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세계
평범한 드론 같지만 내가 오너인 이카로스항공에서 특별히 제작한 정찰 드론이었다. 원래부터 어두운 토굴을 탐사하기 위해서 적외선 탐지기와 탐색등 같은 탐사 장비를 달고 있는 녀석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간 정찰 드론은 탐색등을 켜고 안쪽의 화면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우물 안쪽은 제법 깊기는 했지만 마르티나의 말대로 우물 안쪽은 말라 있었다. 그리고 우물 바닥까지 드론이 내려가자 우물 안쪽으로 수평으로 이어지는 토굴이 보였다.
뭐지? 안쪽에 굴이?
우물에 대해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물 안에 저런 자연 동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뭔가 인공적으로 파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드론을 정교하게 조정해서 그 토굴 쪽으로 좀 더 접근하자 안쪽에 목재로 기둥을 세워 놓은 것이 보였다. 토굴이 붕괴하지 않게 기둥을 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더 볼 것도 없이 인공적인 구조물이라는 결론인 것이다.
누가? 이런 걸 만든 거지?
정말, 나치의 비밀 장소라도 되는 건가?
인터넷으로 요제프 멩겔레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나치 조직에서는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 같았다.
60년대에 이곳을 찾아온 나치 의사 요제프 멩겔레는 나치의 생체 실험과 유대인 대학살의 핵심인 독가스 실험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나중에 이스라엘 첩보조직인 모사드에게 생포되어서 공개 재판을 받았던 아돌프 아이히만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들의 연결고리는 바로 독가스다.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과 요제프 멩겔레는 유럽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독가스로 다수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작업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막대한 귀금속과 황금 그리고 화폐와 채권들을 약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역사에서는 학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거기에서 간과한 것은 유럽에 있던 수백만의 유대인의 자산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런 자산들은 전후에 미군에 의해서 발견되기도 했고, 승전국 4국이 이런 나치의 출처 불명의 자산을 압수해서 분배하기로 협정을 맺은 일도 있었다. 물론 소련이 동유럽을 장악하면서 이런 승전국들 간의 나치 자산 공동 분배 협약을 깨어지기는 했지만,
나치의 자산 상당 부분이 전후에 연합군에게 압수된 것은 분명했다.
원래는 주인을 찾아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들이 상당수였지만 전 소유주가 사망한 사례가 대부분이기도 하고 전쟁 중에 있었던 일들이라 법적으로 소송을 벌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연합군에게 발견된 나치의 황금들이 상당했지만 나치가 보유하거나 약탈했던 자산의 규모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인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풍문으로만 나치의 황금들이 어디론가 빼돌려졌을 것이고,
특히 나치 잔당들이 대거 탈출했던 남미 지역이 그 늑대의 눈물이 감추어진 곳이라는 소문들이 돌았던 것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서 모사드에게 납치되어 이스라엘에서 세기의 재판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와 함께 독가스실로 많은 생명을 앗아간 요제프 멩겔레는 브라질에서 79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브라질에서 요제프 멩겔레는 게르하르트라는 독일계 사업가의 신분을 위장해서 살다가 병사했고 나중에 그가 요제프 멩겔레였다는 풍문이 돌았을 뿐이다.
아무튼, 요제프 멩겔레가 79년에 사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쯤은 그도 이 세상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히만과 멩겔레는 나치의 약탈 자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독가스실을 실제로 운영하고 관리했던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 둘이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신분을 위장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테고, 아마도 그들이 그렇게 쉽게 남미로 올 수 있었던 데는 그들이 가진 황금의 힘이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역사는 독가스실은 잔인한 학살로만 기억하지만 그 이면에 막대한 유대인들의 자산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 자산들이 어딘가에 숨겨졌을 가능성이 아직도 농후한 것이다.
드론은 천천히 비행을 하며 토굴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토굴에 특별히 위험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안쪽으로 들어간 드론이 탐색등을 켜고 안쪽을 비추자 제법 넓은 공간이 나왔다. 황금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지하에 만들어진 작은 서재 같은 공간이었다.
오래된 목재 책상들도 보이고 서가에 책들도 있는 것 같았다.
뭐지 이건? 말라버린 우물에 이런 공간이?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든 것일까?
하지만 그 의문은 쉽사리 풀리고 말았다. 토굴의 서재 같은 곳에 한쪽 벽에 걸린 하켄 크로이츠, 드론으로 전송되는 영상 속에는 아직도 선명한 하켄 크로이츠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역시, 요제프 멩겔레가 이곳을 만든 주인공인가?
안에 뭔가 책이나 서류 같은 것들이 보였지만 드론만으로는 더 이상 확인해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우물 안으로 직접 내려가 보기로 했다.
우물 안쪽에 제법 깊었다. 대략 30미터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물이 없기는 했지만 깊이가 워낙 깊어서 그냥은 내려가기 어려울 것 같고 전동 도르래를 연결해서 도르래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도르래를 설치하는 것은 야마시타 골드를 발굴하면서 익숙한 일이었다.
그렇게 도르래를 설치하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파워 슈트는 거추장스러워서 벗어버리고 배낭에 간단한 음료와 랜턴 정도를 챙겨서 아래로 도르래를 타고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위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어두운 우물 안으로 그것도 저녁 무렵에 혼자 내려가는 기분은 뭔가 으스스하고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예로부터 신화 속에서 지하세계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하데스에게 사로잡힌 페르세포네도 그렇고 고대의 여신 이슈타르도 에레슈키갈에게 속아 지하세계에서 죽음을 당한다.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는 것도 땅속이니 이래저래 지하 공간은 인간에게는 죽음을 연상하는 두려운 공간인 것이다.
