.

“김 비서, 시간은 늦지 않았군요. 나는 바로 부산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착륙한 헬기로 정수현이 서류가방을 들고 뛰어간다..

“컷..”

홍성진은 컷 사인을 보내고 촬영은 잠시 중단되었다.

“자, 일단은 헬기씬은 여기까지 찍고 회장님 사무실 장면을 다시 찍도록 하죠.”

옥상에서 윤아영과 나는 드라마 재벌 변호사의 촬영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번 산토리니의 사랑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드라마도 주요 소재가 재벌의 화려한 삶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촬영장소나 각종 소품들로 화려한 명품이나 고가의 헬리콥터 같은 것들이 필요했다.

따로 대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가진 물건들이 다들 최고급이었기 때문에 간편하게 내 사무실과 빌딩, 헬리콥터 그리고 시계 같은 것들을 드라마 촬영에 빌려주기로 한 것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정수현은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즐겨 타는 재벌 3세 출신의 변호사로 나온다. 그가 타고 다니는 차들은 모두 내가 소유한 차들이었다. 거기에 세계 최고가의 시계 파텍필립도 극 중 설정이 세계적인 재벌가의 유일한 상속자라는 설정이라 정수현이 차고 다니는 시계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여수의 해양 리조트나 내가 가진 베네티의 요트들도 드라마에 모두 출연할 예정이었다.

플라잉 폭스도 출연을 시키면 더 좋았겠지만 플라잉 폭스는 아직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남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회장님 사무실에서 촬영을 하려고 하는데 지금 가능하겠습니까?”

홍성진이 나를 보며 물었다.

“좋아요. 바로 아래층이니까 지금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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