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남자
종로, 센트럴 타워 26층.
“말비나스 제도 말이군요?”
아무래도 남미쪽 일이라 엔젤라 누네스에게 전화를 걸어서 현지 상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브라질에서는 포클랜드 제도를 말비나스라고 부르는군요?”
“예, 남미쪽에서는 다들 말비나스라고 하죠. 그게 원래 이름이기도 하고요.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을 배제하는 경향도 있으니까요.”
“아무튼, 그 섬에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포클랜드에요?”
“예, 왜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분쟁지역이라 어려울까요?”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알아보니까, 영토 분쟁이야 80년대부터 쭉 이어지던 거니까, 지금은 문제랄 건 없죠. 외교적인 수사들이 오고가는 정도니까. 그거야 수십 년 동안 계속 그랬던 거고요. 제가 듣기로는 전반적으로는 평화로운 섬지역이죠. 하지만 남극에 가까운 곳이라 리우데자네이루나 자구아눔, 바타타 같은 지역하고는 판이하게 달라요.”
“그래요? 어떻게 다른데요?”
“일단, 포클랜드 제도라고 하면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전라남도 정도의 크기예요.”
전라남도? 포클랜드 섬이라고 해서 독도 같은 곳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큰 곳이네. 하긴 남미대륙은 다들 스케일이 다 큰 것 같았다. 아니면 한반도가 좁은 건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꽤 큰 섬이네요? 인구는 얼마나 됩니까?”
“대략 3800명 정도인데, 그 중 3분 1은은 영국에서 파견온 군인과 과학자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럼,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은 2500명 정도라는 말이네요. 섬의 크기를 생각하면 아주 적은 인구네요.”
“예. 원래 남극에 가까운 곳이라 펭귄이 사는 곳이기도 하고 사람이 살기에는 좀 추운 지역이에요. 북유럽에 가까운 그런 곳이라고나 할까요.”
“북유럽요? 살기 좋은 곳 아닌가요? 한국 사람들은 북유럽을 천국 같은 곳이라고들 생각하는데.”
“후후, 저도 그런 이야기는 들었어요. 하지만 그건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의미겠죠. 그리고 눈이 많이 오는 침엽수림 지역이나 호수들이 많은 곳인데, 여행을 가면 멋지겠지만 농사 짓거나 생활환경으로는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잖아요? 제가 듣기로는 북유럽이 예전에는 농업이 되지 않아서 굉장히 가난한 지역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바이킹도 나온 거잖아요. 먹고 살기 위해서.”
듣고 보니, 엔젤라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아무튼 포클랜드 제도 남미에서 말비나스라는 곳은 남극에 가까운 지역으로 춥고, 인구가 적다, 그 정도로 정리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주민들이 있는 모양인데, 뭘 하고 사나요?”
“말비나스에는 크게 두 가지 산업이 있어요. 섬은 포클랜드 해협을 중심으로 동 서로 나뉘어지는데 동쪽에는 스탠리항이 있어서 여길 중심으로 어업이 발달한 편이고요. 그리고 나머지 지역은 목양지역대예요.”
“목양요?”
“예, 방목해서 양을 키우는 곳요. 기후가 추운 편이라 털을 가진 양들을 키우기에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죠.”
뭔가 상상이 되었다. 기후가 추워서 큰 나무들도 없고, 잡목도 자라지 못하는 포클랜드에는 거친 바람과 낮은 풀들만이 자라는 초원 지역이 많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된 골프장 느낌의 지역이라는데, 기후와 바람이 잔디깎이처럼 풀들의 길이를 적당히 조절해 준다고 한다.
아무튼 낮은 풀들과 그걸 주식으로 삼는 양들이 사는 그런 목가적인 풍경이 상상이 된 것이다.
북유럽과는 좀 다른 기후라고 할 수 있었다. 나무들이 거의 없다고 하니까 말이다. 남미의 열대의 파라다이스와는 다르지만 또다른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섬일 거라는 상상이 들었다.
“아무튼, 그 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거기서 뭔가 개발 사업을 하려면 영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겠죠?”
“예, 제가 듣기로는 여기서 어업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개발권을 가진 회사가 한 군데 있어요.”
“그래요?”
