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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 하일 (142/200)

지크 하일

정확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 희미해졌을 것이다. 마르티나는 어렸을 때 들었을 법한 마을의 지나간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개중에는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지크 하일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지크 하일요?”

“나치식 경례요. 아무래도 독일계 주민들이 많던 곳이라 지크 하일을 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거든요.”

“나치 경례를요?”

“제가 듣기로는 전쟁 전에는 지크 하일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데요. 나치도 인기가 좋았고요.”

전쟁 전에 나치가 미국에서도 꽤나 인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실, 반유대주의는 나치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전유럽에 광범위한 반유대주의가 있었고 나치가 그것을 정치화하는데 탁월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한스라는 의사는 언제 이 마을을 떠난 건가요?”

“60년대 후반쯤요. 올 때도 갑자기 나타났지만 떠날 때도 갑자기 떠났다고 하니까요.”

“그럼, 이 집은 그 이후로 어떻게 된 건가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스라는 의사가 집을 정리하고 떠난 건 아닌 것 같아요. 나중에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 집의 소유권을 주장해서 집주인이 몇 번 바뀌기는 했지만요.”

“그 중에는 이 집에 뭔가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나요?”

마르티나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만있어도 멋진 외모지만 미소를 짓고 있으니 더 매력적인 것 같았다.

낯선 외국의 마을에 혼자 남게 되었지만 마르티나 덕분인지 큰 걱정은 없었다. 마르티나는 멋지고 매력적인 외모에 요리 솜씨도 꽤나 훌륭했다.

가정부로는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치의 황금이나 이 집의 비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는 것은 없어 보였다. 마르타나 말고도 마을의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그저 옛날의 기억을 두서없이 말해주는 정도로 한스에 대한 중요한 단서 같은 알 수 없었다.

역시, 이 집에 뭔가 비밀이 있다면 그것은 행운의 과자의 힘이 필요할 것 같았다.

코코넛 리조트처럼 쌍둥이 마을의 주택에 지도가 있다면 행운의 과자를 이용해서 뭔가 단서가 될 부분을 찾기 쉬울 것 같은데, 지금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지도 업체에 부탁할 성격의 일도 아니고 나는 아쉬운대로 집안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거기에 하나씩 번호를 매겨 보았다.

주방의 바닥이나 서재의 서쪽 벽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뭔가 이 집안에 비밀 지도 같은 것을 숨겨 놓았다면 주택의 바닥이나 벽 같은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천정 같은 곳도 가능하고 그렇게 여기저기 뭔가 숨길 수 있을 만한 곳들에 번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행동을 마르티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최 선생님은 집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혹시 건축가신가요?”

집의 곳곳을 살펴보고 스마트폰에 뭔가를 기록하는 나를 보고 마르티나는 내가 이 집의 건축 구조에 흥미를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저 사업가일 뿐이죠. 리조트 같은 걸 개발하는 일도 하고 있지만 직접 건축 설계를 하거나 하는 기술은 없죠. 그저 돈을 투자하는 투자가라고 할 수 있죠.”

“그럼, 돈이 많으시겠네요?”

“그런 편이죠. 그나저나 저건 뭐죠?”

이 집은 사각형의 외벽으로 둘러싸인 집안에 둥근 원형의 정원이 있는 형태였고 그 원형의 정원 안쪽에 뭔가 둥그런 석제 구조물이 하나 있었다.

그냥 돌로 만든 의자처럼도 보였지만 의자치고는 뭔가 모양이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저건 옛날 우물터예요. 원래는 우물이 있었다는데, 우물이 말라서 우물을 막았다고 하더라고요. 뚜껑을 덮은 거죠.”

“그래요?”

마른 우물이라면 물도 안 나오고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뚜껑을 덮어 놓은 거라는 것은 이해가 갔다. 우물이라면 일종의 지하로 이어지는 동굴과도 비슷한 이미지였다.

동굴이 비교적 수평으로 이동해서 지하로 그러니까 산의 아래쪽 지하로 이어지는 곳이라면 우물은 땅을 수직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땅속의 숨겨진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할 만한 곳이기도 하고 말이다.

마르티나가 말한 그 옛날 우물터에도 번호를 매겨 놓았다.