아무튼, 안에 들어가서 뭔가를 찾아야 하니까 계속 망설일 수는 없는 일, 나는 도르래를 천천히 내리며 어두운 우물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고 나니 밖에 비해서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지하라 더 서늘한 것 같았다. 그리고 바닥까지 완전히 내려와서 도르래에 연결된 그물망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보통은 황금 상자를 나르는 그물망인데 내가 올라탄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무거운 수백 킬로그램의 황금 상자를 나르는 그물이라 내가 올라타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지하세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바닥은 완전히 마른 흙이었다. 우물이 마른 지 워낙 오래전 일이라 물기 같은 것은 없는 마른 흙이었다.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수평으로 이어지는 토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하라서 뭔가 습할 것 같았지만 의외로 건조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온도도 서늘해서 뭔가 에어컨이 돌아가는 것처럼 시원하고 쾌적한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랜턴을 켜서 약간 어둡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시야도 확보된 상태였다. 그렇게 어두운 회랑을 지나 둥그렇게 파인 것 같은 공간이 나왔다.
드론의 카메라로 보던 것과 거의 비슷한 서재였다. 차이라면 드론의 카메라에 담겨서 단편적으로 보이던 화면과는 달리 전체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전체는 부분의 합, 그 이상이라고 했던가? 단편적인 조각들을 모두 본다고 해도 전체의 느낌과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직접 안으로 들어와서 보는 토굴의 내부 공간은 상당히 넓고 또 쾌적했다. 잘 만들어진 공간이었고 뭔가 건축학적으로도 안정적으로 굴을 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부는 기본적으로 서재 혹은 연구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책들이 많이 꽂혀진 책장이 있고 책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책들을 살펴보니, 잘은 모르겠지만 모두 독일어로 된 책들이었다. 의학 서적 같은 것은 아닌 것 같고 철학 서적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헤겔이나 니체 같은 이름들이 언급된 책들도 있었다.
“나치의 전범 의사와 철학이라? 어딘지 안 어울리는데.”
요제프 멩겔레에 대해서는 의사 출신으로 독가스실에 깊숙이 개입되었다는 정도지만 그와 같이 독가실을 지휘했던 아이히만은 철학을 전공한 철학도였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혹시, 이 서재의 책들은 아이히만의 것들인가?
대중들에게는 나치의 악명 높은 장교로 기억되었을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아이히만은 철학을 전공한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에 배웠던 철학에 대해서 중년의 나이에 남미로 와서도 흥미를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요제프 멩겔레 역시도 철학에 관심이 많았을 지도 모르고 말이다. 히틀러조차도 미술가를 꿈꾸던 예술인이고 나치의 핵심 인물들 중에는 예술이나 철학과 관련된 인물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치는 예술가들을 탄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히틀러의 말로는 예술가만큼 위험한 사람들은 없다고 하니까 말이다. 대중을 선동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나치에 부역한 철학자들도 그 당시에는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있는 하이데거도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이히만도 그런 독일 현대철학을 배운 인물이고 말이다,
결국, 소대장님이 평소에 하시던 현대철학, 아니 철학 자체의 무용론이 증명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쟁의 위기에서 하이데거 같은 대철학자도 히틀러가 독일을 구원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나치에 적극 협력을 했다니 말이다. 나중에 후회하고 사과를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작은 일도 아니고, 그런 큰일에 판단 착오를 하는 철학자라는 사람의 난해한 철학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나저나, 여기에 뭔가 나치의 약탈 황금에 대한 단서가 있는 것일까?
서재에 책들은 별다른 특징은 없는 철학 서적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열어 보았다. 뭔가 서류가 담긴 봉투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서류를 넘겨 보니...
뭐지? 이건 숫자들, 그러니까 이것과 비슷한 것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렇다 숫자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난수들이었다. 야마시타 골드의 단서가 되었던 제주도 알뜨르에서 본 것과 비슷한 숫자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차이라면 서류에 별다른 설명이 될 만한 문자들이 없다는 것, 하지만 이 연속되는 숫자들이 단순히 숫자를 의미 없이 나열한 것이 아니라면 뭔가 해독이 가능한 암호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알뜨르와 그리고 필리핀에서 발견한 아마존 문서들, 모두 김덕수 소장을 통해서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다.
역시, 이번에도 소장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인가?
하긴, 김덕수 소장님도 지난번에 나치의 약탈 황금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야마시타 골드를 설명하면서 곁가지로 한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 서류는 일단 한국으로 다시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서류들을 챙기고 다시 뭔가 단서가 될 것이 있는지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책상의 다른 서랍들에는 별다른 것은 없었다. 책장을 여기저기 살펴봐도 그냥 봐서는 별다른 것은 없는 것 같고 말이다.
좋아, 일단 이 암호처럼 보이는 서류들을 가지고 가자 그리고 김덕수 소장에게 해독을 부탁하면 뭔가 내용이 나오겠지.
서류를 챙겨서 다시 토굴을 나오기 시작했다. 토굴을 나와서 우물 위쪽을 바라보니 어두운 하늘 위로 달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후후, 나쁘지 않은 징조군. 달과 금성은 이슈타르 여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슈타르 여신은 에레슈키갈의 함정에 빠져 죽음에 이르지만 다시 부활해 지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비밀, 땅속 세계의 비밀을 깨닫게 됨으로서 최고의 신의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도르래를 다시 작동시키자 전동 도르래가 다시 내가 앉은 그물망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페르세포네가 여름이면 어머니의 데메테르의 품으로 돌아가듯, 이슈타르가 죽음에서 부활한 것처럼 나는 다시 우물 밑의 지하에서 지상의 세계로 올라가고 있었다. 배낭 속의 담긴 지하세계의 비밀문서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