“예, 이곳의 목양사업을 담당하는 포클랜드 아일랜즈 주식회사라는 회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본사는 영국에 있고요.”
“포클랜드 아일랜즈? 음, 그쪽에서 뭔가를 개발하려면 그 회사를 거쳐야 한다는 거군요?”
“워낙 외진 섬 지역으로 정치적인 분쟁도 있는 곳이라, 이 회사가 말비나스의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고, 섬의 개발권을 독점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요. 영국인들은 좀 보수적인 것도 있어서 한 번 개발권을 독점하면 그게 오래 가는 경향도 있고요.”
“그렇군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일단, 내가 그럼 그 포클랜드 아일랜즈를 인수해 보기로 하죠.”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정말, 포클랜드에 투자를 하실 생각이세요? 거기는 뭔가를 개발할 만한 곳은 절대로 아닌데요.”
보통은 나의 의견에 토를 달거나 하지 않는 엔젤라였지만 내가 포클랜드 제도에 뭔가를 개발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뭔가 황당해하는 것 같았다.
“하하, 그저 돈 많은 재벌의 괴상한 취미일 뿐이죠.”
“괴상한 취미요?”
“나 같이 돈이 많다보면은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죠. 사막에 한가운데 리조트를 만들겠다든지 아니면 포클랜드 같은 곳에 리조트를 만든다든지 말입니다.”
“음, 그런가요? 저는 그 정도로 돈이 많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하하, 아무튼, 난 주체할 수 없는 자산을 가지고 있죠. 사실 그 돈으로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물건을 사는 것도 한계가 있고, 결국에는 큰 건물을 사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렇게 뭔가를 개발하고 싶어지죠. 보통은 수익성이 없어서 진행이 안 될 일도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겁니다. 나에게는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아무튼, 저도 회장님의 계획을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그래요. 조만간 내가 포클랜드로 가게 될 거 같으니까. 그 전에 바타타에도 더 가야할 것 같고요. 엔젤라도 다음 작업을 위해서 준비를 해 두세요.”
뭘 준비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몰랐지만, 일단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단은, 엔젤라에게서 좋은 정보를 얻은 셈이었다. 포클랜드에는 가본 적도 없고 어떤 섬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전에 황금을 발굴했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전진 기지 역할을 할 시설들이 필요했다.
발굴에 필요한 장비들을 보관하고 황금을 찾았을 때, 보관 이동을 하기 위해 베이스 캠프가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은 주로 필리핀이나 브라질의 섬 지역에서 그런 일들을 했기 때문에, 초호화 요트인 플라잉 폭스와 그 외에 리조트를 개발하는 것으로 그런 전진 기지들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이전에 발굴을 했던 곳들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신천지가 그 대상인 것이다.
일단, 포클랜드에서 개발이든 뭐든 사업을 하려면 개발권 허가가 필요했고 그걸 가진 유일한 회사가 포클랜드 아일랜즈 주식회사인 모양이었다.
주식회사라면? 주식을 인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일단 그런 쪽에 경험이 많은 김영석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
“포클랜드 아일랜즈요?”
“예, 남미 사정에 밝은 사람에게서 들은 건데, 포클랜드 제도에서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고 개발권을 가진 회사라고 하더군요. 영국에 본사가 있다는 것 같은데 그 회사를 인수할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포클랜드는 무슨 일이신가요?”
“하하, 뭐, 괴짜 재벌의 이상한 취미죠. 저는 그런 특이한 섬들을 보면 좀 개발을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뭐, 그런 개발 게임 같은 것도 있지 않습니까? 섬이나 호텔을 개발하고 그러는 게임처럼요. 돈이 많으니까, 현실에서도 그런 게임을 해보고 싶은 거죠.”
“그런가요? 뭐, 어쨌든 회장님이 하시는 일이니까요.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김영석 사장은 내가 하는 일에는 큰 관심은 없었다.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그저 내가 하는 일에 묵묵하게 실무적인 일들을 담당하는 것뿐이니까 말이다.
왠지 아이히만이 재판에서 했던 말과 비슷하군, 자기는 그저 상부에서 시키는 일을 충실하게 실천했을 뿐이라고 했던 것 말이다.
자본주의 세계도 결국 위쪽의 상부에 존재하는 나 같은 존재에게 편리한 사람은 묵묵하게 이것저것 캐묻지 않고 시키는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다.