“그런데 저 우물을 저렇게 돌로 막아놓은 건 언제부터인가요?”

“글쎄요. 예전에 어렸을 때 여기 놀러왔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벌써 20년도 넘은 일이겠죠.”

그 이상의 역사는 마르티나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르티나는 집에서 저녁 식사까지 준비해 주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가정부라고는 하지만 입주 가정부는 아니었다.

나는 마르티나가 만들어준 브라질식 저녁 식사를 즐기고는 정원으로 나가보았다. 그리고 행운의 과자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행운의 과자 하나를 천천히 입안에 밀어 넣었다. 과자에서는 뭔가 달콤한 맛이 나고 있었다. 마르티나가 만들어준 저녁을 맛있게 먹어서일까?

뭔가 과자에서는 브라질의 달콤한 맛이 감도는 것 같았다. 나라마다 독특한 향신료나 특유의 향과 맛이 있는데, 그런 브라질의 향기가 입안에 퍼지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브라질의 이국적인 향이 사라질 때쯤 입안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온 것은 69였다. 69는 마지막 번호인데, 마르티나가 말해준 그 우물의 번호였다.

뭔가 있는 건가?

나는 천천히 정원 중심으로 다가가 석제 의자 내지는 뚜껑을 살펴보았다. 무게가 상당해서 밀어서 옮기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옮긴다고 해도 마르티나의 말대로라면 그 아래쪽에 오래된 마른 우물이 있다는 것인데, 그 안으로 내려가는 것도 맨몸으로는 무리였다. 역시 뭔가 필요한 장비들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바타타의 리조트로 돌아가기로 했다.

***

다음날 아침, 페라리 로마를 타고 다시 바타타의 리조트로 돌아왔다.

“회장님, 그 쌍둥이 마을 투어는 끝나신 거예요?”

에니카가 며칠 만에 돌아온 나를 반겨주었다.

“그런 건 아니고 필요한 물건들이 좀 있어서 플라잉 폭스에 다녀와야겠어.”

플라잉 폭스는 자구아눔 본섬에 아직도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플라잉 폭스에 전화를 걸어 헬리콥터 슈퍼 푸마를 리조트로 보내도록 명령을 내렸다.

“예, 일단 내가 직접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야 하니까 헬기를 보내도록 하세요.”

자구아눔 본섬과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슈퍼 푸마를 이용하면 쉽게 플라잉 폭스와 오고 갈 수가 있었다. 헬리콥터를 구매해서 잘 사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헬기가 내려오고 이어서 헬기를 타고 플라잉 폭스로 향했다.

“플라잉 폭스 같은 요트에 착륙해 보는 건 처음인데 좀 긴장되는데요.”

“하하, 배에 착륙하는 거라고 큰 차이는 없습니다. 오히려 배에 탄 사람들이 좀 불안해하죠.”

기장은 베테랑이라 그런지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기장의 말대로 오히려 긴장하는 것은 나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는 달리 슈퍼 푸마는 가볍게 플랑잉 폭스의 헬기 착륙장에 내려앉았다.

헬기를 타고 플라잉 폭스에 내리자 선장이 오랜만에 찾아온 나를 반겨 주었다.

“필요한 물건들이 있어서 왔습니다.”

“예, 창고에 회장님의 물건들은 모두 안전하게 보관 중입니다.”

코코넛 아일랜드에서 철수하면서 내가 가져왔던 장비들은 모두 플라잉 폭스로 다시 옮겨 놓았었다. 플라잉 폭스는 내가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브라질에서의 야마시타 골드의 발굴 작업을 위한 베이스 캠프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필요한 장비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도 하고 말이다.

선장의 안내로 창고로 향했고 거기에서 필요한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물을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전동 도르래도 필요하고 뭔가 힘을 쓰는 작업을 위해서 파워 슈트도 필요했다. 화물 드론인 옥토퍼스도 가져가면 좋겠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서

대신 소형 정찰용 드론을 하나 챙겼다.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인데, 우물터 아래로 먼저 내려보내서 안쪽 상황을 미리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런 장비들로는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창고에서 내가 꺼내는 물건들을 살펴보면 선장은 호기심이 발동한 듯 나에게 물었다.

