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가정부
그리고 아침, 일어나자마자 동굴로 픽업 트럭을 타고 출발....
바쁠 것은 없는 무인도의 하루지만, 일을 빨리 끝낼수록 바타타의 리조트로 돌아갈 시간도 빨라진다.
트럭을 타고 해안을 좀 달리다 보니 은근히 이 섬도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코코넛 섬이라는 이름이 정식 명칭은 아닌 것 같지만, 인근의 어부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처럼 섬은 코코넛 열매를 닮아 있었다. 그렇게 둥글둥글한 섬 주위를 따라 해안의 모래사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다른 섬들과 차이라면 큰 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열대의 우림지대라고 할 수 있는 숲들과 해안가에는 야자수들이 잔뜩 자라나고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이 섬에서 야마시타 골드를 감출 동굴은 산이 아니라 해안가의 동굴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해안 구경도 좀 하다가 동굴로 향했다.
이 섬은 전에는 근처의 주민들도 자주 왕래가 있던 곳이라고 했다. 자구아눔 제도에 속한 작은 섬이니까, 어부들이 잠시 쉬기도 하고 아니면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러 왔을 것 같기도 한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무인도라고 해도 경치가 굉장히 아름답고 브라질 특유의 날씨도 해변과 바다와 잘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황금을 찾기 위해서 이 섬을 매입해서 위장으로 리조트를 개발했지만, 나중에 황금을 다 캐고 난 뒤에는 진짜 리조트를 운영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무튼, 지금 섬은 프라이빗한 내 개인의 섬이었다. 내가 섬의 소유권을 사들여서 이제 외부의 주민들은 이곳에 올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자연 그대로의 무인도이던 곳이 주인이 생기고 소유자가 생기고 개발이 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있었다. 나름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개인이 뭔가를 소유하지 않고는 이런 프라이빗한 섬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동굴에 들어서자 새로운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는 먹으려다가 먹지 않았던 행운의 과자병을 꺼내서 다시 과자를 입에 넣었다.
어제 먹었던 과자와 달리, 오늘은 좀 더 이국적인 풍미가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달달한 열대의 과일 같은 그런 맛이 나고 있었다.
진한 달콤함이 사라지고 나자 입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과자에서 나온 것은 작은 종잇조각이었다.
그리고 나온 번호는 27이었다.
역시, 끝이 7이군, 역시 행운의 번호라는 건가?
조금 쓸데없는 생각이기는 했다. 어차피, 행운의 과자에서 나온 모든 숫자는 나에게 행운의 번호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27이라?
대충 이쯤 되겠군. 이제 땅만 파면 될 것 같았다. 이렇게 해안가 동굴인 줄 알았으면 소형 포클레인이라도 가지고 올 것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포클레인을 주문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일단 파워슈트를 입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포클레인이 없어도 땅을 파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파워슈트의 힘도 있고, 그동안 땅을 많이 파면서 나름 노하우도 생겨 있는 상태였다.
오히려 중간중간 음료수를 마시면서 해변의 경치를 바라보는 것도 나름 낭만이 있는 것 같았다. 전에는 땅을 파는 일이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분수에 맞지 않는 회장 생활을 하다 보니 이렇게 몸을 쓰며 땀을 흘리는 일도 보람이 있다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아직, 20대 중반의 나이인데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땀 흘리고, 그런 시간도 있어야 할 것 같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땅을 파는 일도 전혀 힘이 들지 않고 있었다.
잠시 쉬면서 땀을 식히고 다시 땅을 파기 시작하자, 삽 끝에 뭔가 걸리고 있었다. 역시, 토굴로 이어지는 철문인가?
야마시타 골드를 매장한 토굴은 같은 시기에 같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서인지 거의 비슷한 구조였다.
그렇게 나른 토굴과 다름없이 토굴 입구로 들어서는 철문이 드러났다.
그렇게 철문이 드러나고 문을 열자 안쪽에서 오래된 공기가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70년 동안 열리지 않았던 비밀의 문이 열리고, 70년 전의 공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랜턴으로 안쪽을 비추자 역시 지난 동굴들과 비슷한 구조의 지하토굴이었다.