물론, 나는 세계를 멸망의 파국으로 몰고 갈 그런 악당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 같은 위치에서 사회에 악이 될 일들을 명령을 하더라도, 김영석은 별 불만없이 일을 척척 실행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성실함이라는 것이 꼭 선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진수, 너 한국에 온 거지?”
“엄마? 웬일이세요? 전화를 다 하시고.”
“웬일은? 다음 주가 아버지 생신이시잖아, 이번에는 오는 거지?”
“아, 그렇구나. 깜빡..아니, 물론 알고 있었죠. 다음 주말이죠?”
“그래, 바쁘지 않으면, 아니 바빠도 한 번 내려와.”
“예, 알았어요. 선물 준비해서 내려 갈게요.”
아버지 생신이셨는데, 엄마가 전화를 안 했으면 모를뻔했네. 어른들 생신 안 챙겨드리면 은근히 섭섭해 하시는데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미리 알았다는 것이고, 마침 시간도 있고 거기에 돈은 충분하니까 부모님 선물도 좋은 걸로 해드릴 수 있을 테고 말이다.
그런데, 선물로 뭐가 좋지?
보통 부모님 생신 선물이라면? 백화점에서 옷을 사거나 건강식품 정도가 좋기는 하겠지만, 그런 건 좀 평범한 것 같고.
이번에는 좋은 차를 하나 사드릴까?
시골에는 쓰기에 좋은 SUV를 하나 사드리기는 했는데 기왕에 사드리는 거 좋은 수입 세단을 하나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았다.
이미, 고향에는 내가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고 소문도 나고 은근히 내가 뭘 사드리는지 동네 사람들도 궁금해할 것 같아서 그 정도는 해드려야 할 거 같았다.
“뭐, 좋은 차가 없으려나?”
자동차 딜러들 중에 연락을 할 만한 사람이 없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때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한영 모터스의 이진석 사장이 좋겠군. 다른 딜러들도 있지만, 다음 주까지 괜찮은 고급 차량을 사야 하니까, 사장에게 직접 연략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여보세요. 최진수 회장님, 회장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요? 오랜만에 잘 계시는지도 궁금하고, 마침 차도 한 대 필요해서요.”
“하하, 슈퍼카는 많이 가지고 계신데 또 차가 필요하신가요?”
“사실은 다음 주가 아버님 생신이신데 선물로 고급 세단을 선물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다음주요?”
“다음 주말까지는 차가 꼭 필요합니다.”
자동차가 원래 그렇게 쉽게 택배 배송하듯 다음 주에 받는 물건은 아니고 더구나 고급 수입 세단이라면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 급하기도 하고 나 같은 재벌이라면 이런 어려운 부탁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가 보통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다. 대신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돈은 많고 시간은 없는 사람입니다. 가격 상관하지 마시고 괜찮은 최신 수입 세단으로 한 대 부탁드립니다.”
“하하, 뭐,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역시 사업하는 분이라 운이 좀 좋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좋은 차가 있나요?”
“이번에 벤츠의 S클래스가 풀체인지 된 건 아시죠?”
“벤츠요?”
“예, 사실 벤츠의 S클래스는 고급 세단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죠. 벤츠라는 회사가 기술력이나 개발 능력, 생산 능력 면에서 세계 최고의 회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벤츠라? 하긴, 워낙 유명한 회사고, 독일차의 대명사, 롤스로이스 같은 영국의 고급 세단도 있지만 사실 전체적인 기술력에서는 벤츠에 못 미친다는 이야기도 있다. 럭셔리함을 추구하는 다른 브랜드들도 있지만,
기술력고 안전성에서는 역시 벤츠가 최고봉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벤츠의 플래그쉽으로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모델이 바로 S클래스다. 단지 고급차라서 그런게 아니라,
기술력으로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벤츠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모델이 S클래스고, 모든 자동차 회사의 디자이너와 기술자들이 S클래스가 출시되면 그걸 분석하기 바쁘다는 그런 상징적인 차인 것이다.
“그럼, 다음주까지 신형 벤츠 S클래스가 출고 가능할까요?”
“예, 문제없습니다. 최진수 회장님 부탁이라면 뭐든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말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