“뭐, 괴짜 재벌의 유별난 취미생활이라고 해두죠.”

그 정도로 선장은 더 이상 귀찮게 묻지는 않았다. 선장도 이 배에서 일하는 것은 꿀을 빠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배는 벌써 일 년 이상 자구아눔과 리우데자네이루를 몇 번 오고 가는 정도였고 대부분은 휴양지인 자구아눔의 섬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상당한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꿀빠는 꿈의 직장 생활이 가능한 것은 모두 내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선장은 아무튼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고 나도 장비들을 챙겨서 슈퍼 푸마에 다시 옮겨 싣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비들을 챙겨서 다시 바타타의 리조트로 향했다.

***

바타타 진수의 리조트

“이게 다 뭐예요?”

한나와 에니카 역시도 내가 가져온 장비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특이한 취미생활을 하는 것뿐이죠.”

“음, 뭔가 탐험을 떠나려는 거죠? 회장님은 무인도에서도 이런 식으로 자주 탐험을 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두 명의 크로아티아 미녀들도 그다지 나의 취미 내지는 탐험 활동에는 큰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들도 돈 많은 사업가인 나에게서 적당히 이익을 얻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정도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가져온 장비들은 제법 부피가 나가는 것들이라 나의 페라리 로마에 그걸 싣고 갈 수는 없었다.

픽업트럭이 필요했다. 엔젤라에게 전화를 해서 포드 F150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F150요?”

전화를 받은 엔젤라는 F150이 정확히 뭔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이내 그것이 포드의 픽업트럭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예, 픽업트럭 말이군요?”

“엔젤라는 차에 대해서는 잘 아는 줄 알았는데, 픽업트럭은 잘 모르는 것 같네요.”

“픽업트럭은 여자들의 관심사는 아니죠. 아무튼, 포드 F150이 필요하시다는 말이죠?”

“예, 짐을 많이 실어야 할 것 같아서요.”

브라질에도 픽업트럭은 흔한 편이라 엔젤라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어렵지 않게 신형 픽업트럭을 한 대 보내 주었다.

픽업트럭이 준비되자 짐들이 싣고 다시 오스제미오스로 출발했다.

***

오스제미오스

“이번에는 픽업트럭이네요?”

“페라리보다는 볼품이 없죠?”

“아뇨, 이런 트럭을 타는 남자들도 멋있어요. 뭔가 남성적이고 강인해 보이잖아요.”

“하하, 그런가요? 픽업트럭도 매력이 있죠.”

페라리 같은 날렵한 스포츠카도 좋지만 F150 같은 픽업트럭도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도 슈퍼카와는 또 다른 감성의 픽업트럭을 타고 오스제미오스로 오는 드라이브가 꽤나 즐거웠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짐을 실어나르기에는 좋은 차였다.

“그런데 뒤에 싣고 오신 건 다 뭐예요?”

“탐사 장비라고 할 수 있죠. 이 마을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이 많거든요.”

마르티나에게 많은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런 종류의 작업들은 나 혼자 하는 것이 가장 편한 일들이었다.

마르티나에게는 대충 둘러대고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르티나가 집을 떠나기를 기다렸다. 문을 대충 걸어 잠그고, 안으로 들어와서 파워 슈트를 입었다.

파워 슈트로 강화된 힘이라면 지난번에 힘겨웠던 석제 뚜껑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슈트를 입고 전원을 켜고 천천히 석제 의자로 다가갔다. 그리고 힘을 주며 돌덩어리를 옆으로 밀어 보았다.

확실히 파워 슈트로 힘이 강화되어서인지 돌덩이는 옆으로 쉽게 밀렸다. 그리고 거대한 구멍이 지하로부터 입을 열었다.

밤까지는 아니었지만 해도 지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땅속으로 이어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은 약간은 기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자아내고 있었다.

역시, 그대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불안한데 너무 어둡기도 하고 말이야.

내가 직접 들어가는 대신 소형 드론을 내려보내기로 했다.

드론에는 탐색등과 카메라가 달려있어서 어두운 우물 속을 살펴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리모콘을 작동시키자 드론이 가볍게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러다가 천천히 땅속으로 이어지는 우물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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