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센트럴 타워 빌딩, 26층 진수의 사무실.
“와, 여기가 회장님 사무실인가요?”
재벌 변호사에서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정수현이라는 배우를 만나는 것은 나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날씬한 체형도 꽤 핸섬한 느낌의 남자였다.
“예, 저도 쓰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정말 멋진 곳이죠.”
“한 층을 통째로 쓰시는군요?”
나의 26층 사무실을 보고 감탄을 하는 것은 주연배우인 정수현뿐만이 아니었다. 홍성진 PD도 몇 번 와보기는 했지만 촬영을 위해 여기저기를 카메라로 테스트해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 외에 여기 처음 와보는 스텝 대부분이 비슷한 반응이었다.
서주희 역을 맡은 오지희도 마찬가지였다.
“재벌 드라마의 촬영을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네요. 진짜 재벌 회장님의 사무실이잖아요?”
“하하, 그런가요? 사실 다른 재벌그룹의 회장 사무실도 이렇게 규모가 크지는 않을 겁니다. 뭐, 전 새로 빌딩을 구입하기도 하고 아직 사무 공간도 많이 남고 해서 이렇게 널찍하게 쓰고 있지만 말입니다.”
오지희의 말대로 재벌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딱 좋은 사무실이었다. 벽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그림인 살바토르 문디로 걸려 있었고, 사무실에 들여놓은 가구나 집기들도 최고급 제품들로 돈을 아끼지 않고 꾸며 놓은 것들이라,
나의 사무실은 럭셔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나보다 더 큰 규모의 재벌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대성그룹이나 신성그룹의 회장실도 이렇게 크고 화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태식 회장의 집무실은 예전에 가본 기억으로는 일반적인 사무실 기준으로는 크기는 하지만 이곳처럼 빌딩 한 층을 통째로 쓰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최진수 회장님은 진짜 금수저이신가 봐요?”
“나이도 젊으신 것 같은데 이 정도의 빌딩까지 소유하고 계시고요.”
자연스럽게 나의 재력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화 대학교 재학생이라고 하는데 이카로스이노베이션 같은 대기업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고, 서울 시내에 이렇게 대형 오피스 빌딩을 가지고 있기도 한 나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뭐, 그런 셈이죠. 먼 앞세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랜된 역사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야마시타 골드를 통해서 큰 돈을 벌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그러시군요. 저도 남자 주인공 역을 하고 있지만 진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최진수 회장님이신 것 같아요.”
잘생긴 미남 배우 정수현도 나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하긴 정수현이라는 배우도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미남 배우고 라이징스타라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이제 막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신인 배우라고 할 수 있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 람보르기니도 처음 타보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정수현이 놀랐던 것이 지하 8층의 내 전용 주차장이었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마이바흐, 벤틀리 같은 고급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가인 부가티 시론 에르메스까지 주차되어 있는 나의 전용 주차장을 보고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표정이었던 것이다.
원래 드라마에서는 8층의 전용 주차장도 정수현의 개인 주차장으로 거기에 주차된 차들도 모두 남자 주인공인 재벌 변호사 정수현의 차들이라는 설정으로 나온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촬영에 적극 협조하고 내가 소유한 자동차나 헬기, 사무실과 요트들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드라마의 스케일도 훨씬 커지고 있었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드라마 연출을 맡고 있는 홍성진 PD는 오히려 화려한 비주얼을 보여줄 수 있어서 만족이라고 했다.
원래 드라마라라는 것이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시각적으로 화려한 것을 보여줄수록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기에 좋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나도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화려한 명품들을 드라마를 통해서 대중에게 보여줄 기회가 있어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귀한 물건이라고 창고나 금고에만 쌓아두면 무슨 소용일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드라마를 핑계로 내가 가진 럭셔리한 물건들을 대중들에 공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센트럴 타워 촬영 씬도 마무리가 되고 그다음은 여수 경도로 이동하기로 했다.
