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말해 보시죠.”
“물론, 어디까지나 세상에 떠도는 음모론과 내 개인적인 견해를 가미한 가설일 뿐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김덕수 소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알아서 가감해서 듣겠습니다.”
“그래, 적당히 판단해서 들으라고. 아무튼, 아이히만을 비롯한 나치의 핵심 간부들이 전범재판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거야.”
“하지만 잘 피해나간 거 아닙니까?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보통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익이 충돌하기 때문이지,”
“돈 말이군요?”
“맞아,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경우는 드물어, 싸우면서 서로 정의 타령을 하는 것뿐이지.”
“그거야, 그렇겠죠. 모두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들일 뿐이죠. 국가 단위로 올라간다고 해도, 국익이라는 정도겠지, 근본적인 변화는 없겠죠.”
“맞아, 쉽게 말해서 모두 돈이라는 문제로 귀결이 된다는 거야.”
“그럼, 역시 돈 문제, 아이히만을 연합군의 전범재판에 빼내줄 수 있었던 건, 엄청난 돈이 있다는 말이겠군요. 나치의 약탈 황금 말입니다.”
“황금일 수도 있고, 그 형태는 다양하겠지. 아이히만은 아우슈비츠에서 독가스실, 즉 대규모 학살 작업을 주도하던 인물이야. 유대인들에게는 악마, 그 자체였겠지. 연합군의 전범재판으로 처단하지 못하자, 나중에 모사드를 보내서 납치를 해서 이스라엘 범정에서 직접 재판을 하고 교수대로 보내야 했을 만큼, 그걸 미국이나 영국이 몰랐겠나? 미국이나 영국에도 유력한 유대인들도 많았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히만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오히려 전후의 독일에 남아 독일 정부의 관리로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던 거야.”
듣고 보니,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아이히만은 여유롭게 전쟁 이후에도 잘 먹고 잘살았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게 나치의 약탈 자산을 아이히만을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나치 잔당이 무슨 정치력이 있겠어? 그들은 패배한 군인이고 이미 몰락한 파시스트 정권의 잔당일 뿐인데, 정치적으로는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독일이든 어디에서든 그 신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거야.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이라는 거지.”
나도 어디서 그런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70년이 지난 최근에도 나치 부역자들이 체포되었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독일이나 미국에서 고령의 노인들이 과거 청년 시절에 나치 활동이 들통나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 것을 보면, 서구 세계에서 나치라는 것은 아주 금기시되는 것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히틀러의 측근이자 아우슈비츠의 핵심 인물인 아이히만은 어떻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정부의 고위직 관리고 전후에도 근무를 하고, 더 나아가 벤츠 같은 대기업에서도 일하게 되었을까?
김덕수 소장은 와인은 한 잔 더 마시고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독일의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단초가 된 거지, 결국 독일이라는 나라가 1차 세계대전의 배상금 같은 문제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내부 불만을 먹고서 나치 같은 파시스트 세력이 급성장을 한 셈이니까, 아마도, 유럽의 승전국들 입장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거야.”
“거기다, 동유럽을 소련이 장악한 상황이었으니까, 지정학적으로 중부 유럽에 해당하는 독일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면 급격하게 공산당이 성장할 가능성도 있었겠군요?”
“그래,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도 심각한 문제였지,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독일이나 이탈리아, 일본 같은 주축국들은 모두 국제적으로 사면을 받은 셈이야, 물론, 전범재판이 있기는 했지만,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 입장에서는 주축국들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새롭게 부상하는 소련을 막는 일이 더 큰 문제였지.”
독일과 일본 모두, 지금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국들이다. 그리고 모두 50년대와 60년대 급격한 경제 성공을 거둔 나라들이다.
아마, 미국 입장에서도 공산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두 나라의 경제를 빨리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럼, 소련을 막기 위해서 아이히만을 사면했다는 거군요?”
“사면이라기보다는 아예, 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봐야지, 아이히만에 대해서 알려진 건, 모사드가 이스라엘로 아이히만을 납치했을 때부터고, 그 이후로 그의 재판은 세기의 재판이 되기는 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그에 대해서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알지 못했으니까.”
“벤츠와의 관계는 어떤 건가요?”
“아이히만은 독일에서 정부 관리로 일을 하며 해외의 석유 개발 사업에도 개입을 했었어, 그 중에는 남미 지역의 유전들도 관련이 있었지, 남미 국가들은 당시로서는 저개발 국가들이 대두분이었지만,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은 물론이고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은 식민 지배에서 독립하기는 했지만 자원이나 산업을 개발할 자금은 없었으니까 결국 어디선가 개발을 위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거지.”
“그게 유대인들에게서 약탈한 나치의 비자금이라는 거군요?”
“그래, 확인된 숫자만 6백만 이상의 유대인이 학살이 되었잖아? 생각해봐, 유대인들이 다들 부자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유럽에게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사업가나 은행가들이 많았지, 유대인들이 독일 경제를 장악했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사채업을 하는 사람도 많고 말이야. 대부분 그런 6백만이 넘는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말그대로 한순간에 잿가루가 되어버린 거야, 물론, 그들에게서 돈이 될만한 건 모두 털어간 후였고, 끔직한 이야기지만, 죽은 사람들에게서 금이빨까지 모두 빼앗아 갔다고 하니까,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가지고 있던 금이나 화폐, 채권, 아무튼 돈이 될만한 것은 모두 아이히만이 지휘하던 아우슈비츠의 나치들이 차지한 거야.”
