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마을
브라질, 파리아 다 바타타, 진수의 리조트.
다음날 엔젤라와 향한 곳은 나의 리조트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는 작은 마을이었다.
리조트의 차고에는 페라리 로마가 주차되어 있었다. 브라질에는 차를 탈 일은 별로 없어서 리조트 관리 회사에서 리스한 차들을 타고 있었다. 하지만 맘에 드는 차들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내가 탈 차를 직접 구입하기로 했다. 페라리 로마는 내가 브라질에 오기 전에 미리 주문을 해둔 차였다.
한국에서도 좋은 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차를 고르는 눈도 좀 높아졌고, 브라질 같은 이국적인 휴양지에서 페라리 같은 슈퍼카를 타는 것은 더 즐거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차를 고를까 하다가, 그랜드 투어카라고 알려진 페라리 로마를 선택한 것이다. 페라리는 기본적으로 고성능 레이싱카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단거리 고성능 포퍼먼스에 적합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 데일리로 타기에 편하고 승차감이나 장거리 주행에 적합한 모델이 바로 페라리 로마였다.
페라리를 타는 즐거움도 느끼면서 장거리의 여행에도 편안한 것이 마음에 들어서 브라질에서도 페라리 로마를 하나 더 구입한 것이다.
4억 정도 돈이 들기는 했지만 그 정도 돈이야 내가 신경 쓸 금액은 아니었다.
옆자리에 엔젤라를 태우고 출발한 페라리 로마는 가볍게 리조트를 빠져 나와 해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리조트 주위는 파리아 다 바타타라고 불리는 지역이었는데 보통은 바타타라고 부르는 해안 지역으로 모래 해변과 해수욕장도 많지만 해안에 바위들이 많은 곳들이었다. 배들이 진입하기엔는 그다지 편리한 구조는 아니어서 해안 지역이지만 어촌이 발달한 곳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최근에 관광객들이 늘면서 해변 지역이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었고 전체적으로는 브라질의 오지 느낌이 나는 지역이었다.
목적지인 오스제미오스는 차를 타고 리조트에서 한참을 더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내륙으로 더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곳이었다. 해변이 보이는 작은 마을로 인구는 200가구 정도가 사은 곳이라고 했다.
지금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가 연결이 되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한 편이지만 과거에는 해안가의 고립된 마을로 배를 타지 않으면 들어오기 쉽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브라질이라는 곳이 대부분 그렇지만 개발되지 않은 밀림 지대가 많아서 도로가 없거나 도시화가 안 된 농촌 마을은 고립된 섬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렇기는 하겠네요. 지나오면서 보니까 해안 도로 외에는 그다지 시가지나 마을도 없는 것 같고요.”
“예, 예전에는 어업을 하고 해변의 농지를 개간해서 농사를 짓던 작은 마을이었죠.”
그런데 특이하게 이 마을의 분위기도 그렇고 사람들도 유럽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여기는 주변 풍경도 그렇고 어딘지 유럽 같은 느낌이네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유럽인 같고요.”
“원래 브라질에는 유럽인들이 많죠. 특히 이곳은 독일계 이주민들이 많은 곳이에요.”
“독일계요?”
“예, 브라질 인구가 2억 정도인데 독일계 인구가 1200만 정도 된다고 하니까 꽤 많은 편이죠.”
“천 2백만 명이나요? 독일계가 그렇게 많아요?”
내가 놀란 표정으로 되묻자 엔젤라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원래 브라질은 이민자의 나라예요. 독일이나 다른 유럽인들도 많고요. 유명한 사람으로는 지젤 번천이 있죠. 축구 선수 둥가도 독일계의 대표적인 스타고요.”