마침 경도 해양 리조트도 마무리 공사를 마치고 개장을 앞두고 있었고 개장 전에 드라마를 찍어서 홍보도 할 겸, 여수 경도를 촬영지로 잡은 것이었다.
***
여수, 경도, 이카로스리조트
촬영팀은 먼저 차량으로 이동을 했고 나는 윤아영과 함께 에어버스 슈퍼 푸마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을 했다.
헬기가 26층의 바로 위인 빌딩 옥상의 착륙장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바로 헬기를 타고 여수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내가 탄 슈퍼 푸마가 바람을 일으키며 착륙장에 내려앉았다.
헬기를 타고 도착한 나를 맞아준 것은 동진 마리나 개발의 서기호 사장이었다. 서기호 사장은 여수의 마리나와 리조트의 관리도 책임지고 있었다.
“하하, 최진수 회장님 오늘은 헬기까지 타고 오시는군요. 이제는 진짜 재벌 회장님이 되신 것 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서 사장님. 리조트는 이제 다 완공이 된 거군요.”
“예, 지난번 오셨다 갔다고 들었는데, 저랑 시간이 좀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수와 부산과 오가면서 마리나와 시설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두 군데를 다 신경쓰느라 바쁘시겠네요.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더 정리가 된 느낌이네요.”
여수 이카로스리조트는 내부 공사도 다 끝나고 외부 조경까지 아름답게 정리가 된 모습이었다. 당장 관광객들을 맞아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당분간은 리조트에서 드라마 촬영을 할 생각이었다.
리조트는 아직 개장 전이어서 이곳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찍기에는 딱 좋은 상태였다. 신축 건물들은 다들 깨끗하고 선명한 모습들이고 거기에 여름을 맞아서 날씨도 바다를 배경으로 요트와 마리나를 촬영하기에 최적의 컨디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산에 정박 중이던 베네티의 임페리얼 요트인 루머니시티도 드라마 촬영을 위해 경도 마리나로 이동해 있었다.
“촬영팀은 어디에 있습니까?”
“마리나에서 요트 씬을 촬영 중입니다.”
“그래요? 거기로 가봐야겠군요.”
***
경도 요트 마리나.
대경도의 요트 마리나에는 나의 루머니시티를 비롯해서 여러 척의 아름다운 요트들이 늘어서 있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 내가 가진 요트 외에도 추가로 고급 요트들을 대여해서 마리나를 채워 놓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요트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어서 대략 20여 척의 요트들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컴퓨터 그래픽과 촬영 기술로 부족한 요트들은 더 부풀릴 계획이었다. 나중에 편집된 화면에는 이 경도 마리나가 화려한 고급 슈퍼 요트들로 가득찬 모습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텅 비어서 휑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상상이 되었다. 리조트가 정식으로 개장으로 하고 세계 각국에서 고급 요트들이 경도 마리나를 찾아서 진짜 이 마리나가 요트들로 가득 차게 되는 모습이 말이다.
마리나는 가득 채워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베네티 루머니시티는 그런 것을 잊게 할만큼 멋지고 화려한 모습이었다. 옆에 세워진 슈퍼 요트들을 다 초라하게 할 정도로 선체 길이도 압도적으로 크고 외관이나 내부도 화려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선체 길이가 107미터 정도로 40미터 내외의 다른 요트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사이즈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군계일학이라고 할 만한 멋진 모습이었다.
4층으로 구성된 선체 공간도 다른 요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넓은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게 내 요트예요.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을 위해서 소송을 해주는 사람치고는 너무 화려한가요?”
“아뇨, 변호사님은 그게 매력이잖아요?”
“그래요? 어떤?”
“좋은 일을 하시면서도 동시에 돈 많은 부자라서 뭐든지 다 가지고 있는 거 말이죠.”