“엄청난 이야기군요.”
“그때와 지금 돈의 가치가 다르기도 하지만, 70년 전이라면 돈보다는 금이 더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있을 때야, 사람들도 은행보다 금을 더 신뢰하던 시절이고, 유대인들이라면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던 때라 더더욱 자산을 금으로 바꾸어 몸에 지니고 다녔을 테고, 그런 식으로 아이히만이 수집한 약탈 황금의 양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일 거야.”
“하지만 그런 불법적으로 모은 자산이라면?”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그게 바로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지 않은 이유가 아닐까?”
“전범 재판정에 아이히만이 섰다면, 그의 범죄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을 테고, 기소 과정에서 말입니다. 그의 범죄라면 대량 학살 외에도 유대인들의 재산 강탈 문제도 문제가 되었겠죠?”
“맞아, 그러면 그 자산의 반환 문제도 생기는 거고, 나치의 숨겨진 자산에 대한 문제도 연쇄적으로 수면 위로 들어날 테니까, 아이히만의 존재 자체가 미군에게도 부담이 된 거야.”
“유대인 약탈 자금을 미국이 원하는 대로 전후 복구에 쓰기 위해서는 아이히만이 재판을 피한채 그들에게 협조하는 거 더 편했겠군요?”
“맞아, 그런 이유로 전범 재판을 피하고 그런 아이히만과 미국의 유착 관계를 알았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함부로 그를 건드릴 수 없었던 거지 하지만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한 후에는 그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수가 없었던 거야.”
“결국, 아르헨티나에 숨어 있던 그를 납치하는 방식으로요?”
“아이히만은 숨어 있지도 않았어. 벤츠의 해외 사업을 위해 아르헨티나에 머물고 있었고, 지금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누비는 벤츠 버스를 처음 들여온 게 바로 아이히만이었지, 아르헨티나에서 아이히만은 성공한 독일계 사업가였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았어, 후에 문제가 된 것은 벤츠에서 나치 전력이 문제가 되어서 퇴사를 종용받은 하지만 그 후에도 아르헨티나에서 여유롭게 살았던 것은 물론이고, 스탠더드 오일과 여러 사업을 했다는 증언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역시 아이히만이 늑대의 눈물을 관리했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아무튼, 60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체포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처벌도 없었고 누구에게 체포되거나 조사를 받은 기록도 전혀 없으니까, 미국의 묵인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야. 복수심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이 아니었다면 누구에게도 처벌받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페론 정권 시기의 경제 급성장기에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왔다는 거군요? 역시 아이히만이 가진 나치 약탈 황금이 아르헨티나로 흘러들었다는 건가요?”
“그렇지 않을까? 페론의 집권기에는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급성장했거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브라질도 그렇고 어디선가 막대한 해외 자금이 들어오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지. 그리고 필리핀도 그렇지만 50년대부터 60년까지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고는 갑자기 경제가 몰락한 나라들이라는 공통점도 있지.”
“지금도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의 경제는 엉망이기는 하죠.”
“그래, 뉴스를 보니까, 지금의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크리스티나라는 여자 대통령인데 지독한 페론주의자고 하더군.”
“페론주의요?”
“그래,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론의 인기가 여전해. 한국에서는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이라면 포퓰리즘으로 아르헨티나를 망친 인물이라고 많이 소개가 되기도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아직도 페론 추종자들고 많고, 크리스티나도 그런 인물 중에 하나지.”
“아무튼, 아르헨티나에 한 번 가봐야겠군요.”
“그래, 실제로 이 오스제미오스 문서에 적혀있는 좌표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김덕수 소장의 말대로 오스제미오스 문서에 적혀진 좌표들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김덕수 소장의 예측대로 나치의 황금, 늑대의 눈물이 매장된 비밀 장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치 잔당들에게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비밀 무기를 보관한 곳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70년의 시간이 지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스제미오스에서 독일 의사 한스가 사라진 것이 60년의 일이니까. 적어도 60년 이전에 만들어진 비밀 암호문서라고 할 수 있었다.
진짜 나치의 비밀 황금이 묻혀진 장소를 가리키는 비밀 암호문이라고 해도 그걸 나치 잔당들이 이미 찾아냈을 가능성도 큰 것이다.
김덕수 소장의 주장도 50년대에 이미 남미의 여러 나라들에 막대한 나치의 자금이 투입되어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실제로 뭐가 있을지는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죠.”
다행히, 나치의 자금을 관리했던 가장 핵심 인물이었던 아이히만은 60년에 이스라엘 모사드의 납치로 62년에 교수형을 당한다. 아마도 아이히만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불의의 일격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히만이 비밀리에 관리하던 나치의 황금의 존재가 나른 나치 잔당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비밀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치의 비밀 황금은 극소수만이 그 존재를 알고 특히,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아이히만 혼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야마시타 골드의 경우에도 풍문이기는 하지만 8번 게이트 사건처럼, 황금을 매장하고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갱도를 폭파에 관련자들을 생매장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독가스의 사용에 능한 아이히만이라면 황금의 비밀을 아는 자들을 모두 독가스로 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군...
하지만 인류사에서 인간의 탐욕을 빗어낸 끔찍한 사건들은 수도 없이 많으니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70년 전 혹은 60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지금은 오스제미오스 문서에 나온 포클랜드 제도의 좌표들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