지젤 번천이라면?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모델로 나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다. 어쩐지, 브라질 사람이라는 느낌보다는 북유럽의 미녀 같은 느낌이더니 독일계의 후손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둥가라면 예전에 유명했던 축구 선수인데 역시 독일계로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세계대전 이후에 나치들이 대거 브라질로 숨어들었다는 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사실 미국에 같은 신대륙에 독일계 이주민들이 많은 것은 브라질과 비슷하지만 미국은 독일과 전쟁을 한 나라다 보니, 그보다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중립국이면서 독일계 이주민이 많은 브라질은 유럽에서 도망친 나치가 숨어들기에 최적의 장소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제가 생각하던 것과는 좀 다르지만 독일계 이주자들이 많은 모양이군요. 이 마을도 그렇고요.
한적한 시골 어촌에 요란하게 등장한 흰색 페라리에 사람들은 힐끔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어른들은 그냥 한 두 번 힐끔거리는 정도였지만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아이들도 보였다.
“아이들도 북유럽의 아이들 같아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보던 브라질인들과는 뭔가 느낌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아이들도 흰 피부에 파란 눈 그리고 금발 머리를 가진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나치들이 여기서 실험을 했다는 건 근거가 있는 건가요?”
“뭐, 정확한 건 아니고요. 예전에 그러니까 1960년 쯤에 이곳에 머물렀던 의사가 있었는데 독일를 유창하고 하는 한스 라는 의사가 있었다는 거죠.”
“독일어가 유창한 한스요?”
엔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여기는 독일계가 많으니까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사람들 말로는 유창한 본토 억양을 가진 독일인이었다는 거죠. 아무튼 시골 마을이라 의사도 없고 그 당시에는 아까 우리가 타고 온 해안 도로도 없을 때라 멀리 병원에 가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그 독일인 의사가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고 공짜로 약도 주었다는 거예요.”
“뭔가 수상하기는 하군요.”
상상이 되었다. 지금도 한적한 어촌이었지만 1960년대 해안도로도 완성되기 이전의 시절, 외부와의 교류는 배를 타고서만 가능하던 고립된 어촌마을에 유럽에서 온 의사가 무료로 사람들을 진료해준다.
사람들은 약간 의아해 했겠지만 실력 좋은 의사가 해주는 무료 진료가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그 독일 의사의 말이라면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을에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쌍둥이들이 태어나게 된다.
역시 나치의 음모가 있는 건인가?
“소문에는 그 미지의 의사가 나치의 생체 실험을 담당했던 요제프 맹겔레라는 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요제프 맹겔레요?”
“죽음의 의사라는 별명을 가진 나치 의사였는데, 사람을 살리는데 의술을 사용했던 것이 아니라 나치의 광신도가 되어서 히틀라가 꿈꾸던 순혈 아리안족의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 여러 가지 유전적인 실험을 했던 걸로 알려져 있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하고요.”
“저런 끔찍한 일이군요.”
“아무튼, 어떻게 알았는지 이 시골 마을에 독일계 주민이 많다는 걸 알고 신분을 숨기고 이곳에 숨어 들어서 뭔가 일을 벌였다는 소문이 있는 거죠.”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가요?”
“글쎄요. 소문은 소문일 뿐이죠. 구체적인 증거나 증언은 없는 거고 막연하게 주민들이 하는 이야기와 그 당시에 정황들이 그렇다는 거죠.”
“정확한 건 아니라는 거군요?”
“하지만 이 작은 마을에 쌍둥이가 많이 태어난 것은 사실이에요.”
엔젤라는 그러면서 마을을 지나가는 두 명의 여자들을 가리켰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두 여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완벽한 쌍둥이였다.
정말? 뭔가 있는 건가?
어찌보면 황당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야마시타 골드를 찾아서 일본의 전시 약탈 황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였기 때문에,
전쟁 후의 나치들이 뭔가 다른 음모를 꾸몄다는 이야기도 나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유전자 실험을 진행하려면 뭔가 그것을 지원할 조직과 자금도 있었을 거라는 추측도 해볼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상상이 더해지자, 전후에 브라질로 나치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활동에 필요한 자금들이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의 패망 직전에 히틀러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사체는 불에 타버린 상태여서 그가 진짜 히틀러인지는 지금도 많은 의문에 쌓여 있다.