“하하, 뭐, 원래 난 어렸을 때부터 재벌이서 별로 좋다는 느낌은 없어요. 물론 이런 요트나 슈퍼카 전용 헬기 같은 것들이 없으면 불편하고 아쉽기는 하겠죠.”
“만약에 제가 남자였다면 변호사님을 질투했을지도 몰라요. 외모, 돈, 학벌, 거기에 자상함까지 모든 걸 다 가진 분이잖아요?”
“그래요? 순정 씨가 남자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군요. 그럼 여자들은 나 같은 재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데요?”
“그건,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드릴게요.”
이순정 역을 맡은 민소희가 정수현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정수현은 약간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런 이순정을 바라만 보고 있다.
그렇게 민소희의 얼굴이 정수현에게 가깝게 닿을 듯 가까워졌을 때,
“컷...컷...”
“아니 누구야? 아, 회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홍성진 PD는 갑자기 뒤에서 컷을 해버리자 소리를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내 나를 발견하고든 얼른 일어서 나에게 인사부터 하는 것이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촬영 중이던 배우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촬영도 중요하지만 이 드라마의 제작비를 투자하고 있는 나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당장 드라마 제작이 중단될 수도 있고 말이다. 아무튼, 자본주의 시대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 배우들과 스텝들 모두 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일동 기립하는 분위기였다.
“아, 죄송합니다. 말이 헛나왔네요. 컷을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수현과 민소희가 내 눈앞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을 지켜볼 수가 없었는지 무의식적으로 컷 사인이 나오고 말았다.
“괜히 촬영장에서 훼방만 놓은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회장님. 마침 오전 촬영은 마무리하고 식사도 하고 좀 쉴 생각이었습니다.”
“오, 그래요. 다행이네요.”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홍성진 PD도 그렇고 다른 배우들도 촬영을 중단하고 점심 식사를 하는데 이견은 없었다.
점심 식사는 멀리 이동할 거 없이 루머니시티의 레스토랑에서에서 즐기기로 했다.
“와인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하하, 바로 오후 촬영이 있어서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쉽네요. 촬영은 잘되고 있는 것 같네요.”
“다 회장님 덕분이죠. 이 루머니시티도 최고의 미장센이라고 할 수 있죠.”
“미장센요?”
“예, 원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극에 현실감을 주기 위해 다양한 미술적인 장치들이 필요합니다. 세트가 필요한 거죠. 현실 그 자체를 찍으면 가장 좋지만 항상 그런 장소나 배경을 섭외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렇겠네요.”
“하지만 이번 촬영의 특이한 점은 재벌 변호사라는 주인공의 배경에 걸맞는 화려한 사무실, 빌딩, 요트, 헬기, 슈퍼카와 각종 미술품과 명품들까지 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공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루머니시티처럼 따로 더 화려하게 꾸밀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화려한 배경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촬영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홍성진 PD의 말대로 내가 제공한 요트와 빌딩, 헬기 같은 것들은 젊은 재벌 3세인 주인공을 시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좋은 배경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물론 세트로도 가능할 것들도 있었지만,
단순히 대여를 하거나 세트로 처리하는 것보다 더 실감나고 럭셔리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촬영이 나로 인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촬영 장소에 대해서는 홍성진 PD 외에도 다른 출연진들도 모두 만족스럽다는 반응들이었다.
“회장님 덕분에 촬영이 아주 잘 되고 있습니다.”
“하하,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런 걸 예상하고 산 것은 아니었지만 베네티의 호화 요트 루머니시티는 드라마의 촬영 배경으로 톡톡히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여기저기 돈을 꽤 쓰다 보니 계좌의 현금도 10조 아래로 줄어들어 있었다. 당장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업이나 투자를 하려면 아무래도 여유 자금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다음 촬영지는 거제도 조선소로 이동할 건데. 회장님도 같이 가시는 거죠?”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민소희가 물어보았다.
“아뇨, 촬영장을 따라다니는 건 오늘까지입니다. 난 해외에 출장을 다녀와야 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