랜턴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자 역시 비슷한 규모의 토굴과 구조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익숙한 일본군의 황금상자들, 이번에도 역시 야마시타 골드를 찾은 것이다.
역시 이번에도 황금의 양도 비슷한 것 같았다. 대략 10조 원 정도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황금들이었다.
이제 이 황금들을 리조트의 지하 금고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도르래를 설치하고 상자들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픽업트럭에 싣고 온 드론에 연결하기만 하면 그다음은 자동으로 리조트까지 배송이 되는 것이다.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기본적으로 황금을 끌어올려서 리조트까지 옮기는 작업들은 이미 어느 정도 시스템화가 이루어지면서 손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결 수월하게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재촉해서 일을 빨리 끝낼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원래 예정했던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천천히 황금발굴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중간중간 수영도 즐기고 섬의 탐험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도 보내고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플라잉 폭스에서 슈퍼 푸마가 나를 데리러 코코넛 섬으로 도착했다.
***
코코넛 리조트 이착륙장.
“휴가는 잘 보내셨나요?”
“예, 아름다운 섬이네요.”
“하하, 최진수 회장님 같은 부자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네요. 아름다운 섬이기는 하지만 이런 섬에서 일주일이나 혼자서 뭘 하시는 겁니까?”
헬리콥터의 기장은 신기하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일종의 명상이라고나 할까요?”
“명상요?”
야마시타의 보물을 찾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고 혼자서 섬에서 머리를 비우고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둘러대었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어서 일주일 동안 땀 흘려 몸을 움직이면서 다시 초심이랄까? 예전의 편의점 알바 시절의 꿈을 다시 떠올려보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해 보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단순히 황금을 찾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던 코코넛 섬에서의 일주일이었다.
“역시, 동양 분이라 그런 정적인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동양의 신비로움이라고 할 수 있죠.”
“하하, 아무튼, 부럽네요. 아시아에서 이런 브라질에 섬들에 리조트를 만들 정도로 돈이 많으시다니 말입니다.”
“동양에서는 그런 걸 타고난 복이라고 하죠.”
“행운아, 럭키가이라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서양식으로 하면 럭키가이라는 말입니다. 자, 이만 출발할까요.”
기장은 헬기에 시동을 걸었다. 슈퍼 푸마는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바타타 리조트.
헬기가 일주일 만에 다시 바타타 리조트에 착륙했다. 헬기를 타고 오면서 보니, 리조트 수영장에는 두 명의 여자가 수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 세 명이 수영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수영장에 여자가 세 명이나 되는군요?”
기장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제가 뭐랬습니까? 럭키가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정말 부럽군요.”
기장은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든 말든, 슈퍼 푸마는 바타타 리조트에 착륙했다. 그리고 헬기가 착륙하자 근처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던 세 명의 여자들이 나를 마중 나왔다.
“누군가 했더니 엔젤라였군요.”
수영장에서 막 나온 여자들, 에니카와 한나, 그리고 엔젤라 세 명 모두 비키니 수영복 차림이었다. 한나와 에니카도 그렇지만 엔젤라도 동양계라는 것이 무색하게 쭉쭉빵빵한 모습이었다.
“예, 쌍둥이 마을의 주택 매입은 완료했습니다.”
“그래요?”
코코넛 섬에서도 휴대전화는 가능했지만, 일부러 일주일 동안은 전화도 하지 말라고 한 상태였다. 특별한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코코넛 섬에서 황금을 발굴하고 있는 동안 엔젤라는 그 나치 의사, 요제프 맹겔레가 살던 주택을 매입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엔젤라는 주택 매입 가격에 대해서 설명해주었지만 나는 건성으로 듣고 있을 뿐이었다. 대저택도 아니고 브라질의 시골 마을의 낡은 주택 가격 같은 것은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엔젤라가 적당히 가격 협상을 했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
“그래요. 그 집을 매입했다니 다행이네요. 일단 오늘은 여기서 좀 쉬고 내일 다시 가봐야겠네요.”