히틀러의 자살이라는 것이 정설이기는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히틀러가 남미 대륙으로 도망쳤을 거라는 이야기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연합군이 그걸 도왔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고 했다.
“히틀러가 남미로 왔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어떤가요?”
엔젤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어느 교수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전쟁의 승패가 기울었고, 히틀러가 연합군에게 처형을 당하거나 아니면 전범 재판에 서게 된다면 그 당시 독일 국민들이 심하게 반발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일왕도 전쟁 책임을 피했으니까요. 비슷한 이유였겠죠.”
“그러니까요. 일왕도 그렇고 히틀러는 어쨌든 당시 독일의 상징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그가 재판을 받게 되는 건 연합군 측에서도 부담스러웠던 거죠. 그리고 전쟁 말기에는 연합군은 이미 독일보다는 소련이 더 신경 쓰이던 시절이었고요.”
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에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나치를 격파한 연합군은 이제는 동유럽까지 진출한 소련의 팽창을 막아야 했고 그러니 위해서는 패전국인 독일을 자신의 편의로 끌어들여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나치 잔당과 어느 정도 타협을 했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총통을 자살을 가장해 브라질 같은 곳으로 보내주는 조건으로 공산당과의 싸움에 협조하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아무튼, 예전에 김덕수 소장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나치들이 유럽에서 의외로 손쉽게 남미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덕수 소장의 의견으로는 당시에 미국이나 영국 같은 연합국들은 나치 잔당을 처단하는 것보다는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막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고, 이미 패망한 나치들의 기술력이나 그들이 가진 독일에서의 영향력을 이용해 독일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치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연합국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 협조하는 대가로 전범급의 나치들이 연합군의 묵인하게 남미로 대대적으로 탈출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 이후의 유럽연합의 출범과 그 이후의 행보를 봐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유럽은 나토를 조직해서 소련에 군사적으로 맞서며 동시에 경제공통체를 추구하며 유럽을 단일한 연합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나치에 대한 단죄는 크게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독일이 스스로 그런 역사에 대한 사죄를 적극적으로 했기 때문에 승전국 차원에서 전쟁 책임을 단죄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의 경우에는 전범들에 대한 전쟁 책임을 그렇게 강하게 물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나치의 핵심 인사를 제외하고는 많은 나치의 부역자들 내지는 전범들이 국외로 탈출해버리기도 하고 말이다.
요제프 멩겔레 라는 그 나치의 의사도 그런 케이스인 것 같았다.
“아무튼, 흥미로운 마을이군요.”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쌍둥이들이 심심잖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대충 그런 쌍둥이들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중년 정도의 나이들이었다.
진짜로 나치의 비밀 실험이 이루어졌었던 것일까? 1960년대라면 왠지 더 신빙성이 있을 것 같은 마을이었다.
작고 고립된 마을 그리고 주민 대부분은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 독일계 이주민들이었다.
순수한 아리안족의 나라를 꿈꾸던 나치의 유전자 실험이 충분히 이루어질만한 그런 장소인 것이다.
“혹시 그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있나요?”
“음, 그 한스라는 의사가 살던 집과 병원 건물이 남아 있어요.”
“그래요?”
엔젤라는 내가 흥미를 보이자 나를 그 한스가 살았다던 집으로 안내했다. 마을은 유럽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설계가 되어 있어서 중앙에 광장을 두고 그 광장 주위로 교회와 상가가 관공소가 몰려 있는 방식이었다.
병원도 중요 시설이기 때문에 광장 한쪽의 건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했다.
“여기에요. 지금은 약국이기는 하지만 그 한스라는 의사가 살던 집과 병원이 모두 이 건물에 있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