“정말요? 이 좋은 리조트를 놔두고 그 시골 마을로 가실 거예요?”
엔젤라는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물론이죠. 나에게는 그런 시골 마을의 목가적인 생활도 흥미로운 부분이거든요. 아무튼, 오늘은 여기서 좀 쉬기는 할 겁니다. 에니카 일주일 만에 왔더니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좀 뻐근한 것 같네요.”
“그래요. 회장님, 그럼, 잠시 기다리세요. 한나와 같이 회장님 방으로 갈게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바타타와 날씨는 화창함 그 자체였다. 뜨거운 태양과 그림같이 푸른 하늘 그리고 멀리 리조트 너머로 보이는 에메럴드빛의 바다는 코코넛 섬에서의 작업으로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단숨에 상쾌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
그다음 날, 아침에 다시 엔젤라와 쌍둥이 마을, 오스제미오스로 향했다. 이번에는 요제프 멩겔레의 주택으로 바로 향했다.
집주인이 바뀌면서 전에 살던 관리인은 집을 비워준 상태였다.
다행히도 침대나 가구들, 냉장고 같은 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에 살던 사람의 잡다간 세간이 빠져나가서 집은 너 깔끔해진 것 같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세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다.
“냉장고에 뭔가 좀 넣어 놓아야 할 것 같네요. 식사는 근처의 식당을 이용하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음료나 과일 같은 거라도 말이에요.”
“가정부에게 말해 놓을게요.”
“가정부도 있나요?”
“혼자서 생활하실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마침, 마르티나라는 여자가 있어서 고용했어요.”
“잘 됐군요.”
엔젤라 말대로 혼자서 살면서 이것저것 귀찮은 집안일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빈부 격차가 심한 브라질에서는 가정부라는 것은 흔한 직업이라고 했다.
가난한 가정의 여자들이 별다른 기술 없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마르티나는 20대 후반 정도로 오스제미오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발 머리의 유럽인 느낌의 여자였다. 거기에 영어도 제법 능숙했다. 오스제미오스 주민들 대부분이 브라질어와 독일어를 조금 하는 정도였는데 마르티나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엔젤라는 얼마 후 리조트에 보내준 차를 타고 다시 바타타로 돌아갔다.
그렇게 나의 오스제미오스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마르티나는 호기심이 많은 여자였다. 내 느낌에는 금발에 상당한 미인이어서 모델 같은 것을 했어도 대성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지젤 번천 느낌도 좀 있고 말이다.
“예, 한국에서 왔죠. 한국을 알아요?”
“아뇨, 들어는 본 것 같은데 별로 아는 건 없어요. 하지만 여기보다는 재밌는 곳이겠죠?”
“하하, 뭐, 오스제미오스도 아름다운 곳이잖아요?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은 없을 겁니다.”
마르티나는 아름다운 푸른 눈을 깜빡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기는 해요. 하지만 관광객으로 와서 잠시 머무는 건 좋을지 몰라도 여기서 계속 사는 건 따분한 일이죠.”
“그래요? 이 마을에는 뭔가 재밌는 이야기 같은 건 없나요? 듣기로는 예전에 나치 의사가 왔었다고 하던데?”
“쌍둥이들이 태어나게 한 그 의사 말이군요.”
마르티나는 이곳에서 토박이로 자라났다고 했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잠시 리우데자네이루에 간 적도 있었지만 거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서 지루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했다.
“진짜 그런 일이 있었나요? 나치의 의사가 비밀 실험을 했다는 말 말이에요. 소문은 파다하던데, 이 마을 사람들이라면 자세히 알고 있겠죠?”
“음, 저도 들은 이야기라 하지만 한스라는 독일계 의사가 왔던 건 사실이에요. 그 사람이 이 곳에 와서 독일 출신 이주자들이 많고 특히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주민들이 많다는 걸 알고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그 사람이 나치였나요?”
“아마도요.”
마르티나는 알 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